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은 곧 사람이다
<천국과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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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누엘 스베덴보리 지음/ 다지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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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은 있는가. 성경에 있는 그대로 믿는다면야 물어 보나마나한 질문이다. 최근에 가까운 친구와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천국과 지옥은 진리를 찾아가는 이의 마음과 영혼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고, 죽음 이후에는 내가 살아온 그대로의 삶이 영혼이라는 형태로 주님과 사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가 공격을 받았다. 그는 나의 이런 천국관, 즉 사후 세계관에 대해 못마땅했는지 ‘친구는 될 수 있겠지만 죽어서 함께할 사람은 아니라 선을 그을 수밖에 없다’고 떨떠름해 했었다. 그런 그 친구에게 ‘나에게 예수는 진리를 찾아갈 수 있게 하는 존재다’라는 끝맺음으로 언쟁을 피했다. 천국이란 단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이라는 종교적 발상이 사람의 사후 세계까지 가위질할 수 있다는 인간의 무서운 이기심을 경험했던 일이다.
죽어서 가는 곳?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던 이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 일이겠으나 한 번쯤은 자신의 존재 의미와 더불어 하느님의 존재라는 차원에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천국과 지옥은 있는가’라고. 있다면 어디 있는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어떻게 갈 수 있는가 등은 최근 들어 기자에게 다시 돌아온 의문이다. 천국과 지옥이 어린 아이의 상상 속에나 있는 환상의 세계이거나 신비주의자들에게서나 보이는 영계의 이미지로 강하게 자리잡은 까닭에서 비롯된 질문이었음을 질문을 던져 놓고 난 후에야 알아차렸다. 그리고도 한 가지, 천국과 지옥이 이미 우리 삶에 그리스도의 임재처럼 임했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받아들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질문이 그리스도인에게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천국과 지옥만큼 인간의 생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육신을 입고 땅에 사는 사람이나 죽어서 온전히 영혼의 세계에 들어가는 차원에서 그렇다. 인간이 성장하는 데 있어 거쳐가는 통과의례가 질서이듯 신앙 역시 마찬가지다. 누가 가르쳐 준 어떤 것을 단 한 번의 의문없이 진지하게 그리스도와 대화해보지 않는다면 진리란 무엇인지 우리가 과연 알 수 있을까.
이마누엘 스베덴보리는 이런 측면에서 아주 성실하게 체계를 갖춘 답변을 해주고 있다. 이 책은 일종의 천국과 지옥에 직접 다녀 온 이의 보고서다. 살아 있는 사람이 어떻게 천국을 체험하며 죽음 이후에도 사람이 어떻게 살아남는가라는 그 구체적인 형태를 말해주고 있다. 천국의 해와 빛, 시간과 천사들에 관하여 혹은 언어와 글, 집의 형태, 하는 일, 결혼 등 천국이 작은 공동체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까지 상세하게 보고하고 있다.
“죽은 뒤에 사람은 이 세상에서의 모든 기억, 생각, 애정을 갖고 있다. 두고 가는 것은 오직 육체밖에 없다. 사람이 죽어도 사용하던 모든 내·외의 감각을 사용한다고 한다.”
천국의 가장 일차적인 출발은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사는 사람의 선한 의지에서 싹이 터 존재하다가 사후 세계에서 더 구체화되어 나타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천국에 이르는 방법 또한 다원주의 관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분명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으로 들어가지만 결코 기독교인이라고 무조건 해당되는 것이 아닌, 진리를 찾아 가는 사람들 모두에게 동일하게 부여된다는 점이다.
이런 관점은 천국과 지옥을 대상화시키려는 기존의 사고에 제동을 건다. 처음부터 끝까지 천국과 지옥의 실체에 대해 설명하면서 동시에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기독교인으로 살면서 사람의 사고로 제한된 신관과 구원관을 뛰어넘게 되는 사건을 만들라는 말이다. 그 사건이란 다름 아닌 진리에 대한 끊임없는 전진과 고뇌에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 종교는 인간이 신과 만나는 진리의 구현체라는 관점이다. 무한자이며 또한 사랑의 현신인 절대자가 특정 종교의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을 수 없음을 깨달아 가는 과정인 셈이다. 이런 측면에서의 천국과 지옥이야말로 의미가 있다. 스베덴보리의 <천국과 지옥>은 단순히 예수를 주로 시인한 데 대해 값없이 주어지는 결과물이 아니라, 혹은 이 세상을 떠나면 그저 가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데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자비는 인류 전체를 향한, 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순수한 긍휼이다. … 그러므로 구원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다 구원받는 것이다.”
천국은 한 사람의 모양이다
스베덴보리는 천국과 지옥이라는 화두로 이 지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지표를 이야기하면서 진리를 끌고 가는 신의 영역으로, 모든 이들에게 공히 주어지는 삶의 한 과정으로 이해시킨다. 저자가 ‘천국은 진리를 쫓는 자들의 최종 목적지’라고 하는 것은 ‘구원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한편 사람으로서의 본분과 의무를 내팽개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 은혜 아래 숨는 그리스도인의 특권의식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천국은 사람 안에 있다. 그리고 자기 안에 천국이 있는 사람이 천국에 가는 것이다. 사람 안에 있는 천국이란 신을 인식하고 신의 인도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모든 종교의 시작이자 근본은 신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스베덴보리는 무려 13년 동안이나 천국과 지옥을 눈으로 목격하고 대화하며 기록해 왔다. 그의 요지는 천국과 지옥은 분명 있으며 앞서 말했듯이 그 형태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마음 속에서 경험하다 죽어서 영으로 더 구체적으로 산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말해왔던 천국과 지옥의 실상이 이 책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단순히 사후의 세계만으로 이분화되는 세계가 아니라 영혼이 있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생겨 확장된다는 점이 다르다.
이마누엘 스베덴보리는 1688년 스웨덴 웁사라 대학 학장과 감독을 역임한 제스퍼 스위드버그의 아들로 태어났다. 12세 때 웁사라대학 특별 학생으로 철학, 과학, 수학, 법학, 라틴어 등을 공부한 뒤 22세 때 철학박사를 받았던 비상한 사람이다. 그 외에도 천문학, 해부학, 생리학, 고고학 등을 더 공부해 57세까지 무려 125권이나 되는 책을 집필했다. 칸트, 에머슨, 괴테 등 사상가와 문필가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이다. 그 중 발자끄는 ‘나는 모든 종교를 섭렵한 뒤 결국 스베덴보리에게 돌아왔다’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천국과 지옥>은 스베덴보리의 저서 중 가장 많이 읽힌 책이라고 한다.
정혜영 기자pcweaver@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