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조(鄭永祚, 1929. 음 11.27~2006.12.4. 음 10.14, 78세 몰:沒) 字 ; 득부(得富), 號 ; 송계(松溪)이다.
배우자 ; 순흥안씨 안맹수(安孟守, 1928. 음 5.7~2019.12.4, 음 11.8, 92세 멸)
《 1 》주요 경력 연보
1948.10.20~1951.6.20 함안농업고등학교 졸업
1944년 16세 때(5년제 함안중 3학년 재학) 17세 안맹수와 결혼, 안맹수 의령군 지정면 득소리 친정에서 1년 묵히고 18세 때 함안 유현 시집 옴, 첫딸 홍역 2살 때 잃음, 1949년 음력 윤달 정윤선(제적부엔 장녀로 기재됨) 출생.
부 정현락과 모 조복희(1912년생 동갑)는 33세 때 며느리를 봄.
1950.6.25전쟁 시 고향 유현리가 낙동강방어선 최대 격전지로 의령 지정면 득소리, 의령군 용덕면, 진양군 진성면 3곳 전전 피난감.
1951.6.18 경찰학교 입교(제38기), 부산철도경찰대근무피명(23세 때)
1953.10.15~11.7 경상남도경찰국전출피명, 북부산경찰서, 부산경찰서 근무
1955.6.27~12.31 사천경찰서, 내무부전출, 경찰기동대 제1대 근무
1956.1.20~12.15 경남도 전출, 부산경찰서, 부평파출소, 경사 승진
1957.4.25~8.3 경남경찰국 북부산서, 동래서, 부산진서
1961.3.31 급 5급 6호봉
1961.6.23 창녕경찰서 유어면 지서장을 끝으로 의원 면직(만 10년 5일 복무) 당시 나이가 33세였다.
《 2 》상벌사항
1956.1.20 우량표창 (시행청 ; 경찰국장)
1958.5.6 범죄수사공로 표창(시행청 ; 경찰국장)
2004.8.19. 6.25한국전쟁참전유공자 대통령(노무현) 표창 수상
《 3 》6.25한국전쟁 참전 연보(생존시 정영조 형님의 증언 기록임)
1951년 9월 ; 전북 호남선 노령 제1, 2 터널 경비 및 공비 토벌 전투, 호남경찰전투대대(대대장 ; 경감 강재동, 소대장 ; 경위 성명 기억 못함), 2차 투발, 계속 순환으로 투발 2개월 근무.
1952~1953 ; 제4부두 파출소 근무, 부산항 제4부두 경비, 미군과 합동, 남원공비 토벌 출동, 전라선 경비 및 전투, 제2차 토벌 호남전투대대 남원공비 토벌 2개월, 사천경찰서 정동파출소 2개월 파견.
1955 ; 철도경찰 폐지, 일반경찰로 직제 편입.
《 4 》가계도(자녀와 배우자)
슬하 2남 3녀
장남 정병권(鄭秉權)ㆍ최귀옥(崔貴玉)
2남 정병태(鄭秉泰)ㆍ박선민(朴宣玟)
장녀 정윤선(鄭允先)ㆍ조용하(趙鏞夏)
2녀 정경희(鄭京姬)ㆍ김영식(金榮植)
3녀 정미경(鄭美庚)ㆍ임치암(林致岩)
35세 때인 1963년부터 부산 수정동에서 대형점포 쌀가게를 했다.
상기 6.25전쟁 참전유공자증은 우리집 7형제 중 큰형님 정영조(鄭永祚, 호적부 : 1930.1.12생, 실제 출생일 : 1929. 음 11.27생~2006.12.4졸, 78세 졸, 생존시 : 만 95세)가 노무현 대통령 때(2004.8.25) 수여받은 6.25전쟁 참전유공자(참전용사) 증서(아래 사진)이다.
2004.8.25 예우 차원의 나라가 인정하는 유공자 증서를 받고 기쁨도 잠시 2년 후 별세 했다.
1953.7.27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휴전협정 조인) 이후로 징병(징집) 연령에 따라 아래로(차례대로 줄줄이) 동생 6명 합 7명 모두가 신성한 국방의 병역 의무를 다 마쳤다.
옛날에는 6.25전쟁 만 3년(1950.6.25~1953.7.27)과 휴전, 휴전선 비무장지대 긴장에 따른 경계강화, 비번한 북한(당시 칭호 : 북괴) 무장공비 침투, 냉전시대 베트남참전 등으로 인하여 군 기강 병영 군기도 엄청 셌다.
당 시대 군복무에는 요즈음처럼 격세지감(사치스런)의 '병사 봉급(월급)'이니 '병사 연봉'이니 하는 보수 용어가 없는 복무 수당 제로(무임)에 가까운 국방의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