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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50:23(839) 감사는 행복의 근원 2024. 9. 22
세계적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지은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리어 왕> 이야기를 하며 설교를 시작할까 합니다. 영국왕인 리어왕에게는 세 딸이 있었지요. 왕의 나이가 80이 넘어가자 왕은 자신의 살아가는 날이 얼마 남지 않는 것을 알고, 왕국을 셋으로 나눌 생각을 합니다. 리어 왕은 이 세 명의 딸들에게 왕국을 3등분해서 물려주고, 자신은 한 달에 한 나라씩을 방문하면서 돌아가며 세 나라를 찾아다니면서 말년을 보내려고 계획합니다.
그래서 세 딸을 부릅니다. 리어왕은 ‘자신의 딸이 얼마나 아버지를 사랑하는가?’이 사랑을 확인한 후에 사랑의 부피만큼 땅을 나누어 주려고 마음을 먹습니다.
먼저 첫째 딸 <고너릴>에게 질문합니다. “얘야, 너는 이 아비를 얼마나 사랑하니?” 그랬더니 맏딸은 거침없이 당차게 대답합니다. “저는 제 목숨보다 아빠를 더 사랑해요. 아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어요. 정말이지 아빠는 제가 사는 의미입니다”.
결코 순종적이지 않았던 맏딸이지만, 아버지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아버지 듣기 좋은 말을 대답합니다. 맏딸의 말에 감격한 리어 왕은 자신의 왕국 땅 1/3 을 맏딸에게 줍니다.
이번엔 둘째 딸 <리건>에게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둘째 딸 리건 역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합니다. “제게는 아빠 말고는 사랑하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아빠는 제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예요” 이 말에 홀딱 빠진 왕은 또 왕국의 1/3을 둘째 딸에게 뚝 짤라 줘버립니다.
이제 셋째 딸 <코델리아> 차례입니다. 이 셋째 딸 코델리아는 사실상 리어왕이 가장 예뻐하던 딸입니다. 그래서 리어 왕은 왕국의 가장 노른자위 땅은 막내를 위해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곤 앞에 두 딸에게 했던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예야, 너는 이 아비를 얼마나 사랑하니?” 원래 아첨할 줄 모르고 진실했던 셋째 딸 코델리아는 정직하게 대답합니다.
“아빠! 제가 아빠를 많이 사랑하는 것은 맞지만, 아빠만 사랑한다고는 말씀 드릴 수 없어요. 제게는 남편도 있고 또 제 사랑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도 있답니다. 그러니 아빠만 사랑한다고 말씀 드릴 수 없어요”
이미 아첨에 귀가 멀었던 리어 왕은 막내 딸의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져 버립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막내 딸 코델리아에게는 땅 한 푼떼기 주지 아니라고 쫓아내어 버립니다. 그리고 막내에게 돌아갈 땅을 첫째와 둘째에게 모두 나눠줘 버리고 맙니다. 고로 첫째와 둘째가 각각 절반씩 리어 왕의 땅을 나누어 가진 셈이 됩니다.
그리고 왕은 자신이 계획한 대로 첫째 딸과 둘째 딸의 집에서 한 달씩 머물려고 움직입니다. 처음 맏딸 고너릴 집을 방문합니다. 하지만 리어 왕은 그 자리에서 모진 박대를 당합니다. 왕으로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수모와 굴욕을 당하고 성에서 쫓겨나 광야를 유리방황합니다. 둘 째 딸 리건에게도 철저하게 수모를 겪게 되고 버림을 받은 리어 왕은 막내딸 코델리아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였던 것을 뒤늦게 깨닫고 결국은 미쳐 버리며 인생을 끝냅니다.
믿었던 두 딸에게 버림을 받으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리어왕은 이런 명 대사를 남깁니다. ‘감사하지 않는 아이는 뱀의 날카로운 이빨보다 더 날카롭게 부모의 가슴을 찌른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 리어 왕이 독백으로 내 뱉은 이 말에 다 들어 있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자식은 뱀의 날카로운 이빨보다 더 날카롭게 가슴을 찌른다!”
누구의 가슴을 찌른다는 말이에요? 감사할 줄 모르는 자식의 말과 행동은 뱀의 날카로운 이빨보다 더 아프고 독하게 부모의 가슴을 찌른다는 말입니다. 자식을 키우다 보면 모든 희노애락을 다 겪게 됩니다. 감사의 말 한마디가 부모의 모든 고생을 눈 녹듯이 녹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식이 던진 송곳 같은 말 한마디 때문에 평생 부모 가슴에 대못처럼 남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감사의 말과 행동은 세상 부모와 세상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섬기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살아가고, 하나님이 이끌어 주시는 보호하심 속에서 항상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성도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항상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모습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하지 않는 순종, 감사가 빠져 버린 헌신, 이것은 위태롭기 그지없는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9월의 모든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이 넘쳐 나기를 소망합니다. 아울러 2024년의 남아 있는 모든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에게 감사함을 먼저 드림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받아 누리는 덕민 교회와 덕민 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1.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23절,“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구약 성경에 야곱의 아내였던 레아와 라헬이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야곱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레아는 사실상 참 슬프고 불행한 삶을 살았던 여인입니다. 자신이 남편 야곱의 첫 번째 아내이었지만, 남편은 자신은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동생이었던 라헬만 사랑합니다.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내로 일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끔찍한 일입니다. 얼마나 가슴에 맺힌 한이 많았으면, 첫 아들을 낳고 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창 29:32 “레아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더라”
사실 레아의 일생은 불행과 슬픔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레아의 삶을 보면, 그녀는 감사의 사람이었습니다. 불평하기 보다는 감사를 먼저 보인 여성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건강과 하나님의 임마누엘을 늘 체험하면서 감사 드렸던 여인입니다.
반면에 동생 라헬은 감사할 조건이 더 많았습니다. 우선 언니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성에게 있어서 아름다운 외모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제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아실 것입니다. 예뻐지려고 칼 대어 수술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면서부터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출생했다는 것은 정말 큰 장점입니다. 게다가 레헬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한 여인이었습니다. 야곱에게 4명의 아내가 있었지만, 야곱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여인은 라헬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라헬은 불평보다는 감사할 내용이 더 많은 여인입니다. 그런데도 라헬에게는 감사의 모습이 많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매사에 질투와 불평속에 살아 갑니다. 그 결과, 레아는 평생 은혜를 받아 누리며 죽어 가족의 묘에 장사되었고, 라헬은 평생 불만 속에 살다가 광야에 묻혀서 무덤조차 남기지 못하는 허무한 생으로 마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먼저 꼭 기억해 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감사할 것에 대해서 감사를 생략하면 내가 받을 복도 생략된다는 점입니다.(중요한 것이라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립니다.)
이와 반대로, 도저히 감사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내가 감사를 드리게 되면, 정말로 감사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에게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드리는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감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도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감사를 내가 드리는데, 하나님이 그저 입 싹 닦고 가만히 계실 분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은혜를 모르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감사를 드리는 성도들을 절대 모른 체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감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고, 감사로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요? 실현 불가능한 너무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맙시다. 감사는 적은 감사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또한 감사는 몸에 배이도록 행동에 습관화가 우선 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래서 이런 감사드리는 모습 하나를 우리 성도님들에게 제안합니다. 먼저 말로서 감사함을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아내에게, 그리고 남편에게 또한 나와 말을 나누는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먼저 말로써 감사를 표하시기 바랍니다. 불평하고 비난하기 보다는 먼저 내가 감사하는 말과 행동을 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가 감사함을 표하는 그 사람이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감사라도 감사함을 표하는 내가 행복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드리는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하나님에게 매사에 감사함을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일이면 작은 액수라고 할지라도, 매 주일 하나님에게 감사로 드려지는 헌금을 해 보시길 바랍니다.
감사하는 말을 상대방에게 전하려고 하면, 먼저 내 자신이 감사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고 감사함을 표현합니다. 여기서부터 내가 먼저 하나님의 복을 받는 법입니다. 액수와 상관 없이 감사헌금하려고 내가 마음을 먹고 실행으로 옮긴다면, 그 실행하고 있는 과정 자체가 먼저 나에게 행복이고 힘이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감사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감사가 나를 더 성숙된 사람으로 만든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예전에 대학 청년부를 지도할 때에 이 방법을 사용했던 적이 있습니다. 젊은 친구들에게 감사의 모습을 나타내라고 그러니 아이들은 어색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내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6개월만 한시적으로 정하여 밀고 나가자고 말하고 밀어 붙였습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참여하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진정 마음에 우러러 나오는 감사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감사헌금을 낼 때에 꼭 감사 내용을 적어서 내라고 가르쳤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건성건성합니다. “지켜 주심에 감사”어떤 짓궂은 녀석은 “오늘도 살아 있음에 감사” 요렇게 적어 냅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감사의 깊은 뜻을 알게 되면서 감사 내용이 구체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지난 주간에 교통사고 날 뻔 했는데 지켜 주셔서 감사”, “별로 잘 한 것도 없는데 장학금 받게 되어 감사”, “엄마 아빠 크게 싸웠는데 다시 화해하게 되어 행복한 가정이 되어 감사” 심지어 “남자 친구와 헤어졌는데 크게 마음 아파하지 않고 마음이 잘 추수릴 수 있어서 감사” 이런 문구도 올리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아이들의 감사의 모습과 내용이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큰 것만 감사합니다. 작은 것은 감사하지 않아도 당연히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아주 적은 것 하나도 감사하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제 눈으로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덕민 교회 모든 성도님들도 감사의 행동이 몸에 배여지고 실천의 모습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감사헌금으로 드리는 헌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감사의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이 감사의 내용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지, 감사헌금의 액수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2. 두 가지 기본 감사
오늘 제가 여러분께 말씀 드리려고 두 종류의 감사도 그래서 나온 것입니다.
감사할 내용이 있을 때에 감사드리자는 말은 차원 높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또한 감사할 일이 있을 때 감사드리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기본적인 모습입니다. 한낮 짐승들도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주인에게 감사의 행동을 합니다. 그로 내가 감사할 내용이 있을 때에 감사하는 것은 기본이고, 지금부터 말씀 드리려 하는 것은 그렇지 않을 때의 얘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때에 감사를 해야 합니까?
1)지금까지 여러분의 인생이 여러분 뜻대로 되지 않은 것에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감사드리는 내용을 보면 자기 뜻대로 된 것에 감사를 드리고, 자기 야망이 충족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이런 감사는 신앙이 없는 곳에서도 가능한 감사의 모습입니다. 성도는 어떤 때에 감사해야 합니까?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것에도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인생은 그 끝을 알 수 없습니다. 처음의 성공 때문에 끝에 가서 실패하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애가 여러분의 소원대로 되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지금보다는 어쩌면 더 유명해져 있을 지도 모르고, 경제적으로 더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또 사회적으로도 좀 더 높은 위치에 있게 됐을 지도 모르지요. 또 세계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인생이었다면, 여러분은 지금처럼 인정미 넘치는 사람은 되지 못했을 것이며, 지금처럼 하나님과 친숙한 교인은 되지 못했을 겁니다. 어쩌면 성공한 돈과 물질 때문에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잊어버리고, 자기 내키는 대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추락하게 됐을 지도 모릅니다.
생각하면 참 아쉬운 사람이 많습니다. 옛날 대우그룹의 김우중 전회장 다 아시죠. 그 분의 책에 보니까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냐?”하는 내용이 있더라구요. 대한민국 최초로 세계 경영의 화두를 던지었던 경제 선구자 김우중 회장이 가장 행복했을 때가 언제였을까요?
책에 보면, 대구에서 피난살이를 할 때, 신문을 다 팔고 돌아와서는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가정 예배를 드릴 때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김우중 회장은 승승장구합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기치를 걸고 전 세계를 무대로 발로 비즈니스를 뛰었던 분입니다. 그래서 크게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그 분의 뜻대로 크게 성공한 기업가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은 훌륭한 신자가 됐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사람들 기억 속에서 거의 잊혀져 버린 인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40년도 더 되었던 제 군대시절 이야기입니다. 제 군대 동기 중에 한 명이 충현교회 출신이 있는데 그 친구가 제게 이런 말 하더군요. “야! 야당총재도 별 수 없더라. 어제는 김영삼장로님께서 우리 교회에서 헌금위원 하더라” 그러더라구요. 차라리 그 모습이 훨씬 났습니다. 대통령이 안됐더라면 훨씬 보기 좋은 장로님이 됐을 것입니다. 대통령 시절에 단 한번이라도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아마 그것 때문에 믿는 사람이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하나님에게 투정 부리고 교회를 등지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에게 감사의 모습을 드려 보십시오. 그럴 때에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는 또 다른 놀라운 손길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지금 내가 하는 고생에 대해서도 감사드리시기 바랍니다.
고전 15:10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 자신이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감사합니다. 바울이 드리고 있는 이런 감사를 본 받아야 행복해집니다.
내가 남보다 더 고생하고 수고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감사하십시오. 내가 교회 일을 다른 분들 보다 더 많이 맡아 봉사하고 있다면 이 또한 감사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다 뒤로 꽁무니를 내리고 빠져 나가는데, 나만 바보처럼 일을 도맡아 봉사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더 많이 봉사하고, 더 많이 수고하는 이 감사가 하나님의 마음을 흔드는 감사가 된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마십시오. 여기에서 행복이 출발된다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는 만큼 나의 행복 또한 정비례한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말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