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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10:12-15(P.1265) 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2018. 10. 7
결실의 계절인 가을답게 요즈음에는 여러 가지 과일들이 참으로 풍성하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계절에만 맛 볼 수 있는 과일이 있습니다. 바로 포도입니다. 포도는 다른 과일인 사과나 배처럼 장기간 저장이 안 되는 과일입니다. 그래서 딱 한 철, 그 시기에만 맛볼 수 있는 과일이라서 더 귀한 과일이라 생각합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이름이 붙어 있는 곳이 많습니다. 그 중에 이사야서 5장은 “포도원의 노래”라는 독특한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기름진 산에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돌을 제거하고 잡초를 제거하고 극상품 포도를 심었습니다. 게다가 짐승이 건드리지 못하도록 포도원에 망대를 만들어 관리도 합니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서 좋은 포도를 수확해서 즙과 포도주를 만들 것을 예상하고, 다시 많은 돈을 투자하여 술틀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결과가 나타나나요? 결과는 좋은 포도가 아니라 나쁜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들포도를 맺음은 어찜인고?.”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분노한 포도원 주인은, 자신의 기대를 망치고 배신한 포도에 대하여 분노합니다. 그래서 담과 울타리를 헐고 포도원을 황폐하게 망가뜨리겠다고 선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좋은 포도를 심었는데 나쁜 포도를 거두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여기서 포도는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을 닮은 좋은 포도를 심었지만, 사람들이 악한 성품으로 만들어 하나님을 배반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결과, 하나님이 분노하시고, 그리고 그 결과로 다시 고통이라는 댓가를 받게 되는 모습입니다.
성경에서 나타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농부의 원리 같이 하나님이 일합니다. 사람이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심고 거두는 것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습을 성도들에게 요구를 합니다.
10월을 두고 말하기를 “결실의 계절”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대로 10월은 일 년 중에 가장 풍성한 과일을 맛볼 수 있는 시기입니다. 결실의 계절이 더 풍성해 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더 많이 거두기 위하서는 더 많이 심어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있습니다.
시126:5에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자연의 원리를 말할 뿐만 아니라, 농부가 보여주는 수고로움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눈믈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고통을 겪을 때에 가을에 기쁨으로 거둔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두고 “농심(農心)”이라고 합니다.
경행록의 사자성어 중에 오늘 본문과 참으로 잘 어울리는 내용이 있어서 소개를 합니다.
種瓜得瓜 種豆得豆(종과득과 종두득두) 天網恢恢 踈而不漏(천망회회 소이불루)
그 뜻은 이렇습니다.“오이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다. 하늘의 그물이 넓어서 보이지는 않으나 새지 않는다.”정말로 지혜로운 말이라 생각합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기준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악을 심으면 악으로 거두고 선을 심으면 선으로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그물은 너무 넓어서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그물은 새어나갈 수 없는 완벽한 그물입니다.
갈 6:7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절에는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법칙은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으면 영생을 거둔다는 것입니다. 영생을 거두려면 성령을 위하여 심어야 합니다.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쌓은 악에서 악을 낸다고 합니다. 의를 심어 인애를 거두고, 선을 많이 쌓아 선을 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호세아는 북 왕국 출신으로 선지자 사역을 하였던 유일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농사꾼 출신입니다. 그래서 농촌의 선지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파종과 추수를 잘 아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심고 거두는 농사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 듣기 쉽게 전하고 있습니다.
결실의 계절인 이 시기를 맞이하여, 잘 심고 잘 거두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에 의를 심어 인애를 거둘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1. 묵은 땅을 기경해야 합니다.
12절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말했는데 기경한다는 것이 무슨 말이에요? 기경(起耕)이라는 말은 묵은 땅을 갈아서 새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기경하라는 말은 단순하게 땅을 갈아 엎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기경하라는 말씀은 “마음을 돌이키고 삶을 새롭게 만드는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예전의 나쁜 마음밭을 새롭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꾸라는 말입니다.
“딱딱하게 묵어 있는 묵은 땅”은 완고한 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하고, 불순종하고, 불의를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서 떠나게 되면, 그 자리에 잡초가 자리 잡게 됩니다. 이 말은 완고해지고, 마음이 굳어지고,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효용가치를 잃어 버린 땅이 됩니다.
렘 4:3절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묵은 땅이 등장합니다. “묵은 땅은 갈아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농사를 잘 지어서 활용하는 농사짓는 땅이 왜 굳어질까요? 땅이 굳어지는 이유가 무엇이에요? 밭에 왜 돌이 생깁니까? 밭에 왜 가시덤불이 발생해서 우거지게 됩니까? 이유는 딱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농부가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게을러 밭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을러서 제때에 땅을 기경하지 않습니다. 게을러서 제때에 잡초를 제거해 주지 않습니다. 게을러서 제때에 땅이 돌들을 골라서 없애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한 두 달이 지나고, 때를 놓쳐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그 땅은 묵어서 손을 대지 아니하면 사용할 수 없는 땅이 됩니다. 땅이든, 사람이든, 집이든, 관리하지 아니하면 금방 망가져 버립니다.
지금 덕포 1동 지역에 재개발이 된다고 해서 요즈음 공사가 한참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사람이 살다가 떠난 후 빈집으로 남아 있는 곳이 있습니다. 집에서 사람이 떠나가고 빈집이 되어 버리면 그 집의 상태가 어떻게 될까요? 금방 망가져 버립니다. 사람이 살면서 들락날락거리고 생활 할 때에는 집이 오히려 더 튼튼하게 유지 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기척이 사라지는 순간 집은 폐가로 그냥 변해 버립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 밭에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리고 움직이면, 나라는 사람에게서 사탄이 뿌린 잡초가 자랄 곳이 없습니다. 자랄 시간조차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고, 내가 말씀을 멀리하고, 기도를 멀리하는 게으름에 빠지게 되면, 나는 여지 없이 망가져 버립니다.
“응달 토끼는 살아도 양달 토끼는 굶어 죽는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습니다. 추운 응달에 살고 있는 토끼는 살아도 따뜻한 양달에 사는 토끼는 굶어 죽는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서로 바라보고 행동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양지에 사는 양달 토끼는 허구한 날 맞은 편 그늘지고 추운 응달만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응달 토끼는 허구한 날 맞은 편 따뜻한 양달만을 바라봅니다. 따뜻한 곳에 있는 양달 토끼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은 응달쪽을 바라보며, “아직 눈이 녹지 않아서 밖에 나가면 안 되겠다” 생각을 하다가 결국 봄의 때를 놓쳐 굶어 죽게 됩니다. 반대로 응달토끼는 자신 쪽은 여전히 춥지만, 눈이 다 녹은 양달을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먹이를 구해서 생명을 이어나간다는 말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디에 사느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바라 보면,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아무리 등 따뜻하다고 하더라도 게을러서 때를 놓쳐 버리면 결국은 망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묵은 마음 밭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경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을 추수가 끝나고 농부들이 어떻게 합니까? 그냥 마구잡이로 내 버려 둡니까? 아닙니다. 내년도 봄의 농사를 위해서 추운 겨울에도 땅을 개간하여 새로운 흙을 섞어서 땅심을 키웁니다. 가을에 수확한 과일나무들은 내년도에도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며 손질하고 잘 가꾸어 보존시킵니다. 이 모든 것이 부지런함이 바탕에서 나타나야 하는 일들입니다.
롬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라”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을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 모두도 부지런하게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자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열심히 회사일도 하고, 열심히 가정일도 하고, 열심히 주님의 일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 밭이 묵은 땅처럼 굳어지지 않도록 열심을 다해 노력하는 성도가 되길 축원합니다.
2. 악을 심고 죄를 거두지 말아야 합니다.
13절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상반절에 보면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의를 심지 않고 악을 심으면 인애를 거두지 못하고 죄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악을 심으면서 좋은 열매를 거두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악을 심으면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반대로 공의를 심으면 인애를 거둡니다. 사랑을 심으면 화평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선을 심으면 의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이에 따라 악을 심으면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를 히브리어로 말하면 <아본>이라고 합니다. 이 아본이라는 단어는 위반하였다는 뜻입니다. 본인이 의도해서 고의적으로 죄를 짓던, 아니면 본인이 실수로 죄를 짓던, 그것과는 상관 없이 죄라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위반할 때” 성경은 죄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분류하면, 대부분의 죄는 실수가 아니라 고의적으로 범하는 죄입니다.
그래서 유대교는 죄를 두 종류로 나눕니다. 1)하나님에 대한 죄이며, 2)인간에 대한 죄입니다. 또한 유대인의 ‘토라’에 보면, 죄를 56종류로 죄를 나누어 놓았습니다. 어떻게 56종류로 구분하였는지 저를 잘 모르지만, 제 생각에는 56종류가 아니라, 수백 수천가지로 죄를 나누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담 한 사람이 심어 놓은 하나의 죄 때문에, 지금 수천 수 만가지 죄의 모습들이 우리들 가운데 자리 잡았습니다. 원죄는 하나이지만 자범죄는 무한대입니다. 하나의 죄를 심었더니 그 죄의 열매가 수천 수 만가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죄라는 것이 이처럼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빠르게 전염이 된다는 말과도 동일합니다.
칼 메닝거는 “죄로 인한 결과(Whatever Become of Sin?)”라는 그의 저서에서 근세기 들어와서 사람들은 왜 이렇게 수많은 죄를 범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을 내어 놓았습니다. 20세기 중반부터 사람들에게서 죄의 개념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나도 괜찮고, 너도 괜찮다”라고 하는 안이한 대처방식이 죄를 더 괴물처럼 키웠다고 말합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악의 진보함을 보세요. 극단적인 무슬림 테러집단인 ‘알 카에다’가 미국에서 911 사태를 촉발하고 수천명의 사람들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911테러의 주범인 알 카에다와 전면전을 벌입니다. 결국 알카에다 수장인 빈 라덴이 미군의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되었습니다.
그렇게 알 카아데라는 테러 집단이 자취를 감추는가 싶더니, 알 카에다를 비웃기나 하듯 ‘IS’(이슬람 국가)라는 신종 테러집단이 등장하여 세계인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습니다. IS는 알 카에다 보다 더 잔인하고 잔혹한 모습으로 활동합니다. 수많은 교회를 불사르고, 특히 기독교인들만 골라서 보라는 듯이 공개 참수를 감행합니다. 잔혹하고 끔찍하기가 그지없습니다.
우리는 테러의 안전지대에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런 끔찍한 테러가 벌어지는 것에서 열외된 안전지대였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백성들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악한 일들이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만 테러집단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신천지라는 극단적인 종교집단이 테러를 가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종교적으로도 신천지라는 이단은, 지금까지 발생하였던 그 어느 이단보다도 더 악랄하게 진보한 이단입니다. 멀쩡한 교회가 신천지로 넘어가고, 교회 안에서 신앙의 열심을 가진 젊은이들이 속절없이 빠져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왜 이렇게 악한 일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모든 것이 사탄이 조정하는 악한 일들이 차고 넘치기 때문입니다. 도스토엡스키의 ‘죄와 벌’에서 주인공인 라스콜니코프는 고리대금업자인 노파를 살해하고 난 뒤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마치 누군가 초자연적인 힘으로 내 손을 잡아 이끌어 저항할 수 없이 맹목적으로 끌려간 것 같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자신이 사람을 죽인 것이 자신도 모르는 어떤 악한 힘에 의해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악한 존재인 사탄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도록 만드는 사탄의 힘이 있습니다.
13절 말씀에서 “죄의 결과로 거짓 열매를 먹는다”고 합니다. 공의를 심어야 인애를 거둡니다. 좋은 것을 심어야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악을 심으니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만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곡백과가 풍성한 참 좋은 가을입니다. 이 가을에 오곡백과를 접하면서 그것을 먹을 때마다, 나는 어떤 열매를 맺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 삶에서 의를 심고, 복음을 심어서 그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