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1.
옥룡사 동백나무숲
동백꽃 송이가 널브러져 있다. 광양시 옥룡면 옥룡사지 천년의 동백나무숲 터널길을 걷는다. 3월 중하순 주말이면, 양일간 동백 축제가 있었음을 안다. 북적대는 인파를 피해 일주일을 늦췄는데, 조금 늦은 듯한 느낌이 든다. 옥룡사지 동백숲은 천연기념물 제489호로 지정된 곳이며, 옥룡사지는 사적 제407호다. 한적한 동백길을 따라 느릿느릿 걸어 옥룡사지에 도착한다.
폐사지다. 남은 것이라고는 군데군데 자리 잡은 주춧돌뿐이다. 가장 높은 터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내려다보니 명당처럼 보인다. 풍수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35년을 수도한 옥룡사 터는 아무것도 모르는 필부의 눈에도 좋다. 황량한 절터에서는 3차원 캐드 프로그램으로 그 시대의 옥룡사 형상을 조합하며 사색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 폐사지에서는 나만의 상상으로 웅장한 건축물들을 쌓아 올리고 칠하고 밀고 당기기를 할 수 있다.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오래도록 동고동락한 프로그램이니 가끔은 그리워지기도 한다.
공감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경험이다. 실제로 해봐야 참모습을 느낄 수 있을 테니 2km 남짓 동백숲 길을 바람 소리 따라 걸었다. 고음의 새소리에 마음도 청아해진다. 동박새다. 동백꽃 나무에는 동박새가 함께 살고 있다. 그 둘은 공생관계다. 꿀을 먹는 대가로 동백꽃을 수정해 준다고 한다. 요란한 울음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겼으나 동백꽃 꿀을 먹는 동박새는 보지 못해 아쉽다.
그대를 누구보다 사랑합니다. 동백꽃 꽃말을 확인하고 늦었지만 이제야 알겠다. 아버지께서 그리도 동백을 가까이하신 뜻이 꽃말에 숨겨져 있을 줄이야.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수돗가에 동백, 할머니 산소에도 양쪽으로 동백, 화분에도 동백을 심어 가꾼 이유가 사랑에 있었다니. 왜 나는 그 깊은 사랑의 의미를 이제야 눈치챈단 말인가.
봄날은 따스하다. 맑은 하늘에서 추위가 사그라진 바람이 떨어진다. 동백은 겨울 추위를 불사르고 꽃을 피운다. 겨울에 피는 꽃이라서 동백이다. 지금이 겨울인가? 매화 꽃잎이 지고 벚꽃잎이 간간이 바람에 날리는 봄이다. 봄에 꽃을 피우는 동백이 동백인가 춘백인가? 광양 옥룡사지 동백숲은 봄에 가야 동박새와 동백꽃을 만날 수 있다.
삼말사초, 그 봄날에 하얀 벚꽃이 아닌 붉디붉은 꽃길을 걷고자 한다면 옥룡사지로 가라. 그리고 “그대를 누구보다 사랑합니다”라며 사랑을 고백해 보시라.
첫댓글 할매산소에도 동배꽃이 떨어져서 사방이 붉겠다
땅으로 스며들기전에 얼릉가서 끌어모아 하트을 만들어 볼까나
그렇게 까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