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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사랑 2부
글쓴이 :맑은하늘 /이영자
7. 다시 만난 남자
민희는 회현동 긴 지하도를 빠져나와
화려하게 장식 된 롯데호텔 앞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바라보며 그 남자를 기다린다
청바지 청자켓을 즐겨 입던 민희의 옷차림이 대학생같이 산뜻하다
두터운청자켓 카라에 하얀 밍크가 돋보인다
그 남자가 달려오는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민희는 짐짓 못본척 뒤돌아서서 그 남자의 온기를 기다린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남자가 거의 왔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빠른속도로 혈류들이 달린다
온 신경이 그 남자를 기다린다
그런 민희를 남자가 달려와 뒤에서 안으며 다정하게 말한다
"많이 기다렸어 보고싶었어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내사랑 " 남자의 말이 달콤한 솜사탕 같다
그 남자의 뛰는 심장이 민희의 심장과 합류 한다
민희는 뒤돌아서서 그 남자의 품에 안기며 편안함을 느낀다
"몰라 !몰라! 깜짝 놀랐잖아 ! "
민희는 그 남자만 만나면 아이가 된다
어디서 나오는지 애교샘이 터져 코맹맹이언어를 해대며 애교 부리는 자신을 보며 놀란다
민희의 연기에 그 남자가 웃는다
청바지에 흰티를 받쳐입고
캐쥬얼한 반코트를 걸친 그 남자는 누가보아도 잘 생긴 미남이다
그 남자의 얼굴에 광채가 난다
"희야! 메리크리스마스!
오늘은 젊은 연인속에 끼어 명동성당도 가고 무교동 유정낙지집도 가고 스타다스트 고고장도 가자
청진동 해장국도 먹구~ㅎ
밤새워 놀아볼까요
나의 마님!"
"그럴까요? 대감님"
명동성당으로 걸어가는 민희와 남자는 젊은연인이였다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주 하나님"
성당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송에
민희와 남자는 행복한 모습이다
자판대에 악세사리 파는 상인이
성당앞에서 크리스마스 선물 사라고 호객을 한다
민희와 그 남자는 루돌프 머리띠를 두개사서 하나씩 머리에 꽂고 아이처럼 좋아한다
성당입구에 놓인 마리아와 요셉 강보에 쌓인 아기예수 동방박사 세사람을 근사하게 만든 구조물이 있었다 민희는 어린시절 교회를 다녔었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 아기를 낳으려는데 마굿간 밖에 없어서 그곳에서 예수님을 낳았는데 하늘의 별이 동방박사 세사람을 안내해서 아기예수님께 경배드리는 거야"
"그렇구나
울아기는 모르는게 없네~"
하며 남자가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기쁘다 구주오셨네
만백성 맞으라"
나즈막히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가
깊은곳에서 나오는 맑은샘 같이 청량하다
목젖끝에 닿는 음색은 하프를 뜯는소리 같이 부드럽게 들렸다
민희는 남자의 노래를 들으며
바나나라떼같은 커피향을 마시는 느낌이다
시경앞을 지나 조선호텔 골목으로 들어서며
남자가 민희의 작은손을 잡아
주머니속으로 넣는다
무언가 손에 잡혀서 민희가 묻는다
"이게 뭐야?"
남자가 씨익 웃으며
"낮에 크리스마스 선물사러 현대백화점에 갔었어
민희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샀는데 맘에 들었음 좋겠어"
남자는 생일 이나 축일을 잘 챙기는 편이다
조선호텔 골목은 인적이 늘 드믄곳이다
호텔에서 은은하게 풍겨나오는 정원등과 가로등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두 남녀를 비추어 작은 무대를 만든다
남자가 작은 상자를 열어 목걸이를 꺼내 보인다
다섯돈 정도 순금줄에 엘리자베스여왕 팬던트가 달랑거린다
남자는 민희 목에 목걸이를 걸고 두 귀를 감싸안고
입맞춤을 한다
"희야는 나의 여왕님이야
영원히..!"
떨리는 입술에
남자의 온기가 전해져
민희는 눈을 감는다
"난 참 행복한 여자야"
십여년전을 회상하며 민희는 남자와 추억속을 걷고 있다가 현실로 돌아와 쓴 웃음 짓는 민희 머리위로 가느다란 눈발이 날린다
십년이 지났는데도
회현동 골목은
변한게 별로 없다
롯데호텔 크리스마스 트리도
구세군 종소리도 명동성당 모습도 다 그대로인데
그 남자만 없다
지난 추억에서 빠져나오자
헐렁한 옷만 입은 허수아비같았다
허전한 마음 한구석을 바람이 휭하고 지나간다
명동 골목안 찬바람이 민희의 얼굴을 어루만져 볼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반부츠를 신은 발마져 시려온다
시경앞을지나 덕수궁을 바라보며 교보문고를 향해 민희는 종종걸음을 걷는다
광화문 지하 교보문고에서
평소 읽고싶었던 이상작가의 소설과 박완서 작가의 책 두세권을 골라 담았다
YMCA앞을 지나 골목안 2층 종로음악다방에 들어갔다
디제이가 레코드판을 들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축제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마음껏 즐기기 바랍니다"
민희는 홍차를 주문하고
홀짝 거리며 디제이를 바라본다
긴 장발을 늘어뜨리고 머플러를 넥타이식으로 목에 두른 디제이는 방송인처럼 잘 생기고 유창한 화술을 마음껏 발휘하는 마술사 같았다
찰랑거리는 긴머리에
하얀 투피스를 입은 민희는 48kg밖에 안나가는 몸매가
마흔이 다 되었어도
스물 후반 처럼 보인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흘러나오고 디제이가 밖으로 나와 민희 자리로 걸어온다
다방안은 아직 초저녁이라 그런지 대여섯 명의 손님만 있다
"실례합니다
저희 다방엔 처음 오신거지요
차한잔 함께 마시는 영광을 주신다면 기쁜 크리스마스 밤이 될 듯 합니다
저는 서광대 4학년 재학중인 학생입니다
혹
대학생인가요?"
민희는 앞자리에 앉으며 자기소개를 하는 디제이를 바라보며
가벼운 미소와 맑은 눈빛만 반짝일뿐 디제이 질문엔 관심없는 듯 홍차를 들고 마신다
민희앞에 앉으려다 아무런 반응없는 여자앞에 앉는게 왠지 앉으면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지
디제이는 엉거주춤앉으려다 멋쩍은듯
"아~!실례 했습니다"
하곤
다시 디제이실로 들어간다
민희의 앉은 모습은 단정하고 흐트러짐하나없는 아주 예의바른 학생 모습이였다
민희는 명동 논노패션 단골이였다
논노 패션을 즐겨입었고 그곳 VIP였다
오늘 입은 정장도 신상품이여서 눈에 확 들어오는 차림새였다
그런 민희 모습에
다른 손님들도 힐끔거리며 "영화배우 최은희 같아!
쏙 빼닮은게 딸인가봐"
하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리고
연합기자 성재가
오른손을 들고 웃으며 다가온다
"민희씨 많이 기다렸지요
차가 밀려서 간신히 왔네요"
"아! 네 저도 온지 얼마안되었어요"
"친구를 만나 민희씨 얘기를 했어요
깜짝 놀랄줄 알았는데
안 놀라더라구요
오늘 민희씨 만나기로 한 것도 말했는데
그냥 그러냐고 시쿤퉁하더라구요
그 녀석 이제 민희씨를 잊기로 했나봐요
사람마음은 시간이 지나면
다 변하나 봅니다
사실 오늘 같이 오고 싶다고 할 줄 알았습니다"
혼자온게 미안하기도 하고
안따라나서는 재근이의 반응이
씁쓸하기도 한 성재는
물컵의 물을 들이키며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다
민희는 성재와 헤어져
수표교에서서 장영실이 만들었다는 자격루 물시계를 바라보고 서서 물시계를 만들어 많은 농민들의 농사짓는걸 도운 대단한 인물을 생각하며 애써 그 남자와의 추억을 청계천에 종이배를 띄우는 심정으로 그 남자를 떠나보내고 있다 떨어지는 걸음의 무게가 저 자격루만큼 무겁구나 하고 느끼면서 발걸음마다 알지도 못하는 장영실을 새기면서 걷는다
장영실이 아주 쉽게 송재근으로 바뀐다
민희는 오늘 그 남자를 볼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심리로 성재씨를 만나러 나온 속내를 들켜버린 자신이 부끄러웠다
민희는 그 남자에게 못된짓한걸 생각하니
'미웠을꺼야
암, 밉고 말고.
잊자 지나간 과거일뿐이야
다시 그남자를 볼수있다는건 생각조차 할수 없는일인거야'
애써 , 장영실과 세종대왕 역사를 떠올리며 잊어보려는던 마음이 슬프다
헌책방이 늘어선 청계천을 걸으며 밖에 쌓아놓은
낡은 책들이 꼭 날 닮았구나 싶은
허탈감이 밀려와 추운 날씨는 아닌데
그냥 몸이 으슬으슬 거린다
조금씩 날리던 눈발이
굵어지기 시작 하고 함박눈이 되어 민희 머리에 쌓인다
민희는
사각형 보도불럭을 디디며
디딤돌 사이에 난 금을 밟지 않으려 애쓰며 걷는 민희 모습을 누가보면 우스웠을것 같은데도
사방치기하듯 조심스레 발을 놓고 모든 신경을 사각형 보도 블럭으로 쓸어넣는다
어떤 남자가 지나면서 민희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다가 되돌아와
"저기, 아가씨 나와 술한잔 어때"
약간 취기가 있는듯한 목소리의 남자가
민희의 팔을 붙잡는다
"왜 이러세요 놓으세요"
민희가 뿌리쳤지만
남자는 민희의 팔을 더 세게 잡고
"거, 되게 비싸게 구네
이런 날 혼자서 걷고 있다는건
실연 당한거 아냐?
나두 내애인이랑 쪽 났거든
쪽난 사람끼리 좀 재미보자구"
하며 히죽거린다
민희는 팔을 뿌리치려 했으나
워낙 남자의 손아귀가 세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아주 짧은 순간이였다 누군가의 발길질에 나자빠져 뒹굴며 얼굴을 감싸고 있는 불량배같은 남자가
"에이쿠~! 사람죽네"
하며 엄살을 부리다가
단단한 체격만 보아도 한눈에 체육인이라는걸 알아차릴수 있는 몸에 주눅이 들었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고 서있는 남자의 눈이 무서웠던지
아무말도 못하고 슬금거리며 사라져간다
그 남자가 다가와 민희를 일으켜 세우며
"그러게, 왜 혼자 거리를 걷는거야
그러니 저런 놈에게 희롱 당하잖아"
하며 일으켜세워 꼭 안아주며 안심 하라고 다둑이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민희가 죽을때까지 잊을수 없는 익숙한 목소리
안겨 있기만 해도 세상을 다 갖은듯한 넓고 따스한 품이 민희를 안고 있다
세상을 다 내어 줄 수 있는
그 남자만이 갖고 있는 민희의 품이다
민희는그리웠던 품안에서 그동안 보고파 참고 지낸 설음들을 쏟아내며 그 남자 품안에서 한참을 흐느낀다
바보야,왜그랬어
너도 나없이 못살면서 왜 그랬어 바보"
그의 커다란손이 민희의 눈물을 닦아 내리며
뜨거운 입맞춤을 한다
사람들이 지나다 쳐다보는것도
의식이 안되는 두사람
그렇게 청계천 4가 헌책방 앞에서 얼마나 포옹하고 있었는지 정지된 시간 속에서
십년을 다 녹여 낸 두사람
그들에겐 십년세월에 단 한번의 이별도 없었던거다
계속 이어진 만남이였던거다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은 둘 다 하지 않았다
그 남자가 민희의 얼굴을 보며
"희야! 크리스마스니까
명동 영양쎈타 전기통닭구이 먹으러갈까? 갑자기 통닭이 땡기네 크리스마스니까 칠면조대신 통닭 먹으러가자 나 배고파"
예전 민희아이둘하고 자주가던 영양쎈타를 기억하고 있는 남자가 익살스레 민희어깨를 감싸고 가자한다
"언제, 우리가 헤어졌기나 했어
우린 쭉 만나왔던거야
꿈에서라도 너와난 늘 하나 였어"
남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민희 귓속으로 들어와
둥지를 튼다
남자의 목소리가 슬프게 메아리쳐 민희 귓바퀴를 맴돈다
남자는 그동안 민희를 찾는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시드니에서 하던일을 마무리 하는데 어쩔수없이 몇년이 걸렸지만 민희를 단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민희와 떼어놓기위해 첫째형이 짜놓은 무대였지만
그 남자는 돈이나 명예보다도 오직 민희 뿐이였다
한국에 오자마자 민희를 찾았었다
찾을수 있는 방법은
민희의 아들이 전학 간 곳을 알아내는것 뿐이였다
겨우 일년전 간신히 민희아들이 전학간 학교를 알아내고 몰래 따라가 민희가 살고 있는곳을 알아내었다
그동안 민희를 숨어서 훔쳐보기만 하고
이젠 다시 놓치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보고싶어도 꾹 참고 결혼해서 살 준비를 하고 있는중이였다
그래서
친구 성재가 민희를 만났다해도 빙긋 웃고 말았던거였다
민희는
그 남자의 품에안겨 걷는 명동길이 조금전과는 아주다른 하늘과 땅차이인 기분으로 하늘이 날 잊지 않았구나 싶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했다
비록 한번만 보고 또 헤어진다해도 이 순간이 좋았다
민희는 그 남자와 평생을 살꺼라는 맘먹어본적은 전혀없다
상점에서 나오는 불빛들이
이런 민희 마음을 아는듯
더 밝게 반짝였다
민희는 마치 꿈길을 걷고 있는것 같았다
꿈인가 싶어 키 큰 그 남자를 올려다보니 구렛나루에 약간 수염을 기른것 말고는
달라진게 없는 그의 평온한 얼굴이
민희 볼에 사랑의 표적을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그 의 강렬한 눈빛이 꿈이아닌 현실임을 일깨워준다
지나간 날들을 주고받으며
밤은 어둠의 베일속으로
사라져간다
사보이호텔 VIP룸에서
크리스마스 축배를 드는 두연인
와인잔에 백포도주를 따르고 러브샷을 하는 두연인은
운명같은 만남인가
남자가 말한다
"그 무엇도 우릴 떼어놓을순 없어 "
나보다 더 날 더 사랑하는 남자
'이 남자를 사랑해도 될까?'
민희는 불안한 마음이들어
남자 품으로 숨어들었다
민희의 마음을 아는듯
남자가 말한다
"우리 다음달에 자기 아들 둘하고 같은집에서 자고 먹고 하자
우리 네식구는 떨어질 수 없는 가족이니까"
민희는 내게 이런 행복이 와준건 죽은 남편의 선물인걸까
'나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건가요'
그 남자의 따스한 손길에
민희의 고르지못한 호흡들은 파도가 되고 민희는 작은 갈매기가 되어 높이 높이 날아오른다
그 남자에게서
아카시아 향기가 난다
어릴적 연희동 오솔길을 지날때 나던 아카시아꽃 향기가 그 남자에게서 난다
"재근씨, 사랑해요"
"희야,내목숨 다할때까지 사랑해"
그 남자는
민희의 머리끝부터 발끝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모두 읽어 내는
또 하나의 민희였다
그 남자 품안에서 행복한 꿈을 꾼다
민희는 서둘러 학원을 정리 했다
후배에게 싼값에 넘겨주고
다음달
그 남자의 아파트로 이사하기로 했다
그 남자와 합가 하기전에 일본에 사는 시부모님을 찾아뵙고 허락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남자와 아들 둘을 데리고 일본에 갔다
시부모님이 민희를 반겨 준다
"저와 결혼할 사람입니다
아이들 아빠가 되어줄꺼예요"
시부모님이 남자에게 말한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아이들은 이곳에서 우리가 키울테니 둘이 행복하게 잘 살아요
아이들이 있으면 그 쪽 집안에서 우리 며느리를 받아주기 힘들껍니다"
남자가 말한다
"아닙니다
제가 아드님대신 훌륭하게 잘 키우겠습니다"
시부모님은 민희를 바라보며
아이들은 일본에서 교육하고 싶다고 하신다
그리고 자주 와서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 되지않겠냐 한다
민희는 아이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서 당황스럽다
"1년만 같이 살아보고 정 아니다 싶으면 아이들을 보낼게요"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자"
일본에서 일주일을 지내면서
그 남자와 아이들은
더욱 가까워졌다
그 남자는 운동이란 운동은 못하는게 없다
아이들과 테니스도 치고
태권도도 가르쳤다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수영까지 거의 프로 였다
스포츠만능인 그 남자는 아이들에게 인기만점이였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상한마음으로 대했다
하루종일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이지않는다
오랫만에 행복해하는 아이들은 새아빠에 대해 관심도가 높았다
그 남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빠가 되기위해 진심을 다했다
그 남자와 아이들은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 눈뜨면 그 남자를 먼저 찾는다
아빠없던 반쪽 가슴을 그 남자에게 열어놓은
아이들은 그 남자가 없으면 안 될것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한국에 돌아와
그 남자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 남자의 아파트는 방이 네개였는데
두 아들방을 따로 만들어
큰아들 작은아들의 취향을 살려 아이들 마음에 쏙들게 꾸며놓았다
그 남자의집에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되는 시간들이 꿈처럼 흘러갔다
1년이 지나갔다
아이들은 성장했고
남자는 변함없이 민희와 아이들을 사랑했다
그렇게 또 1년이 지나갔다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중소기업 경영학을 전공하고
반도체 연구업체에서 미래 과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아이들의 의사를 존중해서 내린 결론이였다
할 일 없어진
민희는 틈틈이 어릴때부터 좋아하던 그림을 그렸다
세계 명작 동화속 주인공을 그리는걸 좋아해서
집 벽에는 인어공주 백설공주
해와달이 된 남매 그림등
그림동화로 가득 하다
그 남자는 민희의 꾸밈없는 성격에서 나오는 순수의 그림동화를 감상하며
"당신은 최고야,
당신보다 더 잘 그리는 화가를 못봤어
세상에서 당신 그림이 최고야
여보 사랑해 "
늘 신혼같은 시간을 보내며
둘은 행복했다
그 남자는 사랑꾼이였다
민희는 산부인과 수술대 위에 누웠다
몇 번이고 유산을 안하고 싶은 마음이 유혹 했지만
그 남자의 아이를 낳는다는게 자신이 없는 민희는 이제 삼개월 된 아이를 죽이고 있다
이번이 두 번째 수술이다
물론 그 남자는 모른다
'아가야! 나보다 좋은엄마를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려므나
미안해 미안해'
민희는 세상빛을 못보고 떠나는 아이와 작별하며 하나 둘 셋...정신을 잃고 일어나 보니 회복실로 옮겨져있었다
그 남자가 어두컴컴한 거실에 앉아 울고 있다
그 남자는 민희가 산부인과에 갔다온걸 알고 있다
민희에게서 맡아본적 없는 소독 냄새가 사실을 말해 주었다
남자는 아무말 없이 민희를 침대에 눞혀놓고 잠든사이 거실에 나와 혼자 울고 있었던거다
문을 열고 나온 민희의 기척을 느끼자 아무일없다는듯 밝은얼굴로
"잠깼어?
좀 누워서 쉬지
피곤해보이던데"
민희는 그 남자의 숨겨진 슬픈 얼굴을 보았다
"자기야! 정말 미안해
난 아직 자기아이를 키울 자격이 없어
그래서 ..."
남자가 다가와 민희의 입술에 키스를 하며 민희의 다음말을 닫아버린다
"괜찮아
난 민희만 있으면 돼
우리 아들 둘 있잖아
많이 아프지?
어서 누워있어"
당신 몸 좀 괜찮아지면
우리 여행가자"
남자는 애써 슬픈 감정을 삼키고 화제를 돌린다
민희는 그 남자와
나란히 앉아 바다를 보고 있다
동해 17번국도를 타고 내려가다 속초 못미쳐 둘째형 별장이 있다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위에 하얀집같은 예쁜 별장이다
갈매기떼가 해변가 모래밭에 모여 있다
몇마리만 하얀 물거품을 토해내는 파도위를 날고 있다
갈매기를 바라보는
민희의 눈길에서 무언가를 읽은 그 남자가 말한다
"넌센스 문제 낼게 알아맞혀봐
학이 논에 서있는데 다리 하나를 들고 서있는거야
다리 하나만 들고 서있는이유가 뭘까 알아 맞춰봐"
민희가 아이처럼 활짝 웃는다
"그건 두다리 다 들면 넘어지니까 하나라도 들고 있는거야 ㅎㅎ"
별무리들이 지켜보는
밤하늘 아래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남자가 기타 독주회를 준비했다
안락의자에 앉아
그 남자의 기타연주와 노래를 들으며
'그래, 이순간은
행복하잖아 그럼 된거지 뭐"
8. 그 남자는 어느 하늘아래
동해에서 일주일간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지 며칠 안되어 큰 형의 호출이라며
"빨리 갔다올게 나 없다고 울지말고 영화라도 보고 있어"
민희를 위해 빔프로젝트를 연결해 방하나를 영화관으로 만들어 놓았다
영화 테이프들이 한쪽 벽을 채우고 있다
"애마부인, 변강쇠 그런 애로물 말고 건전한 영화 골라서 보고 있어"
남자가 장난기 웃음을 보이며 집을 나선다
저녁이 되고 밤이 되어도
그 남자가 안 온다
민희는 불안했다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안받는다
며칠동안 민희는 잘수도 없고 먹을수도 없었다
텔레비젼을 켰다
뉴스가 흘러나온다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화면에 나타나고 사망자 부상자가 속출한 참혹한 장면이 나온다
혹시?
아니야 아니야
민희는 텔레비젼을 끄고
그 남자의 둘째형에게 전화를 건다
그 남자의 둘째형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전해온다
"재근이와 큰형이 사고를 당했는데 서울대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중입니다
상황은 지켜봐야 할것 같습니다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
'하늘이시여!
이 남자마져 데려가시려나요
제가 포기 할게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차라리 저를 데려가 주세요'
민희의 울부짖는 소리가 영화 '갯마을' 주인공 해순이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은 상수를 끌고 망초꽃 잔뜩 핀 곳으로 데려가 울면서 돌무더기 만들던 여주인공 해순이의 울음을 운다
한달여 지났다
민희는 바짝 여위어 뼈다귀가 걸어다니는것 같았다
서울대 병원앞에서 하루종일 서 있다가 돌아오곤 했다
둘째형이 전화가 왔다
뇌를 많이 다쳐 미국에 가서 수술 받기 위해 떠났다고
그 남자와 두번째 이별을 받아들이기 힘든 민희는 점차 쇠약해져 갔다
쑥 들어가 뀅한 눈에 가슴은 앙상한 갈비뼈만 남았다
일년
이년
삼년
사년
오년...
당신은 어느하늘 아래서 무얼하고 있나요?
세월은 무심히 흐르고
민희는 일본 시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 남자의 집을 그 남자의 누나가 이사오겠다는 통보를 받고 행복했었던 시간들이 채워져 있는 아파트를 비워줘야만 했다
그 남자가 없는 한국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년간 일본에서 아이들과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논현동에 종합 음악학윈을 개원했다
다시 민희는 원장이 되었고
원생들과 지내는 시간을 즐기며 상처를 회복해갔다
그 남자는 어느 하늘아래 살고 있을까 ?
살아는 있는걸까?
민희는 그 남자의 소식을 알고 싶었다
그 남자 가족에겐
전화를 할수 없었다
좋치않은 소식을 그 남자가족에게 들을 순 없었다
그 남자 가족들에겐 민희는 아주 작은 여자였다
그 남자의 친구 연합기자 성재가 생각났다
전화를 한다
전화를 받는다
길상사는 한때 기생이였던 김영한이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법정스님에게 시주한 곳이다
한때 대원각이란 간판을 걸고 일본인들을 상대로 기생관광 요정으로 이름을 떨쳐 외화를 긁어모은 곳인데 그당시에도 싯가 천억원가치가 되는재산을 선뜻 법정스님에게 시주하며 절을 지어주길 김영한이 더 간청했다
법정스님은 십여년간 생각해보고 그녀의 부탁을 받아들여 길상사라는 절을 건축하게 된다
길상사에 들어서면 요정을 개조해서인지 절이란 생각보다는 작은 고궁을 걷는 느낌이든다
법정스님과 김영한의 혼이 곱디고운 단풍잎에 살아나는 듯한 향기로운 곳이어서 민희는 길상사내에서 시간보내는걸 좋아했다
갇힌듯한 다방보다는 단풍이 곱게 물든 길상사를 택했다
성재와 나란히 걸으며
민희는 성재가 결혼해서 아이가 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행복해보이는 성재에게서
그 남자의 아이를 두번이나 지운 자책을 지우고 싶어 기와장 위에 떨어진 단풍잎을 주워 본다
"민희씨 재근이 소식이 궁금한거지요
그 녀석 딸하나 아들하나 낳고 미국에서 잘 살고 있어요"
머리와 척추를 심하게 다쳐 미국 메이요클리닉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투병중 세브란스 병원에서 파견 나온 인턴이 그녀석을 살렸답니다
그녀의 극진한 간호로 기적적으로 회복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는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민희에게 그남자가 말했었다
"희야 우리 아이 둘만 낳자 아들은 보람이 딸은 지혜라고 이름 짓자" 했었는데
그 남자 아이 이름은 뭘로 지었을까?
질투가 나는것도 아닌데
그 남자 아이들 이름이 궁굼해졌다
보람이 지혜라고 지었을까?
성재에게 아이들 이름을 물어보려다 그만 두었다
김영한이 시인 백석과 거닐었다는 뜰에 작은 국화가 하얗게 웃고 있다
흰국화가 민희 마음속을 비집고 들어온다
어디선가 가야금소리가 들리는듯 하여 민희는 숨을 고르고 귀를 기울였다
슬픈 곡조의 가야금소리가
민희 가슴골을 타고 내리다가
명치끝에서 걸린다
기생 김영한의 넋이 가야금줄을 튕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책 하나에 감명받고 이 큰 저택을 내어 준 대단한 여인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죽어서도 이름을 남긴 멋진 여인이다
2부를 마치며
(에필로그)
그 남자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세지
당신 덕분에
행복한 시간들이
제마음에 사랑나무가 되어 잘 자라고 있어요
당신이 떠났어도
나는 날마다 사랑나무에서 사랑을 따다가
내 침실 천장에 걸어놓아요
흔들거리는 사랑을 보다가
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면
당신이 온 것 같아 심장이 뛰는건 어쩔수 없어요
처음 당신을 봤던 날
나는 아이둘 딸린 과부라고 하면서 거절 했을때
당신이 말했지요
그럼 아무하고나 결혼해서 아이둘 낳고 헤어지면
똑같은 처지가 되니까 받아줄꺼냐고 어깃장을 놨었지요
아니요
아이둘 낳고 오지 말아요
그냥
그대로 행복하게 잘 살아요
우리사랑은 이대로가 좋아요
끝이 없는 사랑이니까요
내마음의 사랑꽃이 지지 않아요
이별없는 사랑이니까요
당신이 날마다 찾아와 품에 안아주고 나즈막히 노래를 불러주거든요
'그대 사랑하는 난 행복한 사람 '
당신이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며 늙어가고 있어요
당신도 나처럼 어느 하늘 아래서 나이들어가겠지요
혹
먼훗날 길거리에서 만나도
아는척 하지 마세요
지금 기억속에 살고 있는 그대는 삼십대 청년이니까
늙어 주름진 얼굴로 아는체 말아요
늙은 당신을 어찌 기억하겠어요
오늘은
당신과 자주가던 인사동에 갔어요
찻집에 가서 대추차도 마시고
개량한복집에서 편안한 원피스도 샀는데
얼마나 이쁜지 몰라요
당신이 봤으면
울애기 참 이쁘네 하면서 안아주었을텐데
손을 내밀면 바람이 된 당신이 내손끝을 만져요
그러면
아직도 내몸엔 전율이 흐르는걸요
당신은 어느하늘아래서
행복할까요
나도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당신이 내게 아낌없이 베풀었던 사랑을 아끼고 아껴서 조금씩 꺼내먹으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당신을 영원히 볼수 없어도
예전에도 그랬듯이
우린 이별하지 않았거든요
매일 매일 같이 살고 있는걸요
당신이 조금도 보고싶고 그립지 않아요
앞으로도 죽을때까지 당신을 찾지 않을꺼예요
그러니까 행복하게 잘 살아요
-민희가 어떤 남자에게-
민희는 그 남자에게 수신인 없는 마지막 편지를 썼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인사동길을 걸으면서 그 남자를 본다
동해바다 동명항 바닷길을 걸으면서도 그 남자를 쏙빼닮은 아이와 모래밭에서 장난치며 놀고 있는
그 남자의 행복한 모습을 본다
명동성당에서 생머리를 늘어뜨린 단아한 여인과 아이둘을 데리고 미사드리는 그 남자의 모습도 가끔 본다
계절은 가고 또 오고 또 가는데
민희는 그 남자와
살고있다
♡처녀작 어떤사랑을 읽어주신 님들 모두 행복 하세요 ♡
첫댓글 조금 수정해서 다시 올렸습니다
낮에 일하다 좀 쉬는시간에 써내려간 글이라 오타도 있고 순서가 바뀐글도 있어서 수정해 봤습니다
언제 시간 날때 천천히 읽으면서 고칠부분이 보이면 또 수정하게 되겠지만요
요즘은 진짜 바쁘게 일하고 있어서 편히 않아 글 쓸시간이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