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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12:1~5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2023. 8 . 20
두 장의 사진을 제가 보여 드리겠습니다. 이 두 장의 사진이 무엇을 하는 것을 찍은 사진일까요? 분명히 공사하는 것을 찍은 사진처럼 보이는데, 어떤 공사를 하는 것일까요? 첫 번째 사진은 합판으로 가게 유리창 부분을 가려주는 공사를 하는 내용입니다. 바닥에는 모래주머니도 보이구요. 두 번째 사진은 첫 번째 사진보다 더 완벽하게 유리창을 가려 버리는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합판이 쉽게 떨어지지 않도록 각목으로 지지대를 만들었고요, 그리고 바닥에는 역시 모래주머니를 쌓아서 비닐 천 아랫부분을 보강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 두 장의 사진은 지난 주 수요일과 목요일에 부산지역을 관통하였던 태풍 카눈이 오기 직전에 사진입니다. 해운대 마린시티는 바다와 너무 인접해 있어서 태풍이 오면, 파도가 그대로 방파제를 넘어서 바닷가에 있는 상가를 때려 버립니다. 그 결과 많은 피해를 입은 상가주민들이 초강력 태풍 카눈이 상륙하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태풍에 대비하여 미리 보강 공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항구나 사람들이 몰려 사는 어촌 마을에 가면, 바닷가 수면 부분에 테트라 포트라고 해서 삼각형 뿔처럼 생긴 것이 겹겹이 쌓아 방파제를 만든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보통 한 개 무게가 작은 것은 5톤으로 시작해서 큰 것은 50톤까지 나가는 어마어마한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겹겹이 쌓아서 파도가 밀려 올 때 이것이 파도의 힘을 분산시켜 육상에 있는 구조물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수십톤이나 나가는 이런 무거운 테트라 포트도 강력한 태풍이 올 때에 파도에 휩쓸려 부서져 버립니다. 심지어 파도에 밀려 수십미터를 이동해 버립니다. 항구에 있는 어민들은 이런 모습을 두고 ‘테트라 포드가 날라간다’는 말을 합니다.
자연 재해와 자연이 주는 피해를 줄이고자 인간이 무수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쏟아 붓는 폭우를 대비하고 휘몰아치는 바람을 막고자 각가지 안전 대책을 마련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이 대비를 한다고 해도 자연이 부리는 힘을 다 막을 수 없습니다. 대비를 하면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목적이지, 완벽하게 모든 것을 다 막아 내는 안전지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부산지역은 한반도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태풍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지역에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태풍으로부터 이런저런 영향을 받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피해를 입기도 합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해서 크고 작은 태풍이 부산을 향해 올라 올 것입니다. 우리가 태풍의 위협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대비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대비를 하고 준비를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자연의 힘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럴 때에 내가 준비를 철저히 하고 난 이후에 하나님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파도와 바람을 다스리는 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맡기고 하나님만이 나의 온전한 안전지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은 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온전한 안전지대이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는 환난과 고통 가운데에서도 온전하게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12편은 다윗이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주변에 머물면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자신에게 충성을 한다고 맹세는 하지마는 충실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아첨하는 입술로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간신배들이 설쳐 댑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아첨하는 말로서 다윗의 마음을 어지럽히기만 합니다.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나의 친구인 것인가? 어떤 사람이 나의 등에다가 칼을 꼽는 원수인가?’ 이것을 분간하기가 너무 어려운 현실입니다. 적과 동지가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로움을 주는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 나에게 해로움을 주는 사람이기에 멀리해야 되는지 헛갈리기만 합니다.
다윗은 이런 혼돈과 무지함 속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안전한 지대에 두시며 보호하시리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라붙는 추적자들로부터 보호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5절,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제 일어나 그를 그가 원하는 안전한 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5절 말씀에 보면, 안타까운 형편에 처해 있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모습이 등장합니다.
1)‘가련한 자들의 눌림’- 이 말씀은 약한 자들이 당하는 압제를 말합니다. 가진 돈이나 물질이 없어서 압제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권력이 없어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도 ㄴ없고 힘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겪는 압제들입니다.
2)‘궁핍한 자들의 탄식’- 이 말은 글 자 그대로 가지지 못하여 가난한 자들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아픔과 힘든 삶의 모습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돈이 없어서 병 치료를 못하여 죽음을 재촉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바로 궁핍한 자들의 탄식입니다. 돈이 없어서 자신이 꿈꾸고 있는 꿈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젊은이들도 있고, 돈이 없어서 인생의 노년기 황혼이 마냥 서럽고 힘들기만 하는 노년들도 많습니다. 이렇게 궁핍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탄식 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있지만 물질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물질의 큰 복을 받고 이 땅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대충대충 하나님을 믿는대도 잘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을 신실 되게 믿는 대로 인생 살아가는 것을 항상 빠듯하게 살아가는 모습도 있습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진실 되게 믿고 있지만, ‘가련한 자들의 눌림과 궁핍한 자들의 탄식’을 들어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있지만 고난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성도들을 도운다고 말하고 있나요?
하반절에 나오는 ‘그들을 안전지대에 두리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안전지대(safe zone)는 글자 그대로 안전한 장소입니다. 세상 세파가 몰아쳐도 흔들리지 않는 장소, 악한 원수가 와서 나를 해치려고 하여도 나를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장소, 그 안전한 장소를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다는 복된 말씀입니다.
그래서 ‘안전지대에 두리라’는 어원을 직역하면, “내가 그들을 보호하리라”라는 말이 됩니다. 하나님만 나를 보호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태풍이 온다고 해서 아무리 두꺼운 합판으로 유리창을 겹겹이 막아도 온전한 안전지대가 되지 못합니다. 테트라 포트를 하늘처럼 쌓아 올려도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것이 파도는 막아 줄지는 모르지만, 마음에 드려지는 불안과 공포는 사라지게 만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만이 나의 안전지대가 되신다는 점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다같이 ‘인생길 험하고 마음 지쳐’를 부릅니다. “1)인생길 험하고 마음 지쳐 살아갈 용기 없어질 때 너 홀로 앉아서 탄식치 말고 예수님 품으로 나아오시오 예수님은 나의 생명 믿음 소망 사랑되시니 십자가 보혈 자비의 손길로 상처 입은 너를 고치시리. 2)평생의 모든 꿈 허물어져 세상에 친구 다 떠날 때 어둠에 앉아서 울지만 말고 예수님 품으로 나아오시오 예수님은 나의 생명 믿음 소망 사랑되시니 십자가 보혈 자비의 손길로 상처 입은 너를 고치시리. 3)어둔 밤 지나면 새날 오고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이 세상 슬픔이 지나고 나면 광명한 새날이 다가오네 예수님은 나의 생명 믿음 소망 사랑되시니 십자가 보혈 자비의 손길로 상처 입은 너를 고치시리.”
지금 여러분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있나요? 고통과 절망 때문에 불안함을 느끼나요?
이 땅에서 안전한 지대를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가 거할 안전한 지대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임을 믿으면서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살펴 봅시다.
1. 경건한 자가 보호하시는 하나님입니다.
1절.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이 말씀은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더 이상 없나이다. 충실한 사람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졌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의 ‘경건한(하씨드)’인데, “사랑하며 연모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상태로 하나님을 향하여 보여지는 거룩한 태도를 가리킵니다. 또한 충실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다윗은 안타까워 합니다.
왜 하나님을 사랑하고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인가요?
왜 충실한 믿음을 가지고서 이 땅에서 의롭게 살아가는 성도들의 모습을 점점 보기 어려워지는 것인가요? 그것은 경건하게 살아가고 충실한 믿음으로 올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의 주변에는 불신앙을 가진 자들이 득실대면서 성도들의 믿음을 흔들고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세상은 전쟁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모범을 보이지 못하면 그들이 나의 신앙을 먹어 버리는 살벌한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성도는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하나님을 잘 믿을려고 노력해도 내 주변에서 나의 경건함을 빼앗아 가고, 나의 충성스러움을 흔드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만이 나의 안전지대가 되오니 나를 보호하고 보살펴 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다윗은 어려울 때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멀리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괴롭게 할수록 경건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더욱 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이런 모습을 우리 모두 본받도록 합시다.
환난이 있습니까? 교회에 나와 더 열심히 예배드리십시오. 더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더 열심히 성경을 읽으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의 안전한 지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모하는 경건한 자가 되어 안전한 지대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초대 교회 시절 크리소스톰 (John Chrysostom 349-407) 교부는 저명한 기둑교 주교이자 신학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나 잘 전하기에 사람들은 그를 두고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지어주면서 칭송하고 따랐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던 크리스스톰이 로마의 유독시아 황후의 간교로 귀양을 가게 됩니다.
귀양 간 감옥 안에서도 사도바울처럼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합니다. 결국 그 일로 왕의 미움을 더욱 사게 되어 사형언도를 받게 됩니다. 이때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성도의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 순교라고 했는데, 저 같은 사람을 순교자의 반열에 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크리소스톰이 ‘오히려 순교자의 반열에 들게 된 것을 기뻐하며 감사한다’는 소식이 로마황제에게 전해지자, 황제는 그가 순교자가 되지 못하도록 사형 중지 명령을 내립니다. 사형이 중지되었다는 소식을 간수로 부터 듣게 되자, 크리소스톰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직도 종에게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살려 주심을 압니다.”
하나님만이 안전지대가 되시며 자신을 보호하고 인도해 주시는 분인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만 믿고 따라가면 보호함을 받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2. 정직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2절,“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며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2절에 보면 참으로 악한 행동을 하는 사악한 자들의 모습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속이는 행동을 합니다. 듣기 좋은 말로 아첨합니다. 상대방을 이용해서 등쳐먹으려는 두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정말로 나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사악하게 행동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어떻게 벌하실까요? 3절)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어 버린다”고 말씀합니다. ‘끊어 버린다(CUT OFF)’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테이프를 짤라 버리듯이 인정사정없이 짤라 버린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 주변에 보면 거짓을 하면서 속이려 드는 자들이 있습니다. 아첨하는 말과 입술로 친구인 것처럼 다가와서 사탄의 올무를 놓는 사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친구라고 말하면서 다른 마음을 품고 나를 이용해서 목적으로 이루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나의 이웃과 가까운 이들에게 거짓을 말하는 자가 되어서 안 됩니다. 아첨하는 말로서 상대방의 허점을 이용해서 내 욕심과 잇속을 챙기려고 해서 안 됩니다. 두 마음을 품고서 상대방을 이용하려고 하는 행동도 해사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들을 안전지대로 인도해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들의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들을 모두 짤라 버리는 하나님입니다. 그들의 사악한 행동을 심판하는 하나님입니다.
얼마 전에 전북 부안에서 2023년 세계 잼버리 대회가 있었습니다. 세계 158개국에서 4만3천여명이 참가하는 매우 큰 축제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물이 차 있는 뻘밭에서 세계 청소년들을 맞이하면서 국제적으로 큰 망신살이를 당했습니다. 7년의 기간동안 수천억을 사용해 놓고 행사준비는 엉망이었던 것이 비난받은 것입니다.
알고 보니 조직위원회 관계된 자들이 수백억 국가돈을 가지고 행사를 위해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세금으로 만든 돈을 가지고 자신의 쌈짓돈 인양 해외여행가고, 물 쓰듯이 마구잡이로 써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습니다. 대부분 관계자들이 도둑놈들이라는 평가입니다. 그렇게 펑펑 써대고 난 뒤에 이제 특검을 통해 심판받을 때가 다가옵니다.
거짓으로는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거짓을 미워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정직은 진실한 성도의 표식입니다. 악인의 특징은 거짓과 아첨입니다. 거짓과 아첨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정직한 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적은 것에도 거짓을 미워하는 정직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안전한 지대에 두시는 분이십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말 중에 손꼽는 말은 ‘아라비아 종마(Arabian horse)’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유래가 흥미롭습니다. 세계 각처를 돌아서 뛰어난 말 100마리를 입수한 상인이 있었습니다. 상인은 100마리 말을 우리 안에 가두고 먹을 것을 충분히 주되 물은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 밖으로는 시내가 흐르는 광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상인은 말들이 목이 말라 견딜 수 없는 상황까지 가게 한 다음에 우리의 문을 엽니다. 우리 안에 말들은 미친 듯이 시냇가로 달립니다. 이때에 상인이 말을 통제하는 호각을 불었는데, 100마리의 말 가운데 단 4마리만이 호각소리를 듣고 멈춰 섭니다. 바로 아라비아 말이었습니다. 이렇게 절제하고 통제를 따랐던 아라비아 말은 세계적 명마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안전지대를 바라봅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길로 가면서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는 8월의 모든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