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강: 서울예전.
<한국음악 작곡가 사전>
오늘은 서양음악과 한국 전통음악의
절묘한 조화를 이끌어내며
새로운 한국음악의 지평을 열었던
김희조 선생을 만나보겠습니다.
김희조 선생은 1920년 11월 21일...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1939년 동성상업학교를 졸업한후
한성은행에 입사해
은행원으로 일했는데요...
음악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비올라를 배웠고
임동혁과 김순남 선생에게 작곡을 배웠습니다.
전통에 뿌리를 두고 창작활동을 했던
작곡가 김순남 선생이
김희조 선생에게는 많은 영향을 주었던 분이었습니다.
1945년 조선호텔 실내악부에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김희조 선생은 전문음악인으로의 길을 걷게 되는데요...
선생이 작곡가로 전환을 하게 된 때는
육군 군악대의 장교를 지내면서입니다.
10여 년간 군악대장으로 활동하면서
군악대를 지휘하고 군가와 행진곡을
편곡하고 작곡했습니다.
군 생활을 마친 김희조 선생은
KBS 스몰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부임하는데요..
이 시기에 전통 민요를 채보하고
이를 서양 오케스트라에 맞춰
합창곡으로 편곡하는 작업을 많이 했고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민요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김희조 선생의
『혼성 한국민요합창곡집』에는
김희조 선생이 음악 생활을 하면서
가장 보람이 있었다고 느꼈던 것 중에 하나가
한국민요를 채집하는 일이었다고 쓰여 있는데요...
김희조 선생의 민요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KBS 스몰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 시절..
김희조 선생의 또 다른 업적 중에 하나는
전통음악을 서양 관현악곡으로 편곡하고..
국악기와 서양악기의 합주를 위한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것인데요..
특히 단소와 피리, 그리고 가야금 같은 전통악기와
서양관현악단과의 협주곡을 작곡하고
편곡하는 작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국악을 친근하게 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당시, 초기 작품으로는
<피리와 관현악을 위한 민요스케치>와
<가야금 산조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그리고
<단소와 관현악을 위한 수상곡> 등이 있습니다.
또한 서양악기인 플루트와
국악관현악단이 협주한 작품
<플루트 독주와 국악합주를 위한 무용환상곡>과
서양 관현악단과 국악 관현악단이 함께한 작품
<한.양 합주를 위한 아름다운 농촌풍경>과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김희조 선생의 대표작
‘단소와 관현악을 위한 수상곡’
이 작품은 단소의 맑은 음색을 중심으로..
서도소리 <관산융마> 와
민요 <천안삼거리>, <뱃노래>, <꼭두각시> 등의 주제 선율
그리고 굿거리와 세마치장단이 어우러진 곡인데요...
김희조 선생이 1958년도에 작곡했고요
현재까지도 선생의 작품 중에서 자주 연주되는
그런 곡 중에 하나입니다.
<한국음악작곡가사전>,
오늘은
많은 편곡 작업과 작곡을 통해
국악과 서양음악의 조화를 이뤄냄으로써
국악의 대중화에 힘썼던
김희조 선생을 만나봤습니다.
다음 주에도 계속
김희조 선생의 작품과 함께해보겠습니다.
# 한국음악 작곡가 사전 - 김희조 2
<한국음악 작곡가 사전>
지난 시간에 이어
국악 작곡의 명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김희조 선생을 만나보겠습니다.
김희조 선생이
국악에 본격적으로 큰 관심을 갖게 된 시기는
국악예술고등학교의 교사로 있을 당시인데요...
이 시기 지영희, 성금연, 김소희, 그리고 박귀희 등
당대 민속음악 명인들과 교류하면서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또한 김희조 선생은
1962년 예그린 악단의 편곡자로 입단하면서
뮤지컬음악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데요...
예그린 악단은
최초의 뮤지컬단으로
서울시립가무단과 국립가무단으로 중간에 재 창단되었고
현재 서울시뮤지컬단의 전신입니다.
예그린 악단이
국립가무단으로 재 창단됐을 당시
김희조 선생은 초대 단장으로 있었는데요....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뮤지컬 음악을 창작해..
<대춘향전>과 <시집가는 날> 그리고 <양반전> 등의
다양한 작품을 남겼는데요.
대부분 우리 고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김희조 선생의 또 다른 활동영역으로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무용음악과 영화음악입니다.
국립무용단의 <춘향전>, <심청전> 그리고 <처용>등의
음악을 작곡했고요...
이성구 감독의 영화 <젊은 표정>을 시작으로
60여 편의 영화음악을 남겼는데요.
1971년 유현목 감독의 영화 <내 아내여>로
대종상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김희조 선생은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와
국립가무단의 초대 단장을 거쳐
1982년부터는 서울예술대학 국악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양성과 작곡활동에 전념했습니다.
이 시기 국악관현악곡을 작곡하기 시작했는데요...
합주곡 1번을 시작으로
2001년까지 모두 열한 곡의 합주곡을 남겼습니다.
또 창과 관현악을 위한 음악으로,
판소리 ‘춘향가’ 가운데 <천자풀이>와 <사랑가>
‘심청가’ 가운데 <심봉사 황성가는 길> 과 같이
판소리의 주요 대목들을
‘창과 관현악’의 연주형태로 편곡해
‘창과 관현악을 위한 음악’이라는
새로운 연주형태를 정착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김희조 선생의 대표작
‘창과 관현악 범피중류’ 은
심청가 중 대표적인 대목인 <범피중류>는
심청이가 임당수에 빠지는 대목인데요..
평조와 우조의 장엄한 소리로 구성되어있고...
심청이가 빠지는 부분은 계면조로 구성되어
듣는 이로 하여금
신금을 울린다는 평을 받고 있는 곡입니다.
이제는 창과 관현악, 민요와 관현악이
우리에게 익숙한 연주형태로 자리 잡았는데요...
처음 이러한 시도를 했던 분이
바로 김희조 선생입니다.
<한국음악작곡가사전>,
두 주에 걸쳐
민요를 오케스트라와 합창으로 편곡하는 작업에서부터
뮤지컬 음악, 영화음악, 무용음악, 그리고 관현악곡 등
다양한 영역에서
서양음악과 국악의 절묘한 조화로
국악의 대중화에 힘쓴 김희조 선생과 함께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