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첫째날 [6/23-토] 인천공항->대련->단동
신도림역 출발[08;20]->홍대입구역에서 공항열차로 환승하여 인천공항으로
일행들과 만나 출국수속을 완료하고 .... 공항면세점에서 쇼핑도 하고 ....
인천공항 출발[11:50]->대련공항 도착[11:55] 가이드와 만나 공항인근 한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 이른 맛을 별로고 .... 가격은 비싸다 ... 이놈에 가이드은 믿을 놈이
못되는 구나 .... 생각하면서 .... 대련출발 .... 단동으로 이동후
단동을 첫번째 관광지 단교를 구경하고 ....

압록강 단교에서
중조우의교 에서 하류쪽으로 70m 아래쪽에는 압록강 단교가 있다 ... 일본이 1911년 10월에 완공을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1950년 6,25 전쟁때 이다리를 통해서 중공군과 무기 물자들이 내려오자...
그해 11월 미군측이 폭파한것이다...
안동대세계 식당으로 이동하여 이번여행을 축하하면서 특식으로...
안동대세계[단동시 진흥구 육경가 29호 0415-216-6666, 2201] 맛나게 저녁을 해결하고 ...
국윤호텔로 이동하여 숙박을 할려고 방에 들어가니 .... 이런 4성호텔이 ... 정말 장난이 아니다.
정부시책이라면 7월 1일 부터 에어콘을 틀어 줄수 있단다 ... 이런 놈들이 있나 ....
방도 좋지 않은데 .... 에어콘까지 ...가이드를 불어 에어콘을 틀어주지 않으면 ....
지금 방을 나가겠다고....가이드왈 ...토요일이라 다른 호텔도 방이 없을 거라고 하기에 ...
방이 없으면 사우나에서라도 잘 것이니 .... 에어콘을 틀게 하든지 .... 방을 바꾸라고 강하게...
이야기 하니 .... 경리에게 연락하여 에어콘을 틀고 ...
다시 가이드를 불어 내일 방을 확인하니 내일 방은 오늘보다 휠씬 좋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여
아직 여행비도 지급하지 않은 상태라 하루 더 믿어 보기로 하고 .....

압록강변 야경을 구경도 하고
여행 둘째날 [6/24-일] 단동->집안->통화
호텔 26층 스카이라운지에서 압록강을 보면서 아침을 해결하고 ....
단동출발->집안으로 이동후 북한식당에서 맛나게 점심을 해결하고 ...
고구려 국내성을 먼저 구경한 후에 압록강으로 이동하여 스피트 보트를 ...

압록강에서 스피트 보트를 타고

압록강 기념비앞에서

장군총앞에서
정식 명칭은 우산하1호분(禹山下一號墳)이다. 무덤 앞으로는 퉁거우 평야[通溝平野]가 펼쳐져 있고 그 너머에 압록강이 흐른다. 무덤은 화강암 장대석을 이용하여 방대형 단을 7층으로 쌓고 제4층 단의 한가운데에 널길과 돌방[石室]을 설치했다. 묘실의 방향은 서남향이며 무덤의 네 모서리는 정확히 동서남북에 맞추어졌다. 무덤 중심부의 높이는 11.28m, 밑변 한 변의 길이는 29.34m, 밑면적 860㎡이다. 1,100여 개의 장대석으로 외형을 축조한 후 내부는 강돌로 채웠다. 무덤축조에 쓰인 석재의 부피는 총 6,000㎥에 이른다. 무덤의 기초부는 지면을 깊이 5m가량 파내고 자연석을 다져넣은 후, 그 위에 큰돌을 깔았는데 제1층 기단부의 바깥으로 4m가량 나오게 하여 무덤돌이 내리누르는 힘에 견딜 수 있게 했다. 무덤의 제1층은 4단으로, 2~7층은 모두 3단으로 장대석을 쌓았다. 이중 제1단에 쓰인 장대석 중 큰 것은 길이 5.7m, 너비 1.12m, 두께 1.10m에 이른다. 각층의 윗단 장대석 상면과 위층 하단 장대석 하면에는 서로 맞물리도록 7~8㎝ 너비의 요철부를 만들었다. 제1층의 각면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높이 5m가량의 대형 석재로 버팀돌을 세워 무덤을 지탱하게 했는데, 북면의 1개는 깨어져 없어지고 현재는 11개만 남아 있다. 널길은 5층 남면의 하단 중앙에서 안으로 기울어 내려가게 제3층 상면을 바닥으로 하는 널방[玄室]과 이어진다. 널길의 길이는 5.5m이며 널길 입구에는 문지방과 같은 거대한 장대석을 가로놓아 제4층의 벽석 속으로 감추어지게 했다. 널방은 장대석을 6단으로 쌓아올려 정방형의 벽을 이루게 하고 그 위에 역계단식 평행줄임방식으로 들보 역할의 석재를 얹어 마무리한 다음 길이 4.5m, 너비 3.8m 크기의 판석을 덮어 축조했다. 천장돌의 넓이는 약 60㎡, 무게는 50t가량이다. 널방의 길이와 너비는 각각 5.0m, 높이 5.5m이다. 널방 안에는 동서로 나란히 2개의 널받침[棺臺]을 설치했다. 널받침은 길이 3.7m, 너비 1.5m이며 윗면 가장자리를 요철형으로 두드러지게 하여 관이 놓일 위치를 나타냈다. 널방 안에는 본래 석회를 발랐으나 현재는 그 자취만 남아 있다. 무덤정상부에 놓인 돔형의 석재 상면 4변에는 21개의 둥근 구멍이 뚫려 있고 주변에서 상당량의 와당편을 발견했다. 무덤의 남쪽 흙무더기에서 연꽃무늬 등이 장식된 와당편과 녹슨 쇠사슬이 여러 점 발견되었는데, 둥근 구멍은 쇠사슬로 난간을 설치했던 것이고, 와당과 기타 건축자재류로 보아 정상부에 사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덤은 오래 전에 도굴되어 묘실 내에서는 일체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고 단지 무덤 남쪽 밑의 흙더미에서 동제장식편이 수습되었을 뿐이다. 무덤둘레에는 잔자갈을 깔고 그 바깥에 돌담을 둘러 묘역을 구분했다. 돌담은 모두 무너져 현재는 그 자취만 남아 있다. 묘역의 북편 50m 지점에는 동서로 나란히 5기의 배총(陪塚)이 마련되었으나 현재는 1기만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배총은 기단부 3층과 묘실일부만 남아 있으며 남향이다. 기단부의 길이는 9.2m, 높이는 1.9m이다. 묘실 네 벽과 천장은 각 1개씩의 대형판석으로 이루어졌다. 타원형에 가까운 천장돌 밑면 둘레에는 요철형의 돌기부를 만들어 빗물이 돌방 안으로 흘러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장군총에 쓰인 석재는 무덤의 서북 20㎞ 거리에 있는 양펀 현[陽分縣] 가오타이춘[高臺村] 상뤼수이차오[上緣水橋] 근처 채석장에서 가져온 것 같다. 그 이유는 이 채석장의 석재가 결이 고운 화강암으로 장군총에 쓰인 돌과 재질이 같기 때문이다.
무덤의 거대한 규모, 5기에 이르는 배총, 무덤이 돌무지무덤의 최종단계형인 기단식돌방무덤인 점, 무덤 주변에 태왕릉(太王陵)과 광개토왕비(廣開土王碑) 등이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무덤의 피장자를 412년에 죽은 광개토왕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태왕릉을 광개토대왕릉으로 보고, 장군총은 장수왕릉이라고 보는 견해도 많다.

광개토대왕릉비 앞에서
414년(장수왕 2)에 고구려 제19대 왕인 광개토왕의 훈적(勳績)을 기리고 수묘인연호(守墓人烟戶)를 명기해두기 위해 세운 비.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國內城 : 지금의 지안 현 퉁거우)의 동쪽인 국강상(國岡上)에 있는 광개토왕릉 동쪽편에 세워졌다.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는 광개토왕의 시호(諡號)를 줄여서 '호태왕비'라고도 한다.
비가 있는 곳의 현재 지명은 압록강 북안(北岸)인 중국 지린 성[吉林省] 지안 현[輯安縣] 퉁거우 진[通溝鎭] 타이왕 향[太王鄕] 타이왕춘[太王村]이다. 주변에는 대형고분과 성터를 비롯한 많은 고구려 유적이 산재해 있다. 현재 비의 서남쪽 약 300m 지점에 있는 태왕릉(太王陵)을 광개토왕의 능으로 비정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부근에서 "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벽돌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비는 커다란 각력응회암(角礫凝灰岩)으로 된 불규칙한 직4각형의 기둥 모양으로 된 4면비로, 남에서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서 세워져 있다. 높이는 6.39m로 윗면과 아랫면은 약간 넓고 중간부분이 약간 좁다. 아랫부분의 너비는 제1면이 1.48m, 제2면이 1.35m, 제3면이 2m, 제4면이 1.46m이다. 아래에 화강암의 받침대를 만들었는데 길이 3.35m, 너비 2.7m의 불규칙한 직4각형이고, 두께는 약 20cm이나 고르지 않다. 문자의 크기와 간격을 고르게 하기 위해 비면에 가로·세로의 선을 긋고 문자를 새겼다. 문자는 비의 4면에 모두 새겨져 총 44행 1,755자로, 이중 마멸되어 전혀 판독할 수 없는 것이 약 140여 자에 이른다. 중국 학자 왕젠췬〔王健群〕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제1면은 11행 449자, 제2면은 10행 410자, 제3면은 14행 574자, 제4면은 9행 369자이다. 각 문자는 당시에 통용되던 예서체에 가까운 서체를 사용하여 장중하고도 위엄이 있어 고구려 독자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독특하다. 그리고 문자의 크기는 균등하지 않으나 대략 가로·세로가 14~15cm 안팎이며, 이체자(異體字)와 간체자(簡體字)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비는 발견된 이후부터 주목을 받아, 지안 현 지사였던 유천성(劉天成) 등의 모금으로 비바람의 침식을 막기 위해 1928년에 2층으로 된 비각을 설치했다. 이 비각은 1976년에 낡아서 붕괴의 위험이 있다고 하여 철거되고, 1982년에는 중국 당국에 의해 대형 비각이 세워져 지금에 이른다
집안 관광을 마치고 .... 통화로 이동하여 운봉대주점[통화시 동창로 5로 0435-391-8001]에
여장을 풀고 .... 메아리식당에서 저녁식사를 완료한후 ..... 걸어서 .... 통화강변 산책도 하고
꿈나라로 ....

통화강변 산책
여행 셋째날 [6/25-월] 통화->송강하->서파->이도백하
통화를 출발하여 송강하로 이동후 .... 송림호텔[ 송강하 여유경제개발구 0439-633-9277]에
점심식사후 서파산문으로 이동후 .... 환보차를 타고 ....

서파산문 입구에서

서파 천지올라가는 계단

서파에서 바라본 천지

5호 경계비앞에서

제자하도 구경하고
백두산 땅속의 하천(제자하)에 물이 흐르는 곳 제자하(梯子河) ........
하상(河床)이 가파르기 때문에 층층으로 나눠 보인 모습으로 계단과 같다하여 제자하(梯子河)라 부른단다.
제(梯)는 사다리제자로서 사다리 같은 하상(河床)이라 뜻이다.

금강대협곡은 서벽정상을 등정하고 내려오는 길에 야생화군락지로 갔다가 ...
마지막 코스로 금강대협곡으로 가게 된다.
금강대협곡은 아주 좁은 협곡으로 현재도 풍화작용이 진행중인 협곡이며,
아주 좁은 협곡으로 백두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흐르고 ...
바위들과 협곡의 벽은 풍화작용으로 조금씩 모양이 바뀌는 것 같다.
여름에는 금강대협곡을 가기 위해서 산림숲 사이로 나무 판자로 만든 길을 따라서 가게 되는데,
울창한 숲이 그늘을 만들어서 더운줄을 모를 정도이다.
숲속에는 나무들이 서로 엉켜서 한 몸이 된 나무들을 볼수가 있는데,
다른 종의 나무들도 엉켜서 한 몸이 되어 있는 나무들도 볼수가 있어서 기이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단다.


서파 관광을 마치고 .... 이도백하로 이동하여 .... 가이드가 가자는 식당으로 가보니 ....이런 쇼핑센타와
함께 있는 식당으로 가격표를 보니 ... 완전 바가지다 ..... 이?도 믿을 수 없는 가이드 구나 ....
다시 나와 내가 이곳 이도백하에 오면 가는 식당으로 가서 음식을 주문해 먹고 나서 ... 계산서를
달라고 하니 ... 이런 그 사이에 가이드가 .... 장난을 쳐서 가격을 올려 청구를 한다.
그냥 넘길수가 없어 일일이 먹은 것을 계산하여 지급하고 .... 산강호텔로 이동하여 여장을 풀고 ...
발맛사지도 받고 ... 꿈나라로 ....
여행 넷째날 [6/26-화] 북파->연길

북파산문에서
북파산문에서 환보차를 타고 .... 천지 올라가는 짚차타는 곳으로 이동하여 .... 천지쪽을 보니 ...
안개가 끼어 천지를 볼수 없을 것같아 .... 오후에 올라가지고 가이드에게 이야기 하니 ...
오늘은 오전에 천지를 볼수 있을 것이라고 .... 하여 ..... 줄어서서 기다리는데 ...
이런 상불리야오 ... 부칸이라고 한다 ...
일행을 다시 돌려서 장백폭포와 소천지 ... 연록담을 둘려본후에 천지 가는 것을 결정하기로 하고 ...
장백폭포로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하여 ....

비룡폭포 가는 길에

벌써 북파를 5번째 방문하지만 ... 이 계절에 백두산을 방문하면 이 싱거러움과 ... 맑은 공기 .....
눈을 시리게 할 파란 하늘이 나는 너무도 좋다 ....

비룡폭포에서 증명사진도 찍고

2010년 4월 백두산 장백폭포 사진입니다.


소천지에서 .....
소천지를 방문하면 백두산 천지를 돌아볼수 없으니 ....소천지를 한바퀴 꼭 돌아야 한다 ...
천천히 소천지를 한바퀴 돌아나와 .... 연록담으로 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