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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으로 리드하라
- 세상을 지배하는 0.1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이지성, 문학동네, 2011)
평소 책 읽기, 특히 인문학도로서 인문학 서적 읽기를 즐겨하는 나를 이 책이 유혹하였다.
책을 많이 구입하는 단골 고객에게 대형 서점이 홍보용으로 만들어
연초에 보내준 출판물 소개 책자에도
피어시그의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을 어느 작가가 추천하는 글과 같이,
이 책의 지은이를 취재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저자는 초등학교 교사 경력이 있고, 여자라면 힐러리처럼....등의 책들을 쓰서
150만부라는 밀리언셀러 지은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 사진을 보니 삼십대 중반 정도의 앳된 모습이었다.
책 소개 내용 중
'일본이나 서양의 강대국들은 고전 독서 교육을 전략적으로 하여 그 국가 성장의 원동력을 얻었지만
해방 후 한국 교육은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 옳은 말씀이다.
동서양의 성공하고 위대한 사람들, 천재들은 모두가 고전 독서광들이었다.
맞는 말씀이다.
책 목차와 소개를 보니 서양 고전들과 중국 유교 고전들과 한국의 실학자들의 책들 이름이 보인다.
서양 고전에 무지한 내가 필요한 책일 것 같고,
중국과 한국의 한문 고전들을 좋아하는 나에게 매력이 있었고,
열정이 자꾸만 식어가는 나에게 성공 신화를 일군 정주영, 이병철 같은 사람들의
통속적이지만 처세와 인생 철학의 밑거름이 된 고전이 되었다고 하는 논어 독서법도 나오고 하니,
또 솔깃하여졌다.
그래서 도서 구입 목록에 올렸다가
무엇인가 내가 얄팍한 상술에 넘어가서 읽고나면 허무한 책일 것 같은
냄새가 나서 일단 보류하였다.
그런데, 내 앞 자리에 앉아 있고, 대학 한 참 후배이고 또 정의감도 있고 순수하여 대화를 자주 나누는
후배 교사도 최근에 이 책을 구입하여 읽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반가운 김에 그 책 구경이나 좀 하자고 하여
오늘 책장을 넘기며
한 번 훑어 보았다.
혹시나 하였는데 역시였다.
책을 훑어보며 단 5분 만에 지은이와 책의 냄새를 맡을 수가 있었다.
독실한? 한국 근본주의 개신교 집안에서 성장한 젊은이였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기독교 성서적인 마인드에 그 영혼이 갇혀 있었다.
중국과 한국의 살아있는 종교인 불교는 철저히 말하지 않고
한걸음 나아가 불교를 비방하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는다.
불교야말로 인문학의 극치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제는 신을 믿는다는 의미로서의 종교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교양으로
전락한 유교 경전, 노자와 장자 등의 중국과 한국의 한문 고전들과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 융합되어 있는
기독교문명인 서양의 고전들을 인문 고전이라고 하며 읽기를 권하며
학생과 성인들을 위한 필독 고전 목록까지 제시한다.
인문학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한자로 人文, 영어로 휴매니티즈Humanities.
인문학은 서양 역사에서 르네상스 이후에 다시 부흥한다.
가톨릭 기독교 교회라는 우주관, 세계관, 신앙에 인간 정신의 자유와 행동을
철저하게 가두어버린 암흑의 시대,
철학(그리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헬레니즘)이
신학(이스라엘, 기독교, 헤브라이즘)의 시녀가 되어버린 유럽 중세 봉건 시대 이후
이슬람을 통해 전파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인문주의 부흥과 인문학은 연관된다.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기미를 보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종교 재판에 회부하여 화형을 한 중세 시대에
잔다르크를 비롯하여 마녀로 낙인 찍혀 종교 재판을 받고 화형을 당한 사람이
적어도 20만명 정도는 된다고 한 정보를 읽은 기억이 난다.
현대에 와서는 자연과학이나 기술처럼
그 탐구대상이 자연이 아닌 인간인 학문이 인문학이다.
중국 문명에서는 신이 인간역사를 지배하고 종교 문화가 발달하던 하-은- 주 삼대를 지나서
춘추전국시대에 오면 제자백가들이 등장하고
공자 같은 위대한 인문주의자들이 등장한다.
인문학의 3대 주 영역은 문학과 철학과 역사이고,
중국과 조선시대 한국의
독서지식인들(사대부)이 읽은 책들이 바로 유교 경학(철학)과 시문(문학)과 통감(중국 역사)이었다.
인도문명에서는 브라만(힌두교)교의 신에 대한 제의문화와 카스트제 같은 신분 차별을 합리화하는 관념에
대하여 자유로이 진리를 찾아 수행하는 사문의 전통이 중국문명의 제자백가들처럼
붓다 당시에 있었다.
신 중심적이고 인간 차별적인 브라만교에 대하여
붓다는
철저한 인문주의, 인간을 넘어 동물, 동물을 넘어 식물과 광물까지 포괄하는
너무나도 혁명적인 평등의 가르침,
너무나도 신의 도그마에서 인간 정신을 해방시킨 가르침,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통섭하는 우주법칙에 부합하는 가르침,
너무나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가르침을 펴고 실천하였다.
중국문명이나 인도문명은 서양문명의 르네상스보다
무려 2000년 앞서 인문학 문명이 발달하였다.
이 책의 몇 곳을 보자.
히브리어? 문자로 된 한 구절이 속 표지를 넘기자 말자 바로 나타난다.
그리고 한글로 아래와 같은 한글 문장을 아래쪽에 작은 글씨로 겨우 부기하였다.
꾸란을 아랍어 문자 외에는 번역하지 않고 신성시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 9장 10절
물론 나 같은 기독교 성서 문외한도 위의 구절이 기독교 성서에 나오는 구절임은 알 수 있지만,
기독교 성서를 모르는
사람들은 <잠언>이란 이상한 책에 나오는 잠꼬대? 로 알아들을 것이다.
이 책이 기독교 성서라도 되는가? 이 책은 기독교인만 읽는 책인가?
출전도 밝히지 않고 특정 종교의 경전 한 구절을 제시하는 것은
우리 사회와 사람들을 특정 종교의 틀 안에 모두 가두어버리는 일이지 않은가?
인문 고전 읽기 정신과 방법을 안내하는 책으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 장을 넘기면 아래와 같은 한문 구절이 나온다.
人生斯世 非學問 無以爲人
-李珥
한문 문장을 해독하는데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야 원전 언어를 제시하니
뭔가 독서에 도전적인 마음을 내게하고, 이 책과 지은이에게 신뢰심을 주기에 흥미롭고 신선하다.
하지만, 한글도 잘 읽지 못하고 영어에 주눅이 들어
로마제국의 공용어였던 라틴어가 서양의 고전 언어였던 것처럼
동아시아(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고전의 99%를 차지하는 언어인
한문 교육을 학교나 사회 교육에서 상실하고
자기 이름도 한자로 쓸 줄 아는 학생이 드문 세상에 이 무슨 해괴망칙한 짓인지?
그리고 아래쪽에 위의 한문을 우리말로 옮겨서 아래와 같이 작게 붙여 놓았다.
책의 말미에도 이상한 한문 구절을 뜬금없이 제시한 쪽이 있다.
*세상에 태어나 학문을 하지 않으면 사람답게 될 수 없다.
-이이
어떤 독자들은 독서법을 다루는 책에서 <<성경>>에 관한 메시지가 등장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해해주기 바란다.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받고 천재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 중 불행한 삶을 산 이들은 <<성경>>을 부정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103쪽
지은이가 어떤 조사를 하였는 지 모르지만, 기독교 성서를 읽지 않고 천재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하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독자에게 기독교 성서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유를 이해하여 달라고 하며 이런 지극히 주관적이고,
지극히 비이성적이고 무책임한 발언을 하다니! 기독교 문명이고 기독교 전통이고 기독교 공동체인 서양 사회에서 기독교에 반역하며 산다고 하는 것은 정신병자가 되고 삶이 불행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사회의 보이지 않는 폭력에 학대받는 것이다. 그만큼 이들은 기독교 사회에서 이성과 양심과 창의 정신을 소유하여 서양 문명을 건강하게 하는 데 기여한 사람들이고, 살신성인을 한 사람들이고, '천재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임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하기는 불교 종립 고등학교에 자원 입학하여 배웠지만, 부인 따라 성당에 나가 가톨릭 신자가 된 선배 교사 한분이 우리 학교에 있다. 성당에서 가톨릭 입문 교육과 기초 교리 과정을 배우며 고교 시절 배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경상도 말로 '마아- 차아뿌라'라고하며 능멸하고, '불교 믿는 사람들은 모두 일찍 죽는다'고 밑도 끝도 없는 지극히 주관적인 말을 담배를 피워물며 아무거리낌없이 내뱉기도 하였다.
심지어 불자인 내 앞에서 식사를 같이 하며, 불교라고 하는 종교는 용납할 수 없는 종교라고 하는 가톨릭 교사도 보았다. 내가 그 자리에서 천동설, 처녀가 애 낳았다는 설, 죽은 자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설, 부활하여 승천했다는 설, 진화론이 아니라 일주일 만에 어떤 신이 있어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설 등등을 비판하니 너무 논리적인 사람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시인이기도 한 그는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와 같은 존재인 불교의 관세음보살을 줄여서 관음보살이라고 하는 것을 가지고 언어 유희(Pun)를 이용하여 '관음증'을 가진 한갖 음란한 여인으로 희화화시키는 시상을 암자에서 얻었다고 하며 시를 발표할 정도였다. 나의 강력한 반발과 논박에 부닥치자, 나중에 법정스님이 번역한 축소판 화엄경을 헌책방에서 구입하여 읽는다고 하며, 세상 넓은 줄 겸허한 자세로 배운다고 하고, 불교의 깊이를 부러워하기도 하였다. 일말의 양심(도덕)과 이성과 예절(유교 문화)은 있는 것이다. 내가 영문판을 읽는 것을 보고 관심을 보이길래 소개해준 틱낫한 스님의 <<붓다 가르침의 핵심>>이란 책을 헌책방에서 구입하여 읽는 열의도 보였다.
나는 개신교회의 열렬한 독서가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인문고전 추천도서 목록에 <<성경>>이 들어가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출판될 때마다 기독교 분야 1위를 기록하는 노먼 빈센트 필......릭 어렌 같은 사람들의 저서에 대해 <<성경>>에 기반한 비평문화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서 <<성경>>에 대한 인간의 의견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성경>>은 철저하게 진리와 신앙의 영역이니까. 나는 인문고전을 읽는 것을 꺼려하는 일부 개신교 독서가들에게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 칼뱅의 독서를 소개하고 싶다. .....
칼뱅은 <<성경>>을 원전으로 읽으면서 로마 가톨릭의 마리아 및 교황 숭배주의를 비롯한 많은 교리가 <<성경>>에 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는 종교개혁 신학의 최고봉이라는 칼뱅 신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한편으로 그리스 고전과 키케로와 쿠인틸리아누스 같은 고대 로마 수사학자들의 저서를 원전으로 읽은 경험은 그의 전 생애에 걸쳐서 일어났던 온갖 반대 이론을 들고 와서 그에게 도전했던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과 자유주의 신학자들과의 이론 투쟁에서 항상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228-229쪽
기독교 성서를 지은이가 얼마나 신성시하는 지,
기독교인들이 고전 중의 고전, 지금은 퇴직하여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신학대에서 강의도 하신다는
내 중학 시절 담임 선생님이 베스트 셀러 중의 베스트 셀러인 책이
기독교 성서라고 하였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학생과 성인이 읽을 인문 고전 목록에 기독교 성서를 지은이는 넣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신성 불가침의 기독교 성서가 아니라 그 신학적인 의미를 풀어놓은,
기독교 성서를 해석한 신학자들 이름을 나열하고 그들의 책을 읽어보면 된다고 하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하는 고전 읽기 프로그램(자유교양고전?)의 고전 목록에 들은
한글로 된 신약성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고,
그 중에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삽화와 함께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고전을 읽는 정신은
단언하건대,
연암의 말처럼 '법고창신法古創新'이지 않은가!
칼뱅이 가톨릭 개혁하고 개신 기독교를 전파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학교를 다니고 역사를 배운 사람은.
그러나, 칼뱅이 얼마나 지독하고 혹독하게 스위스의 도시 쯔리히?를 개신기독교 성시화 한답시고,
시민들에게 금욕을 강요하고,
개신교식으로 철저하게 통치하였는지는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는다.
중세시대 때의 종교 재판처럼 재판을 하고 사람을 화형을 했는 지.
이 지독하고 포학한 서양인의 이름을 서울 강남의 길거리 이름으로 삼자고,
대한민국의 서울 강남의 개신기독교인들은 열렬히 주장하고 있다.
이 포학한 개신 기독교 성시 만들기 운동을 내가 살고 있는 이 작은 도시의 시장님이
앞장서서 하다가 시민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전국에 이런 지자체장, 국회의원, 기관장들이 많다.
칼뱅이 얼마나 근본주의 종교가인지,
그 정신적인 후손인 이 저자는 같은 기독교이면서도 가톨릭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칼뱅의 인문 고전
독서 편력을 소개해주고 싶어한다.
지은이는
기독교 성서는 '철저한 진리와 신의 영역'이라고 하면서.
인문 고전주의자가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위하여 서양과 중국과 한국의 이른바 고전을 시녀로 삼아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이 읽어볼 책으로 삼국사기는 제시하면서,
한국인의 뿌리요 원천으로 우리 겨레 제1의 고전인 삼국유사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 일언반구도 거론하지 않는 반면에,
고등학교 2학년 학생에게 읽힐 책으로 칼뱅의 기독교 강요라는 책을 들고 있다.
차라리 남의 나라 신화이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라도 소개하지 않고서는.
열아홉 살 때 권씨를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와 금강산에 있는 절로 들어갔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때 율곡은 붓을 들어서 윤원형의 수족이었던 요승妖僧 보우와 윤원형의 죄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둘을 조정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요승 보우와 윤원형은 조정에서 쫓겨났다.
-292-293쪽
인문 고전을 읽은 한국의 인물로 율곡 이이를 들면서, 저자는 율곡이 어머니 사후에 왜 금강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는지 그 생애의 실존적인 맥락을 분명하게 말하지 않고, 그냥 금강산의 절에 '현실 도피'를 위해 들어갔다는 것처럼 읽히게 표현하고 있다. 나아가 율곡이 윤원형과 보우 스님을 탄핵한 상소를 올리며 쓴 말인듯한 '요승'이라는 흉칙한 말을 여과없이 그대로 쓰고 있다.
율곡은 한 때 승려이기도 하였지만, 당시 조선의 사림파 세력들처럼 지독한 성리학 유교 근본주의자가 되었다.
문정왕후를 도와 조선 건국 이후 지독한 탄압을 받아 피폐해진 당시의 불교계를 정비하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보우 스님을
율곡은 요승이라고 표현하며 탄핵하고 제주도로 귀양보내고 제주목사 변 아무개가 몽둥이로 보우 스님을 살해하는데 결국 기여한 것이다.
보우 스님은 명종의 왕권 안정과 민심의 이반을 막기 위한 일시적인 불교 종단 회생 정책을 문정 왕후의 후원을 받으며서 수행하였다. 종교적인 기능이 약한 유교 사회의 독서지식인인 사대부와 민중들과 여성들과 왕실에 삶의 위안을 주고 도덕심의 바탕이 되며, 유교 사상 일변도의 조선 사회의 문화를 다양하게 하고, 정신적인 숨통을 트이게 하는 공헌을 신라-고려 천년의 역사 경험을 가진 불교가 조선 시대에도 여전히 담당하였다. 그리고 이 때 배출된 승과 출신의 서산대사와 그 제자인 사명대사를 비롯하여 임진왜란 때 수도 없이 많은 승군들이 국가 사회를 지키기 위하여 희생되었다. 사실, 성리학이라는 것은 도교와 특히 불교 철학의 세례를 받은 유교 철학이다.
정조 사후와 흥선대원군 때 수천명의 신자들이 살해당한 기독교 박해,
주자 성리학 외의 다른 유학을 접하는 유교지식인들을 사문난적으로 규정하고 살해한 것처럼,
엄청난 동학 농민들이 서학 쟁이로, 혹세무민으로 몰아 정부와 양반 유교 지식인 세력에 의하에 죽고 죽어나갔던 것처럼,
예수가 유대교 사회에서 양심범으로 처형당한 것처럼,
당시에 개신 기독교가 있었다면,
어느 목사도 보우 스님과 같은 처참한 죽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지은이의 생각이 얼마나 편협하고 폐쇄적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지은이는 기억해야 한다. 십자군 원정부터 부시 미국의 이라크 침공 전쟁,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과 한국 전쟁 시기에 100만명의 민간인 학살 참극,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인 130만명을 잔혹한 고문으로 학살한 것까지 인류 역사에서 전쟁과 대량 학살의 99%는 특정 종교의 전파나 특정 사상의 도그마로 인하여 일어났다는 것을. 하지만, 불교는 단 한 번도 종교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불교는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까지도 생명을 사랑하는 평화의 종교임을.
문명사가 토인비는 20세기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은
'동양의 불교가 서양에 전해진 것'이라고 하였다.
고전 독서를 통하여 학교 제도에서 낙오자가 된 아이슈타인이 결국 천재가 되어 인류 역사를 리드한 인물이 되었다고 지은이가
소개하였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1930년대에 프린스턴대학에서 열린 과학과 종교 간의 대화라는 주제의 학술 대회에서,
'현대 과학과 보조를 같이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가 불교이다.'
라고 하였던 사실은 저자의 관심 밖인 것이다.
오늘날 유럽의 성당에는 젊은이들이 오지 않는다. 미국의 거의 모든 주립대학?에는 불교학과가 있고 언제나 수강생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당장, 내가 사는 이 중소도시에서, 우리 학교에서
지금 당장이라도 미국에서 온 젊은 백인 불자 영어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고,
그들은 한국 불자들보다 훨씬 신심이 돈독하고 날마다 수행을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에 불교 수행을 하고 불교에 호감을 가진 사람이 500만명, 개신기독교 국가인 미국에는 4천만명이 된다고 한다. 미국의 교회에서는 기업 경영 마인드를 설교 주제로 곧잘 삼고, 성당의 신부님들은 불교 명상과 8정도를 신자들에게 가르치기도 한다. 미국 현대 정신 치료 의학은 상좌부 불교와 티베트 불교의 명상 수행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리처드 기어 같은 헐리우드 스타들도 불자들이 많다. 불교 명상을 통해 마음의 독소, 삼독심인 탐욕과 성냄과 무지의 번뇌로부터 벗어나고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하고 청결하고 정신이 다시 활발발해지는 에너지를 얻는다.
불교를 모른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인류 미래 문명의 예지를 모른다는 것일 뿐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은 인문학(Liberal Arts)과 기술의 교차점에 서 있는 회사"라고 말했다.
선적인 직관의 미감이 넘치는 아이폰을 설계한 그는 우리 시대의 아이콘이다.
그는 젊은 시절 히피 문화와 동양의 선 사상에 심취했으며, 구루를 찾아 인도를 여행했다.
또, 일본의 선승을 평생 멘토로 삼았으며 명상 수행을 즐겨했다.
비록 날라리 신자지만 책을 쓰다가 절망스러운 벽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책을 쓰면서 이토록 간절하게 기도를 해본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내 앞을 가로막던 홍해들을 갈라주시고 텅빈 원고지라는 광야 길을 붕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감사드린다. 내가 이 책으로 어떤 영광을 받는다면, 그것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것입니다.
이 책을 위해 매일 나보다 더 뜨겁게 기도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우리 아버지는 심지어 눈보라가 몰아치던 겨울에도 밤마다 산에 가서 기도하셨다. 어머니도 매일 아픈 몸을 이끌고 기도하셨다. 두 분에 대한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감사의 글, 306쪽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동기와 자세와 의도를 잘 보여준다.
저자가 신앙하는 신이 부모님보다 더 소중하다는 고백이 담대하고도 감동적?으로 읽힌다.
저자가 만든 필독 고전 목록에서
나에게 익숙한 동양 한문 고전을 위주로 몇 개 발췌하여
아래에 제시한다.
이 책의 말미에 붙은 필독서 목록에는
서양 인문 고전의 한 원천인 기독교 성서도 없고
동양 인문 고전의 한 원류인 불교 성경도 없다.
초등학교 5학년
유득공, 발해고
공자, 논어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윌리엄 워즈워스, 무지개
초등학교 6학년
김부식, 삼국사기
이황 자성록
맹자, 맹자
박사과정 학생이나 50 - 60세 어른들도 읽기에 쉽지 않은 이런 책을
초등학교 5, 6학년에게 읽히라고 하니, 저자의 정신 상태를 감정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책은 고전이 아니라 어린들을 고문하는 도구이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는 가령, <<몽실언니>> 같은 동화가 고전 중에 고전이 되지 않을까.
소에게는 그 귀에 고전을 읽어줄 것이 아니라
풀밭의 꼴을 마음껏 뜯어먹게 하여야 그 몸이 윤택해진다.
어린 벗들에게는 엄마가, 선생님이 들려주는
옛날 옛적 전래 동화 한 편이 윤택한 인격의 기초를 놓아주는
고전이 된다.
나는 어머니가 암자에서 법보시 받아온 주먹만한 글자의 한글로 된
부모은중경을 어머니와 함께 호롱불 아래서 겨울밤에 읽고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어머니의 은혜를 뼈저리게 체득하고 착한 인간이 되었다.
나는 어머니가 책을 읽는 것을 그 때 처음이지 마지막으로 보았다.
조선시대의 남자 아이들이라면 천자문이라는 천개의 글자로 이루어진
우주적인 스케일의 장대하고 아름다운 장편 서사시를 읽었다.
중학교1학년
노자, 노자
주희, 대학 중용
사마천, 사기본기
중학교 2학년
장자, 장자
사마천, 사기열전
플라톤, 국가 정체
중학생에게 이런 책을 읽게 하다니,
지금이 조선시대이고 중학생들이 모두 율곡 같은 천재들인가?
중학교 3학년
이익, 성호사설
박제가 북학의
김립, 김립시선
묵적, 묵자
한비, 한비자
아리스텔레스, 정치학
단체, 신곡
고등학교 1학년
류성룡, 징비록
정약용, 목민심서
매창, 매창 시집
순자, 순자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스 윤리학
르네 데카르트, 방법서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 의무론
고등학교2학년
신채호, 조선상고사
손무, 손자병법
오긍, 정관정요
주희, 근사록
장 칼뱅, 기독교 강요
고등학교 3학년
조식, 남명집
강항, 간양록
이지, 분서
왕양명, 전습록
오경재, 유림외사
이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이븐할둔, 역사서설
중3부터 고교생까지 청소년들에게 이런 책을 읽도록 하라니 좀 어이가 없다.
중3생이 성호사설을, 고1생이 목민심서를, 고2생이 정관정요와 기독교 강요와 근사록과 손자병법과 조선상고사를,
고3생이 남명집과 간양록과 분서와 전습록과 유림외사와 역사서설과 순수이성비판을 필사까지 하며
정독하게 하라고 하니 황당무계한 개그다.
구구단이나 인수분해도 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미적분 문제를 풀어라고 하는 격이다.
저자가 천재인지 광인인지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유명 출판사에서 상업적으로 흥행 능력이 있는 사람을 발굴하고
책을 아주 세련되게 디자인하고 홍보를 하여
밀리언 셀러 책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기사, 시상식 때 무슨 신에게 감사하고 특정종교 목걸이를 걸고
티브이에 등장하는 가수나 텔렌트, 배우, 운동장에 꿇어앉아
골 기도 세레머니를 하는 운동 선수 등등
돈 될만한 스타들이나 정치가들 같은 사람마저도
기업체나 특정 종교가 '만들어내는' 시대이니.
무한 욕망과 이익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팽배한
자본주의 극성 시대이다.
지난겨울에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의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71세의 노신학자 폴 니터 교수가
티베트 불교 불자인 부인 캐서린 여사와 방한하였다.
성철 스님의 제자인 진제 선사를 뵙기 위하여
광신 개신기독교도들이 구약에 나온다는
'땅 밟기'(한국식으로 말하면 지신밟기가 아닐까?)를 한 대구 동화사에 다녀갔다.
개신기독교인들의 무례한 망동을
교수님이 대신하여 불교계에 깊이 사과하였다.
한국인으로서 참 부끄러운 일이다.
개신기독교인들의 이러한 행동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미개한 지 잘 보여주는 것이다.
스님에게 그는 최근에 간행된 자신의 책,
<<나는 불교가 없이는 기독교인이 될 수 없었다>>는
책을 선물하였다.
스스로를 불자 기독교인이라고 하며
부처님과 스님께 3배의 예경을 하고
스님으로부터 법명과 화두도 받았다.
또 서울에서는 길희성, 김경재, 김정배 등의 신학(불학) 전공 교수들과 미산, 수불 스님 등과 함께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다.
평화운동가이고 자애명상 지도자인 부인 캐서린 여사는
동화사에서 자애명상을 지도하였다.
불교와 기독교를 한 몸에 구현하는 폴 니터 교수나
불자와 기독자가 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이 부부의 가정이나
미국과 한국를 오가며 불교와 기독교를 화해시키는 교수와 여사의
삶이 고귀하고도 아름답다.
눈발에 통도사 금강계단을 두 분이 합장하고
돌며 참배하는 모습이 얼마나 신선한 모습이던지.
또 훈훈하고 아름다운 일이 있었다.
지독히 추웠던 올 겨울, 신묘년 벽두에.
불교 조계종단의 종무 행정 수장인
자승 총무원장 스님이 아프리카 수단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온 몸을 바쳐 사랑의 실천한
고 이태석 신부 이야기를 담은 기록영화,
울지마 톤즈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많은 불자들과 함께 보고
손수건에 흠뻑 눈물을 적셨다.
사람들은 특정 종교가 아니라 수단 톤즈 사람들의 비참한 삶과
그들과 울웃음을 같이하며 신명을 바쳐 인간 사랑을 실천한 신부와 톤즈 지역 사람들의
그 순수한 사랑과 인정에 감동하여 울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 신문에서 신선한 기사를 또 읽었다.
동아시아 한문 고전 철학자 김용옥 교수가
한신대에서 중용을 강의한다고 한다.
수강 신청 학생은 16명.
예수의 12 제자보다 수강생이 많다며 만족하는 김 교수나
신학대에서 동아시아 한문 고전의 백미인
중용 강좌를 '마귀'나 탕아처럼 여기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이웃 종교에 광신적이고 배타적인 행동을 자주 보여주고,
10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개신 기독교가
우리 사회와 인류 역사에
작은 희망의 불씨를 피우는 것만 같아서 흐믓하다.
나는 후배 교사에게 이런 얄팍한 상술에 유혹 농락 당하지 말고
차라리 장경렬 교수가 출판된 지 35년 만에 정밀하게 우리말로 옮긴
현대 미국의 고전인 피어시그의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가치에 대한 탐구>>를
빌려줄테니 읽어보라고 하였다.
영어 선생님이시니 영문판과 대조하며 읽어보시라고 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