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프 트 볼 약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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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약 14 년 전인 , 1993년 10월 10일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뜻을 같이하여 함께 운동을 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당시 30 ~ 40 대인 나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위험하고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야구가 아닌 소프트볼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선린상고 시절 체육시간에 재미있게 했던 기억을 되살려 이정환님의 제안으로 시작되었고, 그 것으로 인하여 선린 동문들이 많이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서 서울 지역에서의 소 볼 이 그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참가 인원 중 당시 40세가 되는 백말 띠가 상당수를 차지 하셨고, 그리하여 이름을 백마로 하는 팀이 탄생하게 된다.
창단 멤버로는 김현일(감독), 이정환(코치), 문철근(총무), 최윤철, 박준식(현 아인),박용환, 김승일, 김춘만, 박근수, 박완열, 윤병준, 임한문, 김태복, 임주연, 이호근, 정동화, 서재일, 한상근, 김정동, 김경환, 최윤호, 윤재철, 정재호, 등 25여명이 참여하였고, 초창기에는 경기를 함께할 팀을 찾지 못해 자체 청백전, 노장: 소장, 서울: 기타, 짝수: 홀수, 형식의 게임을 주로 하였다. 구장은 지금의 덕소 구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한강 뚝섬지구 둔치의 잔디구장을 주로 사용하였다.
동절기에는 등산으로 친목을 도모하였고, 게임수가 늘면서 실력도 나날이 향상 되어갔다. 대현산 배수지 직원팀, 천호전화국 직원팀, 덕유 시스템팀, 들과의 게임에서 압도적으로 승리를 하게 되었다.
94년 9월 , 유재형, 정만성, 최형진, 등 선린 상고 출신들과, 지금의 동영팀의 주축 멤버들인 전대수, 박학진, 김정기, 신태식, 10월에는 백마의 김대수, 11월에는 엄재수, 채영기, 정병철, 오명덕, 정선화, 조병환, 이후에는 김성영, 이권주, 한남수, 박태일, 윤명환, 김종원, 이상철, 고낙석, 이철훈, 박종문,전병철, 허창은, 등이 가입하여 더욱 활기를 띄게 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염광 여고 교직원 팀(가브리엘) 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다. 일찍 알았었다면 ? 그래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졌다면 ? 소 볼의 역사는 다시 쓰여 졌을 것이다. 정말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96년, 뚝섬 전용구장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된다. 전용 구장이 윈드서핑장 확장으로 인하여 콘테이너 박스로 가득 차 버린 것이다. 참 황당하고 기가 막혔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동안 너무 잘 쓴 것에 대하여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임시로 대현산 배수지 구장을 몇 차례 사용한 후, 한강을 몇 번씩 오르내리며 찾아낸 곳이 이촌 지구 둔치, 야구장을 구해본 사람들은 알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그것도 1년여 정도 사용한 후(소득은 있었다 서원택, 서승택, 신창현입단) 자양동 소재 광양고 운동장에 새 둥지를 차렸다. 가깝게 알고 지내던 조기축구 회원들(최호진, 천금우, 채기환 등등) 덕분에 축구가 끝난 후 야구장으로 사용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곳에서 뜻밖의 결실을 얻게 된다. 유니타스(천호동 성당 축구팀) 를 만나게 되면서 소 볼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를 만들게 된다. 그동안은 자체 게임만 하던가, 훨신 실력이 떨어지는 팀과의 시합만 해왔었는데, 유니타스와 대등한 게임을 하게 됨으로 해서 박진감 넘치는 게임의 재미는 물론 실력 향상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자양동 성당 청년부 중심의 얼룩소(이장균, 김영석, 오호섭 등등) 창단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국세청 직원 중심의 국세청(변재훈 등등) 창단, 동남과 영일 직장 출신 중심의 동영이 백마에서 분리 창단(전대수, 박학진, 김정기, 이권주, 한남수 등등) 가브리엘(강정식, 지영배, 유명곤, 유재문, 이종원, 문종덕, 이승주 등등) 과의 만남, 그리고 드디어 2000년 서울리그의 출범......
염광 구장 시대를 여는 서울리그 출범은 소 볼의 발전에 하나의 큰 전환점을 가지고 오게 된다. 투수들의 체계적인 연습으로 실력이 향상되고, 선수 출신들의 가세로, 타격 및 수비, 주루 플레이도 향상되어 진정한 의미의 소 볼의 출발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99년도에도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 양평종고(여고선수) 팀과의 경기, 광주지역 연합팀과의 친선경기, 얼룩소, 국세청, 가브리엘, 유니스타, 신라 엔지니어링, 광양 조기 축구. 등등)
서울리그는 염광고 선생님이신 지영배님, 이종원님, 백마의 이정환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힘차게 출발 하였다. 안정적 구장 확보, 게임 수 증가, 새로운 팀 창단의 활성화 등등 많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고 약간의 시행착오를 거치기는 했지만 뿌리를 튼튼히 내려 나날이 발전을 해 나갔다. 01 년 경동고 동기 중심의 경동팀(최택용, 박광수, 임동희 등등), 상지대 교직원 중심의 상지대팀(이주엽 등등) 이 합류 하였고, 04년 수자원공사 직원 중심의 토네이도팀(이상군, 이제균 등등), 건대역 주변 상가 업주들 중심의 럭셔리팀, 05년 아인 팀(아름다운 인생(40세 이상팀 최윤철, 최완식, 김준만, 이종원 등등)), 07년 혼 팀(김덕화, 김윤철, 배정수, 김철호 등등), k-water 팀(이상군 등등), 볼보이즈팀이 합류하여 덕소 구장 시대를 여는 서경리그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동안 각종 대회도 많이 열렸다.
2000년 5월 상지대 총장배(우승: 가브리엘, 준우승: 불휘)를 시작으로, 01년 광주 광산구청장배(우승: 대우전자, 백마, 동영 얼룩소 연합 1차전 탈락), 02년 노원구청장배 (우승: 가브리엘, 준우승: 백마), 03년 2회 노원구청장배 (우승: 에쏘, 준우승: 백마), 05년 광주 아이안과배(백마 4위), 사회인 소볼 대회 (우승: 에쏘, 준우승: 동영), 06년 광산 구청장배(우승: 16인의 전사, 아인 공동 5위), 진로 참이슬배(우승: 백마, 준우승: 아인), 07년 협회장기 대회(우승: 백마, 준우승: 16인의 전사, 공동 3위: 토네이도, 아인) 백마가 광주 지역 팀을 이기고 처음으로 우승한 뜻 깊은 대회였다.
서울리그, 서경리그 성적은 다음과 같다.
2000년, 우승: 백마, 준우승: 얼룩소
01년, 우승: 가브리엘, 준우승: 백마
02년, 우승: 백마, 준우승: 상지대
04년, 우승: 백마, 준우승: 동영
05년, 우승: 백마, 준우승: ?
06년, 공동 우승: 토네이도, 백마
리그를 함께했던 팀들의 근황은 ???
가브리엘 - 선수들을 타 팀에 임대, 중요 대회는 참석가능
국세청, 럭셔리 - 사회인 야구로 이전
얼룩소, 경동 - 해체
상지대 - ??
백마에서 선수로 활동하다 나와서 주축이 되어 새롭게 구성된 팀이 동영, 아인, 혼. 이고, 토네이도에서도 k-water 가 새롭게 구성되었다. 새로운 팀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쪼개지는 아픔을 감수하고 대승적으로 이해하고, 도와주고, 발전하여 오늘의 서경리그가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기록의 미비와 자료의 부실, 기억력의 한계로 인함과, 객관적 사실보다는 주관적 관점에서 쓰여 졌기에 사실과 다소 차이가 날 수가 있습니다. 잘못된 점을 알려 주시면 바로 정정 하겠습니다. 본인 허락 없이 실명을 사용한점 양해 바라며 불편 하시면 연락주세요 필요한 조치를 바로 취 하겠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우리 소볼의 역사인 14~5년의 초창기(인터넷이 보편화되기 전) 기록이 거의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입니다. 또한 시간이 더 흐르면 우리 기억 저편에서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잊혀진 추억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난 세월 소볼과 함께 했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 하고 싶었습니다.
- - 문 철 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