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割禮
고대 근동의 할례>
할례는 히브리말로 “브릿트 밀라”이다. “브릿트”는 계약, “밀라”는 할례를 뜻한다. 할례는 고대 근동 나라들이 일반적으로 행한 사회적 관습이었다. 할례는 기원전 3,000여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집트, 에돔, 암몬, 모압 등이 할례를 받았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2,104) 페니키아인들도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할례를 치렀다고 한다.
유다인들의 할례>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사회적 이 관습을 받아들여, 종교적 신앙적 의미로 치환시켰다. 따라서 할례의 첫 번째 의미는 종교적 신앙적이다. 이것은 모든 존재 특히 인간 존재는 하느님의 피조물로 통찰한 유일신 야훼 신앙에서 비롯된다. 할례의 기원과 대해 창세기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네 뒤에 오는 후손들 사이에 영원한 계약을 세워 너희 하느님이 되어 주겠다. 계약의 표징은 할례이다"(창세기 17,711 참조). 할례는 이스라엘은 ‘하느님 백성이라는 약속)계약의 표시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몸에 새기는 흔적이다. “너는 내 것이다. 나는 네 하느님이 되고 너는 내 자녀가 되었다"라는 것으로 ’하느님의 자녀‘됨의 표시이다.
방법은 남자의 음경)성기 귀두의 표피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히브리인 모든 남자아이는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날에 율법에 따라 할례를 의무적으로 받았다(창세 17,12; 레위 12,3; 필리 3,5 참조). 방법은 남자의 음경)성기 귀두의 표피를 제거하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이해는 왜곡되어 포함되지 않았다.
최초의 할례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은 99세 때 할례를 받았고 아브라함 이후는 아기가 태어난지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시행했다.(창 17,12) 할례의 집행자는 아버지였으며(창세 21,4),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어머니가 아들의 할례를 행하였는데 국제결혼한 모세의 아내 치포라는 혼혈 아들 게르솜에게 직접 할례를 시행했다.(탈출4,25). 할례를 집행할 때는 칼과 같이 날카로운 돌 칼을 이용했다.
할례는 두번째로 사회적 의미를 갖는다. 출생 직후에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시행하는데,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의 공동체 일원임을 표시하게 되었다(창세 34,14 이하; 탈출 12,47 이하). 일종의 공동체 증명서 즉 오늘날 주민등록증과 같은 것이다.
유배 시기부터는 할례는 안식일 준수와 함께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면서, 이 두 행위는 선택된 민족임을 강화하였다. 자신들과 이방인들을 구분 짓는 표시로 삼아 중요시하고 자랑했고,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과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천대하였다.
예수시대 예수님께서도 이 관습을 따르셨다(루카 1,59; 2,21 참조). 할례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던지 모든 노동을 금지하는 안식일도 할례를 시행했다(요한 7,23 참조).
사도시대 복음이 널리 전파되면서 할례 문제는 날카로운 대립을 불러일으켰다. 사도들을 비롯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할례를 받았다. 문제는 유다인이 아닌 그리스도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이다. 결국 예루살렘에서 ‘사도회의’가 끝에, 할례가 그리스도교 입문의 의무가 아님을 선포하였다(사도 15장; 갈라 2,1-10 참조). 이후부터 그리스도교 입문자들은 할례없이도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할례는 신약의 세례성사의 예형이 된다.
바오로 사도는 할례를 옛 계약의 상징으로 이해하고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세례를 새 계약의 상징으로 강조하였다(콜로 2,11-15 참조).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5,6). 바오로 사도는, “할례를 받았다든지 받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오직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만이 중요하다”(갈라 5,6)라고 강조하고 있다.
입력: 최 마리 에스텔 수녀/2024년 10월 11일 PM 22: 16/수정:2024년 11월 08일 PM 20:28
참조: 가톨릭 굿뉴스 성경 자료실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