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한계령 - 점봉산 - 조침령)

[엎다운]

○ 산행구간 : 조침령에서 한계령 23.9km ○ 산행일자 : 2009. 7. 24. 금. 흐리고, 안개, 비. 15℃~23℃ ○ 산행시간 : 10시간 4분 ○ 혼자 설악바람꽃 ◇ 산행구간 기록 - 한계령 : 05:08 - 점봉산 : 08:40 - 오색갈림길 : 09:25 - 단목령 : 10:41 - 북암령 : 12:09 - 양수발전소상부댐 표지판 : 13:39 - 조침령 : 15:12 새벽 3시, 아직까지 비는 그치지 않고 안개비가 내린다. 쏟아져 내리는 별들과 찬란한 일출은 아니더라도 설악의 운해만이라도 고운님에게 어쩌면 보여줄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고 산장을 나선다. 조침령을 넘고 한계령을 오른다. 안개는 더욱 짙어만 가고 빗방울도 점점 굵어져 간다. 윈도 브러쉬 소리가 가슴을 갉아 내리는 듯하다. 중풍 휴유증으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80이 다 되신 할아버지의 거의 폐차 직전의 자동차다. 한계령을 오르는 급경사 굽이굽이 마다 엔진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지른다. 비와 안개로 지척이 보이지 않지만, 에어컨이 고장 나서 앞 유리창의 성애도 제거 못하고... 손잡이를 꽉 움켜주고, 숨도 크게 못쉰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하다. 어렵사리 필레약수터 갈림길로 들어선다. 들머리는 아직도 안개로 지척지간이 보이지 않는다. 산등성이를 감고 몰아치는 차가운 비바람은 싸늘하게 살갗을 때린다. 산행도 산행이지만 고운님과 할아버지가 새벽안개를 뚫고 어찌 한계령을 내려갈까 걱정이다.  대간 능선 “할아버지 먼저 내려가세요.” “엔진 브레이크를 꼭 사용하세요.” “아니, 나는 괜찮으니 먼저 올라가게나.” 새벽 안개 속에서 나는 할아버지 걱정, 할아버지는 내 걱정으로 서로가 먼저 떠나기를 권한다. “철조망을 막아 놓았구만, 울타리를 넘어야 겠네.” “어서 빨리!” 할아버지의 강권에 철조망 위로 몸을 솟구쳐 올린다. “어, 아직도 몸은 20대 일세.” “잘 다녀오게나.” “조심이 가십시오.” 안개와 비속에 도둑처럼 월장하는 내 모습이 처량하다. 우리 산줄기 내 땅을 왜, 내가 당당히 가지 못한단 말인가! 대간 꽃길 굳게 닫쳐있는 지킴터를 지나서 천천히 산을 오른다. 25분쯤 올라가자 암릉이 시작된다. 가느다란 로프가 끊어지지나 않을까 잡아당겨 본다. 암벽은 젖어 물이 흘러내리고 안개구름은 비바람을 타고 산등성이를 빠르게 넘나든다. 릿지 겸용인 경등산화가 바위에 쩍쩍 달라붙는 듯하고 아직은 뽀송뽀송해 발 감촉이 좋다.  절벽위 야생화 고운님 전화가 연결이 되질 않는다. 한계령을 올라오게 한 일을 후회하면서 불안감을 안고 산을 오른다. 무사히 한계령을 내려가야 할 텐데... 나쁜 일을 해 본적이 없으니까... 통화가 될 때까지, 고운님과 할아버지의 안전 생각으로 발걸음을 어떻게 내 딛는지 모르겠다. 올해는 유달리 장맛비가 오래 지속된다. 장마전선이 남과 북으로 오락가락하며 곳곳에 물난리다.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다가 심사숙고 하여 택일한 산행이다. 안개비속에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도 못하고 암릉을 넘었다. 그토록 만물상과 설악의 조망을 갈구했건만...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인가 보다. 바위떡풀 산죽이 사정없이 물 폭탄을 퍼붓는다. 비닐봉지로 신발이 젖지 않도록 응급조치를 했지만, 신발이 젖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 빗속에서도 야생화들이 반겨 맞는다. 모시대, 병조회풀, 곰취꽃, 서덜취, 둥근이질풀, 꼬리풀... 여러 꽃들이 빗속에서 미소 짖고 있다. 곰취꽃 둥근이질풀 서덜취   꼬리풀 멧돼지들이 대간길옆에서 풀뿌리를 캐먹다가 인기척에 놀라 풀숲으로 달아난다. 사람을 막을 것이 아니고, 멧돼지나 잡을 일이지... 빗물에 씻겨서 불발탄인 듯한 수류탄하나가 길까지 굴려 내려와 있다. 6.25 당시 격전지를 말해주고 있는 저 수류탄은 누구를 향하여 던진 것이었을까? 점봉산 오름길의 주목 한그루 대간 길은 망대암산을 지나 고도를 낮추다가 산죽 사이를 통과한 후 다시 완만한 오름길이 시작된다. 점봉산 8부 능선부터는 키 큰 관목은 없고 풀숲 속에 키 작은 잡목만이 무성하다. 점봉산 정상은 안개구름이 자욱하다. 산정을 넘나드는 구름만을 멍하니 바라본다. 구름 속 산꼭대기에서 사방팔방을 둘러보아도 나 혼자 뿐이다. 점봉산을 거쳐 곰배령의 야생화 화원을 꼭 걸어 보겠다는 숙제를 남기며 , 단목령을 향하여 몸을 낮춘다. 점봉산에서 단목령 내림길은 반대편과는 달리 키가 큰 관목림이다. 오색삼거리 갈림길을 지나고 단목령에 가까이 다가 갈수록 걱정이 된다. 에라, 모르겠다. 무조건 통과하기로 하자. 500m 마다 세워져 있는 하얀 예쁜 이정석이 마음에 든다. 방향도 거리도 좌표도 표기가 된 완전한 이정석이다. 단풍나무 숲 설피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부터 단목령까지 온통 단풍나무 군락지다. 장군들이 지키는 단목령 단목령지킴터는 백두장군과 백두여장군이 단단히 지키고 있다. 장군들과 통성명한 후 그 앞 의자에 앉아 이른 점심을 먹었다. 단목령의 길은 다섯 갈래이고 대간 길은 직진하여 올라간다. 대간 길 바로 아래, 내린 비로 계곡물은 폭포를 이루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다.  안개속 대간 꽃길 북암령까지는 계속되는 완만한 오름길이다. 가끔 안개 속 꽃길도 이어진다. 북암령을 지나서 부터 물푸레나무 군락지가 이어진다. 물푸레나무가 안개 속에서 그로테스크하게 바람결에 춤을 춘다. 가지를 물에 담그면 물이 푸르게 변하기 때문에 물푸레나무라고 부르고, 단단하고 질겨서 도리깨, 야구방망이, 스키를 만든다고 한다. 물푸레나무 대간길 고마운 발, 자랑스런 발, 가엾은 발 몸이 완전히 젖었다. 바지가랑이가 칙칙하다. 발은 물에 불어 끈적끈적하기 이를 데 없다. 경등산화라 암릉을 오를 때는 좋았는데 오랜 시간을 걷다 보니 발바닥이 무척 아프다. 왼쪽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쉬지 않고 계속 걷지만 조침령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배낭이 무겁게 느껴진다. 물을 얼려서 2병을 가지고 왔는데 3번쯤 마신 것 같다. 조금 남겨놓고 쏟아 부어버리니 한결 가벼워진다. 참배암차즈기 날머리 조침령은 어제와 같이 비가 심하게 내린다. 어제 오늘 지겹도록 비와 안개 속을 누볐다. 점봉산 정상의 동자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