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 무섬마을...
너무 좋았던 추억속(30년전 강원도 양구 2사단, 1984.2월 입대) 군대 동기 영주 김영술, 원주 송기승, 충청 오기근,
최영재,이보영과 3년전 건넜던 외나무다리가...
외나무다리 하나 건넜더니… 300년 전 세상이 나타났다.[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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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년 넘도록 무섬마을과 바깥을 이어주던 외나무다리에 겨울이 내렸다.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 과거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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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는 외나무다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 때도 있었다고 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이곳에 반남 박씨 일족이 들어와 살게 된 때가 1666년이다. 다리는 350년 가까운 세월을 버티고 살았다. 317년이 흐른 1983년 콘크리트 다리가 생길 때까지 다리는 마을과 바깥세상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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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으로 흐르는 내성천에 물이 넘치면 다리는 떠내려가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예 내성천 물길에 순응해 다리를 만들었으니, 다리는 사행(蛇行)하는 낙동강처럼 태극 무늬를 갖추게 되었다. 이 사행하는 강물이 북쪽 영월에서는 청령포를, 동쪽 안동에서는 하회마을을, 남쪽 예천에서는 회룡포마을을 만들었다. 그 가운데에 있는 이 마을은 무섬마을이다. 무섬,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태백산 줄기가 선심 쓰듯 던져준 다람쥐 꼬리 같은 작은 뒷산을 빼면 무섬은, 말 그대로 섬이다. 한자로는 수도리(水島里)다.
그 덕에 삶은 신산했다. 오죽하면 "외나무다리를 건너 꽃가마 타고 시집 왔다가 죽으면 이 다리로 상여가 나갔다"고 했을까. 세상 좋아진 지금, 다리는 신산함 대신에 외지인들에게 막연한 향수와 구체적 호기심을 안겨다 준다. 향수는 선비들의 삶에 대함이고 호기심은 다리 그 자체다.
40여 가구가 남은 마을은 몇 집을 빼면 17세기 이후 그리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좁은 골목을 걷다 보면 앞뒤 양쪽으로 담벼락 너머 고택(古宅)들이 보인다. 100년 넘은 집이 열여섯 채, 그리고 문화재와 민속자료로 지정된 집이 아홉 채다. 박제된 유적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생생한 과거다. 낮 동안 놀러 온 바깥 사람들에게 마당까지 개방된 이 집들은 밤에는 고택 체험을 위한 숙소로 쓰인다.
그리고 마을을 에워싼 둑을 내려가 다리를 건넌다. 너른 백사장과 얕은 강심을 가로질러 거대한 태극 무늬를 그린 다리다. 백사장 한편에는 널뛰기용 널 하나가 누워 있다. 가끔 오리 떼가 내려와 앉는다. 산에는 나목(裸木)이 가득하다.
먼 곳에서 영주까지 왔으니, 무섬마을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석사로 가고 소수서원으로 걸음을 옮긴다. 전통적 영주의 볼거리다. 산책하기 좋은 공간이라는 겉만 보면, 소수서원은 절반만 보게 된다. 그 곁 1000년을 산 은행나무를 대면하면 나머지 절반을 볼 수 있다.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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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무량수전 배흘림기둥. 해 질 녘 무량수전에서 바라보는 석양이 일품이다.
단종 복위를 꿈꾸다 떼죽음을 당한 영주 선비들과 함께 불탔다가 살아났다는 은행나무.
조카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은 동생 금성대군을 영주 땅 순흥으로 유배시킨다. 금성대군은 이곳 선비들과 함께 단종 복위 계획을 세웠고, 이를 눈치챈 형이 보낸 군사들에게 떼죽음을 당한다. 그때 소수서원 옆에 있던 오백 살 넘은 은행나무가 불에 타 죽었다. 그리고 200년이 지난 1683년 단종이 복위되고 또 30년 뒤 금성대군을 비롯한 선비들이 복권되면서 거짓말처럼 은행나무도 부활했다는 것이다. 은행나무 옆에는 금성대군과 선비들을 기리는 제단이 조성돼 있다.
소수서원과 함께, 영주에 서있는 웬만한 이정표에 어김없이 적혀 있는 '부석사'는 꼭 해거름에 가야 한다. 무량수전 앞에서 석양을 맞는 소백산맥 줄기는 '반드시 직접 봐야 한다'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다. 일주문에서 무량수전에 이르는 거대한 석축들과 돌계단도 근사하다. 소수서원 못 미쳐 나오는 산길 끝 작은 절 성혈사(聖穴寺)도 가본다. 가파른 30분 시멘트길 끝에 있는 이 작은 절 나한전에는 보물 832호로 지정된 꽃문이 있다. 색 바랜 단청 그대로 고졸하게 놔둔 이 문에는 게, 기러기, 동자, 연꽃, 물고기 기타 등등 대단히 예쁜 사물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무섬 외나무다리를 건너간 가을이 꽃문에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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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코스
무섬마을~성혈사~금성대군 신단~소수서원~부석사
* 교통 승용차(서울 기준): 1. 무섬마을: 중앙고속도로 영주IC→28번 국도→5번 국도 영주시청 방면→적서교차로 우회전→448번 지방도 무섬마을 이정표 2. 성혈사: 무섬마을에서 나와 우회전, 영주 방면으로 가다가 풍기 방면→풍기 순흥교차로에서 소수서원, 읍내 사거리에서 초암사 방면. 저수지 지나 왼편으로 성혈사 이정표 보이면 산길 3. 소수서원은 읍내 사거리까지 나와서 소수서원 방면 좌회전해 5분
대중교통: 영주버스공용터미널에서 일반 버스
* 식 당
①골동반: 무섬마을 다리 건너 왼쪽. 무섬마을 전통 상차림을 낸다.
②황토골인삼불고기식당: 인삼 산지답게 양념한 돼지고기와 인삼을 구워낸 인삼불고기 추천
③원조 순흥묵밥식당: 메밀묵을 김과 다진양념을 섞어 덥힌 국물에 말아 먹는 밥. 색다르고 맛도 좋고 속도 그득하다.
* 숙 소
①영주호텔: 숙박료에 비해 넓고 시설 좋은 객실.
②무섬마을 고택 체험: 홈페이지 www.무섬마을.com에서 고택을 미리 보고 예약 가능
③무섬마을 마당넓은집: 각종 꽃차를 즐길 수 있는 숙소.
④풍기온천: 온천 및 워터파크, 숙박
오늘의 공부...ㅎㅎ
- 사의재(四宜齋) ... 다산 정약용
1. 생각은 마땅히 맑아야 하니 맑지 못함이 있다면 곧바로 맑게 해야한다.
2. 용모는 마땅히 엄숙해야 하니 엄숙하지 못함이 있다면 곧바로 엄숙함이 엉기도록 해야한다.
3. 언어는 마땅히 과묵해야하니 말이 많다면 곧바로 그치도록 해야한다.
4. 동작은 마땅히 후중해야하니 후중하지 못한다면 곧바로 더디게 하도록 해야 한다.
이 때문에 방의 이름을 "네 가지를 바르게 해야하는 방으로서 " 四宜之齊"라고 하였다.
마땅함이라 함은 義에 맞도록 하는 것이니 義로 규제함이다.
나이만 들어가는 것이 염려되고 뜻 둔 사업은 퇴폐됨을 서글프게 여기므로 자신을 성찰하려는 까닭에서 지은 이름이다.
- 내가 피해야 할것 3가지
첫번째 : 해가 떴는데 침대 위에 누워있는것
두번째 : 해가 떴는데 집 울타리 안에 있는것
세번째 : 해가 떴는데 침대 위에 누워있거나 집 울타리 안에 있는것
Away from her OST / Only Yesterday / Isla Gr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