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결국 언어의 예술이다. 따라서 언어가 갖고 있는 고유한 어감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언어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부족한 채 그 언어를 재료로 사용할 수도 없거니와, 그 언어의 뜻을 변화 증폭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단어 하나하나가 갖고 있는 어감은 뜻의 전달뿐이 아니라 작품의 분위기며 내재율을 좌우할 뿐 아니라, 작자의 인격과도 관련이 된다. 아래에 이희승(李熙昇)의 글을 자세히 인용함도 이때문이다.
어감이란 것은 언어의 생활감, 다시 말하면 언어의 생명력입니다. 어감 없이는 모든 말이 개념적으로 취급되어 버립니다. 즉 어감 없는 말은 언어의 시체거나 그렇지 않으면 정신상실자입니다. 이와 같이 어감은 언어활동에 있어서 생동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상을 전달하는 언어활동은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표출자의 표현 효과를 훨씬 증대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감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여 보려 합니다. 대개 언어에는 의미 즉 뜻과, 음성 즉 소리 두 방면이 있습니다. '사람'이란 말은 '사'란 발음과 '람'이란 발음이 합하여 성립되어 가지고 '人(사람)이란 개념 즉 의미를 나타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발음은 형식이요, 의미는 말의 내용입니다. 그리하여 어감이란 것이 이 형식과 내용에 다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형식 즉 발음이 어감을 규정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있습니다.
(■) 발음의 강약입니다. '바람' '구름' '달' '꽃' 등과 같은 명사라든지 '얼른' '천천히'와 같은 부사라든지 '아름답다' '탐스럽다' 등의 형용사와 같은 동일한 어휘라도 그 발음의 강약은 무수히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 강약이 이와 같이 변화됨에 따라 그 말에 따르는 어감도 실로 무수히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 발음을 조절함으로써 그 말의 표현 효과를 크게도 할 수 있고 적게도 할 수 있습니다.
(■) 발음의 지속 즉 장단(長短)입니다. 발음의 장단은 명사의 어감에도 크게 관계가 있겠지마는, 형용사, 부사, 감탄사 같은 것에 더욱 효과적이라 생각합니다.
'바람이 솔솔 분다'는 말과 '바람이 소-ㄹ 소-ㄹ 분다'는 말이라든지 '걸음을 느릿느릿 걷는다'는 말과 '걸음을 느리-ㅅ 느리-ㅅ 걷는다'는 말의 어감의 차는 지금 저의 발음을 들으시는 여러분이 용이히 판단하실 줄 압니다.
(■) 발음의 고저(高低)입니다. 이 발음의 고저는 발음의 강약과는 다른 것입니다. 발음의 강약은 음파의 진폭의 대소에 달렸습니다마는 그 고저는 음파의 진동수에 달렸습니다. 그리고 강음과 고음, 약음과 저음은 항상 일치되는 것은 아닙니다. 남성(男聲)은 저음인 동시에 강음이요, 모기 소리는 약하면서 높은 소리입니다. 그리하여 이 고저가 또한 어감을 크게 좌우합니다.
(■) 발음 속에 섞인 모음(母音)의 명암(明暗)입니다. 명랑한 모음이 포함되고 음암(陰暗, 컴컴)한 모음이 포함됨에 따라 그 말의 어감은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그리하여 그 의미까지 달라지다시피 합니다. 한국 말에는 이와 같은 예가 퍽 많습니다. 명사로도 '가짓말'과 '거짓말'이라든지, '모가지'와 '며가지' '뱅충이'와 '빙충이'등의 '가' '모' '뱅'이란 발음은 퍽 명랑하고 가벼운 소리요, '거' '며' '빙'이란 발음은 매우 어둡고 무거운 소립니다.
그러나 형용사나 부사에 이런 예가 가장 많습니다.
(■) 발음 속에 섞인 자음(子音)의 예둔(銳鈍)입니다. 그 자음의 날카롭고 둔한 데 따라 역시 어감은 큰 차이가 납니다. 몇 개의 예를 말씀드린다면,
명사; 주구렁이-쭈구렁이, 족집개-쪽집개, 고치-꼬치
동사; 떤다-턴다, 반다-빤다
형용사; 검다-껌다, 빨갛다-밝갛다, 감감하다-깜깜하다-캄캄하다
부사; 반작반작-빤짝빤짝, 기웃기웃-끼웃끼웃, 곰실곰실-꼼실꼼실,
이상은 그 말 속에 포함된 자음의 날카롭고 둔함으로 인하여 어감이 사뭇 다른 것들입니다.
(■) 접미음(接尾音) 혹은 접두음(接頭音)을 가진 말.
접미음을 가진 말; 뺨-뺨따귀, 코-코빼기, 눈-눈깔, 배-배때기
접두음을 가진 말; 밟는다-짓밟는다. 주무른다-짓주무른다
이상에 든 여섯 가지 조건은 주로 그 말의 액센트와 리듬 즉 운율을 규정하여 가지고 각각 그 말이 독특한 어감을 나타나게 됩니다. 대개 언어의 음성은 각각 독특한 청각적 성질을 띠고 있어서 여러 가지 형태를 표현합니다. 그리하여 시각이나 촉각이나 후각이나 미각 등 다른 감각과도 서로 통하는 성질을 가지고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음성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 각종 감각을 통하여 결국 그 말의 의미에까지 영향을 주어서 변동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여러 가지로 실험적 연구가 행하여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 즉 의미가 어감을 규정하는 조건은 다음과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 계급성:말의 계급성이란 것은 그 말이 경어인가 비어인가 보통 평등되는 사람 사이에 쓰는 말인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 친밀성:말의 친밀성이란 것은 상대자의 계급에는 아무 관계가 없고 다만 친애 정도를 나타낼 뿐입니다. 즉, 아버지-아빠, 어머니-엄마, 오라버니-오빠, 형님-언니. 이 아빠,엄마 등의 말들은 아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말인데, 아이들이 쓰는 만큼 그 말들을 들어서 말할 수 없이 친애미를 느끼게 됩니다.
이상은 결국 언어의 품위를 결정하는 것이 됩니다. 말의 품위와 리듬이 잘 조화 일치될 때에 그 말은 한 개의 단어로서 생동 발랄한 힘을 가지게 됩니다.
이 위에서 말씀드린 것은 개개의 단어에 대한 문제입니다마는, 어구라든지 문장 전체로서는 어떠하냐 하면 여러 개의 단어가 종합될 때에 또한 그 각개 단어의 발음이나 의미와 잘 조화되도록 전체로서의 억양과 완급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의미와 음향의 훌륭한 선율과 율동이 창조될 것입니다. 언어가 이와 같이 표현될 때에 그것은 듣는 이에게 호감을 줄 뿐 아니라, 사상을 완전히 전달할 수 있으며, 언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예술이 될 것입니다. -李熙昇 '言語表現과 語感'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