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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이런 시골에 미국인이?
다음날이었다.
이래저래 심란했던 기로가 아침부터 여기저기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새 오전이 다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배에 물을 퍼내러 갔다가, 채소를 뜯고 있던 산장 집 아주머니 김 순임과 닭의 알 낳는 것에 대해 잠깐 얘기를 했고,
그런 뒤 자신도 채소를 돌아보기 위해 뒷밭에 가니, 산장 집 할머니가 뭔가 심고 있는 것 같아 보니... 들깨여서,
그냥 말 수가 없어서 조금 거들어 드린다고 시작했던 일이,
어느덧 온 밭을 다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할머니는,
"인자, 그만 허고... 돌아가!" 하고 중간에 몇 번을 성화였지만,
"기왕에 시작한 일이니, 끝을 봐야지요." 하고 있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받아 보니 S였는데, 서울에서 출발한다는 것 아닌가.
"어? 큰 일이네!" 하자,
"뭔 전환디?" 하고 할머니가 물었다.
"예, 제... 미국인 친구가 온다는데... 걱정이네요."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뭐? 미국 사람이 온다고?" 하고 놀라더니, "이런 촌 구석에, 미국 사람도 온디야?" 하고 다시 물었다.
"예, 서울에서 지금 출발한다는데요?" 하고 약간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했는데,
사실, 오전 11 시 정도까지 아무 연락이 없어서, 기로는 그들이 안 오려나 보다 했었다.
차라리 그게 더 마음이 편한 일이기도 해서, 어쨌거나 이제는 다소 느긋한 상태로 산장 할머니의 일손을 거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할머니도 미안했던지,
"내가 뭐라도 해주까?" 했는데,
"그럼, 상추 좀 뜯어가겠습니다." 하자,
"그걸... 허락받고 말고 혀? 얼마든지 뜯어 가!" 하면서 며칠 전처럼 또 한 아름의 상추를 솎아주는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먹을 사람도 없는 산장 할머니 밭의 상추는, 그 며칠 사이에 또 그만큼 자라 있어서... 다시 솎아내야 할 모습이기는 했다.
그래서 기로는, 그 집 밭에서 상추와 재배하는 취나물 몇 잎을 뜯고, 자신의 밭에선 쑥갓 한 주먹을 뜯고(다른 곳은 아직도 조그마한데, 이상하게 한 곳에만 뭉쳐서 커있던) 돌미나리와 머위, 민들레 이파리도 뜯었다.
그렇게만 해도 다양한 푸성귀가 준비되었던 것이다.
'샐러드를 하려면 토마토를 사와야 하는데, 전주까지 언제 갔다 오지?' 하다간, '전주까지 갔다 오는 거야 그렇다 쳐도... 뭘 해서 먹이지?' 하는 생각도 하면서.
그렇지만 어쨌거나 청소는 해야 되겠기에, 서둘러... 일단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는, 한바탕 쓸고 걸레질도 하는 등 정신없이 미국 손님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전주에 가는 건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물론... 시간도 없었지만, 차가 없는 기로가 후딱 전주에 갔다 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생각을 집중해 보니, 지난 번 서울 손님들이 올 때 가져왔던 삼겹살이 제법 남아있으니, 한 쪽에선 고기를 굽고, 김치에다 푸성귀(쌈장, 초장과 함께)를 내 놓으면, 그다지 초라하지는 않을 메뉴가 될 것도 같았다.
그렇게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던 기로의 눈에, 산장 집 모터 배가 몇 사람을 싣고 호수위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물론 기로가 타는 작은 배는 사람들이 그 배에 오르느라 호수 내에 묶여있는 것도(큰 배를 땅 가까운 곳에 정박시킬 수 없어서 물 가운데에 놓으므로, 거기까지 가기 위해선 조그만 배로 노를 저어 가야하기 때문) 보았다.
상황이 그러다 보니,
'아이, 오늘 오후엔... 배 타기도 힘들겠구나.'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필이면 오늘......' 하고 약간은 걱정스런 기분이었는데,
곧 전화가 왔고,
S가 전주에 도착했다는 중간 연락을 받았는데,
호수 위에서 모터 소리가 나기에 보니, 웬 모터 엔진을 단 조그만 배에 몇 사람이 타고 산장집 쪽으로 가서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큰 배는 어찌 된 거지?' 하는 의문이 아니 들 수가 없었는데,
어쩌면 고장 났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왜냐면, 언젠가(기로가 여기에 살기 오래 전에) 기로도 상범과 배를 타고 호수 위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엔진이 고장 나는 바람에... 산장아저씨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내일 S 가족에게 배를 태워주려는 일은 또, 어떻게 되는 거지?'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꼭, 하필이면 이럴 때에... 그런 일이 벌어지나?' 하고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네 인생은 주로 그런 식이었다.
지난 번, 구 병태가 왔을 때도, 멀쩡했다던 그들의 핸드폰이 고속도로에서 고장이 나는 바람에... 중간 통화를 할 수 없어서, 서울 그들의 가족이거나 기로가, 그들의 행방과 소식을 몰라 잠시 난리가 났던 일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뭔가 중요한 순간에, 평소엔 멀쩡하던 것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그런 상황.
배도 마찬가지의 경우였다.
내내 물위에 묶여 있던 배가, 오늘 무슨 일인지 사람들을 태우고 떠다니더니(그건 산장집의 사정이었지만), 그만 고장이 난 것이라... 그 배는 어딘가에 묶어놓고, 다른 배로 돌아왔을 터라,
기로는,
'아, S의 가족을 배에 태울 때, 최소한 구명조끼라도 입힐려고 했는데...... 그러려면, 산장 집 큰배에 있는 것을 좀 빌려서 사용하려고 했었는데... 하필이면 이럴 때, 그 배가 다른 곳에 묶여있는 상황으로 돌변했으니......' 하면서,
'왜, S가 온다는데... 일이 자꾸만 꼬이지?' 하는, 불안한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토요일이라 차가 밀렸다며,
S 일행은 여섯 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기로는 '막은댐'까지 걸어 나가 그들을 맞았고, 차를 렌트해왔기 때문에 그 차에 올라 '夢想?'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기 전부터도 S는,
"원더풀!"을 연발하고 있었는데, 호수를 낀 자그만 마을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던가 보았다.
게다가 그의 다섯 살 짜리 딸 C도 '격'에게 접근해 사귀려고 좋아하는 둥, 가족 전체가 시골의 분위기에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기로는 무엇보다도 가장 걱정거리였던 '잠자리 문제' 때문에,
"S, 우선... 잠자리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할 텐데, 여기 내가 작업하는 방에 머물거야, 아니면... 어딘가 가까운 호텔에 가서 잘 건가를 말해 줘." 하자,
S는 생각도 하지 않고 즉석에서,
"장, 나는 여기 흙집의 방에서 머물고 싶어." 하더니, 아예 차에서부터 짐을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의 표현으론, "Incomparable"이라고 하니,
'비교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말로는, "어떻게 장, 당신의 작업 방에다 호텔 방을 비교하려느냐?"고 묻는 거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기로의 작업 방에서 묶는 것이 '너무 특별하고 환상적이다'라는 표현까지 쓰니,
'허긴, 나래도 그러긴 하겠는데......' 하면서 기로는,
"그렇지만, 여기선... 뜨거운 물로 샤워할 수가 없고, 화장실도 통나무집까지 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괜찮겠어?" 하고 묻자,
"하룻밤 자는데 그게 무슨 문제겠어? 그런 걱정은 하지 마세요." 하고, 부부가 오히려 기로에게 부담을 느끼지 않게 설명을 해서야,
기로도 마음이 좀 놓였다.
아무튼 그들은 기로의 작업 방에서(더구나 기로는 오후에 군불까지 지펴 놓았었다.) 지내는 것에 대만족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면서 기로는 우선, 그들이 내내 서울에서 달려오느라 시장할 것 같아... 밥부터 준비를 했고,
그들은 기로가 밥을 하는 사이 주변을 한 바퀴 도는 둥... '夢想?' 주변의 분위기에 푹 빠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저녁 식사는 성공적이었다.
그들은 기로가 준비한 메뉴에 매우 만족해하면서, S는,
"장, 내가 좋은 와인을 한 병 가져왔는데, 그걸 마실까?" 했지만,
기로가,
"S, 이런 식사에는... 우리 술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물론, 내가 막걸리도 준비를 했는데......" 하자,
그들 부부도 찬성을 해서, 막걸리를 마시게 되었다.
그런데 기로가 한 컵을 마시는 사이, S는 연거푸 두 컵을 마셔대는 거 아닌가.
물론 그의 처(프랑스인) C도, 처음엔... 반 컵만을 받더니, 더 마시길 원해서... 기로가 반 컵을 더 부어줄 정도로,
그들도 대만족이어서,
그렇게 저녁식사는 성공적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1차로 한국 시골밥상을 마쳤던 그들은, 이어서 와인도 하기로 했다.
통나무집에서 1차를 끝냈던 그들은, 이제는 '夢想?'... 즉, 기로의 작업 방으로 자리를 옮겨,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들도 나름대로 간단한 안주거리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 상도 초라하지 않았던 것인데,
그들은 ' 夢想?' 천장이 서까래(옛 나무)가 그대로 노출된 흙으로 된 모습에 열광하면서,
"이런 방에서 자 본 적이 없는데, 너무 좋다!"고 합창이라도 하는 듯했고,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우리, 마당에 나가(거기 쉼터도 이미 보고 알았기에) 한 잔 하는 게 어때?" 하고 원하기에,
잔을 들고 쉼터로 나가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는, 마당 구석의 '쉼터'에 앉아 하늘의 달과 별을 바라보거나, 호수에 투영된 먼 곳의 불의 흐름도 보면서... 그들은 시골의 공기를 만끽하는 듯했다.
특히, '夢想?' 앞에 있는 가로등 때문에, 옆집의 콘크리트 하얀 벽에 그들의 그림자가 비춰지자,
"야! 여기가... 마치 실루엣으로 된 연극무대 같지 않아?" 하고 재미있어 하며, S는 디지틀 카메라로 동영상까지 찍어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들 저마다는, 마치 무대의 배우인양... 실루엣에 별의 별 포즈를 취하며, 재미있는 평면 공간을 연출하면서 즐거워했고,
그 와중에 또 기로는, 자신의 특기(?)일 수도 있는 하모니카까지 불어주자,
"장, 우리를 이렇게 초대해 줘서... 너무 고마워!" 하는 말을 몇 번씩 되풀이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이 행복해 하니, 기로 역시 행복할 수밖에.
그들이 도착할 때까지는 잔뜩 부담스러웠고, 불안하기까지 했었는데,
이제는 그 모든 것이 기우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기로가 생각해도 아름다운 밤이었고, 외국인 가족 초대는 대성공이었고,
그렇게 '夢想?'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 현판 작업
그들은 모두 갔습니다.
서울서 온 미국인 S 가족도, 전주에서 왔던 내 친구 부부도......
'夢想?'의 흙방에서 하룻밤을 잤던 S 가족과 함께, 이른 아침에 이 근방의 절경에 속하는 '국사봉'전망대에 올랐는데요,
안개가 어찌나 짙은지, 정작 보러 갔던 섬은 그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고, 다른 쪽의 산 풍경만 환상적(멀리 안개에 쌓인 산봉우리가 보임)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섬을 못 본 게 오히려 더 좋았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미국인 친구 가족도 탄성을 질렀구요.
그런 다음에 '夢想?'으로 다시 돌아와, S 가족에게 배를 태워주는데,
전주에 사는 내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통나무집 마당 잔디밭의 풀을 뽑으러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미국인 친구 가족과 한국인 친구 부부까지 어울려 점심도 함께 하면서, 여름 같은 낮을 보내다가... 각자 일정에 맞춰들 돌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보낸 뒤,
저녁 무렵의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갑자기 내가 서글퍼지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런지(?) 모든 게 귀찮고, 살아있는 것도 무의미한 것 같고......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토방에서 엎드려 있던 개만 쉼터에 멀건히 앉아있던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언뜻 그런 개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던 겁니다.
'격, 너 한테라도... 무슨 말인가 하고 싶구나......'
그 것도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방으로 들어오려는데, 마루 옆구리에 세워 놓은 현판이 확! 눈에 들어오드라구요.
아, 오늘 '夢想?'의 현판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인 S 가족을 먼저 보내고 난 뒤, 친구가 평상을 고치느라 연장을 꺼내 놓고 일하는 틈에... 나도 전기 대패를 잠깐 사용하면서 그 일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夢想'이란 단어를 한자로 쓰는데, 그 옆에 '?(물음표)'를 붙일 수는 없었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는 夢想에 '?'를 붙이지만(夢想?), 현판은 글씨의 좌우가 바뀌기 때문에, 그리고 또 한글로 쓸 경우엔(몽상?) 가능하지만,
좌우를 바꾸어 적은 '想夢'으로 쓴 판에 '?'를 붙이는 건... 영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저 한자만을 써넣었던 겁니다.
아니, 한 번에 써넣은 것이 아니고, 내 손으로 글자를 그려 넣은 것이지요.
잘은 몰라도, 현판은... 처음에 한지에 붓글씨로 쓴 다음, 그 걸 나무판에 붙여 글자를 베낀 뒤 요철(凹凸)을 주면서(조각을 해서) 색을 입혀야 하는 작업일 텐데,
나는 글씨를 그린 뒤, 먹으로 색을 입힌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다 보니, 나무결에 먹물이 번지기도 해서... 조각칼로 글씨의 바깥 테두리 부분을 파내 약간 튀어나온 효과만 준 것입니다.
송판 자체가 너무 두꺼운 데다, 파내기가 쉽지 않은 결이어서... 내내 그 일을 미루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한 가지 방법으로, 전기 대패로 판을 밀어내면 그 두께를 조금 줄일 수 있을지 망설였는데, 그것도 역부족일 것 같아서(그렇다고 내내 송판만 마루에 놓고 살수만도 없어서)... 오늘 내친 김에,
'일을 조금 쉬운 방법으로 하자'며 벌려놓았던 겁니다.
아무튼 오후 시간엔 그 일을 하느라 꼼짝 않고 마루에만 있었는데, 일하는 사이에 카셋 음악을 틀어 놓으니... 기분이 보통 좋은 게 아니었답니다. 온전히 그 일에 몰두할 수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일을 대충 마무리 지어 놓고 보니, 또 그럴싸해 보여... 그 역시 기뻤답니다.
난생 처음 해보는 일이라 어색하게 나올 줄 알았는데, 막상 웬만큼 끝내 놓으니... 어디선가 본 듯하거나, 이미 되어 있던 것을 떼어다 놓은 친숙한 느낌까지 들더라구요.
그랬더니 친구도 그 걸 보고는,
"야, 멋지다!" 하고 감탄까지 하는 것 아니었겠습니까?
글쎄요.
어차피 여기에 이사 오면서부터(오기 전부터) 이름을 지어놓았던 것인데, 기왕에 이름을 지어놓은 것... 또, '현판'도 만들게 되었구요,(이건 계획에 없었음) 그리고... 여지껏 미뤄온 일을 해 놓으니, 기분이 아니 홀가분할 수가 없드라구요.
그리고 그 게 안방 문 위에 자리를 잡게 되면, 정말... 이 집의 전체적인 분위기마저 바뀔 것 같거든요?
그래서 기분이 더 좋아졌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夢想'이라?
언뜻,
'남들이 보고는 웃지 않을 수 없겠는데......' 하기도 했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을 하는데... 이 근방에 산책 겸 구경을 나왔다는 한 가족(여기는 이따금 그런 사람들이 제법 옵니다. 경치가 좋아서, 분위기가 좋아서... 들 와본다고 합니다.)이 내 일하는 모습을 곰곰히 지켜보다가,
"왜, 하필이면 '夢想'이죠?" 하고 묻기도 했습니다.
"하 하 하..." 나는 큰소리로 웃고 말았답니다. 그러면서는,
"잘 생각해 보세요. 뭐... 꿈을 꾸면서 살겠다는 뜻이지요......" 라고 대답까지 해준 촌극도 있었거든요.
어차피 여기 '夢想'은 담이 없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 그 누구라도 보게 될 거거든요?
사실, 이 집이 고풍스럽다거나 또는 개성있는 아름다운 집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저 잿빛 스레트 지붕에 흙으로 지어 놓은... (그렇지만 목재는 반듯한 소박한 모습) 썩 눈에 띄는 집은 아니거든요.
다만, 반듯한 느낌은 나는 시골집인 건 맞은데,
그래선지 어떤 사람들은 이 집의 축대에 올라, 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더러 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想夢'이란 현판까지 걸어 놓으면, 그런 일은 더욱 잦아질 것 같은데요?(이 거 괜히 이런저런 일로 번거롭게 할 일만 만들어 놓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요즘 세상에, 그렇다고 뭐 장사를 하는 '까페'도 아닌... 그저 특별날 것 하나 없는(?) 시골집일 뿐인데요......
근데요,
정말, 해놓고 내가 생각해 봐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실소를 자아낼 일을 해놓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는, 또 아까 그 사람처럼... 호기심이 발동해 들어와 보고 싶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웬, 실없는 사람이 장난쳐 놓은 건가?'하고 말입니다.
그런 현판(현판이랍시고)을 턱! 붙여 놓고, 그 안에서 능청스럽게(?) 살아가는 '나'라는 사람.
아무래도 좀 우습게 여기거나 '괴짜'라고 하지 않을까요?
(어저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던 한 친구의 전화를 받았는데, 내가 여기서 한 1 년 정도 살 거라고 했더니, "정말이야? 너도 참!" 하기에, "내가 좀 웃기는 사람이잖아......"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너도 알기는 하냐?"하고 되물어 오더군요. 그렇듯, 나를 웬만큼은 아는 친구도 그러는데, 모르는 사람들은 더 그러지 않겠습니까?)
상황이 이러다 보니,
'집의 방향이 좀 다른 곳을 향한다던지, 낮으막한 담장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기도 했지만,
뭐, 할 수 있습니까?
집이 그렇게 자리잡고 있는 걸 이제 와서 뜯어고칠 수도 없는 일이니......
아무튼,
이제, 아예 공식적으로(?) 간판(?)까지 내 걸고, 그렇게 살려고 작정을 한 꼴입니다.
그래서 나는 혼자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 서글프다는 생각만 드는지......
자연스런 노란 나무 판 위의 검은 먹 글씨.
'想 夢' (상 몽)(현판 글씨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가게 했던 거랍니다.)
그 안에 살면서도, 왜 이리... 이 세상이 서글픈지......
5 . 11
기로는 이따금, 그러니까 뭔가 기분 좋기도 하고 행복에 겨워 하다가도 가끔씩 세상이 슬프다거나 허무하다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었다.
물론 그가 낙관적인 사람이라기 보다는 다소 비관적인 성향인 것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세상을 어둡고 슬프게만 보는 것 역시 아니었다. 화가이기도 해서 감성이 풍부하고 다소 충동적일 수는 있지만 부정적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본인도 알 수 없는 허무함이나 서글픔이 밀려들곤 했다.
# 장날
평소와 다름없이 오늘도 아침을 무덤덤하게 맞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째, 오늘 아침은 조금 쌀쌀해서... 움츠리기는 했었는데,
그러다 언뜻, 오늘이 '강진 장날'이란 걸 깨달았습니다.
'가볼까?' 하면서 시계를 보니, 아직 40분 정도의 여유는 있었습니다.
8 시 40 분에 장에 가는 버스가 순환도로로 오거든요.
울적한 기분이었는데,
'기분 전환도 할 겸, 장에나 한 번 가 보자!' 하면서, 나는 부랴부랴 용변을 보고 머리를 감고 대충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서둘렀더니 20 분이나 시간이 남드라구요.
버스 승객이라 봐야, 두 사람뿐이었는데... 그렇게 '강진 장'에 갔습니다.
워낙 작은 시골장이라 싱겁다는 건 지난번에 가서 이미 안 사실이지만, 오늘도 역시 다름이 없었습니다.
한 바퀴 도는데 5 분?
그 정도면 장을 다 훑어보게 되는데, 돌아오는 버스는 오후 한 시 반에나 있으니... 그 남아도는 긴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그런 줄 빤히 알고 갔지만, 막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이에 전주행 버스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버스 매표소에 가서 물어보니, 전주 가는 직행 버스는 10 시 반에 통과한다고 했습니다.
'그래, 그 거라도 잡아 타고 가다가, 기사한테 한 번 '막은댐'에서 세워달라고... 부탁을 해보자.' 그런 생각을 가지고, 나는 느긋하게 장을 다시 돌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거기... '비빈 국수'라 써 있는 식당에 기웃거렸더니, 안에 사람이 두엇은 있었습니다.
'팟죽'이란 글씨도 있어서,
'팥죽을 한 번 먹어볼까?' 하다가,
아직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만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모퉁이를 돌아 들어가는데, 언뜻 강냉이 튀기는 곳이 보였습니다.
눈에 잘 안 띄는 뒤쪽의 한 가게에서 하고 있는지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모르고 지나칠 곳이더군요.
그 앞을 지나는데, 마침... 그 '둥근 철공' 같이 생긴 기계를 여는 순간이었습니다.
'뻥 튀려나?' 하고 나는 주의를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웬걸?
그 주인은, 튀기지는 않고 대신 볶아 내기만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나오는 강냉이는 초코렛색에 가깝더군요.
그래도 구수한 냄새가 확 풍겨 오는데,
그 강냉이의 주인인 듯한 아주머니가(손님인 듯한 두 아주머니가 앉아있었는데), 강냉이를 몇 알 집어 입으로 가져가더니,
"아이 꼬소해!" 하는 겁니다.
그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그 옆에 서서 구경하고 있던 나에겐,
"물 끓여 먹을 때, 넣어서 끓이면... 아주 구수혀서요."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도,
"아, 그렇군요!" 하고 맞장구를 쳐 주었지요.
그런데, 강냉이를 다 꺼낸 뻥튀기 주인이 이 번에는 옆의 그릇에 대기 중이던 검은콩을 가득 집어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나는,
'저 콩도 볶으면, 아주 고소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에,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고소했거든요.
그 때 다른 아주머니 한 분이, 뭔가를 가지고 오셨는데... 그 생김새가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건 뭡니까?" 하고 물으니,
"둥굴레요." 하는 겁니다.
"아, 둥굴레가 저렇게 생겼군요?" 하는데,
"예, 이 건 진짜여요. 집에서 한 달을 말려 가지고 나온 겅게..." 하는데,
내가 보아도 참 정성껏 말린 것 같드라구요.
그러면서 나는 그 옆에서 아주머니들이 하는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산에 둥굴레도 별로 없다거나, 그렇게 꼼꼼하게 말리느라 얼마나 고생했겠냐고, 그리고 얼마나 수확을 했으며 어디다 쓸 거냐는 둥......
그러는 사이에 나는 은근히, 그 둥굴레 차를 한 번 사다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 아주머니, 혹시 팔면, 값이 얼마나 될까요?" 하고 물으니,
"kg에... 2 만원요." 하드라구요.
그래서,
"저는,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는 않으니... 반절만 사고 싶은데, 그렇게는 안 파나요?" 하고 물으니,
그러자고 하드라구요.
그렇게 나도, 그 곳에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검은콩은 다 볶아졌나 보았습니다.
고소한 냄새와 함께 철통에서 껍질이 갈라진 검은 콩이 볶여 나왔거든요.
"한 주먹씩, 집어 잡사봐." 하고, 그 아주머니는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는데,
그러면서,
"아자씨도... 한 주먹 집어 잡사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잖아도 구미가 당기던 참이었는데,
"그래도 되나요?" 하고 물으며, 내 손은 이미 그 따끈한 콩에 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먹어 보니,
"아!"
정말 고소하드라구요.
바로 볶은 것이라 그런지, 냄새마저 좋았구요.
그렇게 튀밥튀기는 곳에 앉아 볶은 콩을 씹어 먹고 있는데,
그 아주머니는 손이 큰 건지, 인심이 후한지...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다 한 주먹씩을 집어다 주는 겁니다.
그러더니 나에게,
"더 잡사!" 하기에,
"아닙니다. 이 것도 고마운데 어떻게 더 집어먹어요?" 했더니,
자기가 집어줄 태세였습니다. 그래서,
"아주머닌 인심도 좋으시네요." 했더니,
옆에 있던 사람들도,
"그렇게 다 나눠주다가는... 바닥나겠다."는 둥, 다들 한 마디씩 거들드라구요.
나는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습니다.
볶은 콩을 공짜로 얻어먹어서가 아닌, 그런... 후한 인심이 좋아서였습니다.
'아, 시골 장이란... 이런 맛이로구나.'
정말, 시골 장에 온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둥굴레는 뿌리를 캐서 조그맣게 자른 다음 말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말린 것을 튀밥 튀기는 철통에다 볶아다가(집에서 볶으면 태울 염려가 많아서 그렇게 하는 게 훨씬 효과적 이라더군요.) 냄새가 빠지지 않게 비닐로 잘 싸놓은 다음,
조금씩 물에 끓이면 바로 둥굴레 차가 된다고 하드라구요.
그런 시골장에도 둥굴레 차를 되로 파는데, 한 되에 5 천원이라더군요.
그렇지만 그 것은 다 수입품이고, 그 아주머니처럼 본인이 직접 캐서(3-4 년에 한 번) 말린 것은 귀해서 찾으려해도 힘들다던데......
그런 얘기를 듣는데 둥굴레도 볶아져 나왔습니다.
나는 0 . 5 kg을 사려던 마음을 바꿔, 1 kg을 사기로 했습니다.
나만 먹을 게 아니고,
'누군가와 나눠먹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둥굴레 값만 2만원이라, 볶는 삯(3 천원)도 내가 냈는데,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는 한 움큼을 더 주는 겁니다.
나는 혹시 나중에라도 둥굴레가 더 필요할지 몰라, 그 아주머니의 전화번호도 알아두었는데요,
그렇게 그분들과 헤어져서 나오는데,
언뜻 찐빵을 파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습니다.
아마 본인이 손수 쪄서 가지고 나오신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 봉지(4 개)를 들고 값을 물으니 천 원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렇게 받아서 남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드라구요.
그렇지만 그 할머니의 빵도 팔아준다는 게 즐거웠습니다.
게다가 내가 사니,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도 몇 명 사기 시작하더군요.
그리고 또 마음씨 좋게 생기신 아주머니가 파는 토마토 모종을 한 덩어리(열 포기에 천원, 지난 번 전주의 농약가게에서 산 것은 세 포기에 천 원이었는데) 사고,
다른 곳에서 고추 모종 열 포기(그 것도 천 원)와 참외(지난 번에 사다 심은 참외는 노랗게 변해 시들어 죽어가고 있어서)도 두 포기 사고......
그렇게 마치 시골 농부처럼 시장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메고 간 가방에도 내 손에도 뭔가 꽉 차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버스가 올 시간이 40 여 분이나 남아있어서,
장과 붙어있는 버스 정류장 한 나무 벤취에 앉아... 나는 멍청히, 장에 온 사람들을 바라다 보았습니다.
그저 조그만 마을(면 소재지) 5일장이라 점심 무렵이면 시장이 파한다고 합니다.
그래선지, 그 장에 나온 사람들이 저마다 비닐봉지를 몇 개씩 들고... 돌아갈 버스를 타거나 기다리거나, 아직 오가며 장을 보는 모습이 약간 분주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평소엔 정말 한적한 곳이었는데(지난번 내 손님들 왔을 때, 손으로 만든 짜장을 먹고 싶다고 해서 데려 왔었는데... 장날이 아니던 그 날은 정말 한산했거든요.), 그나마 장날이라고... 다소간의 사람들이 분주한 듯 다니고 있었습니다.
나 역시도, 도시 사람처럼 자신의 차로 휭- 왔다가 물건을 사가는 게 아닌... 차 없는 시골사람으로서, 나른한 시골장의 버스 정류장에서 봉지봉지 채소 모종을 사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밤에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그 순간은 참 편안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버스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서 있던,
그저 장에 들른 '시골의 한 아저씨'였던 것입니다.
5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