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소공동 소재 조선호텔 내 환구단대제가 봉행된지 5일만의 일로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화양산에서 "화양산황단대제"가 봉행 되었다,교통편이 불편하여 자가용으로나 단체참반이 아니면 애로가 좀 있어 보이는 곳이다,
바로 옆엔 그 유명한 "운일암 반일암"이 있다,
때마침 "건지산조경회"총무에게서 연락이 왔다,전주 오목대옆 리베라호텔앞에서 출발 할 계획이니 참반할 의향이 있는 종현께서 호텔앞으로 나와 달라는 문자가 왔다,몇일전부터 건지산조경회 회장께 연락을 해 취해둔 터라 서둘려 출발 하기로 작정하고 준비를 했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오전9시 출발이라 했으므로 당일출발로는 시간상 어려움이 있을듯 하여 전일 출발했다,
남부터미널에서 오후1시발 전주행버스에 올라 논산-천안간 민자고속도로를 이용하여 판천휴계소에 잠시정차 휴식을 취하는데 화단켠에 요로코롬 재미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두 다리를 쫙 벌리고 돌아가는 얼굴 표정이 정말 재미있다,
전주 리베라 호텔앞에서 만나기로 약속 돼 있었고,또한 이왕 전주에 들리는 김에 도지원도 방문해야 할 형편이고 건지산조경회 회장님도 만나봐야 할 형편인지라 퇴근시간전에 도착하기 위해서 서울에서 오전부터 서둘렷지만 여의치 않아 가까스로 지원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경 퇴근시간전 일초전이였다,도지원에 들려 희순사무국장을 만나 커피한잔을 하고 나서 건지산 조경회 회장께서 전화가 온터라 서둘려 사무실로 가서 만나뵙고 있는데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만원지폐를 꺼내시드니 내 포켙속에 넣으려 하신다 극력 반대했지만 한사코 내 포켙속에 넣어 주셨다,그리고 식당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했는데 역시 식대지불은 회장님 몫이였다, 희운회장님은 종사에 남다른 분으로 현재 전북도지원 부분원장 이시고,완산구 분원장이며 이번에 또 건지산조경회장(전 화수회장)을 맡으셧다,회안대군 자손으로 대군의 아드님이신 금성군파 종회장이시다,내가 전주에 거주당시 모든 종사관련하여 행정적인 문제나 여타 종사관련하여 오로지 이분과 의논하고 실천 해 온 터다,전직 공무원출신으로 현 이희운행정사 사무소를 운영하고 게시는 분이다,
찜질방에서 일박 하기로 하고 회장님과 헤어진후 찜잘방에 들렸는데 내가 전주거주 당시보다 더 편리성을 붙여서 시설이 좋았다,갖가지 편의시설이 갖춰져서 라주 편리했다,물론 아침식사까지 해결 가능했다,아침식사때 식당문이 열리지 않은 거리를 헤메일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잠이 오지않아 잠시 피씨방에 들렸는데 천원짜리 지폐 한장이면 약 40분간 이용이 가능했다,
편안한 밤을 보낸뒤 리베라호텔앞에 왔다,
조금 일찍 나섰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남아잇다,
그래서 오목대와 이목대 그리고 오목교등을 살펴봤다,
보이는 이 다리는 오목교다,
일정치하때 조선말살정책에 따라 기린봉에서 흘려 내려와 오목대끄까지 뻗어내린ㅇ 산줄기를 잘라 이곳으로 호남선 열차가 관통토록 만들어 버렸는데 희운회장님께서 시청에 수차례 걸쳐 독촉결과 우선 끝긴 맥을 연결한다는 뜻이 담긴 오목교로 현재 그 모습이 남아있다,불원간 터널형으로 만들어 종래의 모습을 되살려 전주의 풍수지리학적인 견지에서 반드시 복원 되어야 할 숙제가 아닌가 싶다,
전주이가의 발상지인 이목대이다,
목조대왕유허지인 이곳은 원래 도로에 위치 해 있었지만 부득이 이곳으로 옮겼다,이곳에 희순종현이 새벽마다 쓰레기청소를 매일 잊지않고 하고 계신다,
이석황손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기도 한 전주 한옥마을 전경이다,
출발시간이 다가오자 기다리던 종현 모두가 오셔서 건지산조경회 총무종현께서 "투싼"을 몰고오셔서 승차후 화양산 현지에 도착했다,
제단을 오르는 길은 일부 세멘트포장을 해 놨는데 배수로 정비가 안되어 있어서 도로유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산길을 따라 오르니 제단을 오르는 입구가 나타났다,
에산부족으로 형식만 갖춘 수고로움이 물씬 풍겻다,
가파른 사면길을 허덕이며 오르니 프랑카드가 보이고 세찬 바람으로 인하여 진설에 어려움이 많아 보였다,
정갈하게 준비된 진설물등과 함께 도착한 제복과 용품들,,,
제단에 설치하는 파라솔이 바람에 나부껴 철수를 결정해 치워야 했다,
돗자리를 깔고 진열한 홀과 요대,
산신을 모신 위패가 돌조각에 누워 게신다,
분방기를 보시면 아실테지만 봉작이 한분이다,
이러다 보니까 제향이 시작되자 마자 봉작이 바빴다,헌작을 하는데 집사 소매자락이 위패를 덮는일이 잦고 너무나 불경해 보여서 대단히 잘못된듯 싶다,뿐만 아니라 질서가 본원에서 행하는 제례와는 차이가 나도 너무났다,양관을 다룰줄 몰라 붉은색의 노끈을 덧대어 묶어 놨으며(필자가 모두 제거 하였음)당상 당하 구별이 없이 뒤죽박죽이고 제복착용시 후수를 요대착용후 하다보니 불편을 느끼는등 문제가 많아보엿다,심지어 집레가 홀기낭독을 하는데 보니까 축문서식도 일반 사가에서 사용하는 축문 비스므리 햇다,
배꼽이 요동을 칠라고 해서 참느라 고통이 많았다,필자가 종사 45년여 만에 처음보는 진풍경이라 해야 할까?
앞으로 더 많은 제관봉무 경험이 게시는 종현들이 대거 참반하여 도움을 드리는게 좋을것 같다,
아헌관은 건지산조경회장이 봉무,
제례절차에 따라 제집사 위치가 질서가 없어 누가 어디에서 봉무 하는지 헸갈렸다,
제단이 설단된 위치가 산정이다 보니까 참반원이 분산되어 모양세가 불경 해 보였고,난해 보였다,
진설을 보니 정성이 깃들여 있어서 매우 흡족했다,
축독장면
초헌례
아헌례
국궁사배
음복
합동기념
귀가길에 조선실록 피난처인 위봉사방면으로 갔다,
보이는 폭포는 위봉폭포다,이곳에서 커피한잔씩 햇다,가을이 단풍으로 단장을 하고 있었다,
서둘려 귀가를 하다보니 전주 종현께서 나를 버스터미널까지 태워다 준다,
매표창구에서 표를 받아보니 오후3시15분발이였다,
고속도로가 경부선 천안을 지나기가 바쁘게 정체가 되드니만 용인부근에 이르려서는 완전 도로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내가 탄 버스는 버스전용차로로 향하는 바람에 잘 달렷지만 양재가까워 지자 시내 진입차량들이 붐비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어 평소 2시간40분이면 끝날시간이 3시간을 훌쩍넘어 6시20분쯤 터미널에 도착햇다,지하철을 이용하여 강변역까지 온뒤 다시 호평동행 시내버스에 올라 귀가를 한 시간은 8시10분이였다,
첫댓글 종현님,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