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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수록 더 절실한 유토피아를 향한 꿈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산림대森林帶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야장미野薔薇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때에는 부디 잊지마서요
나와 가치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즈시 타고 나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뜯고
길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서요
그때 우리는 어린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촘촘히 비가 나리면
꿩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리다
서리가마귀 높이 날어 산국화 더욱 곱고
노란 은행잎 한들한들 푸른 하늘에 날리는
가을이면 어머니! 그 나라에서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때
나와 함께 고 새빨간 능금을 또옥똑 따지않으렵니까?
출처 《촛불》(1939) 첫 발표 <삼천리》(1932.5)
신석정 辛夕汀 (1907~1974)
1924년 4월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하며 등단했으며 김영랑, 박용철, 정지용 등과 함께 <시 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이어 갔다. 1939년 간행한 첫 시집 《촛불》에서는 목가적인 서정시의 세계를 보여 주었으나 《슬픈 목가》(1947) 이후에는 전원적 유토피아에서 현실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빙하》(1956)와 《산의 서곡》 (1967)에 현실참여적인 목소리를 담아냈다면 마지막 시집인 《대바람 소리》(1970)에서는 자연 서정의 세계로 회귀하면서 시세계를 마무리했다.
1930년대의 순수시 운동과
신석정
1930년 3월 박용철은 김영랑, 정지용, 정인보, 이하윤 등과 함께 시 동인지《시문학》을 창간했다. 1931년 10월 종간될 때까지 세 개 호밖에 발간되지 않았지만 《시문학》은 1930년대 순수시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시문학파에 속한 시인들은 카프와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했던 문단의 흐름에 반하여, 문학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시를 언어의 예술로 자각하면서 순수시에 대한 이론적 탐구와 창작적 실천을 수행했다. 신석정은 《시문학》 3호에 <선물>(1931)을 발표하면서 시문학파에 합류했다. 1930년대에 들어서 인간의 내면적 서정을 표현하고 문학의 예술성과 독자성을 지향하는 시적 경향이 확대된 것은 일제의 침략전쟁이 본격화하고 사상 통제가 진행되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전원적 목가시를 주로 썼던 신석정은 전원파에 속했던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1932년 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고향인 전라북도 부안으로 돌아와서는 "전원에 묻혀 망국민으로서의 막다른 골목을 견디어 문학의 길에나 전진" (신석정, 1972; 신석정전집 간행위원회, 2009: 511)하고자 했다. 그는 3년의 소작 생활 끝에 마련한 초가삼간에 ‘푸른 언덕 위의 정원’을 뜻하는 ‘청구원(靑丘園)’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 정원에 은행나무, 벽오동, 목련, 산수유 등을 심어 꾸몄다. 이곳에서 그는 식민지 현실과의 접점을 모색하기보다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세계로 눈을 돌리고 새로운 이상향을 꿈꾸는 것에서 암울한 식민 치하의 현실을 견뎌 낼 수 있는 정서적 힘을 얻었다. 1939년에 간행된 《촛불》에는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 잘 담겨 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상상하다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는 무척 편하게 읽히는 작품이다. 난해한 시어도 없고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청자로 설정된 ‘어머니’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는 듯한 문체도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가끔 등장하는 낯설지 않은 사투리 (‘알으십니까’, ‘넌즈’', ‘마서요’, ‘날어’, ‘고 새빨간’)도 ‘그 먼 나라’에 향토적 색채를 더하면서 친근한 느낌을 준다. 특별히 어려울 것 없이 마음에 와닿는 작품이지만, 다시 한번 읽으면서 시적 화자가 그려 보이는 상상 속의 세계에 조금 더 깊이 다가가 보기로 하자.
총 9연 28행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시는 크게 1~3연, 4~6연, 7~9연의 세 부분으로 나뉘며, 각 부분은 일정한 시적 표현과 구조를 반복하면서 리듬감과 통일감을 형성하고 있다. 1연, 4연, 7연은 첫 행에서 ‘어머니’를 부르고 다음 행에서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어머니 /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라는 질문은 이 시에서 세 번 반복적으로 제시된다. 화자는 어머니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질문이 반복될수록 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시적 화자가 질문을 던지는 대상이 왜 ‘어머니’여야 했는지,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왜 ‘그 먼 나라’라고 불렀는지 의문을 가져 볼 수 있다. 먼저 ‘어머니’는 어떤 이야기라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자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서, 화자가 꿈꾸는 모든 생명을 가진 것들이 본연의 모습을 지닌 채 평화롭게 살고 있는 ‘그 먼 나라’와 동일한 의미역을 지닌다. 따라서 ‘어머니’와 함께 “그 나라에 가”는 것은 유토피아를 완성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된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 하는 동안 시적 화자는 유토피아와의 거리를 전혀 좁히지 못한 채 ‘그 먼 나라’라는 표현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시적 화자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쉽게 닿을 수 없는 곳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라는 관형사는 우리말에서 화자보다는 청자에게 가까이 있거나 청자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을 가리킬 때, 앞에서 이야기한 대상을 재차 가리킬 때, 확실하지 않거나 밝히고 싶지 않은 일을 가리킬 때 쓰인다. ‘그 먼 나라’에서 ‘그’는 언젠가 존재했었지만 지금은 잃어버린 대상을 가리키면서 ‘먼’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1연, 4연, 7연에 이어지는 2연, 5, 8연은 ‘그 먼 나라’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화자가 어머니와 함께 가기를 꿈꾸는 그 나라는 “깊은 삼림대를 끼고 돌”아야 있는 곳, 사람들이 사는 세상과는 동떨어져 있으며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화자는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가 붉게 익어 있으며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 다니는” 그곳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에 생생한 색채감을 입혀 눈앞에 보이는 듯 묘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들장미 열매가 10월에나 붉게 익기 때문에 그곳은 지금 가을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이 계절감은 8연의 후반부와 9연에서도 다시 나타난다.
2연의 그 먼 나라에 대한 설명은 5연으로 이어지는데, 화자의 시선은 산비탈을 타고 넌지시 내려와 양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흰 염소’에게로 이동한다. 높이 자란 옥수수밭에 저녁이 찾아들면 먼 바다의 물소리까지 ‘구슬피 들려’올 정도로 조용한 전원의 풍경 속에는 인적이 없다. 마지막 행에서 우리는 시적 화자가 어머니와 함께 가고 싶은 그 먼 나라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2연에 이어 재차 확인할 수 있다.
8연의 1~3행은 ‘오월’, 4~6행은 ‘가을’이 지나가는 ‘그 나라’의 모습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 나라’에서는, 오월이면 하늘에 비둘기가 멀리 날고 비 온 뒤 꿩 소리가 “유난히 한가로이 들”릴 것이며, 가을이면 서리 까마귀가 날고 산국화가 곱게 피어 있는데 노란 은행잎이 “한들 한들 푸른 하늘에 날”릴 것이라고 화자는 말한다. 시각과 청각에 기대어 계절의 감각을 좇는 화자의 시선은 이따금씩 위아래로 움직이는 새나 빗방울의 움직임을 따라 이동하지만 이 움직임은 결코 격렬하지 않다. 정중동(靜中動)과 동중정(動中靜)을 오가는 그 차분하고 고요한 나라에서는 자연이 만들어 내는 사소한 움직임 하나, 소리 하나에도 눈길을 주고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듯하다. 시적 화자는 이렇듯 자연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제 모습과 소리를 찾을 수 있는 곳에서의 삶을 소망하고 있다.
‘그 먼 나라’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 묻고 이상향의 구체적인 모습을 설명한 다음, 3연, 6연, 9연에서 화자는 그곳에서 어머니와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을 제안한다. 3연과 6연은 첫 행에서 “부디 잊지마”시라고 당부하고, 두 번째 행에서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을 언급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언젠가 그곳에서 함께 “비둘기를 키”우고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오는 일을 하자고 어머니께 요청하는 것이다. 9연은 앞선 8연의 “어머니! 그 나라에서”와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진다. 의문문으로 되어 있다는 차이는 있지만 “양지밭 과수원에 꿀벌이 잉잉거릴 때” “고 새빨간 능금을 또옥똑 따”는 일을 “나와 함께” 하자고 요청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3연, 6연과 구조가 일치한다. 어머니의 대답을 기다리는 질문으로 읽히는 ‘~알으십니까?’와 달리 ‘~ 따지않으렵니까?’는 의미상으로 ‘키웁시다’, ‘돌아옵시다’와 마찬가지로 요청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 시는 ‘어머니께’ ‘그 먼 나라’에 대해 질문하고(1연, 4연, 7연), 설명하고(2연, 5연, 8연),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함께 하자고 청하는(3연, 5연, 9연) 구조를 세부 요소에 변주를 주면서 세 번에 걸쳐 반복하는 구성을 갖추게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 시에서 시적 화자가 꿈꾸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는 나와 어머니의 현실적 삶과 동떨어져 있으며 시적 화자가 꿈꾸는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는 말 그대로의 이상향이다. 이 이상향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자연물들의 색채감은 독자로 하여금 ‘그 먼 나라’를 생생하게 추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삼림지대’와 ‘옥수수밭’의 초록색과 ‘호수’와 ‘바다’, ‘하늘’의 푸른색은 물론이고 ‘산국화’와 ‘은행잎’의 노란색이 어우러지는 전원의 풍경이 독자의 머릿속에 아름답게 펼쳐지면서 독자는 시를 읽을수록 ‘그 먼 나라’에 가고자 하는 시적 화자의 희원에 공감하게 된다.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는 보통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서리가마귀’의 검은색조차 모든 것들이 자신의 타고난 모습 그대로 어우러지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색깔로 느껴진다. 그런데 이 천연색의 풍경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두 개의 색깔이 있다. ‘흰 물새, 흰 염소, 비둘기, 어린 양’과 ‘야장미 열매’, ‘고 새빨간 능금’을 통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흰색과 빨간색이다. 그리고 시적 화자가 ‘어머니’와 함께 ‘그 먼 나라’에서 하고 싶은 일이 ‘비둘기’와 ‘어린 양’을 키우고 ‘고 새빨간 능금’을 따는 일이라는 점에서 흰색과 붉은색은 관조가 아닌 소망의 대상과 연결되어 있다. 흰색이 순결과 평화, 희생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면서 ‘비둘기’와 ‘양’의 상징적 의미를 한층 강조한다면, 붉은색은 사랑과 생명을 연상시키면서 ‘열매’가 지닌 상징적 의미를 강화한다(오세영, 1998: 136-138). 순결하고 평화로운 자연의 생명력이 절정에서 만개한 ‘그 먼 나라’에 함께 가고 싶은 이가 생명의 근원인 ‘어머니’라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합이다.
낭만적 유토피아에의 꿈?
또는 현실에의 저항?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는 분명 유토피아에 대한 시이다. 토머스 모어(Thomas More)의 책 제목이면서 그가 만든 단어이기도 한 ‘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어 ‘없는(ou-)’과 ‘좋은(eu)’을 ‘장소(toppos)’와 결합한 것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좋은 곳을 의미한다. 실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바라는 이상을 투영할 수 있는 유토피아는 예술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꿈꾼다고 해서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유토피아에 대한 꿈은 자칫 허황된 망상으로 그칠 수도 있다. 이처럼 유토피아라는 개념이 양면성을 지니기에 예술작품에 담겨 있는 유토피아의 모습 자체에 초점을 맞추느냐, 그런 유토피아를 꿈꾸게 한 현실로 눈을 돌리느냐에 따라 시에 대한 해석은 달라질 수 있다. 이 시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의 독자들은 아일랜드 시인 윌리엄 예이츠(William Yeats)의 대표작 중 하나인 <호수의 섬 이니스프리(The Lake Isle of Innisfree)>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내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돌아가리”라는 다짐이 반복되면서 이니스프리에 가고 싶은 시적 화자의 열망이 고조되는 구조나, “호숫가에 찰랑대는 잔 물결소리”가 들리고 “홍방울새 날개소리 가득한” 전원 풍경이 ‘그 먼 나라’와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머니’라는 존재의 있고 없음이나, ‘이니스프리’는 실제 지명이지만 ‘그 먼 나라’는 상상의 공간이라는 점과 같은 세부적인 차이들이 있다. 그러나 평화롭고 낭만적인 전원의 풍경과 지금은 멀리 있는 그곳으로 가고 싶은 간절한 소망에 초점을 맞춘다면 두 시의 지배적 정서는 서로 무척이나 닮아 있다. 이 외에 중국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의 영향이나 시인이 직접 언급한 인도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āth Tagore)와의 유사성도 고려할 수 있지만,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 살펴봐야 할 필수적인 요소는 아닌 듯하다. 낭만적 유토피아에 대한 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학의 보편적인 소재였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현실에는 없는 이상향을 꿈꾸는 이 시의 주제 의식은 1930년대 우리 서정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향에 대한 상실감과 그리움을 연상시킨다(윤여탁, 2000: 50). 일제는 중국 대륙 침탈 이후 병참 기지화 정책을 본격화하였고, 일제의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수탈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고향상실 의식은 나라를 잃은 민족의 현실과 무관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1932년 발표된 정지용의 시 <고향>에서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 그리던 고향은 아니”라는 탄식은 제 모습을 잃은 고향으로 인한 깊은 상실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시기 시인들의 고향 상실이 국권의 상실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식민지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다시 말해 국권 회복에 대한 바람과 다름없다. 같은 맥락에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역시 유토피아에 대한 희구를 통해 그 먼 나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을 부정하고, 마땅히 있어야 할 세계의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없지만 좋은 것을 소망함으로써 있지만 나쁜 것에 에둘러 저항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그 먼 나라’에 가고 싶은 나의 소망이 도피와 저항 중 과연 어느 쪽에 가까운지에 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 김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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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초판본에는 능금의 한자어인 ‘林檎(임금)’으로 표기되어 있다.
《촛불》 초판본에는 '돌아옵니다'로 되어 있으나 ‘돌아옵시다’를 잘못 인쇄한 것으로 보인다. 《신석정 전집1》(2009: 47-48)을 비롯해 대부분 ‘돌아옵시다’로 적고 있다.
참고문헌
신석정(1939), 《촛불》, 인문사 신석정전집 간행위원회(2009), 《신석정 전집 4: 산문집 1》, 국학자료원. 오세영(1998), 『한국현대시 분석적 읽기』, 고려대학교출판부, 윤여탁(2000), 『신석정: 자연과 생활을 노래한 목가 시인』, 건국대학교출판부. 황동규 편역(1987), 《예이츠의 명시》, 한림출판사.
사회평론 교육 총서 19 『문학 교육을 위한 현대시작품론』
2024. 6. 17.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