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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약 시 대 왕 국 | 그 리 스 도 의 초 림 | 오 순 절 | 대환란시대 (악은 점점 감소하고 선은 점점 증대.) | 배 교 사 건 | 천 년 왕 국 (어떤 주장은 대배교사건 이전이고, 또는 그 이후이다.) | 배 교 사 건 | 그 리 스 도 의 재 림 | 대 부 활 | 대 심 판 | 영 원 한 나 라 |
5. 요약
예수그리스도 없는 천년왕국을 말함으로 결정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으면서, 역사의 낙관주의를 표방하는 후천년설은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에게 너무나 큰 짐을 지우고 있는 관점이다. 자신의 죄 조차도 감당할 수 없고, 화목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과도하게 표현된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의 역사와 오늘의 현실을 돌아볼 때, 실현의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인다. 구원을 위한 예수그리스도는 없고 닮아야 할 대상으로만 존재하는 예수를 따르는 자유주의 진영의 많은 인사들이 이러한 입장에 근거하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 아니라 하겠다. 부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은 존재할 수 있지만, 전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든 이론이다.
Ⅲ. 전천년왕국설
전천년설왕국설을 말하는 전천년주의자들의 주장은 교회사에서 언제나 동일한 견해 속에 있어 온 것은 아니다. 전천년왕국설은 시대적 구분에 의해서‘과거의 전천녕왕국설’과‘현재의 전천년왕국설’로 구분되는데, 과거의 전천년왕국설은‘역사적 전천년왕국설’로, 그리고 현재의 전천년왕국설은‘세대주의 전천년왕국설’로 각각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본 글에서는 먼저 과거에 일반적으로 취한 전천년왕국설인 역사적 전천년왕국설을 간단히 소개하고, 그 다음에 현대에 가장 성행하는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설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1. 역사적 전천년왕국설
천년왕국설에 대한 견해는 초기 기독교 시대에서부터 보게 된다. 이레네우스(Irenaeus)의 견해는 이 시대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천년왕국설에 대한 견해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는 전천년왕국설을 주장하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견해를 도표와 함께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도표를 통해서 본 역사적 전천년설
구 약 시 대 왕 국 | 그 리 스 도 의 초 림 | 오 순 절 | 악인의 무리 | 배 교 와 적 그 리 스 도 | 그 리 스 도 의 재 림 | 성 도 의 부 활 | 천년왕국
(천년간의 그리스도의 통치 : 계20:1-6) | 악 인 의 부 활 | 악 인 의 심 판 | 영 원 한 나 라 |
현 세 상 | ||||||||||
의인의 무리 |
(1) 현 세계는 창조의 6일에 상응하는 6천 년간 지속될 것이다.
(2) 이 시기의 종말이 가까울 때에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있을 것이며, 이때 경건한 사람들의 수난과 핍박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3)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영광으로 그의 모든 원수들 위에 승리를 취하실 것이다.
(4) 이 일에 수반하여 성도들의 육신적 부활과 지상에 왕국의 설립이 있을 것이다.
(5) 이 왕국은 천년동안 지속될 것인데 천년기적인 시기는 창조의 제7일 즉, 안식일에 상응할 것이다.
(6) 이 시기에 이스라엘이 회심하여 예루살렘은 다시 세워질 것이며, 화평과 의가 전 세계에 충만하게 될 것이다.
(7) 천년기의 끝에 최종적인 심판이 올 것이며, 새 피조물이 나타날 것인데, 그 때에 구속받은 자는 하나님 앞에 영원히 살 것이다.
이 견해는 전천년왕국설을 말하는 일반적인 개괄로서 초기 기독교 기간들의 전형적인 종말론으로, 이 견해를 따르는 사람들을 역사적 전천년왕국주의자로 규정한다. 이 역사적 전천년왕국설은 19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세기 동안 학자들에 따라 약간의 견해를 달리 하면서 전천년왕국설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있어 왔다. 그러나 전천년왕국설이 지닌 맥락의 내용은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며, 오히려 계속적인 연구를 통해서 전천년왕국설의 견해를 발전시키며 보다 상세하게 표현하는데 있어서 더 명백하게 해주었다. 그에 따른 역사적 전천년왕국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1.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 시기에 있는 세상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두 번째 강림하실 재림의 시기가 가까이 이르렀다.
1-2.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한 일련의 일어날 사건들
(1) 그리스도의 재림 전 어느 때까지는 악인의 무리와 의인의 무리가 공존하는 새상이 전개된다.
(2)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이 다가와 임박한 시기에 이르러서는 이 세상은 점점 악해져 간다.
(3) 이 그리스도의 재림에 앞서 첫째, 모든 민족의 복음화가 이루어지나 둘째, 적그리스도가 출현함으로 셋째, 적그리스도의 세력의 대적에 의해 교회는 대환난에 놓여진다. 이때는 어둡고 시험하는 시간들이 교회를 위해 예비되어 있는 것이므로 교회는 대환난을 통과해야만 한다. 넷째, 이때에 많은 성도들에게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식어지므로 그리스도를 배신하고 떠나는 대반역/대배도/대배교가 있게 되며, 악의 시대가 펼쳐진다.
1-3. 그리스도의 재림 특성
(1) 마침내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차면, 그리스도께서는 두 번째 강림하시는 재림을 하신다.
(2) 그리스도의 재림은 천년왕국 직전에 일어난다.
(3) 이 그리스도의 재림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임하는 유형적(가견적)인 것이 될 것이며, 또한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하는 개인적(인격적)인 영광스런 것이 될 것이다.
(4) 그리스도의 재림은 위대하고, 뛰어나며, 영광스러운 단회적 사건이 될 것이다. 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교회와 이스라엘과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첫째, 그리스도의 재림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 : 그리스도의 재림은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되어진다. 이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두 단계에 걸쳐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재림 사건의 두 면이다. 이 그리스도의 재림은 교회에 영향을 미치는데,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모든 시대에 죽은 성도들의 몸의 부활이 있을 것이며, 그때까지 살아 있는 성도들은 몸의 부활에 있은 자와 같은 변화를 입게 되어 몸으로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연합되어 함께 공중으로 들어 올려져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공중재림과 이로 인해 있게 되는 첫째 부활인 성도의 부활이다. 그리고 공중에서 이런 일이 있은 후에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오게 될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지상재림이다.
둘째, 그리스도의 재림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 :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내려오신 직후에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일으키는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이 전쟁에서 적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함으로 그동안에 있었던 적그리스도의 강포한 통치가 끝날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스라엘임 미치는 영향 : 바로 이 시기나 이 시기 직전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주님의 재림을 목격함으로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주께 돌아와 복음을 믿으므로 구원을 받아 국가적으로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는 이스라엘의 회개가 발생하는 시대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언약의 거룩한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1-4.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
(1) 그리스도는 지상재림 후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워 온 세상을 가현적으로 통치하실 것이다. 이 그리스도의 왕국 안에서 몸의 부활과 변화한 성도들, 곧 그리스도의 구속 받은 백성들은 의와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펼쳐지는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할 것이니 이때는 평화와 의가 온 세상에 충만해질 것이며, 이사야 65장 17-25절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인데 그 기간은 일 천년동안 지속될 것이다. 여기서 구속 받은 백성이란 유대인들과 이방인 모두를 포함한다.
(2) 이 천년왕국 기간에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중건(재건)되고, 절기들과 제사장직과 제사의식과 사회제도가 회복될 것이다.
(3) 그리고 이 천년왕국 기간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은 계속 전파되어 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리스도의 왕국 백성이 됨으로 천년왕국에 편입되어 동참할 것이다.
(4) 그럼에도 많은 수의 이방인들은 회개하지 않은채 천년왕국 시기에 그대로 남아서 반역을 하나 파멸은 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악인들은 그리스도의 철장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5) 천년왕국 동안 사단은 결박되어 무저갱에 던져 잠김을 당할 것이다.
(6) 그러다가 천년이 차가는 직전에 사단은 담간 놓임을 받아 세상 백성들을 유혹하고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성도들을 최후 공격하는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킬 것이나 하늘에서 내리는 불로 파멸될 것이다.
1-5. 천년왕국 후의 악인에 대한 최후심판
(1) 천년왕국의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가 다 끝난 후에 모든 시대에 죽은 자의 나머지가 일으킴을 받는 부활인 죽은 악인의 부활이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둘째 부활이다.
(2) 죽은 악인은 이 둘째 부활에 있음으로 악인의 최후의 상태인 마지막 심판을 받아 사단과 악한 천사들과 함께 유황 불못인 지옥에 던져짐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진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것이다.
1-6. 천년왕국 후의 의인의 세계인 신천신지
(1) 불신자가 지옥에서 영원히 지내는 반면에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백성들은 모든 악들이 제거된 신천신지, 곧 새하늘과 새땅의 새예루살렘의 시대를 맞이하니, 이 세계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에 있는 것이다.
2. 세대주의적 전천년왕국설
19세기 상반기에 이르러서 다비(Darby), 켈리(kelly), 트롯터(Trotter)와 그 추종자들인 영미의 신학자의 영향 하에 새로운 형태의 전천년왕국설이 도입되었다. 그것은 세대주의와 전천년설을 결합한‘세대주의적 전천년왕국설’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그들의 종말론적인 체계의 항목들에 관해 한 가지로 일치하고 있지는 않다. 많은 점에서 불명료하고, 불확실하다. 이 견해의 공통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세대주의적 전천년왕국주의자들의 역사관
세대주의 전천년왕국설을 말하는 세대주의자들은 문자적 성경해석법을 따른다. 이들은 7년 대환난, 천년 기간을 모두 문자적으로 이해한다. 또한 이스라엘과 교회를 하나님의 두 백성으로 엄격히 구분했다. 즉 이스라엘은 지상적 하나님의 백성이나 교회는 천상적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구별을 가졌다. 그리고 세계 역사를 시대들 혹은 세대들로 나누는 정확한 체계를 가졌다. 에베소서 1장 10절에 대한 스코필드의 관주에는 세대들이 ‘땅위의 인간생활을 결정하는 정리된 시대들’로 규정되었으며, 여기에는 도합 일곱 시대가 있다.
① 무죄시대(에덴 동산 시대, 창 1:28)
② 양심시대(타락에서 홍수까지의 시대, 창 3:23)
③ 인간 정부시대(노아에서 바벨까지의 시대, 창 8:21)
④ 약속시대(아브라함에서 애굽까지의 시대, 창 12:1)
⑤ 율법시대(모세에서 세례요한까지의 시대, 출 19:8)
⑥ 은혜시대(교회의 시대, 요 1:17)
⑦ 왕국시대(천년왕국의 시대, 엡 1:10).
이러한 시대의 구분은 하나님은 역사의 진행에 따라 주어진 몇몇 언약에 기초하여 구분되는 몇 가지 다른 세대들의 원리에 의해 인류 세계를 관장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각 시대에 따른 세대는 구별되어 있으며, 또한 그것들은 각기 자연인의 상이한 시험(test)을 나타낸다. 또한 사람은 계속적인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각 세대는 심판으로 끝나고 만다. 시내산에서 설립된 이스라엘의 신정(神政)은 신적 경륜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 또는 메시야 나라의 시초적인 형(the initiatory form)이며, 그것의 황금시대는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였다. 이스라엘의 신정은 순종의 방법으로 힘과 영광에 있어서 증가 될 수 있었으나, 사람들의 불성실한 결과로 말미암아 결국에는 붕괴되었고, 백성은 추방되었다. 선지자들은 이 붕괴를 예언하였으며, 또한 메시야의 날들에 이스라엘은 참된 회개로써 주님에게로 돌아갈 것이며, 다윗의 보좌는 영광스럽게 재건되고, 심지어 이방인도 이 미래 왕국의 축복들에 참예 할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메시야가 오셔서 그 왕국을 건설할 것을 제안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회개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그 왕은 왕국을 세우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을 떠나 타국으로 가심으로써 그가 다시 돌아오실 때까지 왕국 건설을 연기하셨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교회를 세우셨다. 그러나 교회는 왕국과 아무런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그것에 대해 선지자는 아무 것도 언급하지 않았다. 율법 세대는 하나님의 은혜 세대를 위해 길을 마련하였다. 이 세대 동안에 교회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부터 소집되고, 그리스도의 지체를 형성하고 잇는데, 그리스도의 지체는 현재 그의 고난들에 참여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어린양의 신부로써 그의 영광에 참여할 것이다. 이 교회에 대해 그리스도는 왕이 아니라 신적인 머리이시다.
교회는 세계의 모든 국가들에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 중에서 선택받은 자를 불러 모으고, 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할 영광스러운 임무를 가지고 있는데, 그 복음은 왕국의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복음이다. 이 방법은 실패되고 말 것이며, 큰 규모의 회심을 초래시키지 못할 것이다. 이 세대의 끝 날에 그리스도께서는 갑자기 돌아오셔서 보다 더 보편적인 회심을 일으킬 것이다.
(2) 세대주의적 전천년왕국주의자들의 종말관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금 임박해 있다. 그는 어느 때든지 오실 수 있는데, 이는 이것보다 앞에 일어날 사건들이 예언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재림은 7년의 기간에 의해 각기 분리되는 두 개의 구별된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맨 처음은 그리스도는 그의 성도들을 만나기 위하여 공중에 나타나실 것이다. 그때에 죽은 의인들은 모든 일으킴을 받게 될 것이며, 살아있는 성도들은 변형되어 함께 공중으로 끌어 올려져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할 것이다. 그때부터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가 지상으로부터 떠나고, 심지어 내주적인 성령도 교회와 더불어 떠나 있는 동안 몇 가지 일이 일어나게 될 7년이나 그 이상의 햇수가 있게 될 것이다. 왕국의 복음은 유대인들에게 다시 전파될 것이며, 이때 비록 많은 사람이 계속하여 하나님을 모독할지라도 큰 규모의 회심이 있게 될 것이다. 7년 기간의 후반에는 큰 환난의 때가 있을 것인데,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대접들이 인류에게 쏟아질 것이다. 그런 후 7년 기간의 끝에 주님께서 지상 재림하실 것이다. 이때는 그의 성도들을 “위하여”가 아니라, “함께” 있기 위해서 강림하실 것이다. 생존하는 민족들은 심판을 받게 되고, 양은 염소와 구별되며, 큰 환난 기간에 죽은 성도들은 일으킴을 받게 된다. 그리고 적그리스도는 멸망되고, 사단은 결박당하여 천년동안 구금된다.
그리고 천년동안 그리스도가 왕이 되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왕국을 다스린다. 그 왕국은 유대인의 가견적이고, 지상적이고, 물질적인 왕국으로, 다윗의 왕권을 재건하는 일을 포함하는 신정적인 왕국의 회복이 될 것이다. 거기에서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왕노릇 할 것이며, 유대인들은 본연적 시민이 될 것이며, 많은 이방인들이 시민으로 편입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좌는 또다시 예배의 중심지가 될 예루살렘에 설립될 것이다. 성전은 시온산에 다시 세워질 것이며, 희생제사의 회복이 있게 될 것이다. 죄와 죽음이 아직도 희생제물을 요구할지라도 그때는 큰 결실과 번성의 때가 될 것이며, 사람들의 생명이 연장되고, 광야는 장미처럼 꽃을 피우게 될 것이다. 이때에 세계는 급속도로 개종될 것인데, 크고 무서운 심판들에 의해서 되어질 것이다.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가 다 끝나는 천년 기간의 말기에는 사단은 잠시동안 석방될 것인데, 거룩한 성에 대항하는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원수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불에 삼킨바 되고, 사단은 무저갱에 던지움을 받게 된다. 그곳은 짐승과 선지자가 이미 사단보다 먼저 던지움을 받은 곳이다. 그 후에 죽은 악인들이 부활되어 크고 흰 보좌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며, 그 다음에 신천신지가 있게 될 것이다. 이를 도표와 함께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도표를 통해서 본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구약 시대 5 세대 1․2․3․ 4․5 | 그 리 스 도 의 초 림 | 오 순 절 | 악 | 성도의 부활 | 생존 국가 의 심판 | 환란시대 죽은 성도 | 적그 리스 도의 멸망 | 사탄 의 결박 | 곡 ․ 마 곡 의 전 쟁 | 불 심 판 | 영 원 한 나 라 | |
성도의 심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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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재림 | ||||||||||||
위한 7 공중 ․ 적그 휴거 의 출 ․ 대환 ․ 유대 | 함께 년 리스도 계시 현 란 인의 회개 | |||||||||||
의 ↓ 부활 ↓ 천년 ↓ 왕국 ↓ (유대인의 통치) | ||||||||||||
선 | ||||||||||||
6세대 | 7세대 |
①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이 왔으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여 천년왕국을 세우실 때까지 세상은 더더욱 악하여져 가 많은 사람들의 배도가 진행되어 간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때 대배교가 있은 후, 그리스도는 비밀리에 공중재림하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의로운 성도들을 부활시키고, 살아있는 성도들과 함께 공중으로 들어 올리셔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베풀 것이다. 이 사건은 '은밀한 휴거’라 불리운다.
② 곧 이어 지상에는 7년 대환난기가 있게 된다. 이 기간에 적그리스도는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③ 이 7년 대환난기 마지막에 그리스도는 공개적으로 지상재림 하신다. 이때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고, 그리스도께서는 적그리스도와 그 추종자들을 격퇴시키며, 사단을 결박하여 천년동안 구금시킬 것이다. 그리고 천년동안 그리스도가 왕이 되어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왕국을 다스린다. 이때 7년 대환난기에 죽은 성도들은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통치에 참여할 것이다.
④ 그리스도가 왕이 되어 통치하는 천년왕국 기간은 평화와 의의 상태가 모든 지상에 충만하게 될 것이며, 이사야 65장 17-25절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⑤ 이 기간에 예루살렘의 중건과 희생제사의 회복이 있게 될 것이다.
⑥ 그리고 이방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 그 나라에 편입하게 될 것이다.
⑦ 그리스도의 지상 통치가 다 끝나는 천년왕국의 말기에 사단은 잠시 다시 풀려나서 하나님께 반역하여 싸우게 하는 곡과 마곡의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결국 완전히 패배를 당할 것이다.
⑧ 그 후에 악한 자들의 부활과 그들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이며, 마침내 사단을 비롯한 그 추종자들에 대한 최후의 상태와 신천신지가 전개될 것이다.
3. (역사적/세대주의적)전천년왕국설에 대한 비평
그리스도의 재림을 논함에 있어서 역사적, 그리고 세대주의적 전천년왕국설적인 견해는 성경적 검증에 의한 비평을 받아 왔다. 그러므로 이 점에 대해 야기된 이의를 통해 그 비평을 살펴보는 것은 전천년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역사적, 그리고 세대주의적 전천년왕국설은 모두 요한계시록에 사용되고 있는 숫자를 이스라엘과 하나님 나라의 미래에 대한 예언적 묘사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데,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기에 숫자를 사용하여서 신약이 암시하는 상징성을 띤 하나님의 의도하신 의미를 해석하는 원의적 의미의 영적 해석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문자적 해석에 의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는 요한계시록 20장 2-7절에서의 거듭 반복되고 있는‘천년’을 문자적 숫자의 기간인 천년으로 해석하여 천년왕국설을 주장하는 것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간인 천년은 1-3절에서는 사단이 갇혀 있는 기간으로, 4-6절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인하여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하는 기간으로 정해진‘하나님의 기간’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기간인 것이다. 따라서 문자적 숫자로서의 천년 기간이 아닌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구원의 약속으로 주어진 여자의 자손에 의한 성취로 사단이 패망하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시점으로 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이 그분 안에서 그분의 증거를 인하여 죽음을 당하였으나 생명의 주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 첫 번째 부활이요, 이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노릇 하는 것이니 이 천년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을 당하였으나 다시 산 모든 자들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이 첫 번째 부활과 천년은 같이 존재하는 같은 것이니 결국은‘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의 기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그리스도의 언약 안에 있던 구약 시대를 포함해서 언약의 성취에 의한 그리스도의 통치의 전 시대의 때까지를 다 포함하여 말하는 것이 되는 것이므로 문자적인 숫자에 의한 천년이 될 수가 없다. 다만, 하나님이 이 숫자를 사용하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으로서의 상징적인 의미와 함께 이것이 어떤 것으로 있는 것인지를 알게 해 주고자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전천년왕국주의자들의 문자적 해석에 의한 천년왕국설의 주장은 하나님의 왕국을 새하늘과 새땅에 의한 영원한 천상적 왕국 이전에 지상적인 왕국이 문자적 숫자의 천년간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만듦으로써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왜곡에 있게 하였다. 그러나 신약에서 천년의 기간에 존재하는 왕국은 그리스도 안에서 겪는 영적인 것이다.
한편, 전천년왕국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 20장에서의‘천년 동안’만큼은 상징성에 의해서가 아닌 문자에 의한 숫자로서의 해석을 고집하는 반면에, 요한계시록 다른 곳에 나오는 숫자는 상징적인 해석으로 가져나감으로써 숫자에 대한 해석법에서 일관되지 못하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도 전천년왕국주의자들이 비평을 받는 요인이다.
(2) 전천년설은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 사이에 천 년간의 간격을 두고서 이중적(또는 삼중, 사중) 부활, 또는 두 단계의 부활을 말하고 있다. 이는 성경에서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묘사를 오해한데 따른 것이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사도 바울이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권면하는 것에서이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는다며,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말하였다. 그때는 이미 주 안에서 죽어 세상을 떠난 모든 그리스도인을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생명의 주님의 나라로 데려가실 것이므로 비록 우리가 주께서 다시 오실 때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보다 먼저 주님을 만나지는 못할 것이니 이는 주 안에서 죽은 자나 또한 주 안에서 살아 있는 자나 모두가 다 함께 주 예수에 의해서 그분의 나라에로 데려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 예수께서는 이렇게 하시기 위해서 마지막 날에 큰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이 불러 모으시는 나팔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이며, 이때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며, 그들만이 아니라 또한 우리 살아 있는 자도 다 함께 구름에 싸여 하늘로부터 오시는 주님을 만나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것에서‘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것이지 그리스도의 재림을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나누어 행할 것에서 있게 될 공중재림을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전천년왕국설을 말하는 세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7년대환기에 앞서 은밀하게 임하는 공중재림과 7년대환란기 끝에 있을 지상재림으로 나누어 두 단계에 의해서 일어나는 재림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공중재림으로 부활 또는 변화에 있는 의인이 있은 후 지상재림시에 또 있게 될 7년대환란기에 죽은 성도들인 의인의 부활을 말함으로써 공중재림시에 부활과 변화에 있는 의인과의 구별이 있으며, 이들 의인들의 부활에도 시간차가 있게 된다. 그리고 또한 천년의 기간이 끝나고 새하늘과 새땅이 시작되는 때에 있게 되는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이 또 있게 되는데, 이들에게서도 먼저는 의인의 부활이 있으며 그 뒤에 악인의 부활이 있게 된다. 그럼으로써 세대주의적 전천년왕국주의자들은 역사적 전천년왕국주의자들이 말하는 이중부활보다도 더 많은 모두 셋, 또는 네 차례에 있게 되는 삼중부활 또는 사중부활을 말한다. 역사적 전천년왕국주의자들도 세대주의적 전천년왕국주의들도 이들 모두에게서 보게 되는 그리스도의 재림에서의 이중재림과 성도의 이중 또는 삼, 사중부활은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잘못된 것이다.
이들은 요한계시록 20장 5-6절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그리고 20장 14절에서의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에서의‘첫째 부활’과‘둘째 사망’을 들어 성도의 이중(삼, 사중)부활을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첫째 부활은 마귀와 그를 따랐던 자들이 당하는, 죽음도 지옥도 불바다에 있는 둘째 사망이 없다는 것에서 말해지고 있는 상대적인 표현이다. 첫째 부활에 있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당하지 않는다.
성경은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부활을 단번에 말하고 있으며, 또한 의인의 부활이 마지막 날에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계 20장 5절에 있는“이것이 첫째 부활이다”라는 말은 그리스도를 증언함으로 죽은 자들은 죽음의 권세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생명의 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함에 있는 것에서 첫 번째 부활 -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번째 열매이시다 - 에 들어 있는 것임을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원리에 의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미 죽은 자이든 또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이든 그들 모두는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을 한 첫 번째 부활에 든 사람들이다. 따라서“이것이 첫째 부활이다”는 말씀은 역사적, 또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왕국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이중재림에서 있게 되는 각각의 부활을 뜻하지 않는다.
(3) 전천년설에서 문제시 되는 것의 또 하나는 그들이 말하는 천년왕국 기간에 남아 있는 죄악된 인류가 어떻게 영광스러운 지체를 지닌 성도와 함께 존재할 수 있으며, 영광스럽게 된 성도들이 죽음과 쇠퇴의 현장인 죄가 관영된 지상에서 어떻게 살 수 있는가에 있다. 그리스도가 왕이 되어 통치하는 천년왕국 기간은 평화와 의의 상태가 모든 지상에 충만한 세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천년왕국에서 많은 이방인들이 돌아와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에 편입하게 되는가 하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악의 무리로 남아 있다. 이는 7년대환란기에서 유대인들이 집단적으로 회심할 것을 말하는 것에서도 그렇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많은 유대인들은 여전히 악의 무리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는 천년왕국 이전의 세대가 겪는 시대상과 다른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이에 대한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한다.
(4) 역사적 전천년왕국설이든 세대주의적 전천년왕국설이든 전천년왕국설은 이것의 유일한 성경적 기초를 요한계시록 20장 1-6절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성경에서 지원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신약의 남은 부분에도 모순이 된다. 심지어 전천년왕국설의 문자적인 해석은 시종일관 문자적이 아니다. 이 견해에 있는 자들은 1절에 있는 쇠사슬과 2절의 결박을 비유적으로 해석하며, 종종 천년을 길고도 불명확한 시기로 인식하는가 하면, 4절의 영혼들을 부활한 성도들로 말한다. 그럼으로써 천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통일성을 갖고 있지 못함으로 해석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나아가서는 이 구절에서는 그리스도와 그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공중재림 후에 있는 지상재림으로 펼쳐지게 되는 지상 왕국에서 통치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어떤 암시도 없다. 오히려 이 구절은 하늘의 보좌에 계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함으로써 둘째 사망에 있지 않는 성도들의 광경을 말하고 있다.
(5) 전천년왕국주의자들은 천년왕국 기간에 예루살렘의 중건과 희생제사의 회복이 있을 것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나 큰 오류인가?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무너질 것이며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새로운 성전이 주어질 것임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세워질 자신의 몸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시는 새로운 성전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가는 것이니 곧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각 지체로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이전에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한시적으로 존재하게 한 돌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의 중건과 여기에서 있게 될 희생제사의 회복을 주장함으로써 과거에로 회귀하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헛되게 하는 악한 죄에 있는 것이다.
(6) 전천년왕국설을 말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지상재림 때 있을 전쟁과 지상재림 끝에 있을 전쟁이란 두 가지의 전쟁을 주장한다.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이다. 그리스도께서 7년대환란기 끝에 지상재림 하시는데, 이때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 그리스도께서 적그리스도와 그 추종자들을 패배시키고 사단을 결박하여 천년동안 감금하는데, 천년 끝에 사단이 놓임을 받아 온 세상을 미혹시켜 최후의 전쟁을 일으키나 역시 패퇴하여 망함으로써 영원히 불못에 던져진다는 시나리오이다. 이렇게 사단이 결박당한 천년 기간에도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여전히 악의 세력이 존재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으며, 사실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은 서로 다른 별개의 전쟁이 아닌 동일한 한 전쟁에 대한 다른 표현일 뿐이다.
아마겟돈 전쟁은 그리스도의 지상재림이 있을 때 겪는 마지막 날이 되는 어느 날 한 순간에 겪는 전쟁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아마겟돈 전쟁에서 말해지는 지구 최후의 날에 이르게 될 것이지만, 이것은 어느 날 한 순간에 터지는 전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래서 종말지말의 사건으로 일어나는 전쟁에 의해서가 아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시작되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나는 종말기간 내내 진행되어 종말의 사건으로 있는 전쟁인 까닭에 최후의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아마겟돈 전쟁은 지구 최후의 날에 있는 자들이 겪는 그들의 전쟁인 것이 아닌 그 날이 이르기까지 모든 시대의 모든 세대가 믿음의 선한 싸움에 있는 전쟁에서 보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6:8; 8:11)
에 굳게 있는 믿음에서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히 11:37; 13:10)
에서 보는
“…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하는 자는 살 것이라.”
라고 하는 그 치열한 싸움을 겪는 것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요한이 본 환상에서의 아마겟돈 전쟁이 의도하며 의미하는 바는, 종말기간 내내 있는 크고 작은 전쟁(재앙)을 겪는 중에 이 전쟁의 마지막 날인 종말지말에 이르는 것이다. 그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이며, 요한은 이때에 있을 악의 세력의 파멸을 환상 계시에서의 아마겟돈 전쟁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에서 알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한 운명이 되어 있는 교회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의에 있는 일로 인하여 그 의를 반대하며 대적하는 세력으로부터 겪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감에 일생을 가져나간다. 그러한 교회는 아마겟돈 전쟁이 치러지는 마지막의 생사기로에 있는 것이다. 교회는 이 아마게돈 전쟁에 있음으로 해서 그 치러나가는 치열한 싸움에서 그의 믿음이 오직 주께만 있음이 드러난다.
이러한 이 아마겟돈 전쟁은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 개구리와 같이 생긴 더러운 영 셋에 의해서 미혹을 받아 하나님을 대항하는 행위를 그치지 않는 것에서 귀신들과 금, 은, 동과 돌, 나무로 만든 보거나 듣거나 걷지도 못하는 우상들에게 경배했으며,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결코 그만두지 않는 자들 것에서 말해지는 것이다. 이때 아마겟돈 전쟁은 구약시대에서 있었던 전쟁의 참혹한 결과를 통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자들을 대항하는 사단과 그 추종자인 악의 세력이 세상 끝인 주님이 재림하실 때 겪을 참혹한 결과를 보여 알게 해 주시고 있는 것이다. 더러운 영, 곧 악한 귀신의 영이 하나님을 모방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흉내 내어서 이적을 행하며 온 세상의 왕들을 모으고 닥쳐올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심판날에 대비해서 한 덩어리가 되어 주님을 대항하여 싸울 것을 충동질시키는 미혹하는 일을 한다. 그러한 악의 세력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싸움을 헛되게 돌아가게 하시니 마침내 그들이 걸어오는 싸움을 끝내신다. 그때 요한이 들은 음성이 있다. 그것은“보라, 너희는 깨어 있으라.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내가 도둑같이 갑자기 들이닥칠 것이다. 그때 너희가 깨어 있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런 사람은 옷을 단정하게 입고 있기 때문에 벌거벗고 다니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는 것이다. 아마겟돈 전쟁은 바로 이것이다. 아마겟돈 전쟁은 더러운 귀신의 영들이 미혹하는 일에서도 깨어 있어 주님을 맞이함에 있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의 종말론 강화에서‘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어리석은 다섯 처녀 비유’를 비롯한 인자가 오시는 날에 있을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할 것이나 한 사람은 버림 당할 것을 여러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에서 여러 주님이 오실 때 깨어 있는 슬기에 있을 것을 가르치신 주께 대해‘깨어 있음’에 있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미혹하는 일을 통해서 싸움을 걸어오는 악한 마귀와 그 세력에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쟁으로 일컬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확정되어 있다. 구약에서 므깃도에 있는 한 산 갈멜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 엘리야가 우상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거짓된 제사장 850명과“누가 살아 계시고 참된 신이신가?”를 온 이스라엘 앞에 드러내는 싸움의 전쟁에 있었던 것에서 보게 되듯이 우상을 섬기는 악한 마귀와 그 세력은 멸절당하는 참담한 상태에 처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있게 되는 아마겟돈 전쟁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따름에 있는 이 마지막 때에서 매일 겪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그 뒤를 따름에 있는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있는 사실로 인해서 아마겟돈 전쟁이 치러지는 한복판에 놓여져 있다. 이 전쟁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실로 인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에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인하여 의로운 고난을 당함에 있는 것이다. 그러한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갚으심이 되신다. 그러기에‘고난’이란 것에서 떠올릴 수 있는 온갖 힘들고 어려움, 고단한 삶에서도 자신이 치르는 아마겟돈 전쟁이 승리로 끝날 것임을 알기에 이를 내다보면서 믿음으로 인내한다. 이 전쟁을 매일 치르면서 언제나 우리에게 약속된 승리에 있어가는 것이 그리스도께 가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겟돈 전쟁에서 치러지는 심판의 날이 누구든지 깨어 있어서 자기의 옷을 단정히 입고 있으므로 벌거벗은 채 다니는 모습을 보이는 수치에 있지 않는 자들에게는 복이 된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다음의 말씀에서 이미 알려주신 것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4-17)
홍해의 마른 길, 유브라데 강의 마른 길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화를 당하는 재앙의 길이 될 것이지만,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정결에 있는 옷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재앙으로부터 나오는 길이 되게 하실 것이니 결코 그 재앙이 화로 미치는 것에 있지 않다.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이니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으며,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고 보좌에 앉으신 분께서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실 것이므로 다시는 굶주리거나 목말라 하지 않을 것이며, 해나 그 어떤 뜨거움도 그들을 상하게 하지 못할 것으로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께서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겟돈 전쟁, 곧 곡과 마곡의 전쟁이 이러한 것인데, 이 전쟁을 전천년왕국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서로 다른 별개의 전쟁으로 다루며, 이를 천년왕국설을 도입하되 그리스도의 재림을 이중적으로, 그리고 두 단계에 의해 나누어 새하늘과 새땅이 임하기 이전의 사건으로 끌고 나감으로써 사람들의 흥미를 돋구기는 하지만 성경의 가르침과는 먼 전혀 맞지 않는 그릇된 해석을 하여 많은 신자를 왜곡된 신앙관에 있게 하는 잘못에 있게 하고 있다.
Ⅳ. 무천년설(실현된/현재적 천년왕국설 - Realized Millennialism)
이제 무천년설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다.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전천년설이 주류를 이루던 흐름이 무천년설이 주축을 이루는 시대 분위기로 전환된 것을 볼 수 있는 것이 근래의 상황이다. 이와 같은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입장이 내세우는 천년왕국의 개념과 그 성경적 근거, 그리고 이에 대한 비판을 차례대로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1. 천년왕국의 개념
무천년설은 현 시대가 점점 악화되어가면서 주님의 재림 때에는 극도로 악화된다고 본다. 어떤 학자들은‘천년’이라는 시대가 주님의 부활과 승천에서 시작하여 재림에서 끝이 나는 시대를 의미한다고 본다. 또 어떤 이들은‘중간 상태’를 의미한다고 본다. 이 중간 상태에서 세상을 떠난 성도들이 주님과 같이 세상을 다스리는 왕 노릇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 직전에 배교가 팽배해지고, 이 배교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대환난으로 종말점에 도착하게 되며, 주님의 재림으로 이 적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의 원수들이 완전히 굴복하게 될 것이라 주장한다. 무천년설은 후천년설과는 정반대의 역사관을 보여준다.
무천년설은 천년왕국 즉 그리스도의 지상통치가 전혀 없을 것이라는 견해이다. 재림 직후에 바로 최후의 대심판이 있을 것이며, 즉시 의인들과 악인들은 최후의 상태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것이다.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자들이 상기시키는 것은 계시록이라는 책 전체가 매우 상징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천년왕국이 전혀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적인 천년왕국을 영적인 차원으로 치환시켜 천년기를 교회시대로 해석한다. 그래서 천년 동안의 통치는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상에서 이루어지며,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기간이 곧 천년기라고 말한다.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천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천상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무천년주의자들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년기가 미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실현과정 중에 있다고 믿는다. 그리스도께서 죄와 악에 대한 결정적인 승리를 쟁취하셨지만 악의 왕국은 이 세상 끝 날까지 하나님의 왕국과 함께 계속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주장한다.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주님이 오시기 전 복음전파로 인해 세상이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천년주의자들의 입장에 동의하면서, 주님의 재림이 세상의 종말과 최후의 심판 및 최후의 영원한 상태를 예고한다는 후천년주의자들의 주장에도 동의한다. 이런 무천년설의 개념은 낙관주의적 역사관을 배격하고, 재림이 곧 완성과 연결된다는 입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2. 성경해석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자들에 따르면 무천년설은 비교적 명백한 수많은 종말론적 구절에 근거하여 세워진 반면, 전천년설은 단 하나의 구절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계시록 20장의 천년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계시록 20장을 취급할 때 통상 계시록 전체의 문맥에서 그것을 조망한다. 그들의 공통적인 한 가지 요소는 요한이 서로 다른 두 부류의 사람들과 관련된 두 차례의 육체적인 부활에 관해 말하고 있는 전천년주의의 주장을 거부하면서, 첫째 부활은 영적인 것이며, 둘째 부활은 육체적이라고 주장한다.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계시록이 묵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적인 해석이 타당하다고 본다.
무천년설은 계시록 20장 1-6절이 말하고 있는 인류역사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예수님의 초림, 특별히 십자가와 부활의 종말론적인 사건의 시점에 둔다. 즉 예수님의 초림의 사역을 통해 이미 사단의 세력이 정복을 당하게 되었으며, 이미 지상에 천국이 건설되고 있으며, 그런 다음 그의 재림을 통하여 최종적인 사단의 정복과 천국이 완성된다고 본다.
후크마(Hoekema)에 따르면 사단의 패배는 이미 요한계시록 12장 7-9절에 제시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초림 시에 이미 시작되었다. 요한계시록 20장 4-6절의 천년기 통치는 그리스도 재림 전에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사실은 11-15절의 최후 심판이 천년기 통치 이후에 있게 될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더욱 명백해진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천년기 통치는 그리스도의 재림 후가 아니라 재림 전에 일어나야만 한다. 이렇게 본다면 20장 7-15절의 내용에 의해 천년기가 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재림 직전까지의 기간을 포함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20장 1-3절에서 요한이 말하는 것은 사단이 결박되어 있는 동안 그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 나라들이 배울 수 없도록 방해하는 속임수를 다시는 나라들에 대하여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에 따르면 사단은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이고 교회를 공격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원수들을 모두 함께 모을 수 없다고 풀이된다. 사단의 결박은 복음의 시대를 통해 사단의 영향력이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 세력이 급격히 제한받고 있기 때문에 모든 세상의 나라에 복음이 전파되는 흐름을 막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 20장 1-6절은 동일한 천년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첫 세 절은 천년의 기간 동안 땅에서 일어나게 될 일을 묘사하고 있는 반면 나중 세 절은 하늘에서 일어나게 될 일을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 후크마의 요약적인 결론이다.
거쓰리(Guthri)e는 무천년설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근거를 제시한다. 예수께서는 70인이 선교사역에서 돌아왔을 때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10:18)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이 원수의 모든 능력을 꺾을 수 있는 권세를 받았다고 하셨을 때 그것은 요한계시록 20장 1-3절과 유사한 것처럼 보이며, 현재는 사단의 능력이 제한되어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시험할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미혹할 수 없다고 전한다. 후크마와 거쓰리의 견해는‘이미’와‘아직’이라는 긴장관계 가운데 본문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데 이것은 후천년의 견해보다 훨씬 더 성경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천년 후에 잠시 동안 사단의 시기가 온다고 보아야 하는데(7절), 이 ‘놓임’은 ‘잠깐 동안’에 지나지 않는다(3절). 이후에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이 있게 되는데, 그때 그리스도는 ‘큰 흰 보좌’에 앉으실 것이며 대소를 막론하고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이다(11절, 12절). 요한계시록 20장 본문에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 다음에 최후의 심판이 뒤따른다. 이로 보건대 천년왕국, 잠시 동안의 사단의 시기, 재림과 모든 죽은 자들의 부활, 그리고 최후의 심판으로 이루어지는 순서가 명백하다고 헨드릭슨(Hendriksen)은 주장한다. 그는 지상에서에서 천년왕국을 ‘사단의 결박’으로, 천상에서의 천년왕국을 ‘성도들의 왕 노릇함’으로 말한다.
무천년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천년왕국에 대한 기대는 성경적 근거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주장하면서, 성경은 오히려 현 세대의 하나님 나라에 이어서 바로 하나님 나라의 완성된 형태가 이어지게 될 것을 가르친다고 믿는다. 그 근거로 예수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원한 것이지, 잠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설명되고 있다는 점(사 9:7; 단 7:14; 눅 1:33; 히 1:8; 12:28; 벧후 1:11; 계 11:15), 그리고 미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개인의 영원한 상태로 들어가는 것(마 7:21-22)이며, 또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고(마18:8-9),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는 점(막 10:25-26)을 제시한다. 영적인 부활이 중간기에 대한 난점을 적절히 해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비평
무천년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천년이라는 숫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차례의 부활에 있다. 첫째 부활은 영적이며, 둘째 부활은 육체적이라는 견해에 대한 전천년설주의자들의 비판 가운데 가장 공통적인 것은 이 견해가 같은 문맥 안에서 사용된 동일한 용어‘그들이 살아서’(e[zhsan)을 해석함에 있어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예언들을 미래적으로보다는 이미 성취되거나 성취되고 있는 것으로 보는 역사적 관점이나 상징적으로 다룬다는 문제점도 있다.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자들에 따르면‘그들이 살아서’로 번역된 e[zhsan은 신약성경에서 죽음 후의 생명을 묘사하기 위해서 결코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단어는 영적으로 살아나는 경우에만 사용될 수 있다(요 5:25; 엡2:6). 그러나 육체적 죽음 이후에 영혼의 삶에 대해서는 결코 사용되지 않는다. 반대로 인간의 부활 생명을 언급하는 경우에는 다양한 형태로 사용되고 있다(마 9:18; 행 9:41; 20:12; 눅 24:5; 롬 14:9; 고후 13:4).
전천년설을 주장하는 이광복 목사는 천년의 기간이 상징적인 것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계시록 20장 2-7절의 내용 가운데 천년이라는 말이 6회나 등장하면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실제적인 기간임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장차 될 일’이라는 말이 계시록에 4회 기록된 것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한다. 이에 더하여 20장 4절에 나오는‘왕 노릇’의 기간은 보편적인 것으로 봐야 하는데, 무천년설적인 입장에서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의 영혼과 재림 직전 순교자의 영혼이 누리는 기간의 차이도 모순 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후천년설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볼 때 무천년설이 가진 맹점은 낙관주의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 존재하며, 전천년설의 입장에서는 이 땅의 왕국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과 성경의 말씀을 상징적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을 반박하고 있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4. 도표를 통해서 본 무천년설
구 약 시 대 왕 국 | 그 리 스 도 의 초 림 | 오 순 절 | 대환란시대(요16:33) | 대 배 교 사 건 | 그 리 스 도 의 재 림 | 대 부 활 | 대 심 판 | 영원한 나 라 (고전15:24-28) | ||
| 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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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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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상 천 년 왕 국 (마13:24-30;37-43) |
5. 요약
이미 실현된 왕국으로 설명하는 무천년설은 복잡한 구조를 떠나 있다는 점과 죄를 지닌 인간의 본성을 견지한 역사관은 매우 타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본 고찰의 목적으로 밝힌 성도들의 유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는 견해로 여겨진다. 또한 성경적인 근거를 통해서 볼 때도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입장이라 하겠다. 무천년설을 비평하는 학자는 구약시대 존재했던 성도들의 부활 문제와 이미 천상에서 살고 있고, 이제 막 천상에서 살게 된 성도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에 대해서 확실한 견해를 나타내고 있지 못하다며 비평하지만,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있는 죽은 자 및 산 자의 부활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갖지 못한 때문인 것으로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의 관점에 의할 때 가장 적절한 견해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무천년설은 성도가 그리스도께 가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이생에서 그들의 주 안에서 가져나가는 실현된, 그에 따라서 실존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그럼에도 무천년왕국설은 그 견해에 있어서 성도의 부활을 중생에 의한 영적 부활과 마지막 날에 있을 몸의 부활을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 둘로 분류하여 이해하고 있음으로써 비평자들에 의해 그 문제점이 공격 당하고 있는 점과 그리스도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를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에 의한 이해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왕국 기간으로 이해하고 있는 견해는 수정되어야 할 내용을 안고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Ⅴ. 맺는 말
성경은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는가에 따라서 그 해석을 달리한다. 그러기에 성경의 해석학적 관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여기에 성경의 해석학적 관점이라면서 그 견해를 주장하는 학자들의 노선을 따라간다. 그러나 성경의 해석학적 관점은 학자들의 견해에 의해서 말해지는 것이 아니다. 성경의 해석학적 관점은 성경의 관점이니 이는 성경을 기록하신 하나님의 본의(원의)에 있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 나라의‘천년’에 대한 이해를 후천년설로 가져나가는 견해는 오늘날에는 그 힘을 잃어 미미하다. 오늘날 이전에는 전천년설이 가장 왕성했으나, 현재에서는 무천년설이 더욱 설득력을 갖고 지지를 받고 있다.
요한계시록의‘천년’이란 기간을 문자주의에에 의한‘천년왕국설’로 말해져 온 것은 잘못된 성경 해석학적 관점이다. 이곳에서 의도하고 있는‘천년’은 천 년 간의 왕국 개념에서가 아니다. 설사 이 숫자를 왕국의 개념에서 다룬다고 할지라도 이 숫자는 문자적이지 않다.‘그리스도와 함께 한’것에서의 상징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양한 천년왕국설이 등장한 것은 성경의 본의적 의미와는 다르게 각 견해를 말한 자들의 주장이 성경의 해석인 것인 양 따르고 있는 것에서 이다. 여기에서 전천년왕국설을 주장하는 자들의 견해는 요한계시록을 그릇되게 해석하여 이해하는 잘못에 있게 하고 있다. 이것이 지니고 있는 내용들이 많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말하고 있는 흥미로움은 더 관심을 갖게 하고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전천년왕국설에서 그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때, 그리고 이를 하나님의 언약적 구속사의 관점에서 이해하게 될 때 천년이란 숫자에서 보게 되는 왕국인 하나님의 나라는 전천년왕국적인 개념에서가 아니라 우리 믿음의 주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실현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현재적으로 임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가 어떤 자로 있는 것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에서 말해지고 있는 천년이란 것을 보게 된다. 이는 천년이 말해지고 있는 본문의 내용을 통해서 보게 될 때 분명히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