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20100522(57-5)

[두발로(이종문)]

몇일전 부터 일기예보는 마음을 흔들리게 한다.
지금껏 산행때는 내가 가면 비가오지 않는다는 신념은 지리님 앞에서는 기를 빼앗겨 버린다.
전날 회사의 산행도 살짜기 땡땡이 쳤는데...

(연호동 06:00)
여느때 처럼 이제는 둘째,넷째는 마음부터 연호동으로 향한다.
하늘이 범상치 않다. 능력밖의 일이지만 마음이 상쾌한 것보다는 뭔가 부족함을 지울 수 없다.

이제 이름과 얼굴이 매치되는 순간이 더 많다.
기다렸던 분들이 보이지 않을 때는 괜시리 걱정까지 해본다.
그것이 정이라는 것은 지나고 나면 느끼는 삶의 뒷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성서 06:40)

어제의 알콜기운이 아직은 머리를 띵 하게 하고 잠시 졸은듯 한데 거창휴게소 이정표가 눈을 확 뜨이게 만든다.
빗님이 내리신다. 별로 반갑지도 않은 님인데..
하지만 어쩌랴 해결할 수 없는 자연현상의 일부분이 아닌가.
(거창 휴게소 07:25~07:50)

산행지를 안내하면서도 너덜길이 걱정이고 오늘 일정이 순탄치 않으리라는 짐작을 해본다. 지리산 I.C를 어느덧 빠져나온 우리는 눈에 익숙해지고 있는 그 길로 향한다. (음정 08:50)

배낭 덮개를 씌우고 우중 산행을 준비하는 님들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진다. 그렇다. 각자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무슨 불만이 있으랴. (산행시작 09:00)

2주 전 하산했던 그 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의 솔숲이 세로움으로 다가온다. 푹신푹신 솔갈비가 아직은 비에 젖지 않아 양탄자를 밟는 기분이다.
임도(09:15)
희망에 따라 벽소령 대피소로 바로 향하는 산님들도 있을테고...
2주 전 하산길 너덜지대가 염려로 다가오는 회원이 많을 듯하다.
연휴의 중간 이어서인지 1박하고 하산하는 산꾼들이 많다.
그렇게 돌아돌아 이제 본격적으로 임도는 버리고 산으로 진입한다. (10:02)

비는 내리고 하산하는 님들과 교행은 많고 이래저래 오름이 쉽지가 않다.
빨리 이 너덜지대를 벗어나야 하는 것을... 어이쿠 삐거덕이다.
오른쪽의 스틱은 활처럼 휘어버리고 무릎정강이는 돌바위를 스친다. 그래 이것으로 오늘 액땜을 마무리하자. 찜찜하다. 기분을 털어버리자.
몸은 산행모드로 전환했지만 기상조건은 영~ 엉망이다. 땅은 질고 돌은 밟기가 두려울 정도로 물기를 머금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발길은 무섭다. 어느덧 삼정지능으로 올라서 조릿대를 만난다. (10:40)
물기 머금은 조릿대 숲을 헤치고 주능을 향하는 길은 하산하는 산꾼들로 북적인다. 어느해 여름의 종주때가 가슴을 적셔온다. 그때 그날도 빗님과 함께 했으니... (삼각고지 갈림길 10:57)

예상보다는 주능에 빨리 올라선 듯 하다. 잠시 숨을 돌리고 본격적인 주능 산행에 진입하지만 야속하게도 비는 오락가락이다.
그나마 다행은 시야는 예상보다 멀리까지 볼수 있는 듯하다.
10여분을 진행하여 삼정골이 오른편으로 자리잡은 삼각고지에 발길이 닿는다. 늘 그자리에 비스듬히 누워있는 고목나무에 안부를 전한다. (11:03)

오늘은 주능에서 산꾼들을 많이 만난다. 연휴때문일까?
2주전 얼레지는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발길 닿는 곳마다 연달레와 미처 꽃피우지 못한 진달레가 빗물을 머금고 힘겹게 미소짓고 있다. 성삼재-음정 구간 보다는 등산로가 순탄치 않다.
주능의 이쪽저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비와 그리고 바람이 기꺼이 동행한다.
왼편의 전망 좋은곳에 올라(11:31) 임도를 왼편 아래로 앞에는 주능에 벽소령 대피소를 그리고 멀리는 안개로 위용을 감추는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 하다.
다시 내리막 길이 이어지는 것은 형제봉에 오름을 예견하는 듯하다.
여느때 처럼 바위틈의 소나무는 세월을 말없이 견디고 있다.
온갖 사회의 혼란을 조용히 접어 둔채...(형제봉 11:36)

바위틈 아래 라면 끊는 냄새가 식탐으로 다가온다.
취사하면 벌금 20만원인데 고발이나 할까 ㅋㅋ
형제봉을 왼편에 두고 내리막이다. 다시 또 벽소령 대피소가 시야에 들어오고 천왕봉은 희미하게 안개를 벗고 살포시 미소짓는다.
잠시 후면 또 안개에 뒤덮이겠지... 이렇게 주능길에 돌이 많았던가.
커다란 양편의 바위틈을 지나고(12:00) 주능의 왼편으로 접어든다.
그런데 비와 연달레의 도움으로 벽소령 대피소에 안착했다.(12:11)
대피소 안은 난민들로 북적이고 들어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한다.
오락가락 빗속에 점심을 번개불에 콩볶듯이 해결하고 추위가 엄습해 오기전 발길을 옮긴다. 일행을 뒤로한채...

벽소령을 지나면서 임도가 이어진다. 늘~ 불만이었던 임도가 오늘은 이렇게 고마울수가...
구 벽소령 대피소까지 이어지는 임도는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지도 않다. (벽소령-구 벽소령-음정까지 임도는 이어집니다.)

덕평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진다. 바람소리는 세차게 귓전을 스치고 아직도 오락가락 내리는 비는 갈길 먼 여행을 힘겹게 만들고 있다. 그나마 다행은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다는 것...
드디어 덕평봉을 왼편으로 두고 선비샘으로 내려선다.(13:14)
이 곳은 수년전 야영객들의 훼손이 심해지면서 윗편에 있던 샘물의 위치도 아래로 옮겨놓고 지금은 특별 단속 지역이면서 생태복원중이다.
인간이 훼손하고 인간이 복원해야 한다는 아이러니...

칠선봉으로 향하는 양편으로는 현호색이 지천에 깔려있다.
틈틈이 숨어있는 얼레지는 바람났다 들켰는지 고개조차 들지 못한 채 움크리고 있다. 중간중간 질퍽하게 고여있는 물들로 하체는 흙 투성이다.
태백산맥의 빨치산들이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다.
소설속의 하대치가 이렇게 정겹게 다가오는 것은 무식의 일체감이 아니라 지리의 기운이 민족의 가슴속에 파고들기 때문이겠지...
잠시 태백산맥의 소설 속으로 빠져들어 고통과 기쁨 내가 산길을 걷고 있는 것조차 잊고 있을 즈음 칠선봉이 반겨준다.(13:57)
오른편 멀리 대성골엔 작은 골짜기 마다 안개가 살아 움직이고 주변엔 온갖 비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낸 흔적들이 나무속에 베어있다.
언제부터인지 형제봉, 칠선봉 표지는 사라지고 그저 여기가 거기구나 짐작 할 뿐이다.
초행길인 산꾼들은 그냥 봉우리로만 느껴질 뿐이다.

이제 세석으로 발길을 재촉하고 눈앞의 계단은 또다른 고통으로 다가온다.(14:23)
그러나 고통뒤엔 환희가 따르는 법. 바위틈의 고사목이 지리의 특징을 자랑하고 왼편으론 진달래와 바람에 시달린 나무들이 한폭의 그림이다.
기쁨도 잠시 오늘의 세찬 바람이 지난 겨울 소백을 연상케 한다.
손은 시리고 발길 조차 힘들고 그렇게 걸오온 길에 영신봉이 반겨준다.(14:38)
오른편 멀리 삼신봉은 희미하게 보일 뿐이고 지척에 있는 세석대피소로 발길을 옮긴다.
세석에 내려서기전 세석 평전의 평온한 모습은 옛날 전설속의 부부를 떠오르게 한다.
위 쪽의 촛대봉은 안개에 덮혀있고 그 아래는 못다핀 철쭉이 울글불긋 보일듯 말듯 붉게 물들어 있다.(세석대피소 14:50)
잠시 쉴틈도 없이 대피소를 오른쪽으로 감아돌아 백무동으로 향한다.

시작부터 내리막은 오늘의 고통을 절정으로 몰아간다. 너덜지대 계곡의 환상적인 조화(?)속에 40여분을 힘겹게 내려서자 이제 물소리가 다가온다. 한신계곡의 시작을 알림이다.
빗속의 계곡은 운치를 더해 주지만 너덜길은 인간의 간사함을 시험하려 든다. 오층폭포(16:20) 오른편으로 내려서 오층폭포를 디카에 담으려 했지만 2% 부족이다. 전망대의 위치가...
출렁다리와 철다리를 얼마나 오갔는지 어느덧 왼쪽아래 가내소 폭포이다. 한신계곡의 자랑거리...(가내소폭포 16:29)
가내소의 전설을 뒤로하고 이제 마지막 힘을 쏟아야 한다. 첫나들이 폭포만 지나면 한신계곡의 끝자락이고 백무동이 다가올테지. 첫나들이 폭포(16:50)
아직도 이정표는 1.9km 백무동을 가르키고 오늘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본다.
왼편아래 까마득하게 계곡은 깊어지고 물소리도 멀어져 간다.

백무동(17:16)
마을을 가로지르고 힘겨운 종착역이다.(하산완료 17:25)

늘 설렘으로 시작하고 아쉬움으로 접어 놓는 산행이지만 오늘 빗속의 산행은 아쉬움 보다는 많은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 한 분이 어려움을 겪을때 옆에 있지 못해 도움을 주지 못하고...

결국은 누구나 혼자 인 것... 스스로 가야하는 것...

주인 잘못만난 발다리는 고생이고 한몸에 붙어있는 눈은 항상 즐거움을 만끽한다. 누군가 희생해야 누군가는 행복해진다는 것을 한몸에서 알려준다.

함께하신 산우님들께 감사드리고 지리의 추억으로 백두대간의 발걸음으로 가슴에 남겨두셨으면 좋겠습니다.

★ 언제:2010년5월22일(토,57-5)
★ 총 28 명
★ 날씨 : 흐리고 비
★ 코스 : 음정-삼각고지-벽소령-세석-한신계곡(백무동)
★ 산행거리 : 약 21km
★ 총 산행시간:8시간25분(본인기준,점심,휴식시간 포함)
★ 기타 : 1명 무릎통증으로 1시간 30분 늦게 도착
백무동 출발 1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