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9:17-28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하나님은 에스더서를 통해 이 세상과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확인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성실하게 돌보시고 그 백성을 끝까지 보호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은 반전의 드라마, 역전의 드라마를 쓰시는 분이십니다. 결국 유다 백성을 진멸하려는 하만의 계획을 돌이켜 하만의 가문과 아말렉 족속이 모두 멸절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인해 유다인은 죽음의 공포에서 생명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다인은 아말렉 족속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 사건이 철저히 자기 보호의 필요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밝히고자 합니다. 이제 유다인이 승리를 자축하며 잔치를 벌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를 중심으로 부림절이라는 새로운 절기를 제정하는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잔치를 벌이다(17-19)
(17-18) 아달월 십삼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십사일에 쉬며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은 십삼일과 십사일에 모였고 십오일에 쉬며 이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긴지라
12월 13일에 하만을 비롯한 대적들을 모두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에 쉬면서 잔치를 베풀어 즐겼습니다. 도성 수산에 살았던 사람들은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대적을 물리쳤기 때문에 15일 날짜에 잔치를 벌였습니다. 하만은 이전에 왕에게 유다 민족을 고발하면서 그들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다 민족은 왕에게 용납되어 이제는 편히 쉬게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유는 왕 때문이었지만, 결국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인해 승리를 경험하고 이후 쉼을 누리며 잔치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쉬게 하십니다. 이 땅을 살아갈 때 우리에게 진정한 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영적 전투가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훗날 영원한 천국에서 우리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도 주님 안에서 잠깐의 참된 평안과 쉼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주님과 깊이 교제하며 영적 안식을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어서 잔칫날에 있었던 일들을 추가로 소개합니다.
(19) 그러므로 시골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고을에 사는 자들이 아달월 십사일을 명절로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
사람들이 서로 예물을 주고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예물’이라는 단어는 보통 희생 제물의 제사장 몫을 가리킬 때 사용하던 단어와 어원이 같습니다. 유다 민족이 큰 구원의 경험을 함께하면서 동족들과 자신의 재산이나 물건을 서로 나누어 가지는 일을 행했습니다. 서로 음식과 물건을 나눔으로 이날을 기뻐하고 공동체 정신을 기렸음을 의미합니다. 예물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서로 소중하게 여겼던 보석 등도 나누며 기쁨을 배가시켰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뒤의 부림절을 설명할 때는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는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누며 흘려보내는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도 매월 첫째 주일에 나눔주일을, 3, 6, 9월 셋째 주에는 사회봉사주일로 섬깁니다.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지역 이웃들에게 마음과 함께 물품을 나눔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 서로 나눌 때 구원의 기쁨이 배가되고 교회는 사랑으로 더욱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어서 부림절의 유래를 소개합니다.
부림절의 제정(20-28)
(20-21) 모르드개가 이 일을 기록하고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모든 유다인에게 원근을 막론하고 글을 보내어 이르기를 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지키라
모르드개는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자세히 기록하고 남겼습니다. 원근을 막론하고, 즉 멀리 있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사람 모두, 소외됨이 없게 하였습니다. 이 표현은 이사야 57장 19절에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사야 말씀을 기억하는 유다인들은 이 표현을 보고 들으며 이사야 예언의 성취로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심을 깊이 깨닫고 감사하는 기도를 올려드렸을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규례를 세워 매년 12월 14일과 15일 이틀간 수산과 그 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부림절로 지키도록 합니다. 그 절기의 특징이 다음과 같습니다.
(22)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대적으로 말미암아 도륙을 당해 슬퍼하고 애통해야 할 그날이 오히려 기쁨의 날로 바뀌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귀한 헌신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인한 것임을 기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사야 61장 3절은,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예언합니다.
그 예언이 포로로 끌려가 있던 유다인들 가운데서 성취되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 사역을 이루실 때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하나님의 백성이 누리게 될 영원한 승리의 그날에 완전한 성취를 이룰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구원하신 성도들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함께 불렀던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찬송시의 유래가 이렇습니다. 엘리자 에드먼즈 히윗 여사는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으로 교육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습니다. 필라델피아 학교에서 그녀가 가르치던 학생 중에는 아주 불량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1887년 겨울 어느 날 그 학생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타이르는데 이 아이가 갑자기 지붕 슬레이트로 여사의 등을 때려 척추를 다치게 되었습니다.
그해 겨울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6개월 이상 병상에서 석고 붕대를 하고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었지만, 오랜 시간 병상에 누워 대소변까지 받아내야 하는 투병 생활로 신앙이 점차 약해졌습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마음속에는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에 대한 증오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화사한 봄날 아침, 병실 청소를 하던 흑인 여자가 빗자루질을 하면서 흥얼거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히윗 여사는 화가 나서 물었습니다. “이봐요! 청소나 하면서 뭐가 그리 좋다고 생글거리는 거예요?” 흑인 청소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지 않다니요? 나에게 닥친 모든 형편과 어려움이 찬송으로 바뀔 수 있는 힘을 주님께서 주셨으니 즐거울 수밖에요!”
이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영적인 충격을 받고 이제까지 불평과 증오로 가득 찬 나날을 보낸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기쁨으로 바꾸실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찬송시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의지하는 마음 예수께 매달렸으니 어떤 병이라도 금하지 못하도다
다만 갈보리 십자가에서 노래하노니 죄 짐을 옮기신 하나님을 찬양하노라”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그날 이후 투병 생활이 그녀에게는 기쁨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척추의 아픔은 점차 사라지고, 무엇보다도 가해 소년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 더욱 그녀를 기쁘게 했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훗날 많은 찬송가 작시와 청소년 선도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혹시 지금 어떠한 슬픔과 고난으로 낙심하고 계십니까? 절망하고 계십니까? 우리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로 바꾸어 주시는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오늘도 창문을 열고,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걸어가는 신앙의 여정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3절부터는 부림절의 유래와 그것을 지키는 관습에 대해 설명합니다. 큰 구원을 받은 그해에는 자연스럽게 잔치가 벌어졌지만, 그다음 해부터는 정식 절기가 되어 부림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부르 곧 제비의 이름을 따서 부림절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12월 14일과 15일을 부림절로 지키며 회당에 모여 에스더서를 봉독하고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하루 전날인 13일에는 금식하며 기도한다고 합니다. 그날을 폐하지 않게 하고 계속해서 기념하라고 명했기 때문입니다.
(27-28) 뜻을 정하고 자기들과 자손과 자기들과 화합한 자들이 해마다 그 기록하고 정해 놓은 때 이 두 날을 이어서 지켜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각 지방,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였더라
유다인뿐만 아니라 유다인에게 화합하여, 즉 유다인의 편에 서서 함께 싸웠던 사람들 역시 부림절을 같이 지켰다고 합니다. 이들은 아마도 유대교로 개종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헌신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며, 낙심한 자를 일으켜 세워 주십니다.
오늘 나에게도 신앙의 절기, 영적인 절기와 같은 때가 있습니까? 매년 그날을 기억하면서 기념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올려드리는 날이 있다면 믿음의 여정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여러 신앙의 절기, 감사 주일과 성탄절, 부활주일 등 잔치와 같은 그날을 우리가 더 뜻깊게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드리는 헌신의 날로 기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매 주일과 주일예배가 부림절과 같은 영적 기념일과 축제의 날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단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리는 기쁨의 잔칫날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형상을 회복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창문을 열므로 주님을 더욱 닮아가며,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는 귀한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죄로 말미암아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역사로 회복하게 하시고 저희에게 주님을 닮아갈 수 있는 은혜 주심을 감사합니다.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며 지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오늘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반전시키시고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을 더욱더 신뢰하며 소망 가운데 걸어가는 우리 인생길 되게 해 주시옵소서.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며, 애통을 바꾸어 영적 승리의 잔치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오늘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창문을 열고 주님의 제자로,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는 귀한 한 날 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하나님은 슬픔을 기쁨으로, 애통을 길한 날로 바꾸십니다. 나의 삶에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주셨던 경험이 있었다면 언제였습니까?
2. 하나님은 모르드개를 통해 유다인의 부림절을 제정하게 하셨습니다. 나에게는 기쁨과 감사로 드리는 영적 절기와 같은 날이 있습니까?
3. 부림절에 서로 나누며 가난한 자를 도우라고 명했습니다. 나의 삶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4. 오늘 하루 하나님께 창문을 열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기 위해 어떠한 결단을 하시겠습니까?
(작성: 최정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