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더 어렸을 때, 친구들은 백이면 백 모두 그랬다. 짧고 굵게 살고 싶다고. 또 그 중 대다수는 한술 더 떠서 '늙기 전에 죽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말하면 무척이나 멋있게 보일 줄 알았나 보다. 젊음이 소멸한 자신을 인정할 수 없다는 고고한 자존심(?)이 아름답고 숭고하고 '쿨'해 보일 것 같았나 보다. 아니면 젊고 아름다운 여주인공이 백혈병에 걸려 처연히 죽어가는 하이틴로맨스 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탓일 수도 있겠다.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짧고 굵게. 그 말은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길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왜 굵고도 길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걸까. 길게 산다는 것에, 왜 굵직한 인생을 누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일까. 내가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 거라고 말하면 친구들은 기막힌 표정으로 날 쳐다보곤 했다. 내가 너무 조숙했던 걸까. 그래서 삶과 죽음에 대해 너무 일찍 눈을 뜬 걸까? 아니면 선천적으로 삶게 대한 강한 집착을 지닌 인간으로 태어난 걸까? 어쨌거나 난 그때도 오래 살고 싶었고, 지금도 여전히 오래 살고 싶다. 당연히 '건강하게'.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환경이 살 만하지 못하다는 말일 거다. 환경에 문제가 없다면 건강에 신경을 꼿꼿이 세울 이유가 없을 테니. 음식도, 공기도, 물도 얼마나 깊이 병들었으면 우리가 이렇게 '건강 건강' 하며 눈에 벌건 핏발을 세우겠느냔 말이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찌들고 병든 도시의 콘크리트덩이 속에서 아등바등 살고 있는 건지. 안쓰럽다. 슬픈 일이다. 이러다 보니 건강에 대한 작은 정보만 있어도 주변은 발칵 뒤집어진다. 9시 뉴스에서 '채식이 좋답니다' 하면 다음날부터 고깃집이 파리를 날리고 '가시오가피가 좋답니다' 하면 제품이 동이 나고 가짜가 판을 친다.
건강 관련 정보들의 난립 중, 신년 들어 특히 눈에 띈 하나가 SBS 신년특집 프로그램인 <21세기 장수비법>이었다. 제1부 '성장호르몬-젊음의 묘약인가?', 제2부 '소식, 당신의 수명을 바꾼다', 제3부 '건강하게 살다 깨끗하게 죽는다'를 3일 동안 방영했다. 방영 전 광고방송을 보면서 저건 꼭 시청을 해야겠다 싶어, 행여나 잊기라도 할까 봐 다이어리에 적어두기까지 했다. 1부는 성장호르몬과 생체 나이의 관계에 대한 실험이 주내용이었다. 성장호르몬제를 투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체 나이가 젊어졌다. 단점은 높은 비용과 주사라는 물리적 장치의 거부감.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역시나 운동'이었다. 운동 중 성장호르몬의 분비를 확인할 수 있었다. 2부에서는 소식이 건강과 수면 연장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말했다. 적게 먹인 쥐가 마음껏 먹인 쥐보다 수명이 1.5배 길 뿐 아니라 잔병치레도 없었다. 심지어 이미 늙은 쥐에게 소식을 시켜도 즉각적인 수명연장 효과를 나타냈다. 소식의 한 대안으로 조식을 폐지하고 점심과 저녁만 먹는 2식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루었는데 대부분의 2식론자들은 이후로 건강이 좋아졌다고 말하고 있었다. 3부에서는 각국의 100세 이상 장수하는 사람들을 찾아 그 장수비법을 알아봤다. 70, 80세까지 건강하게 사는 데 유전이 지배하는 비율은 30%, 나머지70%는 환경적 요인. 그러나 100세 넘어 사는 데 유전이 지배하는 비율은 70%라고 한다. 장수촉진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성생활이 장수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과 수명연장과 사회의 역할 등에 대한 문제도 짚었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자들을 직접 찾아가고, 외국의 경우도 다양하게 보여주려 애썼으며, 특히 1년이 넘는 긴 취재 기간 동안 여러 복잡한 실험들을 시도한 것 등 공들인 흔적이 곳곳에서 배어났다. 또 기획 그 자체만으로도 건강과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성장호르몬 주사에 버금가는 것이 운동이라고 말했으나 정작 그 운동의 방식과 정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고, 소식이 좋다고 했으나 그 소식이라는 개념과 구체적인 기준에 대해서는 설명이 미흡했다. 조식 폐지와 2식이 가장 이상적인 소식법인 양 느끼도록 한 구성도 불편했다. 장수촉진 유전자가 있어 특별한 사람들만이 장수할 수 있다고 말했을 뿐 예외적인 경우나 그 밖의 요인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증이 남는다.
매일매일 접하는 수많은 정보들,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 중 가장 우선순위에 둘 것이 우리 생명과 직결되는 '건강' 정보가 아닐지. 건강은 가장 민감한 주제일 수 있다. 그러하기에 그 프로그램들은 사실의 나열뿐 아니라, 절박한 심정으로 주시하는 시청자들에게 대안과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오래 살고 싶다. 그래서 건강을 말하는 TV에 귀를 기울이고 그 정보에 의지한다. 그래서 TV는 정말이지, 진짜로, 무척이나, 아주아주, 매우 많이 신중해야 한다. 그 정보에 온갖 공을 들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뜬금없는 시청 소감 한마디, "역시 장수비법은 '어머니의 말씀' 속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