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그냥 가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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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여년 후의 일입니다.
1970년대 말 눈 내리는 X-MAS 때입니다.
민수는 X-MAS를 며칠 앞두고 가족이 있는 대구 집으로 가야하는 데 연일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놈의 눈 때문에 대구 집에 갈 수 있을까 걱정 되었습니다.
이런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할 것 같아 강남고속터미널로 향 했습니다.
매표창구에서 대구로 가는 고속버스표를 예약하려니, 예쁜 여직원이 물었습니다.
“손님, 어디로 가세요?”
“대구요, 동양고속버스로 24일 오후 5시에서 6시사이로 앞자리 7번 쯤 주시면 좋겠는 데요.”
민수가 부탁하는 7번 좌석은 고속버스에서 내리기 가까운 앞좌석이었습니다.
여직원이 예약 현황을 살피더니 민수의 얼굴을 보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남기면서
“24일 6시 차표입니다, 즐거운 여행 하세요.” 했습니다.
매표 아가씨들의 묘한 웃음이 신경 쓰였으나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날은 직원들이 예수님을 믿거나 말거나 모두 X-MAS로 들떠 있었습니다.
민수는 부랴부랴 일을 끝내고 영등포 시내 빵집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위해
맛있고 큼지막한 케이크 하나를 잘 포장했습니다.
가족이 이 케이크를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고 생각하니 너무 기뻤습니다.
택시를 타고 고속터미널에 도착해서 기다리던 버스에 오르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미모의 여인이 옆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았사!
고속버스에 탈 때는 항상 옆자리 손님이 신경 쓰였습니다.
옆자리에 할머니가 아니라서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민수가 옆에 앉은 여인을 슬쩍 쳐다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검고 큰 눈에 발그스레한 뺨과 앵두 같은 입술을 했으며,
옷은 진자주 보라색 우단 투피스에 윗옷 왼쪽 칼라에는 회색 토끼 꼬리 하나를
얌전히 단 예쁜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차가 출발하기 전에 배웅 나온 여러 명의 사람들에게 창밖을 보며 인사했습니다.
민수는 하루 종일 힘든 일을 한터라 버스에 타자마자 이내 골아 떨어졌습니다.
가끔 민수 머리가 옆자리 여인의 어깨에 걸쳐지는 느낌이 있어서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조금도 짜증을 내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어느덧 대전 금강유원지에 도착해서 잠이 깨고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산 케이크는 머리맡 시렁에 잘 얹혀 있었습니다.
고속버스를 밤에 타고 눈을 뜨고 있으면 답답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리를 비추는 라이트를 켜고 책을 보던지,
옆자리 사람과 이야기를 하던지,
아니면 오만 슬픔에 잠기던지 하지 않으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민수는 어두운 고속도로를 바라보면서 옆자리 여인이 어린 시절 동창인
영주를 많아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주는 민수가 난생 처음으로 뽀뽀를 주고받은 참 예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말을 걸려고 해도 머리 위의 있는 아이들에게 줄 케이크가
민수의 이런 마음을 못마땅해 하는 것 같아서 잠자코 있었습니다.
드라마를 잘보지 않는 민수가 그 여인은 요즈음 뜨고 있는 드라마의 여주인공 역할을 하는
탤런트라는 것도 드디어 기억해냈습니다.
아마도 영주라면 탤런트가 되었나 봅니다.
여자들은 화장을 하면 긴가. 민가 하게 마련입니다.
탤런트라!
순간 조심해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유명인은 잘 아는 사람을 만나도 서로 조심해야 했습니다.
유명인을 따라다니는 기자들은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까뒤집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옆자리 여인의 입모습에서 영주라고 확신 했습니다.
추풍령을 넘어서는 곳쯤에서 여인이 민수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 했습니다.
그 여인도 20년 만에 만나는 사람을 기억해 낸 듯 했습니다.
헛기침을 했습니다.
그리고 패션 전문지인 ‘월간지 엘레강스’ 책을 뒤집었다, 폈다 했습니다.
민수는 너무 오랜 시간 옆자리에서 서로 말이 없다가 이제 와서 말하기가 쑥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먼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이미 예약해 놓은 사람들을 만나려 가는 날입니다.
잠자코 있는 사이에 그 여인은 손에 들고 있던 잡지를 집어던지듯이 떨어트렸습니다.
민수는 그냥 집어 주면서 영주의 손가락을 남몰래 슬쩍 잡아 주었습니다.
영주는 몸을 뒤틀었습니다.
영주의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순간 뒤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습니다.
영주는 탤런트가 맞았습니다.
유명인이 누군가를 아는 체 한다면, 내일은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만난 사람과 인적
사항이 대서특필 되고 뒷조사가 시작 될 판입니다.
이렇게 팽팽한 긴장 속에서는 누군가가 손을 꽉 잡든지 해야 할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민수는 조심하는 것이 영주를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긴장감은 핑퐁처럼 팽팽하게 오갔습니다.
엘레강스 책 빈난에 영주가 글을 썼습니다.
‘가만히 있어요. 기자들이 있어요, 너 민수지?’
‘너는 영주?’
둘은 반가워서 몸이 움찔 했습니다.
‘응, 결혼 했어’
‘응’
‘누구랑?‘
‘송 영순’
‘코 찔찔이 ....음’
‘너는 ..흡 ’
‘가만, 나 내릴 때 아는 척 말고 그냥 가줄 수 있지’
‘걱정 마’
멀리 환한 가로등 사이로 동대구역 현판이 그렇게 빨리 눈에 들어올 줄이야.
아쉬워하면서 민수가 버스에서 케이크를 들고 먼저 내렸습니다.
영주도 회색 모직 코트를 덮어 입고 이어 따라 내렸습니다.
눈은 여전히 옛사랑이 되어 하얗게 영주의 코트를 덮고 내렸습니다.
기자인 듯 터벅머리의 남자가 계속 응시하고 있는 여전히 긴장된 시간이었습니다.
영주는 택시를 기다리는 민수를 스쳐지나가며 얼른 다른 차를 타고 가버렸습니다.
민수는 사랑하는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공연스레 마음이 붕- 떠 있었습니다.
하얀 눈 내리는 늦은 밤인데도 대문의 초인종소리와
강아지 복실이가 짖는 소리에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손잡고 마당으로 마구 달려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민수는 TV 드라마에서 가끔씩 영주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 탤런트 영주 언니 많이 닮지 않았어?”
아이들 엄마 영순이가 말했습니다.
“글쎄 잘 모르겠어.”
민수는 시치미를 뗐습니다.
민수는 차마 사랑하는 아내에게 아릿한 옛 추억을 다 말 할 수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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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음 속에 혼자만 좋아했던 짝사랑이던지, 둘이 짝짝꿍이 맞아 서로 좋아했던 쌍방향 사랑이던지 간에
아련히 멀고먼 젊은 날 추억 속에 사랑 이야기는 잠시나마 아름다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런데, 민수처럼 그 마음을 마나님에게 말할 수 없다는 건 아직 젊다는 증거 아닐까?
우리 나이가 되면, 무슨 얘길해도 별 느낌이 없는 때가 온다.
민수야,
젊음을 만끽하면서 마나님과 행복하게 잘 살거라!!!
김 형은 솔직하게
학부인에게 말씀하시는 가요 ?
ㅎㅎ
@김진영 이 나이에도 옛날 젊은 시절 추억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계제가 된다면 못할 것도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마눌님 언짢아한다면 젊은 마눌과 산다고 생각하면되고...
누구나 짝사랑의 아련한 추억은 다들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짝사랑은 결코 맺어 질 수없는 사랑이라 합니다.
나도 그랬고 당신은? 2부 벌써부터 긴장되네요.
늘 챙겨주시는 만우님
감사합니다..
건강히세요 ^^*
조숙했네. 그 때 해서는 안 될 짓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