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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 강좌.
무비스님 - 불교는 쉽다. 8강 - 4 (2009. 07. 15)
14-31 명자(名字)를 잘못 알고 있다.
今時學人不得(금시학인부득)은
蓋爲認名字爲解(개위인명자위해)니라.
大策子上(대책자상)에 抄死老漢語(초사노한어)하야
三重五重(삼중오중)으로 複子裏(복자리)하야
不敎人見(불교인견)하고, 道是玄旨(도시현지)라하야
以爲保重(이위보중)하나니 大錯(대착)이로다.
瞎屢生(할루생)이여 儞向枯骨上(이향고골상)하야
覓什麽汁(멱십마즙)고?
有一般不識好惡(유일반불식호오)하야 向敎中(향교중)하야
取意度商量(취의탁상량)하야 成於句義(성어구의)하나니,
如把屎塊子(여파시괴자)하야 向口裏含了(향구리함요)라가
吐過與別人(토과여별인)하며 猶如俗人(유여속인)이
打傳口令相似(타전구령상사)하야 一生虛過(일생허과)로다.
也道我出家(야도아출가)라하나
被他問著佛法(피타문착불법)하면,
便卽杜口無詞(변즉두구무사)하야 眼似漆突(안사칠돌)하며,
口如楄擔(구여편담)하니라.
如此之類(여차지류)는 逢彌勒出世(봉미륵출세)호대
移置他方世界(이치타방세계)하야 寄地獄受苦(기지옥수고)니라.
今時學人이 不得(금시학인부득)은, 요즘 공부하는 사람이 그렇게 되지 못 것은 뭐라고요? 蓋爲(개위)대개 認名字爲解(인명자위해)라. 모두 名字를,
이름과 글자를 오인해서 이해를 삼기 때문이다. 그래서 大策子上(대책자상)에 크고 두꺼운 책 위에 抄死老漢語(초사노한어)하야, 죽은 선지식의 말씀을 抄錄(초록)해가지고서 三重五重(삼중오중)으로서 複子裏(복자리), 보자기에 딱 싸가지고서 不敎人見(불교인견)하고, 다른 사람 못 보게 하는 겁니다.
그래 지 혼자만 보고 혼자만 아는 소리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道是玄旨(도시현지)라, 말하기를 “이것이 아주 현명한 뜻이다.”
그 전에 출판이 쉽지 않았을 때는, 옛날에 우리 어릴 때만 해도 그런 큰스님들이 더러 있었어요. 아주 특별한 그런, 다른 사람 못 봤으면 무조건 특별한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별 것도 아닌데... 별 것도 아닌데 어디서 어록하나, 이상한 어록하나 구해가지고 그것만 혼자 몰래 딴 사람 안 보는데 가서 보고는 얼마나 꿀 같겠습니까? 그때는 머리에 쏙쏙 들어오지요. 그렇게 해가지고 다른 사람이 못 들어본 소리를 하는 겁니다. 그럼 대단하게 여기길 것 아닙니까? ‘야~ 저 사람이 자기 소견이 저렇게 났는가?’싶어가지고 일단은 한 번 넘어가는 것이지요. 여기 그대로 말을 해놨습니다.
죽은 선지식의 말을 三重五重으로서 보자기에 싸가지고서 딴 사람 못 보게 딱 해가지고 현명한 뜻이라고 한다는 겁니다.
以爲保重(이위보중)하나니, 아주 귀한 것이라고 그렇게 여기나니,
大錯(대착)이로다. 크게 착각한 것이다. 瞎屢生(할루생)이여, 이 눈먼 사람들이여 儞向枯骨上(이향고골상). 그대들이 枯骨上을 향해서 覓什麽汁(멱십마즙)고? 바짝 마른 뼈다귀에서 무슨 즙을 짜내려고 하는가?
그거 다 그래봤자, 8만 대장경이라고 하는 것이 바짝 마른 뼈다귀야.
거기에는 국물이 없어. 아무리 짜내봐야 거기는 국물이 안 나온다.
국물을 거기서 짜낼 것이 뭐 있어요? 자기 자신이 그야말로 解脫大海(해탈대해). 해탈의 큰 바다인 것을요.
有一般不識好惡(유일반불식호오)하야, 어떤 일반인이 좋고 나쁜 것을 알지 못해서, 向敎中取(향교중취). 敎中을 향해서 취해가지고서 意度商量(의탁상량). 생각으로 헤아리고, 또 헤아려서 成於句義(성어구의)하나니,
句義를 구절과 뜻을 이루나니, 如把屎塊子(여파시괴자)하야, 예컨대 그것은 똥 덩어리를 잡아가지고 입 속에다 떡~ 집어넣어, 向口裏含了(향구리함요). 입에다 떡 물고 있다가 吐過與別人(토과여별인)이라. 그것을 또 토해가지고 딴 사람 입에다 넣어 주는 겁니다. 그와 같은 짓이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떠나서 그 외에 어떤 부처님말씀 아니라, 부처님할아버지말씀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끄달리고, 거기에 자기를 팔아먹는 사람은 마치 이와 같은 것이다 이 말입니다.
똥 덩어리를 입에 물고 있다가 그것을 토해가지고 또 딴 사람 입에다 넣어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지금 우리가 그 짓을 하고 있는 겁니다.
냉정하게 우리가...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 아니라고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야 임제록에도 집착하지 않고 임제록에서 넘어설 수가 있는 것이지요. 계속 임제록에 매달려 있으면 임제록이 천하에 제일가는 어록이라고 해서 임제록에 빠져 있으면 그것도, 임제록공부 잘못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 그러고도 여기에 매달리면 안 되는 것이지요. 정말 살아있는 조사의 뜻이 자기에게 있는데, 그 싱싱하게 피가 튀는 그런 살아있는 의미를 늘, 정말 구슬을 가지고 놀듯이 그것이 자기 것이고 자기인데 그것을 가지고 놀아야지요. 그러니까 임제 스님 입장에서 보니까 이와 똑 같은 겁니다.
똥을 물고 있다가 토해가지고 또 딴 사람한테...
무슨 눈깔사탕이라고 그것을 실컷 빨다가 어린애한테 빨라고 주는 것하고 똑 같은 식이다 이 것이지요. 옛날에 굵은 사탕 가지고 실컷 빨다가 동생에게 주고 많이 했어요. 아 그게 어디라고요. 그것도 감지덕지인데요. 허허허 예컨대
猶如俗人(유여속인)이, 세상 사람들이 打傳口令相似(타전구령상사)하야,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니, 그, 귀 꽉 막고 뭐라고 말 한 마디 하면 입술 놀리는 것 보고, 자기가 뭐라고 알아듣고 저쪽 사람한테 전해주고, 그럼 그것을 또 딴 사람이 또 전해주고, 전해줘 가지고 처음에 밥이라고 했는데 나중에는 똥이라고 나오지요. TV에 그런 프로그램 있지요?
一生虛過(일생허과)로다. 일생을 헛되이 지내는 도다.
也道我出家(야도아출가)라하나, 또한 나에게 말하기를 “출가했다.” 라고 하나, 출가인 이라고 하긴 하나 被他問著佛法(피타문착불법)하면, 그 사람한테 불법 한 번 물어볼 것 같으면 便卽杜口無詞(변즉두구무사)라. 입을 딱 다물고는 아무 말을 못해. 眼似漆突(안사칠돌)이야. 눈이라고 하는 것이 뻐끔 들어간 것이 마치 새까만 굴뚝같아. 눈만 띵하게 이렇게...
口如楄擔(구여편담)이야. 입은 짧은 서까래 물고, 一자로 입을 딱 다물고 있는 것을 楄擔이라고 했어요. 口如楄擔이라. 입을 딱 다물고 있으니까요.
뭘 알아야지, 알아야 면장을 하지요. “불법이 뭡니까?” 하고 물으면 아무 말이 없이 눈만 끔뻑끔뻑하고 가만히 있고, 입은 딱 다물고 있다 이 것이지요.
如此之類(여차지류)는 逢彌勒出世(봉미륵출세)호대, 이와 같은 사람은 미륵 부처님이 세상에 나온다하더라도 如移置他方世界(이치타방세계). 타방 세계에다 옮겨 놓은 것하고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미륵 부처님이, 천불이 천 번 출세한다 하더라도 이 사람 하고는 아무 관계없다 이 것이지요.
寄地獄受苦(기지옥수고)로다. 지옥에 들어가서, 지옥에 의지해서 고통을 받는 것이로다. 아 미륵 부처님 나왔으면 미륵 부처님한테서 정말 훌륭한 법을 배워야 할 텐데, 그것하고는 아무 관계없는 그런 신세가 돼버리고 만다.
참 아무리 그렇더라도 표현을 이렇게까지 똥을 입에다 물고 빨고 있다가
그것을 또 딴 사람에게다 넘겨준다? 하하 참~,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임제 스님 한번 봤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생겼기에 이렇게 비정한 말을 마음대로 그냥, 당신하고 싶은 대로 그냥 다 해버리는지...
14-32 眞佛無形(진불무형).
大德(대덕)아 儞波波地往諸方(이파파지왕제방)하야
覓什麽物(멱십마물)하야 踏儞脚板闊(답이각판활)고,
無佛可求(무불가구)며 無道可成(무도가성)이며
無法可得(무법가득)이니라.
外求有相佛(외구무상불)하면 與汝不相似(여여불상사)니
欲識汝本心(욕식여본심)인댄 非合亦非離(비합역비리)로다.
道流(도류)야 眞佛無形(진불무형)이요 眞道無體(진도무체)요
眞法無相(진법무상)이라. 三法混融(삼법혼융)하야
和合一處(화합일처)니 旣辨不得(기변부득)을
喚作忙忙業識衆生(환작망망업식중생)이니라.
大德(대덕)아 儞波波地往諸方(이파파지왕제방)하야,
그대들은 아주 波波地 = 바쁘게, 바쁘게 쏘다니면서, 여러 지방으로 쏘다니면서 覓什麽物(멱십마물)하야, 무슨 물건을 찾느라고 그대들의 발바닥이 넓적하도록 그렇게 돌아다니느냐? 하도 길을 많이 걸으니까 발이 넓어져요.
옛날에 짚신을 신었으니까 발이 제한이 없어요. 발이 계속 늘어나는 겁니다. 문 수도 없어요. 한참 돌아다니면 발이 넓적할 하게 될 정도로 도대체 뭘 찾으러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니느냐? 이겁니다.
踏儞脚板闊(답이각판활). 다리 판때기가 넓적하도록 그렇게 돌아다니느냐? 無佛可求(무불가구)며, 부처 가히 구할 것이 없으며
無道可成(무도가성)이며, 도 가히 이룰 것이 없어.
無法可得(무법가득)이여, 법 가히 얻을 것이 없다.
外求有相佛(외구무상불)하면, 밖으로 형상이 있는 부처를 구할 것 같으면, 與汝不相似(여여불상사)니, 그대하고는 相似하지가 아니해. 같지가 못하다 말입니다. 틀린다 이 말입니다.
欲識汝本心(욕식여본심)인댄, 그대들의 본심을 알고자 할 진댄,
非合亦非離(비합역비리)로다. 아주 간단하면서도 참 잘 표현했어요.
그대와 합해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그대와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道流야 眞佛은 無形(진불무형)이요, 眞道는 無體(진도무체)요, 眞法은 無相(진법무상)이라. 三法이 混融(삼법혼융)해서 和合一處(화합일처)다.
뭐 진불ㆍ진도ㆍ진법 해봐야 한 마음에서 벗어날 것이 있겠습니까?
和合一處지요. 旣辨不得(기변부득). 이미 가려냄을 얻지 못하는 것은,
喚作忙忙業識衆生(환작망망업식중생)이다. 忙忙하고 아득한 業識衆生이라고 밖에 부를 수가 없다. 그냥 業識衆生일 뿐입니다.
발바닥이 넓적하도록 뭘 그렇게 돌아다녀? 허허허 요즘은 아무리 다녀도 차타고 다니니까 별로 발바닥이 넓어질 일은 없어요.
14-33 眞佛, 眞法, 眞道(진불, 진법, 진도).
問(문), 如何是眞佛眞法眞道(여하시진불진법진도)오?
乞垂開示(걸수개시)하소서.
師云(사운), 佛者(불자)는 心淸淨是(심청정시)요,
法者(법자)는 心光明是(심광명시)요.
道者(도자)는 處處無礙淨光是(처처무애정광시)라.
三卽一(삼즉일)이니 皆是空名而無實有(개시공명이무실유)니라.
如眞正學道人(여진정학도인)은
念念心不間斷(염념심불간단)이라.
自達磨大師(자달마대사)가 從西土來(종서토래)로
祇是覓箇不受人惑底人(지시멱개불수인혹저인)이니,
後遇二祖(후우이조)하야 一言便了(일언편요)하고
始知從前虛用功夫(시지종전허용공부)니라.
山僧今日見處(산승금일견처)는 與祖佛不別(여조불불별)하니,
若第一句中得(약제일구중득)하면 與祖佛爲師(여조불위사)요,
若第二句中得(약제이구중득)하면 與人天爲師(여인천위사)요,
若第三句中得(약제삼구중득)하면 自救不了(자구불요)니라.
問(문), 如何是眞佛眞法眞道(여하시진불진법진도)냐? 乞垂開示(걸수개시)하소서. 비오니 開示를 드리우소서.
師云(사운), 佛者(불자)는, 불이라고 하는 것은 心淸淨이 是(심청정시)요, 法者(법자)는, 법이라고 하는 것은 心光明이 是(심광명시)요,
道者(도자)는, 도라고 하는 것은 處處無礙淨光이 是(처처무애정광시)그것이다. 三卽一(삼즉일)이니, 셋이라고 해봤자 그것이 곧 하나이니,
皆是空名而無實有(개시공명이무실유)라. 다, 무슨 도니 불이니 법이니 해봤자 다 헛된 이름이고, 실답게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如眞正學道人(여진정학도인)은, 진정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念念心不間斷(염념심불간단)이라. 念念에 마음이 間斷이 없어. 한 순간도 수처작주 안 하는 때가 없다 이 말입니다. 늘 자기주인공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自達磨大師(자달마대사)가 從西土來(종서토래)로, 달마대사가 西土로부터, 인도로부터 옴으로 祇是覓箇不受人惑底人(지시멱개불수인혹저인)이니,
달마 스님은 “如何是祖師西來意(여하시조사서래의)닛꼬?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뭡니까?” 여기 대답해 놨네요. 祇是覓箇不受人惑底人. 다만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는 그 사람을 찾고자 했을 뿐이다. 사람에게 미혹 받지 않는 사람을 찾으려고 왔다. 그러니까 제정신 제대로 차리고 사는 사람을 찾으려고 왔다. 모두 정신 잃고 바깥 경계를 향해서, 그 경계라고 하는 것에는 특히 이 불자는 아주 훌륭한 경전이나 어록이 그 속에 다 포함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경전ㆍ어록이라 하더라도 진정한 자기 자신. 경전ㆍ어록을 보는 그 당사자. 그것이 진짜 경전인 것을... 그것이 진짜 경전이거든요. 그 생각을 한시라도 놓지 않고 경을 보면, 경이 정말 아주 재미있지요. 경이 자기이고 자기가 경이 되는데, 그것을 망각해버리고, 그런 어떤 주체적 의식을 망각해버리고 문자에만 쫓아가면, 문자가지고 뭐 시시비비 그저 참 시비가 끝날 날이 없지요.
後遇第二祖(후우제이조)하야, 달마대사가 그런 목적으로 왔는데, 뒤에 2조 혜가를 만났지요. 혜가에게 一言에 便了(일언편요)라. 한 마디에 다 문득 끝냈다. “불안한 마음을 좀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혜가가 그랬거든요.
“그래? 그 불안한 마음을 가져와 보아라.”
“覓心佛可得(멱심불가득)입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그 불안한 마음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는 내가 너에게 할 일은 마쳤다.” 그 말에 그만 혜가도 마음이 편안해져버렸지요. 그야말로 참 안심법문을 해준 것입니다. 始知(시지). 비로소 알았다. 從前虛用功夫(종전허용공부). 그 동안 혜가대사도 상당히 공부깨나 한 사람인데 아무 효용가치도 없는 공부를 했다고 하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山僧今日見處(산승금일견처)는, 산승의 금일 나의 소견은,
與祖佛不別(여조불불별)이여, 조사나 부처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 말입니다. 若第一句中得(약제일구중득)하면, 만약에 第一句中에 얻을 것 같으면, 與祖佛爲師(여조불위사)요, 조사와 부처와 더불어 스승 노릇을 할 수 있어. 저~ 앞에 3구(2강-4)에서 한 번 이야기 한 적 있었지요?
若第二句中得(약제이구중득)하면, 만약에 第二句에서 얻을 것 같으면,
與人天爲師(여인천위사)요, 사람과 천신들의 스승 노릇을 할 수가 있고,
若第三句中得(약제삼구중득)하면, 만약에 第三句에서 얻을 것 같으면,
自救도 不了(자구불요)라. 자기 구제도 얻지를 못한다.
그래서 다시 우리가 상기하면 제 1구 소식은 如人印空(여인인공)이라. 허공에다가 도장을 찍는 것과 같다. 아무리 찍어 봐야 찍힐 데도 없고,
찍는 다고 하는 사실이 있을 수도 없고 헛손질에 불과한 것이지요.
흔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제 2구 라고 하는 것은 如人印水(여인인수)라. 예컨대 도장을 가지고 물에다 찍는 것과 같다. 물에다 도장을 담가놓고 있으면, 그 요철 보면 물에 담겨 있는 동안은 그 안에서 뭔가 표시가 있겠지요. 하지만, 물에서 떼버리면 무효지요. 그 정도는 흔적이라고도 할 것 없는 흔적이 있다.
그 다음에
제 3구라고 하는 것은 如人印泥(여인인니)입니다.
마치 도장을 가지고 진흙에다 찍는 것과 같아서 찍고 나면 그 도장이 그대로 눈에 환히 들어오고 이름이 뭐라고 하는 것도 읽을 수가 있고,
누구 도장이라고 하는 것도 분별해낼 수가 있고요. 그와 같이 흔적이 남는 것입니다.
흔적이 남는 일은, 본래 흔적이 남는 일은 有爲法(유위법)입니다.
조작이 있는 것이라고요. 그런데 우리의 마음의 본성은 그런 有爲法이 아닙니다. 조작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天然(천연)입니다 天然.
본래 그대로 여여한 것입니다. 천연ㆍ자연 그대로 여여한 것입니다.
거기는 하나 손댈 것 없어요. 그냥 쓰면 되는 겁니다. 쓰는 방법도 없어요. 이미 잘 써 왔어요. 그래서 그것은 조작이 없기 때문에, 천연법이기 때문에 무슨 공부를 하네, 마네 하는 그런 흔적이 있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如人印空(여인인공)이라. 허공에다가 도장을 찍는 것과 같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지요. 제 1구ㆍ제 2구ㆍ제 3구. 이것이 아주 분명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법문을 가지고도 제 3구로 이해하는 방법이 있고, 우리는 지금 이 수준에서는 너ㆍ나 할 것 없이 전부 제 3구로 이해하고 있어요.
뭐 自救不了(자구불요)가 됐든지... 왜냐? 감동을 하니까요.
‘야~, 좋다. 근사하다.’ 이것은 전부 흔적이 있는 겁니다. 이것은 흔적이 있어도 보통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 1구는 그저 번갯불 지나가듯이 잠깐 지나가고 마는 것이지, ‘야~ 다음 시간에 와서 또 들어야 되겠다.’ 이런 것 없어요. 하하하하하하 如人印空 제 1구. 그러니까 한 가지 사실을 가지고 이해하는데도 그렇게 다르게 이해가 되지, 뭐가 이것이 제 1구 법문이다. 이것이 제 2구 법문이다. 저것이 제 3구 법문이다. 그것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할을 해도 1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2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3구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요. 그 사람의 정신 수준에 따라서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저~ 앞에 3구에 대해서 나왔었는데 여기 다시 한 번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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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念念心不間斷(염념심불간단)이라.ㅡ 한 순간도 수처작주 안 하는 때가 없이 늘 자기주인공으로......_()()()_
如眞正學道人(여진정학도인)은, 念念心不間斷(염념심불간단)이라..._()()()_
眞佛은 無形이요, 眞道는 無體요, 眞法은 無相이라. 三法이 混融해서 和合一處다._()()()_
如把屎塊子(여파시괴자) 向口裏含了(향구리향요) 吐過與別人(토과여별인) 예컨대 그것은 똥 덩어리를 잡아가지고 입 속에다 떡~ 집어넣어 입에다 떡 물고 있다가 그것을 또 토해가지고 딴 사람 입에다 넣어 주는 겁니다. 그와 같은 짓이다 이겁니다. ... '헉'했습니다.
如眞正學道人은 念念心不間斷이라...진정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한 순각도 수처작주 안하는 때가 없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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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正學道人은 念念心不間斷이라...釋 대원성 님! 수고하셨습니다..고맙습니다.._()()()_
如眞正學道人은, 진정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念念心不間斷(염념심불간단)이라. 늘 자기주인공으로서 살아가고 있다.....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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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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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佛無形이요 眞道無體요 眞法無相이라. ...'惺惺着'할 일입니다. 고맙습니다_()()()_
삼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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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잃어버리고 팔만사천법문에 매달리는 것은 똥덩어리를 입에 물고 빨고있는 것과 같다.
眞正學道人은 念念心不間斷이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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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기 자신. 경전ㆍ어록을 보는 그 당사자. 그것이 진짜 경전인 것을...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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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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覓心佛可得(멱심불가득) → 覓心不可得(멱심불가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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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 진정한 자아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