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13일 평화목 교회 주일예배 설교
홍지훈 목사
데살로니가 전서 5:23-34
온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살기
2013년 새해 평화목교회의 주제를 <평화의 하나님과 동행>으로 정하였다. 본문 말씀은 데살로니가 전서 5:23-24절 말씀이다. 오늘의 본문을 여러 번역을 가지고 비교해 보았는데, 우리말로 가장 잘 전달되는 것이 <공동번역>이다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온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여러분의 심령과 영혼과 육체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완전하고 흠 없게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본문에서 바울이 교인들에게 말씀하는 말투는 “소망형”이다. 그래서 개역개정판 성경이서는 “빕니다” 대신에 “원하노라”라고 표현하였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이렇게 이렇게 되시시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소망하는 내용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거룩하게 만드시길....”이고 다른 하나는 “흠 없이 지켜주기를....” 강조하고 싶은 것인 여기 사용된 동사 <거룩하게하다 ὰγιαζω>와 <지키다 τηρεω>의 주어가 모두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온전히 거룩한 사람이 되고 온전히 흠 없이 살게 되는 일은 내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을 우리는 믿는다.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일은 과연 무엇일까? 그 부분은 12절부터 21절 사이에 나와 있다. 거기서 바울이 사용한 동사는 모두 명령형이다. 다시 두 단락으로 나뉘는데, 12절에서 부탁한다는 말이 나오고 14절에 권고한다는 말이 나온다.
첫째 부탁은 데살로니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봉사하는 사람과 지도하는 사람과 훈계하는 사람을 알라는 부탁이다. 그리고 그 섬기는 자들이 사람들이 하는 일-수고하고 지도하고 훈계하는 일-을 생각한다면 그들을 사랑으로 존경하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러고 나서 교인들에게는 서로 화목하라고 부탁한다. 요약하면 수고자를 알아보고, 그들을 사랑으로 존경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는 부탁이다.
둘째는 권면인데 14절부터 나온다. 이것은 전적으로 개인과 공동체에게 준 권면인데, 나누어 보면 13가지이다.
1) 무질서한 자(게으른 자)를 훈계하라
2) 마음이 약한 자(소심한 자)를 격려하라
3) 힘이 없는 사람(병든 자)을 도와주라
4)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5)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
6)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라
7) 항상 기뻐하라
8) 끊임없이 기도하라
9) 모든 일에 감사하라
10) 성령을 소멸하지 말라
11)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
12) 분별하여 좋은 것을 붙잡으라
13) 모든 악을 멀리하라
이 세 가지 부탁과 열세 가지의 권면이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들을 한 가지 한 가지 씩 실천해 나가다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날이 오고, 우리가 흠 없이 완전히 지켜진다는 뜻이다.
먼저, 교회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 부분은 우리의 화목(평화)를 이루는 데 필수적인 부분이다. 사람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할 일을 주셨고, 이것이 은사라고 할 수 있다. 서로가 수고하는 서로를 향해 사랑이 담긴 존경을 보낸다면 공동체가 평화롭지 못할 까닭이 없다. 성경(13절)을 잘 읽어보면 “그들이 하는 일을 생각해서”라는 말이 나온다. 교회를 위한 수고는 그 일을 하는 사람 보다 더 우선적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도 사랑과 존경이 더해지는 것이다.
두 번째 부분에 나오는 13가지의 권면들을 정리해보자.
권면들은 일견에 “하지 말라”는 것과 “하라”는 것 즉, 부정명령과 긍정명령으로 구분된다.
부정명령(하지 말라는 것)을 종합라면 <모든 악한 짓>이고 긍정명령(하라는 것)을 종합하면 <선>이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 교회에 바울이 주는 권면은 “악을 행하지 말고 선을 행하며 살라!”는 말씀으로 요약된다.
이런 권면은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도 늘 듣는 권면이다. 가정에서도 부모는 자녀들에게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라고 하고, 길거리에 종종 지자체가 석조물에다 “착하게 살자”라고 써놓은 것을 보면서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얼마나 세상이 안 착하면 저런 말을 써 놓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다.
세상의 모든 일을 사건별로 악과 선으로 정확하게 나눌 수 는 없을 것이지만, 바울의 시대나 지금이나 우리는 무엇이 악한 짓이고, 무엇이 선한 일인지 안다. 양심의 소리에 예민한 귀를 가지기만 해도 대부분의 악한 행동을 피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악한 것인지 아닌지 판별이 안 될 때에는 차리라 악의 범주를 넓게 잡는 것도 악을 피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런데 본문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선악을 넘어서서 긍정과 부정 명령을 몇 가지 더 첨부해 놓았다. 먼저 긍정명령을 보자. 악의 길에 들어설 위험지대에 처한 사람을 돕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게으른 자, 마음이 약한 자, 힘이 없는 자에 대한 관심과 격려가 바로 그 명령이다.
먼저 게으른 자, 또는 무질서하게 사는 자란 규칙이 없는 자를 의미한다.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꾸면 “비정상적인”이라는 말이다. 마음이 약한 자는 원어로 ολιγοψυχος인데, 말 그대로 마음이 약하여 용기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올리고/ 프쉬코스를 나누어 보면 “냉담함이 매우 적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힘이 없는 사람이란 원어에 보면 마음과 몸이 병든 사람을 의미한다.
합쳐보면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규모 없이, 질서 없이, 게으르게 사는 사람을 만나면 깨우쳐서 정상적인 삶으로 인도하고, 너무나 소심해서 할 말도 못하고 사는 맘 약한 사람에게는 용기를 불어넣어주고, 몸이나 마음이 아픈 사람은 도와주며 살라는 말이다. 자기의 삶을 정상의 범주에 넣지 못하고 마치 경계인처럼 사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 바로 선을 행하는 이들이다.
지난 번 우리 평화목교회는 불우이웃을 도울 목적으로 성탄절 감사헌금을 드렸다. 인근 농성동 지역에 위치한 다사랑 교회(윤성용 목사)에 부탁해서 지역 통장님의 안내로 평화목 교회 교우 몇 분과 함께 지역 노인들 가정을 방문하여 쌀과 라면을 전달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집도 있어 그냥 사는 것 같아 보였는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말 낮에 거동불편한 노인들은 냄새나는 방 한 구석에서 꼼짝도 못하고 앉아있었다. 잠깐 다녀가는 것이 얼마나 미안하던지,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우리는 도움을 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부정명령에 들어있는 것들은 성령을 소멸치 말고,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는 명령이다. 이것은 선악을 구분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추상적인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분명한 의미를 담고 있다. 성령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영이다. 23절에 보면 우리의 영과 혼 과 몸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영은 하나님께도 있고 우리에게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은 영끼리 통한다.
즉,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우리가 알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영이 영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성령을 소멸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예 안 듣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성령의 역사는 광신적인 태도가 아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한다. 마음이 뜨거워지면, 자기에게 손해가 나는 일인 줄 알면서도 선한 목적을 위하여 나서게 되는 것이다.
예언도 오해하면 안 된다. 성경에 나오는 예언은 정의는 미래의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마땅한 일”이라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 인생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이 예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따르도록 안내하는 것이 예언이다. 그러므로 성령과 예언을 멸시하거나 소멸하지 말라는 말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들리도록 자신의 영성을 깨끗하게 가꾸고, 마땅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해야 할 일을 선포하고 행하라는 명령인 것이다.
이렇게 되는 데에 결정적인 세부항목들이 그 나머지 명령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기쁨과 기도와 감사라는 덕목은 실천하기 힘든 무거운 의무규정이 아니라, 정 반대로 우리가 가진 권리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기쁠 권리, 기도할 권리, 감사드릴 권리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신다. 그런데 그걸 아는 사람이 있고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다. 아는 사람은 기쁘다. 항상 기쁘다. 하박국 3장 17절에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고, 올리브나무에서 딸 것이 없어도, 밭에도 곡식이 없고, 우리와 외양간에 소나 양이 없어도, 여호와 안에서 나는 즐거워하리 즐거워하리.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뻐하리라.”는 찬양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과 항상 연결되어있음을 아는 사람은 끊임없는 기도를 드리는 중이다. 그리고 하나님 은혜를 인한 기쁨을 아는 사람은 당연히 범사에 감사들 드리게 되는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기쁨과 기도와 감사는 다시 내게로 되돌아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마치 탄식과 불평과 원망도 내게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본문 23절로 다시 돌아가 보자.
하나님이 평화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참 마음을 안심시킨다. 헬라어로 평화를 <에이레네>라고 한다. 지금도 그리스가면 써먹을 수 있는 인사말이다. 평화의 하나님과 내가 같은 영을 소유하고 있다는 상상을 해보자. 마음의 평화가 느껴지지 않는가? 우리가 앞에 나오는 긍정명령과 부정명령들을 통해서 나가야 할 방향은 우리 내면의 평화를 누리는 일이다. 평화의 하나님과 연합하여 누리는 그 평화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될 것이고, 주님 보시기에도 흠 없이 온전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런 축복이 새해는 우리 평화목 교우들과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평화의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영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평화 속에 온전히 거하여 거룩하게 만드시옵소서
평화의 하나님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기 원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임을 알게 하셔서
기쁨과 기도와 감사가 우리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게 도와주소서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