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소설가의 살인자의 기억법
<살인자의 기억법>을 영화로 접한 것은 몇년 전이다. 그때의 기억이 강렬하여, 책으로 읽어보려 마음 먹고 있었던 차에 도서관에 들렸더니 이미 대여가 된 상태라 3주를 기다렸다가 어제 내 차례가 와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1시간 정도 걸렸을까?) - 그만큼 읽기 쉬운 소설이었으며 분량도 짧았다.
소설과 영화는 달랐다. 어찌보면 원작에는 있던 반전이 영화에서는 예견된 결말로 끝맞고 있었다. 하긴, 원작대로 만들었다면 영화를 다 보고난 후의 허탈감을 상쇄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과의 영화의 차이점
1. 소설의 병수가 살인을 쾌감으로 즐겼다면, 영화의 병수는 ‘세상에 널린 죽어 마땅한 쓰레기들을 청소하기 위해’ 살인을 한다.
2. 소설에서 박주태는 지프 차량이지만 영화에선 현대 쏘나타를 탄다.
3. 은희는 병수의 딸이 아니라, 병수를 간병하러 오던 간병인이다.
4. 박주태는 연희를 노리는 연쇄 살인자가 아니라 진짜 형사였다.
등등 여러가지가 영화와 소설이 다르다.
심리 스릴러 추리소설인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살인자의 일기형식으로 쓰여진 추리소설이다. 분량도 많지 않고, 심리묘사나 상황전개가 간단하여 단숨에 읽히는 소설이다. 예상 결말이 아닌 반전이 기다리고 있어 읽은 후 여운이 오래 남았다.
불교에 관심이 생겨 <반야심경> 강의를 듣고 있는 중이었는데 소설에 <반야심경> 내용이 나왔다.
이 소설의 핵심 키워드!
그러므로 空 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의지작용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형체와 소리, 냄새와 맛과 감촉과 의식의 대상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 까지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이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에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p-148]
미지근한 물속을 둥둥 부유하고 있다. 고요하고 안온하다. 내가 누구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空속으로 미풍이 불어온다. 나는 거기에서 한 없이 헤엄친다.. 아무리 헤엄을 쳐도 이곳을 벗어날 수가 없다. 소리도 진동도 없는 이 세계가 점점 작아진다. 한없이 작아진다. 그리하여 하나의 점이 된다. 우주의 먼지가 된다. 아니 그것조차 사라진다[p148-149]
작가의 한마디
김영하 소설가
"언젠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햄릿이라는 인물이 비현실적이라는 한 독자의 질문에, “이보게, 젊은이. 햄릿은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자네보다 훨씬 더 살아 있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다가 문득, 나라는 인간과 내 소설의 관계 역시 그와 비슷하지 않은가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라는 존재는 어지러이 둔갑을 거듭하는 허깨비일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살아 있”는 것은 지금껏 내가 쓴 것들일 것이다. 그 책들이 풍랑에 흔들리는 조각배 같은 내 영혼을 저 수면 아래에서 단단히 붙들어주는 것을 느끼곤 한다."
"작가는 1인 미디어라고 생각한다. 노동하는 이들, 세상의 가치있는 재화를 생산하느라 미처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대신해 보고, 듣고, 감각하고, 표현하라고 세상이 생활비를 주는 거다. 그러니까 작가는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자기만의 필터로 표현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영화일 수도, 음악일 수도, 여행일 수도 있다."
"여행이란 포기하면서 만족하는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며, 한 번의 여행에서 모든 것을 보아버리면 다음 여행이 가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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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덕분에 수박 겉핡기라도
영화와 책 한편을 대해 봅니다. 늘 감사합니다.
이크
제가 감사하죠
걷기 참여하고 싶은데 추워서리 ㅡㅠ
저두
잘 보고 갑니다~
해피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해피한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