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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이다.
그들의 질문은 두 가지이다.
제자들은 성전의 멸망과 세상의 마지막을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하고 질문하였다.
예수님은 질문에 단순히 날짜를 알려 주지 않으신다.
오히려 종말을 살아가는 제자의 태도에 초점을 맞추신다.
그래서 이 설교는 미래의 사건보다 현재의 삶을 준비시키는 말씀이다.
Ⅱ. 종말의 시작과 제자의 삶 (13:5-13)
A. 미혹을 경계하라 (5-6절)
예수님의 첫 번째 명령은 "미혹을 받지 말라"이다.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타나 많은 사람을 속일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종말의 첫 번째 특징은 전쟁이나 재난보다 영적 미혹이다.
예수님은 종말의 징조보다 진리를 분별하는 능력을 먼저 강조하신다.
신앙은 놀라운 현상보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야 한다.
시대가 혼란할수록 더욱 말씀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B. 전쟁과 재난은 시작일 뿐이다 (7-8절)
예수님은
이 일어나지만 "끝은 아직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재난의 시작"은 원문에서 해산의 고통이라는 의미이다.
출산의 고통은 생명의 탄생을 위한 과정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혼란은 하나님의 계획이 무너졌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두려움보다 소망을 가져야 한다.
C. 핍박 가운데 복음을 증거하라 (9-13절)
제자들은
앞에 서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그들에게 증거하기 위한 기회"가 된다.
성령께서 필요한 말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핍박은 복음이 실패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복음이 세상 가운데 증언되는 통로가 된다.
하나님은 환난 가운데서도 자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며 성령으로 함께하신다.
Ⅲ. 큰 환난의 도래 (13:14-23)
A. 멸망의 가증한 것 (14절)
"멸망의 가증한 것"은 다니엘서에서 가져온 표현이다.
이를
으로 해석하는 견해들이 있다.
공통점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절정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가장 큰 영적 위기를 경험할 것을 미리 알려 주신다.
그러나 미리 말씀하신 목적은 두려움을 주기보다 준비시키기 위함이다.
B. 즉시 피하라 (15-18절)
예수님은 반복하여
고 말씀하신다.
이는 환난의 긴급성을 보여 준다.
순종은 지체하지 않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경고를 들었을 때 즉시 반응하는 것이 믿음의 모습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해야 한다.
C. 전무후무한 환난 (19-20절)
이 환난은 역사상 가장 큰 환난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위해 환난의 기간을 제한하신다.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비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환난은 통제되지 않은 혼란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
D. 거짓 그리스도를 조심하라 (21-23절)
거짓 그리스도들은
를 행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려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미리 너희에게 다 말하였다"고 하신다.
기적이 곧 진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참된 신앙은 말씀에 근거한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의 예언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짓된 가르침에 흔들리지 않는다.
Ⅳ. 인자의 재림 (13:24-27)
A. 우주의 변동 (24-25절)
이 표현은 구약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새 시대의 도래를 묘사할 때 사용한 묵시적 언어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라 우주적 사건이다.
모든 피조세계가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 변화된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완성을 동시에 나타낸다.
B. 인자의 영광스러운 재림 (26절)
인자는 "큰 권능과 영광으로" 구름을 타고 오신다.
이는 다니엘 7장에 예언된 메시아의 모습을 성취하는 장면이다.
예수님은 초림에서는 종의 모습으로 오셨지만 재림에서는 만왕의 왕으로 오신다.
재림은 패배한 메시아가 아니라 영광 가운데 승리하시는 왕의 등장이다.
C. 택한 자들의 모음 (27절)
천사들이 사방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모은다.
이는 구원의 완성과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회복을 의미한다.
재림은 믿는 자에게 두려움의 날이 아니라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다.
흩어졌던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Ⅴ. 깨어 있으라는 결론 (13:28-37)
A. 무화과나무 비유 (28-31절)
무화과나무에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운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말씀하신 징조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하신다.
징조는 날짜를 계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도록 주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B.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32절)
예수님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선언하신다.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며,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이는 종말의 시기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아래 있음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종말 신앙은 날짜를 맞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오시더라도 준비된 삶을 사는 것이다.
미래의 시기를 아는 것보다 현재의 충성이 더 중요하다.
C. 깨어 있으라 (33-37절)
이 단락에서는
라는 명령이 반복된다.
예수님은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비유를 통해 항상 준비된 종의 모습을 가르치신다.
마가복음 13장의 마지막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다.
예수님은 종말의 시기를 계산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대신 항상 깨어 믿음을 지키고, 맡겨진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 가운데 기다리는 삶을 살라고 권면하신다.
이러한 '깨어 있음'은 단순히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말씀에 순종하고 복음을 증언하며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제자의 삶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가복음 13장은 미래의 사건을 설명하는 예언서라기보다,
종말을 살아가는 제자의 삶의 방식을 가르치는 제자도 설교라고 이해할 수 있다.
깨어 있는 제자의 삶
본문 : 마가복음 13:1-37
사복음서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만, 각 복음서는 서로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약속된 왕이신 메시아로 소개합니다.
그래서 산상수훈과 천국 비유처럼 "하나님 나라"와 "왕의 권위"를 강조합니다.
마태복음을 읽다 보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반면 마가복음은 조금 다른 시각으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마가는 예수님을 고난받는 종으로 그리며, 그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서는 제자들이 자주 실패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누가 큰 자인가를 다투며,
심지어 십자가 앞에서는 모두 도망갑니다.
왜 마가는 제자들의 연약함을 이렇게 솔직하게 기록했을까요?
그 이유는 마가복음이 완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을 배우며 끝까지 따라가는 제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의 중심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8장 34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이 말씀이 마가복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아는 사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길을 함께 걷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기적보다 제자의 순종,
예수님의 능력보다 제자의 헌신을 더 깊이 묵상하도록 이끕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13장을 읽으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종말의 시간표'를 알려 주는 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장을 읽으며 전쟁, 지진, 환난, 적그리스도와 같은 종말의 징조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당신은 어떤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질문에 날짜를 알려 주시는 대신, 반복해서 한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미혹되지 말라."
"인내하라."
"깨어 있으라."
결국 마가복음 13장은 종말에 대한 정보보다 종말을 살아가는 제자의 삶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미래를 계산하는 사람보다 오늘 충성하는 제자를 찾으십니다.
오늘 우리는 마가복음 13장을 통해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제자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13:5-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질문에 가장 먼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너희를 미혹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조금 의아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언제 성전이 무너집니까?", "세상의 마지막에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날짜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전쟁이나 지진도 먼저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바로 "미혹되지 말라."였습니다.
왜일까요?
마가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마가복음의 가장 큰 관심은 종말의 사건이 아니라 제자의 삶에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의 모습을 매우 솔직하게 기록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수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길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십자가를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만류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막 8:33)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길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메시아의 길을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미혹입니다.
미혹은 반드시 이단에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생각대로 예수님을 이해하려는 것,
십자가 없는 영광만을 원하고 희생 없는 축복만을 기대하는 것,
이것 역시 제자의 길에서 벗어난 미혹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계속해서 질문합니다.
"너희는 정말 나를 알고 있느냐?"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신 후에도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제자의 실패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에서 참된 제자도는 예수님을 바르게 알고, 그분의 길을 끝까지 따르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가복음 13장의 "미혹되지 말라"는 말씀은 단순히 거짓 그리스도를 조심하라는 경고를 넘어섭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 대신 다른 희망을 붙잡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를 미혹하는 것은 많습니다.
세상은 성공이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돈이 인생의 안전이라고 말합니다.
권력이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신앙 안에서도 십자가보다 축복만을 강조하고, 헌신보다 형통만을 약속하는 가르침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길을 걸으신 적이 없습니다.
마가복음의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 8:34)
그러므로 제자는 세상이 말하는 길이 아니라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마가복음에서 미혹되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래의 징조를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가까이하며 그분의 말씀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거짓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은 영광만을 약속하는 거짓 가르침에 속지 않습니다.
결국 종말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언제 주님이 오시는가?"가 아니라, "나는 오늘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 살아가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말씀하십니다.
"미혹되지 말라."
이 말씀은 시대를 두려워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어떤 시대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는 제자로 살아가라는 초청입니다.
2. 환난 가운데서도 복음을 증언해야 합니다. (13:9-13)
예수님께서는 미혹을 경계하신 후, 제자들에게 앞으로 닥쳐올 현실을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는 회당에서 매를 맞으며,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하기 위함이라."
우리가 기대하는 말씀은 "내가 너희를 고난에서 지켜 주겠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환난이 있을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환난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그들에게 증거하기 위함이라."
여기서 '증거'라는 말은 단순히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원래 이 단어는 훗날 '순교자(martyr)'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증언은 생명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마가복음이 말하는 제자도의 모습입니다.
마가복음을 읽어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편안한 삶을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십자가를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장에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고,
10장에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자의 길도 그 길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가는 이것을 여러 인물들을 통해 보여 줍니다.
열두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누가 더 큰 사람인지 다투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모두 실패한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그들은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을 증언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 갇혀도 복음을 전했고,
매를 맞아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결국 많은 제자가 순교를 통해 믿음을 증언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가가 말하는 제자도의 완성입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
더 나아가 예수님 때문에 고난받는 삶입니다.
우리는 '증언'이라고 하면 흔히 전도지를 나누어 주거나 복음을 설명하는 것만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증언은 삶 전체로 예수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정직해야 할 자리에서 정직을 선택하는 것,
손해를 보더라도 믿음을 지키는 것,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용서하는 것,
세상의 가치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복음을 증언하는 삶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하는 말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먼저 봅니다.
그래서 제자의 증언은 입술에서 시작하지만 삶에서 완성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초대교회와 같은 박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환경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정직하게 살면 손해를 보는 사회,
신앙을 드러내기 어려운 직장,
세상의 가치관이 교회 안까지 들어오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시대일수록 제자는 더욱 분명하게 예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환난을 피하는 방법을 먼저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환난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약속도 주셨습니다.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제자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마가복음은 우리에게 영웅적인 신앙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는 충성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참된 제자는 고난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마가복음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제자도의 모습이며,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삶입니다.
3.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13:28-37)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대한 긴 말씀을 마치시면서 한 가지 명령을 반복하십니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짧은 단락 안에서 '깨어 있으라'는 말씀이 여러 차례 반복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설교를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으셨던 결론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께서 재림의 시기를 말씀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사람들은 언제나 날짜를 알고 싶어 합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도 그랬고,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역사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 날짜를 계산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예수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신 질문에는 관심을 갖고,
예수님께서 반복해서 말씀하신 명령은 놓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언제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였습니다.
이것이 마가복음이 말하는 제자도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마가복음을 처음 읽는 독자들은 로마 제국의 박해를 받고 있던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재산을 잃고, 감옥에 갇히고,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큰 유혹은 믿음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조금만 더 견디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깨어 있으십시오."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깨어 있다'는 것은 잠을 자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항상 긴장하며 불안하게 살아가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성경에서 '깨어 있음'은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삶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집주인이 먼 길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각각 맡은 일을 맡기고 돌아오는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종은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릅니다.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새벽일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간을 아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오실 때 맡겨진 일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마가복음 전체를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마가복음에서 제자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도 실패했고, 열두 제자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실패한 제자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도 다시 그들을 부르셨고,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도록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깨어 있는 제자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넘어질 때마다 다시 주님께 돌아와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마가복음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천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왜 굳이 '베드로'를 따로 언급했을까요?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장 크게 부인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실패한 제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이것이 마가가 말하는 제자도입니다.
완벽해서 끝까지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 때문에 끝까지 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깨어 있는 삶은 특별한 일을 하는 삶이 아닙니다.
매일 말씀 앞에 서는 것입니다.
매일 기도하는 것입니다.
맡겨진 자리에서 충성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정직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맡겨진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바로 깨어 있는 삶입니다.
마가는 제자들에게 "언제까지?"를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끝까지."를 말합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의 제자도는 시작보다 끝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결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끝까지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으라."
이 말씀은 두려움의 명령이 아니라 소망의 명령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의 변화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 맡겨진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마가복음이 말하는 참된 제자는 화려한 신앙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미혹되지 않고, 환난 가운데서도 증언하며,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깨어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제자입니다.
마가복음 13장은 종말의 시간표를 알려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권면하십니다.
첫째, 미혹되지 마십시오. 말씀 위에 굳게 서십시오.
둘째,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증거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 일하십니다.
셋째, 항상 깨어 있으십시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하나님의 말씀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성전은 무너졌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변화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욱 신뢰해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 깨어 있으라."
주님의 다시 오심을 소망하며,
말씀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