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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 강좌 제9강-1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9. 23 -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諸佛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 我弟子等 講論三藏 唯願三寶
爲作證明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是我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隅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意
그 동안 공부를 한다고 했는지 어느새 이렇게 회향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은 짧았지만 법화경의 중요한 부분은 여러 번 짚고 넘어갔지요. 그러나 사실 시간이 많으면 중송 부분도 하나, 하나 새겨가면서 그 속에 있는 깊은 뜻을 음미하고 하면 좋았겠지만, 또 다른 공부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것으로서 법화경을 앞으로 깊이 공부하는데 안내역할 정도로 생각해도 좋을 듯합니다. 아무튼 제가 법화경을 강의 하면서 법화경을 너무 깊이 강조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법화경을 알고 보면 그렇게 깊이 강조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경전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이전에 법화경없고, 법화경이후에 법화경없다. 이렇게까지 말할 수가 있고, 이어 경중의 왕이라고 하는 경안에서도 그런 말을 했지만 한 권으로써 불교의 다양한 사상이 가장 완벽하게 실려 있는 경전은 법화경이다. 그래서 법화경을 그렇게 침이 마르도록 칭찬 할 수밖에 없다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법화경의 주된 사상 人佛思想(인불사상)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그런 내용을 위주로 되어있는데, 그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내용이 오늘 공부할 20째 품 상불경보살품입니다. 항상 常자. 아니 不자. 가벼울 輕자. 항상 사람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존경합니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받들어 모십니다. 존경하고 받들어 모십니다. 하는 그런 뜻이 不輕이라는 뜻입니다. 번역을 하다보니까 常ㆍ不ㆍ輕. 이렇게 했지만 사실 내용은 항상 사람을 받들어 모시고 존경하고 그저 위해서 살겠습니다. 하는 그런 정신을 가진 보살님. 이런 뜻이지요.
제20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
一 법화경의 죄와 공덕
爾時佛告得大勢菩薩摩訶薩(이시불고득대세보살마하살)하사대
汝今當知(여금당지)하라 若比丘比丘尼(약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의 持法華經者(지법화경자)를
若有惡口(약유악구)로 罵詈誹謗(매리비방)하면
獲大罪報(획대죄보)하대 如前所說(여전소설)하고
其所得功德(기소득공덕)은 如向所說(여향소설)하야
眼耳鼻舌身意淸淨(안이비설신의청정)하리라
법화경의 죄와 공덕. 해서 여기는 법화경을 비방하면 이러한 죄가 있다 하는 그리고 이러한 공덕이 있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우선 첫 구절이니까 보겠습니다.
爾時佛告得大勢菩薩摩訶薩(이시불고득대세보살마하살)하사대,
그 때에 부처님께서 得大勢. 큰 세력이 있는. 이런 뜻이지요. 득대세보살마하살에게 고하사대, 汝今當知(여금당지)하라. 그대들은 지금 마땅히 알아라. 若(약), 만약 比丘ㆍ比丘尼(비구비구니)와, 優婆塞ㆍ優婆夷(우바새우바이)의 持法華經者(지법화경자)를, 법화경 수지하는 사람들을 若有惡口(약유악구)로, 만약에 어떤 이가 악구로써, 나쁜 말로 罵詈ㆍ誹謗(매리비방). 꾸짖고 비방할 것 같으면 獲大罪報(획대죄보). 대 죄보를 얻는다.
경전을 비방하면 큰 과보를 얻는다. 그래서 어떤 내용에 보면 별별 표현이 다 있습니다. 몸에 부스럼이 나고 눈은 어떻고 생긴 얼굴은 어떻고 피부는 어떻고, 아주 구체적으로 그런 소리를 다 했어요.
이것은 법화경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지고한 가치를 드러내는 가르침입니다. 물론 다른 경전도 그렇지만 주로 법화경은 그 사상으로 일관되어있기 때문에, 그럼 법화경을 비방한다는 것은 사람의 가치를 부정한다는 뜻이 돼버리거든요. 사람으로서 사람의 가치를 부정하고 비하시킨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하는 사람도 역시 인간이 아니다. 사람의 지고한 가치를 우리가 이해하고 드러내고 그것을 위해주고 존경하고 받드는 것. 이것이 불교이고 이것이 법화경의 메시지인데. 그것을 등지고 사는 사람의 삶이란 어마어마한 죄악의 구렁텅이에 떨어지는 삶이 될 수밖에 없다 하는 것. 이것은 아주 지극히 합리적인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법화경 가진 사람을 비방함으로 해서 큰 죄보를 받는가?
어떻게 보면 퍽 미신 같지만 아닙니다. 그 내용을 알고 보면 아주 합리적입니다. 왜냐? 사람의 지고한 가치를 배반하고ㆍ그것을 부정하고ㆍ그것을 비하시키고 하는 그런 일이 바로 법화경을 비방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래요.
如前所說(여전소설)하고, 앞에 설한 바와 같고, 제가 일일이 지적해서 말씀을 안 드려서 그렇지 앞에서 그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其所得功德(기소득공덕)은, 그가 얻은바 공덕은 如向所說(여향소설)이다. 또 앞에서 설한 바와 같다. 앞에서 공덕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 했습니다. 분별공덕품. 수희공덕품. 법사공덕품을 8-4에서 법화경 공덕에 대해서 영험록을 소개를 하면서 대신 했습니다만, 그 속에는 공덕품 세 개의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眼ㆍ耳ㆍ鼻ㆍ舌ㆍ身ㆍ意가 淸淨(안이비설신의청정)하리라. 이것은 결론처럼 맺고 있어요.
이제 상불경보살이 등장하는데 최초에 威音王如來(위음왕여래)라고 하는 부처님이 계셨다. 그 때에 보살이 있었다. 이렇게 설화를 만들어갑니다. 위음왕이라고 하는 것은 선문에서는요? 威는 위를 말하는 것이고, 音은 소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소리와 어떤 외형. 위. 이것이 말하자면 우리 인간의 최초의 모습이니까 그래 위음왕부처님을 그래서 최초의 부처님. 이런 표현을 합니다. 뭐 꼭 최초의 부처님이라는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만, 뜻으로 그렇게 보기도 합니다.
二 위음왕여래(威音王如來)
得大勢(득대세)야 乃往古昔(내왕고석)에
過無量無邊不可思議阿僧祗劫(과무량무변불가사의아승지겁)하야
有佛(유불)하시니
名威音王如來應供正徧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
佛世尊(명위음왕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
천인사불세존)이라 劫名離衰(겁명이쇠)요
國名大成(국명대성)이라 其威音王佛(기위음왕불)이
於彼世中(어피세중)에 爲天人阿修羅說法(위천인아수라설법)하대
爲求聲聞者(위구성문자)하야 說應四諦法(설응사제법)하사
度生老病死(도생노병사)하야 究竟涅槃(구경열반)하고
爲求辟支佛者(위구벽지불자)하야
說應十二因緣法(설응십이인연법)하며 爲諸菩薩(위제보살)하야
因阿耨多羅三藐三菩提(인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사
說應六波羅蜜法(설응육바라밀법)하야 究竟佛慧(구경불혜)니라
得大勢(득대세)야 是威音王佛(시위음왕불)의
壽四十萬億那由他恒河沙劫(수사십만억나유타항하사겁)이요
正法住世劫數(정법주세겁수)는
如一閻浮提微塵(여일염부제미진)이며
像法住世劫數(상법주세겁수)는 如四天下微塵(여사천하미진)이니
其佛饒益衆生已然後滅度(기불요익중생이연후멸도)하고
正法像法滅盡之後(정법상법멸진지후)에 於此國土(어차국토)에
復有佛出(부유불출)하시니
亦號威音王如來應供正徧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
天人師佛世尊(역호위음왕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
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如是次第(여시차제)로
有二萬億佛(유이만억불)하대 皆同一號(개동일호)니라
得大勢(득대세)야 乃往古昔(내왕고석)에, 옛날에 過無量無邊不可思議阿僧祗劫(과무량무변불가사의아승지겁)하야, 무량무변 불가사의 아승지겁을 지나서 有佛(유불)하시니, 그 때에 부처님이 계셨으니
名(명), 이름이 威音王如來ㆍ應供ㆍ正徧知ㆍ明行足ㆍ善逝ㆍ世間解ㆍ無上士ㆍ調御丈夫ㆍ天人師ㆍ佛世尊(위음왕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 천인사불세존)이었다. 劫名離衰(겁명이쇠)요, 겁의 이름은 이쇠고 國名大成(국명대성)이라. 국의 이름은 대성이었다.
其威音王佛(기위음왕불)이, 그 위음왕부처님이 於彼世中(어피세중)에, 저 세상 가운데서 爲天人阿修羅說法(위천인아수라설법)하대,
천 인 아수라를 위해서 설법을 하며, 또 爲求聲聞者(위구성문자)하야, 성문을 구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說應四諦法(설응사제법). 그들에게 應. 맞추어 가지고 四諦법문을 설해서 度生ㆍ老ㆍ病ㆍ死(도생노병사)를 제도하고 究竟에는 涅槃(구경열반)을 얻게 했다. 그리고 爲求辟支佛者(위구벽지불자)하야, 벽지불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說應十二因緣法(설응십이인연법)안다. 그들에게 맞추어서 12인연법을 설한다.
이것이 불교의 공식입니다. 저 앞에도 수차 나왔는데 자세히 설명을 못 드렸습니다만, 四諦法. 苦ㆍ集ㆍ滅ㆍ道(고집멸도). 그리고 道에 가서는 8정도. 4제 8정도는 최하급, 聲聞. 성문법에 해당되는 가르침입니다. 그 다음에 支佛者. 그 위의 단계가 벽지불인데, 벽지불은 12인연, 인연도리. 그리고 여기는 十二因緣하면 인연ㆍ연기ㆍ공. 이러한 것까지도 다 벽지불의 공부에 다 포함이 됩니다. 그리고 37조도품까지도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그런데 공이나 연기나 무아나 이런 것을 가지고 불교의 최상의 교리인양, 또 그것이 궁극의 가르침인양,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이 법화경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고, 불교 전체의 교학차제를 몰라서 그래요. 역시 四諦ㆍ八正道(4제 8정도). 이것을 또 최고의 가르침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도 역시 기본은 돼요. 불교를 이해하는데 기본은 되지만, 아주 얕은 초등학교 과정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벽지불은 중학교 과정이고요. 그 다음에 보살은 고등학교 과정이고요. 그 다음에 대학 과정은 부처님의 一佛乘(일불승). 법화경의 가르침이다. 이렇게 정할 수가 있습니다. 또
爲諸菩薩(위제보살)하야, 여러 보살을 위해서는 因阿耨多羅三藐三菩提(인아뇩다라삼먁삼보리)해서 說應六波羅蜜法(설응육바라밀법)한다. 그들에게 맞추어서 6바라밀을 설한다. 보살행 하는 사람은요?
바로 남을 위해서 살지 자기가 뭐 생사에 윤회하느니 어쩌느니 자기문제 생각 관심 없습니다. 남의 문제만 관심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차피 이 몸은 누구나 다 죽게 마련입니다. 이 육신의 입장에서 보면요. 그런데 남을 위해서 사느냐? 아니면 자기 한 사람의 문제만을 해결하느냐? 공이나 무아나 연기나 이러한 이치를 잘 깊이 연구하면 자기문제 해결하는 데는 아주 그만입니다.
八正道같은 것도 좋아요. 苦ㆍ集ㆍ滅ㆍ道공부도 역시 자기문제 해결하는 데는 좋지요. 그것은 自利行(자리행)뿐입니다. 그런데 보살에 올라오면 이건 利他行(이타행)입니다. 이타가 위주라고요. 布施ㆍ持戒ㆍ忍辱ㆍ精進ㆍ禪定ㆍ智慧(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물론 그 속에는 자리행도 있지만, 이타가 중심입니다. 보시가 첫째 조항이니까요. 그것이 전부 이타행이거든요. 그래서 똑 같은 사람으로서 살지만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봉사하고 어떻게 하면 남을 도와줄까 여기에 마음을 많이 쓰는 사람을 보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계가 높은 겁니다.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참선해서 자기 문제 해결하고, 공도리ㆍ무아도리ㆍ연기도리. 이것 파악해가지고 자기 문제 해결하는 사람은 많아요. 그런데 정말 제대로 된 보살행을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계가 높은 것이지요.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究竟에 佛慧(구경불혜)를 얻게 되나니라.
得大勢(득대세)야 是威音王佛(시위음왕불)의 壽(수), 수명이 四十萬億那由他恒河沙劫(사십만억나유타항하사겁)이요, 正法住世의 劫數(정법주세겁수)는 如一閻浮提微塵(여일염부제미진)이며, 1염부제 미진수와 같고 像法住世의 劫數(상법주세겁수)는 如四天下微塵(여사천하미진)이니, 4천하 미진수와 같다. 이 四天下를 부숴가지고 작은 먼지를 만들었을 때, 그 먼지 숫자와 같다. 이런 뜻입니다.
一閻浮提微塵數 라는 말은, 하나의 염부제를 부숴서 작은 먼지를 만들었을 때, 그 먼지 숫자와 같다. 이런 뜻이지요.
其佛饒益衆生已然後滅度(기불요익중생이연후멸도)하고, 그 부처님이 중생들을 요익하게 한 연후에 열반에 들고, 正法ㆍ像法이 滅盡之後(정법상법멸진지후)에, 정법 상법이 멸진한 뒤에, 정법 시대도 가 버리고 상법시대도 가 버리고 그랬을 때 於此國土(어차국토)에, 이 국토에서 復有佛出(부유불출)하시니, 부처님이 다시 출현 하시니 그 때도 亦號(역호), 또한 威音王如來ㆍ應供ㆍ正徧知ㆍ明行足ㆍ善逝ㆍ世間解ㆍ無上士ㆍ調御丈夫ㆍ天人師ㆍ佛世尊(위음왕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 如是次第(여시차제)로, 이와 같이 차제로 有二萬億佛(유이만억불)하대, 2만 억 부처님이 있어서 皆同一號(개동일호)라.
저 앞에서는 日月燈明佛(일월등명불)이, 2만 일월등명불이 있었는데 皆同一號라 그랬어요. 여기 와서는 2만 억이라 그랬습니다. 이 2라고 하는 숫자는요? 언제나 상대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나만 부처가 아니고, 너도 부처다. 이런 뜻입니다. 법화경에서 제가 제일 풀기 어려운 문제는 숫자에 대한 것입니다. 숫자가 상징하는 것이 다 있어요. 전부 뜻하는 바가 있는데 다행이요. 2라고 하는 것은 어떤 상대적 관계를 뜻하는 것입니다.
저 앞에서는 숫자가 2만이라고 했어요. 여기는 2만 억. 억입니다 억.
억이 하나 더 붙었다고요. 그러니까 사람의 숫자가 더 크게 확대된 그런 입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따지면 이런 뜻이, 2만 억 부처님이 있었는데 다 위음왕불이다. 그리고 이름도 똑 같다. 皆同一號다. 세상에 무슨 부처님이, 역사적으로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부처님은 석가모니부처님입니다.
그 本門(본문)의 입장에서, 本佛(본불)의 입장에서 본다면요.
그런데 무슨 부처님이 이렇게 2만 억 부처님이 있었어요? 인류 역사가 기껏 얼마 안 되는데... 기껏 5~600년 밖에 안 되는 인류 역사에서... 그래 이것이 상징하는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이지요. 그 다음에 상불경보살입니다.
三 상불경(常不輕)보살
最初威音王如來(최초위음왕여래)가 旣已滅度(기이멸도)하시고
正法滅後於像法中(정법멸후어상법중)에
增上慢比丘(증상만비구)이 有大勢力(유대세력)터니
爾時有一菩薩比丘(이시유일보살비구)하니
名常不輕(명상불경)이라 得大勢(득대세)야
以何因緣(이하인연)으로 名常不輕(명상불경)고
是比丘(시비구)가 凡有所見(범유소견)의
若比丘比丘尼(약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를
皆悉禮拜讚歎(개실예배찬탄)하고 而作是言(이작시언)하대
我深敬汝等(아심경여등)하야 不敢輕慢(불감경만)하노니
所以者何(소이자하)오 汝等皆行菩薩道(여등개행보살도)하야
當得作佛(당득작불)이니라 而是比丘(이시비구)는
不專讀誦經典(부전독송경전)하고 但行禮拜(단행예배)하며
乃至遠見四衆(내지원견사중)하고 亦復故往(역부고왕)하야
禮拜讚歎(예배찬탄)하고 而作是言(이작시언)하대
我不敢輕於汝等(아불감경어여등)하노니
汝等皆當作佛(여등개당작불)이니라 四衆之中(사중지중)에
有生瞋恚(유생진에)하난 心不淨者(심부정자)하야
惡口罵詈言(악구매리언)하대 是無智比丘(시무지비구)야
從何所來(종하소래)하야 自言我不輕汝(자언아불경여)라하고
而與我等授記(이여아등수기)하대 當得作佛(당득작불)이어뇨
我等不用如是虛妄授記(아등불용여시허망수기)라하야
如此經歷多年(여차경력다년)에 常被罵詈(상피매리)하대
不生瞋恚(불생진에)하고 常作是言(상작시언)하대
汝當作佛(여당작불)하리라 說是語時(설시어시)에
衆人或以杖木瓦石(중인혹이장목와석)으로
而打擲之(이타척지)어든 避走遠住(피주원주)하야
猶高聲唱言(유고성창언)하대
我不敢輕於汝等(아불감경어여등)하노니
汝等皆當作佛(여등개당작불)하리라
以其常作是語故(이기상작시어고)로
增上慢比丘比丘尼(증상만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가
號之爲常不輕(호지위상불경)이라하니라
最初로 威音王如來(최초위음왕여래)가 旣已滅度(기이멸도)하시고, 이미 멸도에 들고 正法滅後에 於像法中(정법멸후어상법중)에,
상법가운데, 정법도 소멸해 버리고 그 다음에 상법가운데
增上慢比丘(증상만비구)가 有大勢力(유대세력)터니, 대 세력이 있었으니 爾時有一菩薩比丘(이시유일보살비구)하니, 그 때 한 보살비구가 있었다. 名常不輕(명상불경)이라, 이름이 상불경이다. 항상 다른 사람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공경하고 받들어 모신다.
得大勢(득대세)야 以何因緣(이하인연)으로 名常不輕(명상불경)고? 무슨 인연으로 그 사람 이름을 常不輕이라고 하는가?
是比丘(시비구)가, 이 비구가 凡有所見(범유소견)의, 무릇 보는바, 만나는 사람마다 若比丘比丘尼(약비구비구니)와, 비구거나 비구니거나 그 다음에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를, 우바새거나 우바이를
皆悉禮拜讚歎(개실예배찬탄)하고, 모두들 누구를 만나든 간에 만나는 사람 족족 다 예배하고 찬탄한다 이 말입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신뢰라고 이렇게도 표현을 합니다. 인간에 대한 끝없는 신뢰. 인간을 어느 만치 신뢰하느냐? 부처님으로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2만 억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도 서로 그런 뜻이 깔려있습니다. 법화경을 한 시간 안에 이야기하려면 제일 좋은 것이 이 상불경보살품입니다. 이야기하기도 쉽습니다. 옛날에 상불경보살이 있었다.
그는 이러한 삶을 산다. 만나는 사람마다 전부 예배하고 찬탄하고,
而作是言(이작시언)하대 我深敬汝等(아심경여등). 나는 깊이 그대들을 공경합니다. 不敢輕慢(불감경만)이다. 감히 가벼이 여기거나 업신여기지 못합니다. 所以者何(소이자하)오? 까닭이 무엇인가?
汝等皆行菩薩道(여등개행보살도)하야, 그대들은 다 보살도를 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當得作佛(당득작불)이니라. 마땅히 부처를 이룰 것입니다. “보살도를 행할 것이다. 앞으로 마땅히 부처를 지을 것이다.” 말은, 표현은 이렇게 했어요. 하지만, “그대들은 그대로 부처님이다.”사실은 내용은 그렇습니다. 법화경 정신에 의하면요. 그렇게만 예배를 하는 겁니다.
而是比丘(이시비구)는, 이 비구는 不專讀誦經典(부전독송경전)하고, 오로지 경전을 독송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但行禮拜(단행예배)야,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님으로 보이니까 부처님에게 예배하기 바쁘지 언제 경 읽고 말고 할 겨를이 없는 겁니다. 경 읽고 기도하고 참선하고 할 겨를이 없어요. 우리 길거리에 나가 보세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 많은 사람이 전부 부처님으로 보일 때, 부처님을 만났는데 예배하기 바쁘지요 우리도... 실지로 그들이 부처님으로 비친다면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고 하기 바쁘지, 언제 다른 일 할 겨를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요? 아주 이야기는 쉽지만 참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경전을 읽는 이도 아닙니다. 오로지 但行禮拜입니다. 다만 예배만 행한다. 乃至遠見四衆(내지원견사중)하고,
멀리 저~ 만치서 사부대중이 있는 것을 보고는 亦復故往(역부고왕), 또한 다시 짐짓 거기에 가요. 故往. 이것 중요한 뜻입니다. 짐짓 간다 이 말입니다. 우정 가가지고, 지나는 사람만 예배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 사람이 보이면 얼른 거기 짐짓 쫓아가요. 그것이 故往입니다.
짐짓 가가지고서 禮拜讚歎(예배찬탄)하고, 예배하고 찬탄해요. 그리고 而作是言(이작시언)하대 我不敢輕於汝等(아불감경어여등), 감히 나는 그대들을 가벼이 여기지 못합니다. 汝等皆當作佛(여등개당작불)이니라. 그대들은 다 마땅히 부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四衆之中(사중지중)에, 사부대중 가운데는 有生瞋恚(유생진에)라. 화를 내는 사람이 있어요. “니 까짓게 뭔데 네가 나보고 부처니 뭐니, 부처가 될 거니 뭐니 그 따위 소릴 하면서 예배를 하느냐?”하고 瞋恚를 내면서, 화를 내면서 心不淨者(심부정자). 마음이 청정하지 못한 사람이 있어서 惡口로써 罵詈言(악구매리언)하대, 악구로써 꾸짖으면서 말하기를, 是無智比丘(시무지비구)야, 이 무지 비구야, 이 지혜 없는 비구야 從何所來(종하소래), 니 도대체 어디서 왔기에 自言我不輕汝(자언아불경여),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그대를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느냐? 그러면서 而與我等授記(이여아등수기), 우리들에게 수기를 주느냐?
當得作佛(당득작불), 부처가 될 거라고, 부처라고 이렇게 수기를 주느냐? 네가 도대체 출신이 뭐고, 네는 수행을 얼마나 했고, 네 따위가 우리에게 무슨 그런 허망한 수기를 주느냐? 그러면서 마땅히 부처를 이룰 것이라고 그렇게 하느냐? 我等(아등)은, 우리들은 不用如是虛妄授記(불용여시허망수기)다. 네가 주는 이와 같은 허망한 수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주 큰스님, 널리 알려진 덕이 높은 그런 스님이 수기를 줘도 이것 받아들일까 말까 한데, 이름도 없고 거지도 아니고 돌아다니기만 하는 그런 어떤 비구가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수기 주는 것, 나는 그런 수기 허망한 것,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사람도 있더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우리가 법화경을 공부를 해도 법화경의 진정한 뜻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냐? 그 동안 공부한 것이 많기 때문에요. 그 동안 아주 저급한 불교공부에 아주 젖어있어서 우리들은 죄업 많은 중생이다. 참회해야 된다. 그리고 3아승지를 지나야 부처가 될 수 있지 어떻게 하루아침에 부처가 될 수 있느냐? 하는 이러한 잘못된 불교 상식에 젖어 있어가지고 이것이 그만 정말 큰 장애를 이루어서 법화경 같은 것을 마음속에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을 여기다 은근히 비치고 있는 겁니다.
如此經歷多年(여차경력다년)에, 이와 같이 여러 해를 지나매
常被罵詈(상피매리)라. 항상 꾸짖음을 입게 돼.
그래도 不生瞋恚(불생진에)야, 본인은 조금도 화를 내지를 아니 해. 그러면서 常作是言(상작시언)하대, 항상 이런 말을 하되
汝當作佛(여당작불)하리라. 그대들은 마땅히 부처를 이룰 것입니다.
說是語時(설시어시)에, 이러한 말을 할 때에
衆人或以杖木瓦石(중인혹이장목와석)으로, 여러 사람가운데 혹 어떤 사람은 杖木瓦石으로, 막대기나 나무, 또 기왓장이나 돌, 이런 것으로써 而打擲之(이타척지)어든, 그를 때리기도 하고 그 사람에게 돌을 던지기도 하고, 나무 막대기로 때리기도 하고 이렇게 한다 이 겁니다.
그러면 그거 맞고 있으면 안 되지요? 避走遠住(피주원주)라. 멀리 가요. 아, 맞으면 몸 아픈데 그런 보살행을 또 못하잖아요. 그러면 그 사람을 피해가지고 멀리 저~ 만치가가지고 猶高聲唱言(유고성창언)이라.
큰 소리로, 큰 소리로 말하기를 我不敢輕於汝等(아불감경어여등)하노니, 나는 감히 그대들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汝等은 皆當作佛(여등개당작불)하리라. 我不敢輕於汝等하노니 汝等皆當作佛하리라.
그대들은 마땅히 부처가 될 것입니다. 저~ 만치 도망가가지고, 맞기는 싫어서 도망가가지고 큰 소리로 또 이렇게 부르짖는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이것뿐입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불교는 이것입니다. 정말 진정한 알짜배기 불교는 인간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고 그 가치를 높이 받들고 위해주고 섬기는 일. 이것은 가정의 행복이고ㆍ개인의 행복이고ㆍ세계의 평화고ㆍ인간의 가치를 알고ㆍ인간을 높이 받들고 존중 해주는 이 일ㆍ이것이야말로 정말 세계 평화의 열쇠고ㆍ가정의 행복의 열쇠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제가 나눠드린 “사람이 부처님이다.”거기에 보면 매 장마다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면 “그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남을 받들어 섬기면 내가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남을 무시할 때 나도 괴로워요. 무시당하는 사람도 괴로워요. 그런데 내가 남을 위해주고 진정으로 받들어 섬기면 받들어 섬기는 그 사람이 기분이 좋아요. 내가 기분이 좋아요.
우리가 진정 존경할 만한 어떤 사람을 만났다. 그래서 마음껏 존경을 표현 했을 때 얼마나 그 날 기분 좋습니까? 참 기분 좋지요.
그런데 그 존경을 받는 당사자도 기분이 좋아요. 무시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을 것 아닙니까? 인간관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의 열쇠는 이것뿐입니다. 스승과의 관계ㆍ도반과의 관계ㆍ이웃과의 관계ㆍ가정에서 가족과의 관계ㆍ그 모든 관계에서 해결의 열쇠는 이것뿐입니다.
그래서 법화경을 한 품만을 가지고 이야기할 때는 상불경보살품입니다.
무조건 상불경보살품이에요. 이것은 그 동안 여래수량품이나 저 앞에서 방편품에서 皆已成佛道(개이성불도)라고 하는, 손 한번만 번쩍 들어도 다 불도를 이뤄 마쳤다라고 하는 것을 그 모든 내용을 몸소 실천해 보이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몸으로 실천해 보이는 모습이 여기 상불경보살품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해하기도 쉽고, 직접 그렇게 행동하는 비구가 있으니까요. 그 비구 이야기지요. 그러면서 내 감동만 거기다 실어서 이야기해주면 이것은 똑 떨어지는 겁니다. 인간을 우리가 이렇게 신뢰할 때...
그래서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은 전번에 한번 이야기 했나요?
증엄스님. 대만에 자제공덕회를 이끌어가는 전 세계에 500만 회원을 이끌어가는 이 시대의 최고 관세음보살님 증엄스님은 자기소개가 딱 글자 석자입니다. 석줄 인데 普天三無(보천삼무)라고 해서 유명합니다. 普天三無... 온 천하에 내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바로 이 상불경보살입니다.
온 천하에 내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온 천하에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
온 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나에게 어떤 해악을 저질렀더라도 나는 다 용서하고 다 믿어준다. 다 사랑하고... 온 천하에 내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온 천하에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
온 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딱 그 세줄 입니다.
아~! 대단하지요. 이것은 어느 경전에도 표현하지 못한 내용입니다.
물론 이러한 상불경보살품을 현대적으로 바꾸면 그런 표현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렇게 표현한 사람은 그 스님뿐입니다.
그래서 대만에다 거대한 종합병원 여섯 개를 지어놓고 대만에는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없도록 만들었어요.
44년 전 부턴가 원력을 세워서 오늘 날 그런 아주 사업을 이룩하고 있습니다. 참 대단한 분이지요. 그분에 대해서 대만에 갔다 온 분 많지요? 가서 보고 온 사람 겉만 보고 왔지 저는 안 가 봐도 속속들이 잘 알아요. 여기에 상불경보살품을 보면 정말 만에 하나 그런 스님이 튀어나오게 돼있어요. 그런 스님... 그런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게 돼있다고요.
汝等皆當作佛(여등개당작불)하리라. 이 말을 할 때에, 나무나 이런 것으로 던지더라도 멀리 도망가서 역시 “그대들은 부처를 이룰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以其常作是語故(이기상작시어고)로, 항상 이러한 말씀을 하신 까닭에 增上慢(증상만). 지 혼자 잘 난체 하는 比丘ㆍ比丘尼(비구비구니)와 優婆塞ㆍ優婆夷(우바새우바이)가 號之爲常不輕(호지위상불경)이라. 그를 별명으로 불러서 “항상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라고 별명으로 지어 붙인 이름이 상불경입니다. 본래는 이름이 뭔지도 몰라요. 떠돌이 중이니까요. 그런데 이 사람은 정말 마음을 담아서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공경하고 예배했으니까요.
이것이 사실은 법화경의 완결판이라 해도 좋아요. 법화경의 완결판.
“불교의 완결판은 법화경이고, 법화경의 완결판은 상불경이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좋을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법화경을 믿는 사람의 공덕. 이것은 지금 법화경에 대한 공덕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것을 지난 시간,
분별공덕품. 수희공덕품. 법사공덕품에서 이야기를 했으니까 생략을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四 법화경을 믿는 사람의 공덕
是比丘臨欲終時(시비구임욕종시)하야 於虛空中(어허공중)에
具聞威音王佛(구문위음왕불)의 先所說法華經(선소설법화경)의
二十千萬億偈(이십천만억게)하야 悉能受持(실능수지)하고
卽得如上眼根淸淨(즉득여상안근청정)과
耳鼻舌身意根淸淨(이비설신의근청정)하며
得是六根淸淨已(득시육근청정이)하야는 更增壽命(갱증수명)하대
二百萬億那由他歲(이백만억나유타세)를
廣爲人說是法華經(광위인설시법화경)하니라
於是增上慢四衆(어시증상만사중)인 比丘比丘尼(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가 輕賤是人(경천시인)하야
爲作不輕名者(위작불경명자)가
見其得大神通力(견기득대신통력)과 樂說辯力(락설변력)과
大善寂力(대선적력)하며 聞其所說(문기소설)하고
皆信伏隨從(개신복수종)하며 是菩薩(시보살)은
復化千萬億衆(부화천만억중)하사
令住阿耨多羅三藐三菩提(영주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니라
命終之後(명종지후)에 得値二千億佛(득치이천억불)하니
皆號日月燈明(개호일월등명)이라 於其法中(어기법중)에
說是法華經(설시법화경)하고 以是因緣(이시인연)으로
復値二千億佛(부치이천억불)하니
同號雲自在燈王(동호운자재등왕)이라
於此諸佛法中(어차제불법중)에 受持讀誦(수지독송)하고
爲諸四衆(위제사중)하야 說此經典故(설차경전고)로
得是常眼淸淨(득시상안청정)하고
耳鼻舌身意諸根淸淨(이비설신의제근청정)하며
於四衆中說法(어사중중설법)하야 心無所畏(심무소외)하니라
得大勢(득대세)야 是常不輕菩薩摩訶薩(시상불경보살마하살)이
供養如是若干諸佛(공양여시약간제불)하사
恭敬尊重讚歎(공경존중찬탄)하야 種諸善根(종제선근)하고
於後復値千萬億佛(어후부치천만억불)하사
亦於諸佛法中(역어제불법중)에 說是經典(설시경전)하고
功德成就(공덕성취)하야 當得作佛(당득작불)하니라
五 상불경보살은 석가의 전신
得大勢(득대세)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爾時常不輕菩薩(이시상불경보살)이 豈異人乎(기이인호)아
則我身是(즉아신시)라 若我於宿世(약아어숙세)에
不受持讀誦此經(불수지독송차경)하야 爲他人說者(위타인설자)면
不能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불능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어니와
我於先佛所(아어선불소)에 受持讀誦此經(수지독송차경)하야
爲人說故(위인설고)로
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得大勢(득대세)야 於意云何(어의운하)오? 어떻게 생각하는가?
爾時(이시), 그 때 常不輕菩薩(상불경보살)이 豈異人乎(기이인호)아?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則我身이 是(즉아신시)라. 내가 바로 그 상불경이었다. 부처가 부처노릇 할 수 있는 그 가장 주된 정신. 그것은 사람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고, 가치를 이해한 만치 위해주고 받들어 섬기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이것이 고려청자 같으면 여기에 차를 안 떠 넣을 겁니다. 그냥 향나무 곽을 수 10만원 주고 만들어가지고, 첩첩이 싸고 비단 보자기에 싸가지고 잘 모셔 놓을 겁니다. 왜냐? 수 억 가니까요.
이런 찻잔이 만약에 하나 있다면 수 억 가니까요.
그럼 찻잔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 못 했을 때는, 사실은 옛날에 흔히 있었던 일이지요. 아직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개 밥그릇으로, 고려청자를 개 밥그릇으로 쓰는 예가 시골에 많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가치를 아는 사람들은 스텐그릇 하고 가서 바꿔주는 거예요. 스텐그릇 한 짐 갖다 주고 그것하나 바꿔 와도 이건 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 가치를 아는 사람은 갖다놓고는 금이야 옥이야 위하잖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사람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면, 사람을 위할 수밖에 없어요. 사람을 위할 수밖에 없어...
그 사람의 경력이 어떠하냐 유식하냐 무식하냐 돈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이 본래가지고 있는 본래인ㆍ궁극적 차원. 제가 그러지요? 본래인. 그 본래인은 누구나 공히 평등하게 다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이니까, 거기는 외적인 조건을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무슨 출신이냐? 무슨 승려냐 아니냐? 이것도 아니고, 무슨 학벌이 좋으냐 안 좋으냐? 이것도 아니고, 그런 외적 조건은 아무 필요 없어요. 인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가치. 거기에 눈을 뜨게 되면 이런 행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통해서 비로소 석가모니도 부처님이 됐다는 거예요. 석가모니의 진정한 정신은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그 사람이 누구겠는가?
내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若我於宿世(약아어숙세)에, 내가 만약 숙세에
不受持讀誦此經(불수지독송차경)하야, 이 경전을 수지하고 독송하지 아니하고 또 爲他人說者(위타인설자)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해설하지도 아니했다면 不能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불능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다.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눈을 빨리 뜰 수 없었을 것이다.
아~, 기가 막히잖아요. 이 경이 뭡니까? 이 책입니까? 책이 아니지요. 제가 늘 말씀드렸지요? 사람이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 사실이 법화경이다. 이 책은 법화경 안내서입니다. 해설서입니다. 우리가 보는 이 책은 법화경 해설서입니다.
금강경도 늘 금강경 안에 금강경, 금강경하지요? 금강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그 금강경은 금강경 해설서입니다. 그것은 진짜 금강경 아닙니다. 진짜 금강경 같으면 거기서 금강경, 금강경이야기가 없지요. 그 자체가 금강경일 테니까 그런 말이 없어야 되는 겁니다. 논리적으로도 안 맞아요. 이 책이 진짜 법화경일 것 같으면 여기에 법화경, 법화경하는 말이 없어야 됩니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안 맞잖아요. 법화경책 안에서 법화경, 법화경하면... 어딘가 법화경을 지칭하는 소리이고 거기다 두고 그것을 설명하는 소리밖에 안 되니까요. 법화경책 안에서 법화경, 법화경하거나 금강경, 금강경하는 것은... 경을 볼 때 우리가 그런 이치를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부처님이라고 하는 그 사실을 법화경이라고, 이 경이라고 하는 겁니다.
위인해설한 고로 그래서 我於先佛所(선불소)에, 내가 先佛所에, 앞에 부처님처소에서 受持讀誦此經(수지독송차경)하야, 이 경전을 수지하고 독송하고 爲人說故(위인설고)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해설한 까닭에 疾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질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빨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나니라. 그랬습니다. 참 오늘 마지막 시간에 아주 좋은 내용이네요. 그 다음에 逆緣(역연)의 공덕. 역연이라는 낱말 혹시 들어보셨어요? 처음 듣지요? 逆緣. 반대말로 順緣(순연)이 있고, 逆緣이 있습니다.
역연은 무슨 뜻인가 하면, 순연은 예를 들어서 ‘저 사람은 이러한 말을 받아들일 사람이다.’해서 이야기해주고 또 듣는 사람도 그대로 따라오는 것을 “순연” 이래요. 그런데 역연은 ‘그 돼도 않은 소리. 무비스님은 그 뭐 맨날 인불사상, 인불사상. 사람이 부처님이다. 당신이 부처님이다. 그러지만 어디 그런 넘치는 소리하지 마라.’
불교 TV에서 그런 소리 하는 것을 제가 직접 들었어요.
제 이름은 지적 안 하지만 저보고 하는 소리입니다.
그렇게 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 이것이 너무 크니까, 너무 크니까 안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렇게 표현할 때는 속으로는 아주 비판합니다. 속으로는 비난해요. 아주 거부하고 비난해요.
그렇더라도 이야기 해주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중에 비난하게 하라. 그 사람이 이러한 대승법을 비난하게 하라. 그 사람에게, 비난할 사람에게 들려줘서 비난하게 하라.
비난하면 그 사람은 비난한 대로 언젠가 이 대승법이 꽃을 피울 날이 있다. 그것이 역연입니다. 인연을 거슬리는 겁니다. 거슬리는 因緣(인연). 그대로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야 말 할 것도 없고요.
그것은 순연이고요. 역연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짜 차원 높은 이 대승법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자꾸 일러줘야 돼요. 법화경 같은 것을 자꾸 일러줘가지고, 안 받아줘도 좋다 말입니다. 안 받아줘도...
그러나 귀로 한번 스치고 그 스친 그 소리가 저~ 아뢰야식, 藏識(장식)속에 한번 갈무리 되면 언젠가 그것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결실을 거둘 날이 있어요. 다이아몬드를 삼키는 것과 같아서 그 다이아몬드는 삼켜서 창자 속으로 똥 속으로 저 거름 속으로 밭으로 논으로 굴러다녀도, 그 다이아몬드는 변색되지도 않아요. 가치도 떨어지지도 않아요. 다이아몬드가 똥 속에 있다고 절대 가치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씻어버리면 그 값 그대로 받아요. 그와 마찬가지로 一乘法(일승법). 大乘法(대승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와 같은 가치가 있습니다.
당장에 못 받아들이더라도 대승법을 일러줘야 돼요.
최상의 법으로 일러줘야 돼요. 언제 우리가 보장되어있습니까?
무슨 아주 기초교리 가르치고 나중에 또... 그 사람이 기초교리 공부한 사람이 나중에 또 절에 옵디까? 오는 사람 불과 몇 명 안 돼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대승법으로 가르쳐야 돼요. 다시 절에 온다고 하는 인연이 없어요. 다시 불교를 공부하리라고 하는 그런 인연이 보장되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무조건 최상의 법으로써 일러줘야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여기 역연의 내용인데 한번 보지요.
六 역연(逆緣)의 공덕
得大勢(득대세)야 彼時四衆(피시사중)인
比丘比丘尼(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는
以瞋恚意(이진에의)로 輕賤我故(경천아고)로
二百億劫(이백억겁)에 常不値佛(상불치불)하고
不聞法不見僧(불문법불견승)하며 千劫(천겁)을
於阿鼻地獄(어아비지옥)에 受大苦惱(수대고뇌)하고
畢是罪已(필시죄이)하야는 復遇常不輕菩薩(부우상불경보살)의
敎化阿耨多羅三藐三菩提(교화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得大勢(득대세)야 於汝意云何(어여의운하)오
爾時四衆(이시사중)에 常輕是菩薩者(상경시보살자)가
豈異人乎(기이인호)아 今此會中(금차회중)에
跋陀婆羅等五百菩薩(발타바라등오백보살)과
師子月等五百比丘(사자월등오백비구)와
尼思弗等五百優婆塞(니사불등오백우바새)로
皆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개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不退轉者是(불퇴전자시)니라 得大勢當知(득대세당지)하라
是法華經(시법화경)은
大饒益諸菩薩摩訶薩(대요익제보살마가하살)하야
能令至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능령지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나
니 是故諸菩薩摩訶薩(시고제보살마하살)이
於如來滅後(어여래멸후)에 常應受持讀誦(상응수지독송)하고
解說書寫是經(해설서사시경)이니라
得大勢(득대세)야 彼時四衆(피시사중)인, 그 때 사중인
比丘ㆍ比丘尼(비구비구니)와 優婆塞ㆍ優婆夷(우바새우바이)는 以瞋恚意(이진에의)로써, 아주 화내는 마음으로써 輕賤我故(경천아고)로, 나를 가벼이 여기고 천하게 여긴 까닭에 二百億劫(이백억겁)에 常不値佛(상불치불)하고, 항상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고
不聞法不見僧(불문법불견승), 법을 듣지 못하고 승려도 보지 못해, 그리고 千劫(천겁)동안 於阿鼻地獄(어아비지옥)에 떨어져가지고
受大苦惱(수대고뇌)하고, 대 고뇌를 받고,
畢是罪已(필시죄이)하야는, 필경에는 죄를 마치고나서
復遇常不輕菩薩(부우상불경보살)의, 다시 상불경보살의
敎化阿耨多羅三藐三菩提(교화아뇩다라삼먁삼보리)니라.
다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교화하는 것을 만나니라. 다시 석가모니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런 상불경보살님의 수기하는 그 내용을 들었기 때문에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得大勢(득대세)야 於汝意云何(어여의운하)오 爾時四衆(이시사중)에. 그 때 사부대중이, 常輕是菩薩者(상경시보살자)가, 항상 이 보살을 가벼이 여긴 사람이 豈異人乎(기이인호)아?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今此會中(금차회중)에, 바로 이 회중에, 이 법회 가운데에 저기 앉아있네, 저 사람. 跋陀婆羅等 五百菩薩(발타바라등오백보살)과 師子月等 五百比丘(사자월등오백비구)와 尼思弗等 五百優婆塞(니사불등오백우바새)로서, 皆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개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不退轉者가 是(불퇴전자시)니라.
최상의 깨달음에서 이제 더 이상 물러서지 않는 그 사람으로 지금 저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사람이다. 좀 부끄럽겠지요? 그 때 비난하고 돌로 던지고 욕하고 그랬는데 돌고, 돌고 돌아서 오늘 날 바로 부처님 슬하에 앉아가지고 벌써 보살칭호를 받고 있으면서... 그거 다 알려진 사람이야, 딱 부처님이 가리키면서 저 사람이야, 저 사람이야. 저 사람 저기 있네, 跋陀婆羅等 五百菩薩ㆍ師子月等 五百比丘ㆍ尼思弗等 五百優婆塞. 이 사람들이 바로 그 때 그 사람들이었다. 이것이 대승법을 듣고, “그대도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이 말을 듣고 비난하고 욕하고 때리고 업신여겼던 그 사람들이야 사람들이... 그것이 逆緣입니다.
그런 법을 우리가 소화를 못 하더라도 그런 법을, 최상의 법. 대승법을 전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전해줘야 할 이유가, 거기에서 만약에 상불경보살한테 소승법을 들었더라면 이 자리에 못 있어요.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 했어요. 대승법을 듣고 비난했던 그 공덕으로, 그 인연으로 비난은 비난대로 죄업을 받았어요. 지옥을 돌긴 돌았어요. 그러나 오늘 날 여기에 不退轉.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퇴전하지 아니한 자리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바로 그 최상의 법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이런 것은 아주 중요한 대목이지요. 정말 중요한 대목입니다.
逆緣(역연). 제가 일부러 역연이라고 잘 안 쓰는데 제가 여기다가 제목을 역연의 공덕이라. 고 이렇게 했습니다. 이것이 역연이거든요.
그러니까 처음에 이렇게 거부하고 안 받아들이고 한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법하고 포교하고 하는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서 절대 포 기 하지 않습니다. 포교는 하되 포기는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비방하고 거부하고 안 받아들이고 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그 사람들도 대승법을 들은 인연으로 결국은 부처님 앞으로 돌아오게 돼있다는 것입니다.
得大勢當知(득대세당지)하라, 득대세야 마땅히 알아라.
是法華經(시법화경)은, 이 법화경은 大饒益諸菩薩摩訶薩(대요익제보살마가하살)하야, 모든 보살들을 크게 이익하게해서 能令至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능령지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하나니, 능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르도록 하나니 是故諸菩薩摩訶薩(시고제보살마하살)이, 시고로 모든 보살마하살이 於如來가 滅한 後(어여래멸후)에, 여래가 열반한 뒤에 常應ㆍ受持ㆍ讀誦(상응수지독송)하고, 항상 꼭, 應자는 그 말입니다. 꼭 이것 놓으면 안 된다. 법화경 놓으면 안 된다.
항상 꼭 解說書寫是經(해설서사시경)이니라. 수지하고 독송하고 해설하고 서사해라. 무엇을요? 이 경을... 이 법화경을... 이것이 참 이렇습니다. 그 전에 단편적으로 법화경을 이야기할 때는 제일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상불경보살품 이 내용입니다. 그 다음에 중송이니까 생략하고 넘어가겠습니다.
七 게송으로 거듭 설하다
1 위음왕 여래
爾時世尊(이시세존)이 欲重宣此義(욕중선차의)하사
而說偈言(이설게언)하니라
過去有佛(과거유불)하니 號威音王(호위음왕)이라
神智無量(신지무량)하사 將導一切(장도일체)할새
天人龍神(천인용신)의 所共供養(소공공양)이며
2 상불경 보살
是佛滅後(시불멸후) 法欲盡時(법욕진시)에
有一菩薩(유일보살)하니 名常不輕(명상불경)이라
時諸四衆(시제사중)이 計着於法(계착어법)이어늘
不輕菩薩(불경보살)이 往到其所(왕도기소)하야
而語之言(이어지언)하대 我不輕汝(아불경여)하노니
汝等行道(여등행도)하야 皆當作佛(개당작불)하리라
諸人聞已(제인문이)에 輕毁罵詈(경훼매리)하대
不輕菩薩(불경보살)이 能忍受之(능인수지)하여
3 순연(順緣)과 역연(逆緣)의 결과
其罪畢已(기죄필이)하고 臨命終時(임명종시)에
得聞此經(득문차경)하고 六根淸淨(육근청정)하며
神通力故(신통력고)로 增益壽命(증익수명)이라
復爲諸人(부위제인)하야 廣說是經(광설시경)하니
諸着著法衆(제착저법중)이 皆蒙菩薩(개몽보살)의
敎化成就(교화성취)하야 令住佛道(영주불도)하며
不輕命終(불경명종)에 値無數佛(치무수불)하사
說是經故(설시경고)로 得無量福(득무량복)하고
漸具功德(점구공덕)하야 疾成佛道(질성불도)하니라
彼時不輕(피시불경)은 卽我身是(즉아신시)요
時四部衆(시사부중)에 着法之者(착법지자)가
聞不輕言(문불경언) 汝當作佛(여당작불)하고
以是因緣(이시인연)으로 値無數佛(치무수불)하니
此會菩薩(차회보살) 五百之衆(오백지중)과
幷及四部(병급사부) 淸信士女(청신사녀)로
今於我前(금어아전)에 聽法者是(청법자시)니라
我於前世(아어전세)에 勸是諸人(권시제인)하야
聽受斯經(청수사경) 第一之法(제일지법)하며
開示敎人(개시교인)하야 令住涅槃(영주열반)하고
世世受持(세세수지) 如是經典(여시경전)하며
4 법화경 수지(受持)를 권함
億億萬劫(억억만겁)에 至不可議(지불가의)토록
時乃得聞(시내득문) 是法華經(시법화경)하며
億億萬劫(억억만겁)에 至不可議(지불가의)토록
諸佛世尊(제불세존)이 時說是經(시설시경)하나니
是故行者(시고행자)가 於佛滅後(어불멸후)에
聞如是經(문여시경)하고 勿生疑惑(물생의혹)하며
應當一心(응당일심)으로 廣說此經(광설차경)하면
世世値佛(세세치불)하야 疾成佛道(질성불도)하리라
常不輕菩薩品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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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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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완결판은 <법화경>이고 법화경의 완결판은 常佛輕菩薩品(상불경보살품)이다. _()()()_
진정한 불교란 인간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고 그 가치를 높이 받들고 위해주고 섬기는 일이다...釋대원성 님! 수고하셨습니다.._()()()_
"사람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면 그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다"....대원성님 ,수고 하셨습니다_()()()_
인간에 대한 끝없는 신뢰...고맙습니다. _()()()_
捨身利他 ..
常應受持讀誦하고 解說書寫是經이니라 ...고만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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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진정한 알짜배기 불교는 인간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고 그 가치를 높이 받들고 위해주고 섬기는 일.대원성 님, 고맙습니다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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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모든 사람을 부처로 모신다.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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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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