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12일
한 군데서 낚시하기를 좋아하는 낚시꾼은 대개 자기가 선호하는 자리를 찾아 철옹성 같은 진지를 구축하고 사시사철 낚싯대를 펴 놓는다. 자주 낚시터를 찾는 사람이라면 반복적으로 낚싯대를 깔고 텐트를 치고 하는 수고로움을 덜고 몸만 오가면 되기에 당사자로서는 편리하기 짝이 없다. 다만 도난의 위험이 있고, 자주 가지도 않으면서 이렇게 자리를 차지한다면 정작 낚시하고픈 사람이 자리를 못 잡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내가 종종 가는 곳도 이런 현상이 심한 편인데.. 거의 매일 오는 경우라면 모를까.. 특히 주말꾼이 주중에까지 자리를 잡아 놓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나는 이런 알박기 행위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어쩔 수 없이 빈 자리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매일 낚싯대를 펴고 접고를 반복했다. (예전처럼 두어대만 펴고 낚시하는 게 아니어서 시간과 노력이 꽤 든다.)
그간 누군가 만들어 놓은 발판이 비어 있어서 자주 가 앉았는데 (물론 매일 시간 들여 접고 펴고를 반복하면서) 얼마전 낚시하고 있는데 바로 그 누군가가 짐 싸들고 와서는 자기가 만들어 놓은 자리이니 나가 달라고 요구하는 일을 겪기도 했다.
그런데 어제 자주 얼굴을 접하면서 전화까지 교환하게 된 낚시터 동무(라지만 한참 어린 아우님)가 우당탕 뚝딱 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마침 그동안 알박기 한 사람이 자리를 빼는 것을 보고 저기 원래 내가 자주 앉던 자린데 저 친구 자리잡은 이후 (당연히) 한번도 못 앉았다고 하는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백면서생이라 못 하나 박기도 힘들어하는 나를 대신해 현장일 하는 그 친구가 주변에 널려 있는 것들을 주워다가 산뜻한 자리를 만들어 냈다.
내심 흐뭇하기는 하나 이 자리를 내 자리라고 고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 자리가 비어 있다면 당연히 내가 앉겠지만 누가 먼저 들어가 앉았다면 굳이 내 자리라고 양보를 요구할 생각은 없다. 주중에는 아마도 주로 내가 앉겠지만 주말에는 직장생활 틈틈이 낚시하려는 주말꾼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이다.
다만 이 자리에 누가 알박기를 시도한다면 막을 것이다.
낚시터는 공유되어야 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낚시의 기본 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