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엘 그레코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1600년경에
마드리드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소속 학교 성당 중앙제단화로 그려진 작품으로,
엘 그레코(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1600년경에
마드리드의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소속 학교 성당 중앙제단화로 그려진 작품으로,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가 그린 종교화 중에서
가장 강렬하고 극적으로 비통한 장면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그리스도의 고통이 마치 그림의 깊은 곳으로부터 뿜어져 나와
보는 이들에게까지 슬픔으로 강하게 전달되는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이 설치된 곳은 신학교 중앙제단화의 상부 가운데이다.
미사를 드리는 사제의 앞에 감실이 있고,
감실 위에 <주님 탄생 예고>가 그려져 있으며,
그 위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그려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신학교를 설립한 복자 알론소 신학의 핵심이고,
십자가의 희생제사가 미사로 재현되는 성당에서 중심이 되는 성화이다.
알론소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몸소 고난을 체험했다.
평생을 딱딱한 마루바닥에서 잤고,
육신의 유혹이 있을 때마다 스스로 채찍질을 했으며,
뾰족한 못이 박힌 신발을 신고 다녔다.
십자가 위에서 당했던 그리스도의 다섯까지 상처를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알론소가 임종한 후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는 그의 시신을 지키려고
불침번까지 세웠는데,
그것은 죽은 알론소의 발을 잘라갈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성인들의 유해에 기적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는데,
알론소를 그리스도의 고난을 몸소 보여준 살아있는 성인으로 공경했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성찬의 관점에서 볼 때
알론소의 의도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소속 신학생들은 매일 이곳에서 미사를 드렸고,
사제가 축성한 성체와 성혈을 거양할 때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와 함께 성체와 성혈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죽기까지 순명한 그리스도를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엘 그레코는 못에 박혀 있는 예수님의 두 발의 위치를 독특하게 표현했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님의 발을 그릴 때
왼발이 위로 올라오게 그렸는데 엘 그레코는 오른발이 위로 올라오게 그렸다.
이것도 알론소의 신학적 입장 때문이다.
알론소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오른발이 위로 올라가도록 십자가에 못 박혔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알론소의 주장에 의하면 평소에 더 많이 사용하는 오른발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
왼발이 위로 올라가는 것보다 더 강한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그리스도의 몸에서 쏟아지는 피의 양도 엄청나다.
그야말로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처럼
그리스도의 피가 양손과 옆구리와 두 발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고,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양손으로 받고 있다.
투명한 날개를 달고 공중에 떠 있는 천사들에게서는 아무런 무게감도 느낄 수 없다.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피를 양손으로 받듯이
사제들은 미사성제를 통해 그리스도의 피를 양손으로 축성할 것이다.
이것은 천사와 같이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중재자로서의 사제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하게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 나무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닦고 있다.
이것은 축성된 성체와 성혈을 하나도 남기지 않기 위해
성작수건으로 성작을 닫는 사제의 행동을 연상케 한다.
밀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축성되었기 때문에
사제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귀중하게 여겨
성체 부스러기와 성혈 한 방울까지도 남기지 않고
물로 헹궈서 정성껏 모시고 성작수건으로 깨끗이 닦기 때문이다.
십자가 아래에서는 성모마리아가 인성을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고,
신성을 상징하는 푸른 베일과 망토를 덮어쓰고
그리스도에게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인성을 덮고 신성을 완전히 드러내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이고,
신성을 지닌 아들 예수님께 죄인들을 위하여 빌어달라고 전구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희망의 색인 녹색 속옷에 사랑의 색인 붉은색 겉옷을 입고,
손을 벌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손을 막아 땅을 배척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의 제물로 바치셨고,
그리스도는 피와 물로 하느님의 사랑을 증명했으니,
우리도 세속을 멀리하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여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고 구원이라는 희망을 얻으라는 것이다.
엘 그레코의 후기 작품에서는
더 이상 이탈리아의 고전적인 화풍이 남아있지 않다.
그는 자기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의 느낌을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했다.
그는 배경을 불규칙적인 붓질로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공간으로 그렸고,
빛을 내고 있는 인물들의 순간을 포착하여 그림으로 묘사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는 장면은
마치 비잔틴 이콘화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감동과도 같이
‘영원’이 느껴지는 매우 충격적인 감동을 보는 이에게 주고 있다.
이 작품은 수직으로 길게 늘어져
보는 이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위아래로 움직이게 한다.
이것은 수평적으로 인간에게 머무는 시선에서 벗어나
수직적으로 하느님께 시선을 향하게 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그래서 엘 그레코는 이제까지 보여준 인물의 표현방법을 탈피해
독특하고 기다란 자기만의 혁신적인 인물 유형을 창조한 것이다.
, 1541-1614)가 그린 종교화 중에서
가장 강렬하고 극적으로 비통한 장면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그리스도의 고통이 마치 그림의 깊은 곳으로부터 뿜어져 나와
보는 이들에게까지 슬픔으로 강하게 전달되는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