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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모당을 처음 지었던 황전과 관련 있는 건물로는 또 첨모정이 있는데, 첨모당에서 남서향으로 개울 건너 마을을 내려다보며 높지 않은 야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첨모당은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병산리 창원황씨 집성촌 안쪽에 있다.
단산면사무소에서 병산리로 가는 길은 영주의 명승지인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지나 부석사로 가는 931번 지방도로에서 안정면으로 이어지는 3번 시도도로이다. 그 길을 타고 넓은 들길을 가다가 서쪽 방향으로 나직한 산자락 아래 평지가 있는데 그곳이 병산리이다.
교통이 불편하지도 않으며, 차들도 번다하게 왕래하지 않는다. 주변 풍경 또한 널따란 평야에 나직한 산들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있고, 그 길을 따라 내가 흘러 평화로운 농촌풍경이 이어지므로 마음까지도 차분히 가라앉는다.
옛사람을 우러러 그리워하는 첨모당이 있고, 그 앞에 갈참나무, 신위를 모신 숭보사는 한낮의 정적에도 경건하지만 위압적이지 않아 정겹다. 옛 사람을 기리는 자리에서 그 덕망을 우러르며 옷매무새 가다듬고 소리 없는 가르침을 받기에 적당하다.
첨모당은 우러러 사모하는 장소라는 뜻으로 강학을 하던 강당이다. 건축양식이 특이하다 하여 문화재자료 제315호로 지정되었다.
본래 조선시대 세종 때 통례원 봉례(奉禮)를 지낸 황전(黃躔, 1391∼1459)이 1429년(세종 11) 지방의 유생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연마하기 위하여 지은 정자였다. 선조들의 학덕과 업적을 우러러 사모하는 장소라는 뜻이다. 그는 1458년(세조 4)에 사직하고, 순흥 병산에 내려와 은거했다. 그 후 1535년 가선대부 공조참판에 증직되고, 그 3년 후인 1538년에 고택을 중수하여 첨모당이라 현판을 걸었다.
첨모당은 병산마을 산기슭의 경사진 곳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기단(基壇)은 자연석 위에 네모기둥을 세웠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1동(棟)으로 이루어진 건물로, 가운데 마루방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배치된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이다.
창호 수법이 오래된 법식을 잘 지니고 있는데, 특히 마루방 전면에 외여닫이 굽널 세살문과 외여닫이 울거미 띠장널문이 함께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왼쪽 온돌방의 칸살이 1척 가량 작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의 납도리집(들보에 단면이 사각형인 납도리를 얹어 지은 집)으로 전체적으로 단아한 느낌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