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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quash ⓣⓔⓐⓜ Sponge Ball 원문보기 글쓴이: 박정태
조이트홀라드주 레이덴 출생.
야콥 반 스바넨부르크에게 배우고,
이어 암스테르담에 나와 P.라스트만의 문하에 들어갔다.
1624년 레이덴으로 돌아와 이듬해부터 독립하여 아틀리에를 열었다.
1632년까지 완전한 독학으로 친척, 이웃노인, 성서에서 소재를 얻어 꾸준히 그림을 그렸다.
그의 노력이 열매를 맺어 1632년 암스테르담 의사조합으로부터 위촉받은 《툴프 박사의 해부》의 호평을
계기로 암스테르담에 정착하였다.
그 후 약 10년간은 생활이나 명성에 있어서도 가장 혜택받은 시기였다.
1634년 명문가문의 딸 사스키아 판 오이렌부르흐와 혼인하여 당시의 세계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암스테르담에서 첫째가는 초상화가로서 명성을 얻어 많은 수입과 제자를 모았다.
그러나 그의 회화가 성숙함에 따라 당시의 일반적 기호였던 평면적인 초상화 등에 만족할 수 없게 되어
외면적인 유사성보다는 오히려 내면적인 것,
인간성의 깊이를 그리고 싶은 생각이 절실해지면서 종교적(또는 신화적) 소재나 자화상이 많아졌다.
<<야경>>
이 작품은 암스테르담 사수협회(射手協會)의 주문에 의한 단체초상화인데 렘브란트는 당시 유행하던
기념촬영적 단체초상화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특유의 명암 효과를 사용하여 대담한 극적 구성을 시도하였다.
<<직물길드 구성원>>
인기와 아내를 동시에 잃은 그의 생활은 차차 고통스럽게 되었으나
,아들 티투스의 성장과, 1645년경에 맞은 마음씨 착한 둘째 부인 헨드리키에의 내조는
그의 예술을 더욱 원숙하게 하여,
오늘날 대표작이라고 하는 대부분은 1640년대 이후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생활은 날로 어려워졌으며,
1656년 파산선고를 받아 일찍이 사스키아와의 행복한 생활을 위해 구입한 저택도,
예술적 영감을 한없이 자극하던 여러 가지 미술품도 모두 그의 손에서 떠나게 되었다.
1662년에는 헨드리키에가 세상을 떠나고, 1668년 티투스마저 죽자,
그도 이듬해 10월 유대인 구역의 초라한 집에서 임종을 지켜보는 사람도 없이 죽었다.
그러나 그의 위대함이 발견되기까지는 10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현존하는 렘브란트의 작품은 유화·에칭·소묘로, 종교화·신화화·초상화·풍경화·풍속화·정물화 등 모든 종류에
걸쳐 있으며, 중년 이후 세상 사람들로부터 잊혀졌으나,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는 직접 또는 간접으로 그의 영향을 받았다.
더구나 그의 예술은 시대를 훨씬 초월하고 있다.
그는 그 나름의 깊은 빛과 그늘을 창조하였다.
즉 그의 작품에 있어서 색이나 모양이 모두 빛 그 자체이며, 명암이야말로 생명의 흐름이었다.
종교적 소재에서도 렘브란트만큼 마리아나 그리스도의 모습을 네덜란드의 시정생활에서 구한 사람은 없다.
그러면서도 그의 작품에 높은 종교적 정감과 깊은 인간 심정의 움직임이 표현되어 있는 것은
그 특유의 명암법 때문이다.
그의 마음 속에는 인간애 정신이 넘치고 있어,
그가 그리는 작품은 한없는 따뜻한 애정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렘브란트만큼 많은 자화상(약 100점)을 그린 사람도 없다.
그것은 언제나 자기에 대하여 겸허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가 설혹 유화를 한 점도 그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의 에칭만으로도 유럽 회화사상 최대 화가의 한 사람으로 꼽을 수 있다.
에칭의 모든 기술은 렘브란트에 의해 완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밖의 작품으로
《엠마오의 그리스도 Christ at Emmaus》(1648)
《야곱의 축복》
《유대인의 신부(新婦)》(유화)
《세 그루의 나무》
《병자를 고치는 그리스도》
《3개의 십자가 The Three Cross》(에칭) 등이 있다.
《엠마오의 그리스도 Christ at Emmaus》(1648)
렘브란트가 1648년 그린 작품으로 프랑스파리의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렘브란트는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된지 3일 만에 부활한 예수가 예루살렘 부근의 작은 마을인 엠마오로 가
저녁을 먹고있는 두 제자 앞에 나타나는 테마를 소재로 여러차례 그림을 그렸는데,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과 신성이라는 이중적인 특징을 함께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 그림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림 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자리잡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창백한 얼굴과 머리 뒤의 후광은 그가 죽음의 승리자라는 것을 암시하고,
예수에게 건네지는 빈 포도주 잔과 두 조각으로 잘려진 양의 머리는 예수의 수난을 상징한다.
렘브란트는 고전적이고 단순한 구성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차분한 모습을 부각시켰다. 전체적으로
고르게 표현되어 있는 빛은 기적의 성격을 띠고 있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지만 구성상의 엄격한 대칭에
알맞은 그림자를 만들어내고있다.
날카롭고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1630년경의 레인덴 시대에 그려진 같은 주제의 그림에 비해 극적인 구도와 명암법이 사라진 점과
차분히 가라않은 색채와 안정된 구도를 추구한 것이 특징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도 레이덴 시대의 작품과 달리 숭고하고 자애에 찬 모습이다.
렘브란트 종교화에 일대 전한을 가져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야곱의 축복》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야곱>은
창세기 48장 1-22절의 내용을 배경으로 한다.
이 그림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주제로 그린 것이 특징이다.
백마흔 일곱 살의 노년인 야곱과 장성하여 한 나라의 재상이 된 중년인 요셉과 이집트 사제 포티 페라의 딸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아스낫과 요셉의 어린 아들들인 소년의 므나쎄와 에프라임이 그 주인공이다.
요셉은 아버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두 아들을 데리고 야곱에게 간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 아들로 삼고 그들에게 축복한다.
그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 앞을 볼 수 없었다.
요셉은 에프라임을 야곱의 왼쪽에 가게하고, 므나쎄를 오른쪽에 가게 했다.
그런데 야곱은 에프라임이 작은 아들인데도 오른 손을 에프라임의 머리에 얹었다.
그러자 요셉은 아버지의 오른손을 잡아 큰 아들인 므나쎄의 머리로 옮기려 한다.
그러나 야곱은 거절하며 아우가 형보다 크게 되고,
그러나 아우보다 낮은 데에 있는 므나쎄의 눈빛엔 슬픔이 서려 있다.
그들의 어머니는 창백한 얼굴로 그 광경을 멀리서 바라만 보고 있다.
죽음의 색인 검은 옷을 입고.
이로써 그녀는 야곱의 죽음을 준비하는가 보다.
《유대인의 신부(新婦)》(유화)
결혼의 의미에 대해서 감동적으로 그려낸 렘브란트의 그림.
어떤 책에선가 이 그림에 대한 감상을 읽었는데, 그 사람은 이 그림에 대해서 대단한 호평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남녀의 엄숙하면서 진지하고 따뜻한 얼굴 표정과 시선, 여인을 반쯤 감싸 안은 듯한 자세와 손길.
특히 반쯤 남자의 손을 덮은 여인의 손은 굉장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만일 저 손이 내려가서 자기 두 손을 마주 잡은 모습으로 그렸다면 이 그림의 느낌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반쯤 포갠 부부의 저 두 손이 이 그림에서 굉장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포인트가 아닌가 한다.
한스 로크마커는 'ART - need no justification(기독교와 현대예술 - IVP)' 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도인의 예술은, 주어진 삶의 위대성에 대한 경탄과 함께 성령의 적극적인 심성으로 나태는 등 실로 깊은 의미에서 기독교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좁은 의미에서 주제가 '기독교적'이 되어야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하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은 그의 수난곡 못지 않게 기독교적이며, 렘브란트의 '유대인 신부' 역시 그의 종교적 주제의 그림 못지 않게 기독교적인 것이다. 참으로 예술가에게 복음 전도자가 되라고 요규하는 것은 그가 예술의 의미,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의 다른 활동의 의미에 대해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일이다.
우리는 자든지, 먹든지, 혹은 열심히 일하든지 항상 그리스도인이다.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한다. 우리 기독교는 경건한 순간들, 종교적 행위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의 삶의 목적도 복음 전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목적인 것이다.
《세 그루의 나무》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은 자연, 그중에서도 특히 시골을 많이 그렸다. 언덕,강,호수,수로, 다리,들판,간척지 등이 주된 소재였다. 화란파 이전이나 후로나 미술의 역사에서 풍경을 다룬 적은 여러 번 있었다.
라파엘전파, 터너와 콘스터블, 바르비종파, 인상파 등은 주로 풍경을 즐겨 다뤘던 대표적인 유파나 화가였다.
화란파에서는 풍경을 단순히 객관적인 자연물로만 인식하지 않았다. 화란파 화가들은 자연에서 인생을 찾았고, 생명을 찾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찾았다. 자연에다 진정한 인생여정과 진리를 연결시킨 것은 화란파 외에는 없다. 그런 예는 미술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그들의 그림에는 확실히 자연을 통해 순례의 길에 오른 인생이 각인되어 있다. 같은 풍경이더라도 경치에 반해 제작한 풍경화가 있는가 하면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해주는 풍경화가 있다.
여기서 살펴볼 <세 그루의 나무가 있는 풍경>(렘브란트, 1643년경,판화)는 새로운 풍경화의 관점을 제시한다.
암스테르담 동쪽에 있는 디에메르디트를 그렸다고 알려진 이 판화는 렘브란트의 판화중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웅장한 풍경화이다. 판화면서도 회화적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이 작품은 고요하고 평화스런 시골모습을 담고 있다.
화면 왼쪽에는 물가에서 한쌍의 남녀가 낚시를 하고 있으며, 짙은 어둠으로 덮여진 수풀 안에는 염소 한 마리, 그리고 밀애를 즐기는 연인들이 있다.
두 연인은 하도 으슥한 곳에 가리워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나무 뒤로는 능선을 따라 천천히 가는 마차가 보이고 오른 쪽 지평선에는 아주 조그맣게 모자를 쓴 화가의 앉아 있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 화가는 정말 눈꼽만하게 그려져 보일락말락하다.
자세히 관찰하면 그 화가는 시원한 앞을 바라보지 않고 등을 돌리고 있다. 무슨 영문일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은 자연을 실물 그대로만 그리지 않겠다는 렘브란트의 고집같은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에게 풍경은 하나의 물리적 사실로 간주되기보다는 보다 심원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렘브란트가 이 풍경화에서 말하려는 의도를 우리는 하늘과 세 그루의 나무에서 찾을 수 있다.
하늘은 지금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한 여름 낮의 소나기가 쏟아지다가 하늘이 개이면서 햇살이 다시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왼쪽 상단의 사선은 억수같이 퍼부은 소나기를 나타내며 오른 쪽에는 시커먼 구름이 걷히면서
개인 하늘이 방긋 웃는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은 흡사 혹독했던 영적 겨울을 지나 새 싹이 돋고 화창하게 꽃을 피우는 봄과 여름을 연상시킨다.
혹은 두꺼운 구름층에 가로막혀 햇빛을 보지 못했던 심령이 하나님의 정하신 시간에 따라 온전히 회복되는 순간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아브라함 카이퍼(A.Kuyper)가 말한 대로, 우리 인생에는 하나님의 빛이 우리 심령 위에서 뒤로 물러가서 비칠 때가 있으며 반대로 다시 가까이에서 비칠 때가 있어서 영혼의 삶에 여름과 겨울이 서로 바뀔 때가 있지 않은가? 영적인 삶의 여름과 겨울처럼 이 그림도 우리 인생에서 비올 때와 개일 때의 교차를 담아 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 작품에 담긴 또 다른 의미는 세 그루의 나무에 얽힌 내용이다.
세 그루의 나무를 관찰하면서 그 의미를 밝혀내려고 한 사람은 브라운(C.Brown)으로 그는 이 나무를 '갈보리의 십자가'로 풀이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어두운 하늘은 온 땅에 임한 어두움(마 27:45)을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 그림의 분위기는 단순한 풍경화로 보기에는 너무 뚜렷한 암시물들이 존재한다. 시커먼 구름이 그렇고 또한 하늘에는 가느다란 선 속에 흰 옷 입은 천사가 그려져 있다. 그 천사는 지금 왼편에서 오른 쪽의 나무를 비스듬히 내려다본다. 물론 공중에 등장한 천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런 이미지는 <동정녀의 죽음>(1639)에는 나타났는데 그때는 지금보다 선명하게 천사를 묘사하였고 한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천사를 묘사하였다.
나는 이 그림을 소박하게 보아도 해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자연물이라도 창조주 하나님이 만드시지 않은 게 없고 전능자의 손 그늘 아래 있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자연물을 보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이 천지에 진동하고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롬 2:20)된다.
일찍이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놀랍게도 자연에서 들었다. "개별체들끼리 혹 맞지 않은 때에도 대지가 높고 낮은 지형들끼리 서로 조화를 이루고 이 대지는 또 바람과 구름이 있는 하늘과 조화를 이루어 있듯이,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이런 것은 차라리 없었으면'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 하나도 없다.-- 땅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주님을 찬양하는 것들이다."({참회록})
렘브란트의 풍경화가 새롭게 보이는 까닭은 높은 선을 추구한다거나 종교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웅대한 이상을 주어서도 아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아름다운 사물을 보면서 그 분의 선하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자연물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가질 수 없다. 그런 특권을 지닌 것은 영혼을 지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뿐이다. 우리는 직접 그 분과 인격적 관계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이처럼 그 분이 지으신 것을 보고 그 분을 느껴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자신의 부성적인 은총을 기억할 수 있도록 자연의 모든 것을 지배하실 뿐 아니라 그 분의 뜻에 따르지 않고는 아무 것도 발생하지 못하도록 만물을 조정하는 분이 이 아름다운 풍경 뒷전에서 우리의 마음과 눈이 어디에 쏠려 있는지 궁금해하시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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