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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길을 여셨다 (19–21)
↓
그러므로 우리는
→ 하나님께 나아가고 (22)
→ 소망을 굳게 잡고 (23)
→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돌아보며 (24–25)
이것은 단순한 개인 경건에 대한 권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사역 → 하나님과의 관계 → 공동체적 신앙생활이라는 논리적 흐름을 갖습니다.
A. 권면의 신학적 근거(19-21절)
19절 — “그러므로 형제들아”
본문은 “그러므로”(οὖν)로 시작합니다.
따라서 19–25절은 앞선 1–18장의 논의를 실제적인 권면으로 전환하는 부분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앞에서 반복적으로 그리스도의 제사와 피의 효력을 설명했습니다.
특히 10:14의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라는 선언이 19절 이하의 중요한 신학적 토대입니다.
19절의 핵심 : “담력”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에서 담력은 단순히 심리적인 자신감이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거리낌 없이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막/성전 체계에서는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한 임재에 아무나 자유롭게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특히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제한된 방식으로 들어가는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상황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습니다.
담력의 근거는 인간의 믿음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피가 효력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20절 : “새롭고 살아 있는 길”
20절은 19절의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설명합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여기서 중요한 표현이 “새롭고 살아 있는 길”입니다.
“휘장”과 “그의 육체”
히브리서의 상징 체계에서 성막의 휘장은 하나님의 임재와 인간 사이의 경계를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제 그리스도의 육체가 “휘장”과 연결됩니다.
이는 예수의 죽음이 단순히 죄를 용서하기 위한 대가 지불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던 장벽을 제거한 사건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따라서 20절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예수의 죽음 → 우리에게 생명의 길이 열림
즉,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하나님께 나아감을 가능하게 하는 생명의 길이 되었다.
“새로운”이라는 말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최근에 생겼다는 뜻만이 아니라,
이전의 제사 제도와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가리킵니다.
21절: “큰 제사장이 계시매”
19–20절에서 길이 강조되었다면, 21절에서는 그 길을 통해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제사장이 강조됩니다.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여기서 “큰 제사장”은 당연히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19–21절은 세 요소를 연결합니다.
| 구절 | 핵심 이미지 | 의미 |
| 19절 | 성소 | 하나님께 접근 |
| 20절 | 길/휘장 | 그 접근을 가능하게 한 그리스도 |
| 21절 | 큰 제사장 |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대표하시는 그리스도 |
이렇게 보면 22–25절의 권면이 왜 가능한지 명확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충분히 거룩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길과 제사장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B. 첫 번째 권면 — “하나님께 나아가자”(22절)
22절부터 문법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전환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핵심 동사는 “나아가자”입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
“참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위선이나 이중성을 버린 진실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온전한 믿음”은 단순히 믿음의 양이 많다는 뜻이라기보다,
그리스도의 사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확신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길을 여셨다 →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간다.
즉, 신앙생활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을 개선한 뒤 하나님께 접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마련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나아가는 것입니다.
“악한 양심”과 “몸을 맑은 물로 씻음”
이 표현들은 정결 의식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내적 정결을 나타냅니다.
히브리서 전체에서 반복되는 주제는 외적인 의식적 정결과 그리스도를 통한 내적 정결의 차이입니다.
따라서 22절은 단순히 “기도를 열심히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정결하게 하셨으므로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실제로 들어가자.
C. 두 번째 권면 — “소망의 고백을 굳게 잡자”(23절)
23절의 핵심 동사는 “굳게 잡자”입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여기서 강조점이 22절과 달라집니다.
22절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고,
23절은 이미 가진 소망을 붙드는 것입니다.
왜 “굳게 잡아야” 하는가?
히브리서의 독자들은 신앙 때문에 압박과 고난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히브리서에서는 계속해서 인내, 견고함, 뒤로 물러가지 않음이 강조됩니다.
23절에서 그 근거는 매우 중요합니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의 견고함은 우리의 의지력에 궁극적으로 달려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우리의 소망을 붙드는 근거입니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보면
22절 —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감
23절 — 소망으로 끝까지 견딤
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D. 세 번째 권면 — “서로를 돌아보자”(24-25절)
① 24절에서 시선이 하나님과 개인에게서 공동체로 이동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서로 돌아보아”입니다.
신앙은 개인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가고 소망을 굳게 잡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다른 신자들의 믿음과 삶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돌아보다”
여기서 말하는 관심은 단순히 “서로 잘 지내자” 정도가 아닙니다.
상대방이
를 의도적으로 살피는 것입니다.
즉, 신앙 공동체는 서로의 영적 상태에 무관심해서는 안 됩니다.
② 25절: 공동체적 실천의 구체화
24절의 “서로 돌아보자”가 25절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여기서 중요한 대조가 있습니다.
부정적 행동
모이기를 폐함
↕
긍정적 행동
서로 권함
그리고 그 이유가 이어집니다.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를 폐함”
이것은 단순히 교회 예배 한두 번 빠지는 문제를 지적하는 것보다 넓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의 상황에서 공동체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단순한 사회적 관계 단절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현상이었습니다.
그래서 25절은 공동체 모임을 신앙생활의 부수적인 요소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공동체의 모임은 서로가 서로의 믿음을 격려하고 견고하게 하는 통로입니다.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25절 마지막 부분은 종말론적 관점을 제시합니다.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기서 “그 날”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최종적인 구원이 완성되는 날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종말에 대한 기대가 공동체의 결속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해야 할 이유로 제시된다는 것입니다.
즉, 종말이 가까울수록 → 서로 더 격려해야 한다.
히브리서에서 종말론은 현실 도피가 아니라 현재의 인내를 위한 동력입니다.
세 권면의 평행 구조
22–25절은 매우 아름다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 구절 | 권면 | 방향 | 핵심 |
| 22절 | 하나님께 나아가자 | 위로/하나님께 | 믿음 |
| 23절 | 소망을 굳게 잡자 | 안으로/자신의 신앙 | 소망 |
| 24–25절 | 서로 돌아보자 | 밖으로/공동체를 향해 | 사랑 |
이를 신학적으로 표현하면 믿음 – 소망 – 사랑이라는 삼중 구조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을 고린도전서 13:13의 “믿음·소망·사랑”과 완전히 동일한 문학적 공식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히브리서의 직접적인 문맥에서는
하나님께 나아감, 소망의 견고함, 공동체적 사랑과 선행이라는 세 가지 신앙의 방향이 강조됩니다.
핵심 논리
히브리서 10:19–25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께 나아갈 새롭고 살아 있는 길이 열렸고,
우리에게 큰 제사장이 계시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소망을 굳게 붙들고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한다.
이를 논리적 흐름으로 그리면
그리스도의 희생
│
├── 우리에게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줌 (19)
│
├── 새롭고 살아 있는 길을 열어 줌 (20)
│
└── 큰 제사장을 주심 (21)
│
↓
그러므로
│
┌────────┼─────────┐
↓ ↓ ↓
하나님께 소망을 서로를
나아가자 굳게 잡자 돌아보자
(22) (23) (24)
│
↓
모이기를 힘쓰고 서로 권하자 (25)
│
↓
그 날을 바라보며 더욱 그렇게 하자
주석적·신학적 핵심
이 본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명령”보다 “근거”가 먼저 나온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먼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셨는가?”
→ 피로 성소에 들어갈 길을 열었다.
→ 휘장을 통과하는 새로운 길을 마련했다.
→ 큰 제사장이 계신다.
그리고 나서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하나님께 나아가라.
→ 소망을 붙들어라.
→ 서로를 돌보라.
따라서 이 본문은 윤리적 명령을 복음의 결과로 제시합니다.
특히 22–25절의 세 권면은 각각 고립된 명령이 아닙니다.
결국 히브리서 10:19–25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제사”에서
“신자의 지속적인 믿음 생활”로넘어가는 중요한 경첩(hinge) 본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바로 다음 10:26 이하에서 고의적인 죄와 배교에 대한 매우 엄중한 경고가 이어지기 때문에,
19–25절의 “나아가자–굳게 잡자–서로 권하자”는 단순한 권장사항이 아니라
공동체가 신앙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적극적인 대응이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예배
본문: 히10:19–25
서론 — 우리는 왜 함께 예배하는가?
오늘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그런데 한 번 질문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왜 함께 예배해야 합니까?
물론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런데 예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배는 공동체를 세우는 자리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믿음생활을 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내가”라는 말만큼이나 “우리”라는 말을 중요하게 사용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놀랍게도 “나아가자”, “굳게 잡자”, “서로 돌아보자”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특히 22절부터 25절까지는 세 가지 권면이 이어집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자.”
“소망을 굳게 잡자.”
“서로 돌아보자.”
이 세 가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예배의 중요한 방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간 사람은 소망을 굳게 붙듭니다.
그리고 소망을 붙든 사람은 혼자 살아가지 않고 서로를 돌아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제목으로 이렇게 정해 보았습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예배.”
오늘 우리의 예배가 단지 예배당에 모였다가 흩어지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우리의 믿음이 다시 세워지고,
서로를 붙들어 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1. 공동체를 세우는 예배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입니다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브리서 기자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나오기 전에 19절부터 21절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먼저 설명합니다.
19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입니다.
이것은 22절의 “나아가자”가 아무런 근거 없이 주어진 명령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를 말하고, 그다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순서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일하셨고, 우리가 그 은혜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의롭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가 충분히 거룩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했기 때문입니다.
1) 예배의 시작은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구약시대의 성막을 생각해 보십시오.
성막에는 성소가 있었고, 그 안쪽에는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였습니다.
그곳에는 휘장이 있었습니다.
그 휘장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죄 많은 인간 사이의 거리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죄인이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새롭고 살아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20절입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순히 우리의 죄를 용서받게 한 사건만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연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배할 때마다 우리는 먼저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오늘 예배드릴 자격이 있는가?”
이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하셨는가?”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나옵니다.
2) 예배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시간입니다
22절은 “하나님께 나아가자”고 말합니다.
예배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찬양을 잘 부르는 것,
설교를 잘 듣는 것,
기도를 오래 하는 것,
헌금을 드리는 것,
교회에 빠지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관통하는 중심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도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못했다면 우리는 예배의 중심을 놓친 것입니다.
반대로 몸은 지치고, 마음도 무겁고, 많은 것을 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 앞에서
“주님, 제가 왔습니다.”
“주님, 저를 받아 주십시오.”
“주님, 오늘도 주님을 의지합니다”라고 고백했다면 그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진 예배입니다.
오늘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지난 한 주간의 염려도 내려놓으십시오.
사람 때문에 받은 상처도 내려놓으십시오.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 제가 주님께 나아갑니다.”
이 고백이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3) 한 사람의 예배가 공동체를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이 공동체를 세우게 됩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면 하나님의 시선으로 사람을 바라보게 됩니다.
내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면, 자연스럽게 나에서 우리로 시선이 이동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사람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은 은혜를 경험하면 다른 사람을 용서할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께 위로받으면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를 세우는 첫 번째 길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 하나님을 진실하게예배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가정이 달라집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교회가 달라집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공동체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한 사람의 예배가 공동체를 세웁니다.
본론2. 공동체를 세우는 예배는 소망을 굳게 잡는 예배입니다
23절 말씀입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두 번째 권면은 “소망을 굳게 잡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배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합니다.
예배는 우리에게 소망을 다시 붙들게 하는 자리입니다.
1)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주 흔들립니다
우리의 믿음은 언제 가장 흔들립니까?
삶이 힘들 때입니다.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을 때입니다.
사람에게 상처받았을 때입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낙심합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가?”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시는가?”
“앞으로 무엇이 달라질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히브리서의 성도들도 신앙 때문에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전체에서 계속해서 인내하라, 견고하게 하라, 뒤로 물러나지 말라는 권면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그런데 어떻게 소망을 굳게 잡을 수 있습니까?
23절은 아주 중요한 이유를 말합니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의 소망이 확실한 이유는 우리가 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2) 예배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다시 기억하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변합니다.
오늘은 믿음이 충만하다가도 내일은 낙심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가까이 느껴지다가도 내일은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배가 필요합니다.
예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다시 기억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합니다.
“네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네 능력이 전부다.”
“환경이 네 미래를 결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신다.”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신다.”
“하나님은 너를 버리지 않으신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고 나면 현실이 당장 바뀌지 않아도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달라집니다.
문제가 사라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폭풍이 멈추지 않았지만 배 안에 주님이 계심을 믿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이것이 예배의 능력입니다.
3) 소망을 가진 사람이 공동체를 세웁니다
그런데 소망은 나만 가지고 있으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내가 소망을 얻었다면 그 소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말하지 않아도 힘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웃고 있지만 속으로 울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배드리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큰 걱정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괜찮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제가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힘내십시오.”
“우리 같이 갑시다.”
이 짧은 말 한마디가 사람을 다시 일으킬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받은 예배의 은혜는 바로 그것을 위해 주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를 세우는 예배는 나에게 소망을 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가 받은 소망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예배입니다.
본론3. 공동체를 세우는 예배는 서로 돌아보는 예배입니다
이제 세 번째 권면입니다.
24절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여기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22절에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자.”
23절에서는 소망을 바라봅니다.
“소망을 굳게 잡자.”
그리고 24절에서는 서로를 바라봅니다.
“서로 돌아보자.”
이것이 공동체를 세우는 예배입니다.
1) 예배는 나만을 위한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나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은혜받았다.”
“오늘 말씀 좋았다.”
“오늘 찬양이 좋았다.”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내가 은혜받았다면 이제 옆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내가 살아났다면, 이제 다른 사람도 살아나도록 도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공동체적입니다.
우리가 함께 찬양할 때 서로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함께 기도할 때 서로의 믿음을 봅니다.
함께 말씀을 들을 때 같은 진리를 붙듭니다.
함께 식사하고 교제할 때 서로의 삶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세웁니다.
2) “서로 돌아본다”는 것은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서로 돌아본다”는 것은 단순히 지나가면서 “잘 지내시죠?”라고 묻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영혼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요즘 믿음생활은 어떠세요?”
“기도 제목이 있습니까?”
“제가 무엇을 위해 기도해 드릴까요?”
“힘든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이렇게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동체 안에서 사람은 보이지 않게 지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를 빠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한 번입니다.
그다음에는 두 번입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공동체와 멀어집니다.
그래서 25절은 말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모이는 것은 단순한 의무가 아닙니다.
서로를 붙들기 위해 모이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떠나면 우리는 혼자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쉽게 지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서로 모이고, 서로 권하고, 서로 붙들라고 말씀합니다.
3)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24절을 다시 보십시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여기에서 공동체의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서로 돌아보는 이유는 서로의 약점을 찾아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누가 잘못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쉽게 평가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저 사람은 믿음이 부족해.”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하지만 복음적인 공동체는 다릅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세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이것이 서로 돌아보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이런 문화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누군가 잘하면 함께 기뻐하고,
누군가 넘어지면 일으켜 주고,
누군가 지치면 쉬어갈 수 있게 하고,
누군가 낙심하면 다시 소망을 붙들도록 도와주는 공동체.
그런 공동체가 건강한 공동체입니다.
4)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25절 마지막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기서 “그 날”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을 바라보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종말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주어진 명령이 무엇입니까?
더 모이라는 것입니다.
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더 격려하라는 것입니다.
더 서로를 붙들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마지막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긴 경주입니다.
그리고 긴 경주를 달리는 사람에게는 함께 달리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마라톤을 생각해 보십시오.
혼자 달리면 힘들 때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옆에서 함께 달리는 사람이 있으면
“조금만 더 갑시다.”
“힘내세요.”
“우리 함께 갑시다”하면서 끝까지 달릴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혼자 천국까지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갑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서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결론 — 함께 세워져 가는 공동체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그 예배는 동시에 공동체를 세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공동체를 세우는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새롭고 살아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우리의 상처를 가지고 나아갑시다.
우리의 실패를 가지고 나아갑시다.
우리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나아갑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예배합시다.
둘째, 소망을 굳게 잡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상황은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도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속하신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붙듭시다.
그리고 내가 받은 소망으로 다른 사람을 격려합시다.
셋째, 서로 돌아보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당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맙시다.
옆에 있는 성도를 바라봅시다.
그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져 줍시다.
기도해 줍시다.
격려해 줍시다.
필요하다면 손을 잡아 줍시다.
그리고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갑시다.
우리 교회가 어떤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사람이 많기만 한 교회가 아니라,
서로를 세워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드리고도 외로운 사람이 없도록,
힘들 때 찾아갈 사람이 있도록,
믿음이 흔들릴 때 붙잡아 줄 사람이 있도록,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플 때 함께 울어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예배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고,
함께 소망을 붙들고,
서로를 돌아보는 예배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예배가 끝난 뒤에도 예배의 은혜가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오늘 내가 누구를 격려할까?”
“오늘 내가 누구에게 사랑을 보여줄까?”
“오늘 내가 누구를 위해 기도할까?”
생각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예배는 한 시간의 예배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되고, 그 삶을 통해 공동체가 세워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나아갑시다.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소망을 굳게 잡읍시다.
서로 돌아봅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서로의 손을 놓지 맙시다.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의 예배가 우리의 믿음을 세우며,
우리의 예배가 우리의 공동체를 세우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자.
소망을 굳게 잡자.
서로 돌아보자.”
이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서로를 세워가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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