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윤리연구회(회장 이명진)는 지난 5일 대한의사협회 동아홀에서 '임종환자의 연명치료 중단과 사전의료의향서'에 대해 토론했다. 이동규 운영위원(대한의원협회 의무이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강의는 서울의대 허대석 교수가 맡았다. 이날 강의와 토론의 내용을 요약·정리한다 | 연명치료 중단, 환자 결정권 반영 확대 추세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은 제대로 안돼…환자 상태 미리 알리는 사회 분위기 필요
허대석 서울의대 교수·종양내과 전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
지금 진료현장에서는 회생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의 임종 과정에서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와 같은 무의미한 연명시술이 여전히 많이 이뤄지고 있다. 환자 가족들은 환자에게 임종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것을 주저하는 문화적 분위기때문에 본의아니게 환자에게 불필요한 고통만 가중시키고 있으며 의료진은 법률적 보장이 이뤄지지 않은 현실에서 방어적 진료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의미한 연명시술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정은 의료진의 기술적 판단보다는 환자의 가치관을 반영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행 우리나라의 법체계에 의하면 임종과정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았다면 환자를 소생시키기 위해 의료진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법적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그러나 법과 진료현장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지난 2007년 실시한 만성질환으로 인한 사망자의 연명치료 실태 조사에 따르면 사망자 중 82.4%는 임종과정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않았고, 인공호흡기도 83.5%에서 적용되지 않았다.
환자의 자기결정권 의학적 판단은 의사가 결정하고, 환자나 보호자는 동의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 통상적이다. '김할머니'에 대한 지난 2009년 대법원의 판결은 무의미한 연명시술을 거부한다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 의사의 기술적 판단보다 우선된다는 점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의료현장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우선시 될 수 있는 상황은 ① 환자가 회생가능성이 없는 '회복불가능한 사망과정'에 진입한 상태에서, ② 환자의 진지하고 합리적인 치료중단 의사가 추정될 수 있어야 하며, ③ 사망과정의 연장에 불과한 진료행위에 국한한다고 대법원 판결문에서 명시하고 있다. 이 판결로 무의미한 연명시술이 점차 감소하고 있고, 말기 암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암관리법이 2011년부터 시행됐다.
환자 가치관 반영의 딜레마 그러나, 말기라는 사실을 환자에게 알리는 경우는 20~30%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기의 상태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환자의 가치관을 어떻게 의학적 결정에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부딪히게 됐다. 불치병 환자에게 병의 상태를 제대로 알리는 것에 대해, 환자의 96%, 가족들은 78%가 찬성한다(2004년 발표). 그러나 2010년 발표된 481명의 말기 암 환자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환자의 58%에서만이 자신이 말기임을 알고 있었다. 직접 의사로부터 통보를 받은 경우는 56.2%, 가족이 알려준 경우가 10.7%,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본인이 스스로 짐작한 경우가 28.5%였다. 말기 환자중 78.6%는 병의 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사전의료지시서 작성의 문제점 본인이 병식이 있고 의사결정이 가능한 경우는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도록 하면 되지만, 대부분의 말기환자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한 병원의 조사에서는 84%에서 의사가 결정하고 있고, 다른 조사에서는 자녀 혹은 배우자가 대부분 작성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본인 작성을 의무화하면, 제도로서의 수용성은 희박할 것이다. 여기에는 의사들의 인식도 한 몫하고 있다. 2008년도에 신장내과전문의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사전의사결정서 작성에 찬성하는 의사가 33.3%, 반대하는 의사가 53.3%로 반대가 많았으나, 투석 중단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사가 84.4%,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의사가 6.7%로 찬성이 많았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사전의사결정보다는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말기신부전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에서는, 어렵게 작성된 사전의사의향서가 진료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무의미한 연명시술을 원하지 않는 환자들에서 자기결정권이 반영될 수 있도록 관련 법령과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공동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 ① 자기결정권의 대상이 되는 연명치료의 범위 자기결정권의 대상이 되는 연명치료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서양의 사전의사의향서에서는 영양공급 문제를 보편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2006년 이뤄진 국내의 한 논문에서는 말기암 환자의 83%에서 임종 2일 전까지 정맥주사를 통한 영양공급을 받고 있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영양공급을 통상적인 의료행위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예외적 수단으로 인식하는지 사전의사결정도 한국사회의 가치관이 적절히 반영되어야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고 본다. 2009년 7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합의된 사항은 다음과 같다. △영양공급, 통증조절 등 기본적인 의료행위는 유지돼야 한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에 대하여, 사전의료의향서를 통하여 이를 거부할 경우, 중단될 수 있다. △다른 의료행위에 대하여는 환자는 사전의료의향서를 통하여 본인의 의사를 피력할 수 있으며, 의료진의 의학적 판단에 근거하여 진료현장에서 결정한다. ② 설명의무 환자에게 말기임을 알려주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을 본인이 하도록 권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국내의 입법안중에서 김충환 입법안(호스피스-완화의료에 관한 법률)에는 제7조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설명의무) ① 의사는 말기암 환자 또는 그 가족 등에게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선택과 이용절차 및 사전의사결정서의 작성 등에 관해 충분히 설명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신상진·경실련 입법안에서는 제15조(상담절차) ① 말기환자가 제13조에 따라 의료지시서의 작성을 요청하는 경우로 규정하고 있으며, 김세연 입법안에서도 환자가 요청하는 경우 의사는 설명의무를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전의료의향서를 제도로서 정착시키려면 사전의료의향서에 대한 설명의무를 어느 수준으로 법에 담아야 할지에 대한 논의와 합의도 필요하다. ③ 의사표시 추정 및 대리 실제 의료현장에서 대부분의 경우에 환자가 자신의 병이 말기임을 모르고 있으며, 직접 사전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않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본인이 작성한 사전의료의향서만 인정한다면, 현장에서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규정이 되고 만다. 우리나라는 대법원 판례에서,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 등에 비추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환자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인정되고 환자에게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연명치료의 중단을 선택하였을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그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고 정리하고 있다.
■ 토 론 Q. 사전의료의향서 작성을 법으로 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어디까지나 자율에 의한 작성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 역시 타인을 의식해서 원치 않는 작성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A. 사전의료의향서의 문제점은 불확실성에 대한 결정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동기나 기타 바람직하지 않은 요인에 의해 원치 않는 결정을 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Q. 환자의 결정에 가장 크게 작용되는 것은 경제적 요소다.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싶지만 정부 지원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경우가 많다. A. 그렇다. 암환자의 경우, 임종 직전 3~4개월에 소요되는 비용이 평생 사용하는 의료비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호스피스-완화의료에 활용한다면 훨씬 의미있게 사용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적 반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아직 이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가 무엇을 미덕으로 생각하는가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Q. 환자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의사의 설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A. 중요한 얘기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책임
을 묻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한다. 현재 의사들은 불확실성에 대해 방어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는 사회 전체적인 가치의 문제와도 관련이 되는 문제다. Q. 사전의료의향서에 대해 실제로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이를 권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간에 코디네이터 역할이 필요하다. A. 미국의 경우 이런 역할을 하는 의료윤리자문제도 (Ethics Consultant)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