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식 백반
김치볶음밥 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어야만 요리가 완성되는 걸까? 게다 노른자는 밥과 비빌 때 잘 섞이도록 반숙 상태여야 한다고? 언제부터 김치볶음밥이 요리 대접을 받게 되었다고. 궁금함과 함께 불평을 동시에 갖게 된 사연은 이렇다.
객지로 타국으로 돌던 아들이 제 가족까지 데리고 돌아와 다시 함께 살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부딪친 문제는 먹을거리였다. 물론 문제의 출발은 우리의 식습관임을 잘 안다. 비교의 기준이 바로 이것일 터. 그간 우리는 세 식구 살림이다 보니 입맛은 자연 남편 위주였고, 그는 농사철 들판에 밥 내가듯 맵고 짠 맛,칼칼 개운하고 푸짐한 음식을 선호해 왔다. 나 또한 열 댓 명 가족 속에서 성장한 터라 음식 손은 작지 않다. 그래서 음식양 면에서 우리 부부는 의견이 잘 맞는다고나 할까.
하지만 남편은 경기도 식이고 나는 서울 식이어서 간과 양념에선 차이가 난다. 나는 단순한 맛을 선호하고, 짜고 매운 것, 젓갈 종류, 밑반찬류 등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그 동안 나는 남편의 식성을 존중하고 성의껏 챙겨 왔다. 타국 생활 이십여 년이 넘지만 그래 우리 집 밥상은 지금도 인천식이다.
게다 둘 다 일을 하니 음식 만드는 시간은 일요일 오후 뿐이어서, 일 주일 메뉴를 정해 그 분량만큼 한꺼번에 준비해 냉동실과 냉장실에 넣어 두고 한 주를 버티곤 해왔다. 그래서 아들은 주초 밥상은 부자 상, 주말이 오면 거지 상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음식 준비를 위해 버리는 식료품 재료들-파뿌리, 야채 껍데기, 생선 비늘 외에는 마련된 음식을 버리지 않는 편이다. 하니까 음식은 국물까지 싹 비워야만 한다. 이것은 물론 절약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음식에 대한 나의 특별한 고집, 아니 미화하여 철학(?)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는 이렇게 자랐다.
그리고 뉴욕에서 대학을 마치던 해 교환 학생으로 일본에 갔다. 하지만 귀국할 무렵, 아버지가 타국에서 생활을 일으키신 것처럼 저도 스스로 생활을 일구어 보겠다고 했다. 그 의지가 대견했던 난 겁도 없이 너그럽게 일본 체류를 허락했다. 그러나 체류는 길어졌다. 결혼도 거기서 했다. 학교 다닐 때야 방학이나 연휴면 집에 오곤 했지만, 일본으로 가고 난 뒤 이렇게 해서 아이는 일 년에 한 번 얼굴 보기도 바쁘게 되었다. 그러니 아이 입맛이 어찌 변해 가는지 알 턱이 없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가족의 모여 살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를 기다린 건 입맛의 커다란 간극이었다. 입에 대지도 않던 갈비찜은 물론, 고추장 소스가 아니라 타르 소스, 참기름 소스가 아니라 마요네즈, 잔치 국수가 아니라 스파게티,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차이에 앞이 아찔했다. 화도 났다. 내가 얘를 이렇게 길렀어? 내 아들 맞아? 정말 ‘희미한 옛 사랑의 그림자’야?
아들도 이러니 며느리는 말해 뭐하랴. 분명 같은 배달민족 피를 이어 받았건만 적응난망이었다. 그러나 문제에는 언제나 원인이 있는 법, 차츰 침착을 되찾으며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둘 다 타국 생활이 만만치 않으니 집밥 보다는 식당밥에 더 길들여진 탓이라고 쉽게 원인이 짚혔다.
식당밥이라는 게 다른 업소 보다 하나라도 색다르게 뵈야 손님을 끌 수 있기에 북어국에 양파를 넣기도 하고, 감자국에 당근을 썰어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집에선 신김치를 치우기 위해 만드는 김치볶음밥이지만 거기선 돈 받고 파는 상품이니 계란 후라이라도 더 얹어 볼품, 아니 상품의 가치를 높혔을 것이다. 그래 이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집에서도 이리 해 먹어야만 맞다고 생각하는 것이라 짐작되었다. 하지만 집밥은 장식-꾸미를 얹어야만 팔리는 상품이 아니다.
집밥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미주 이민 생활의 자녀 교육하면 늘 예화로 등장하는 전혜성 박사가 떠올랐다. 그 분은 가족이 함께 식사할 수 있는 자리를 위해 아이들이 졸고 앉았을 망정 새벽 네 시면 상을 차렸다고 한다. 가족은 음식을 통해 소통을 이룬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한다.
또한 예전 우리 조상들은 가족의 길흉화복을 집밥이 만들어지는 부엌의 부뚜막 조왕신에게 빌었다. 음식은 곧 생명, 존재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고급 식당의 주인들도 끼니가 되면, 손님에게 내는 꾸민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자신들을 위한 수수한 음식을 따로 준비한다고 한다. 집밥을 먹기 위해서다. 집에선 물 말은 찬밥에 김치만 먹어도, 바가지에 남은 음식을 쏟아 고추장과 두루치기로 비벼 숟가락 싸움하며 먹어도, 계란 후라이 없이 김치볶음밥을 해 먹어도 마음이 편안하고 따뜻해진다. 이것이 집밥의 힘이다.
인간의 시작이자 마지막, 살아 가는 힘의 원천인 집밥. 한데 내 아이들은 지난 십여 년간 식당밥만 먹어, 뭘 잃었는지도 모른 채 이윤 추구하는 상품에만 길들여졌구나.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로서 선택만을 즐겨온 아이들이 가여워 마음이 미어져왔다. 무엇을 상실했는지도 깨닫지 못 한채 그저 복잡한 세상만 바라 보고 달리며, 수 많은 상품 속에서 선택의 고민을 안고 소비에 부심하니 스트레스만 늘어 갈 수밖에.
하긴 요즘은 음식도 국가적 차원의 산업이어서 선택해야 할 상품 중의 하나다. 상품은 품질을 관리하여 제품을 규격화하여만 대량 생산되어 경쟁력이 생긴다. 그렇다면 음식의 경쟁력은 뭘까?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요즘은 감동 마케팅이 대세라고 한다. 하면, 감동을 대량 생산할 수 있고 공산품처럼 규격화할 수 있을까? 또한 감동을 주는 음식이 정말 좋은 음식일까?
맛으로 승부하는 이탈리안 음식 중국 음식의 유행이 지나고, 요즘은 일본 음식이 대세다. 눈으로 먼저 느끼고 맛으로 두 번 감동한다는 그 음식. 미국인들은 고급 문화를 소비하는 문화인의 자부심을 느끼려 할 때 일본 음식을 택한다. 양 보단 질이라고, 지갑 열기를 서슴치 않는다.
그러나 거기에도 개인차는 있다. 도쿄 번화가에서 처음 대한 일본 음식은 첫눈에 말 그대로 감동 그 자체였다.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색이 재창조되어 거기 누워 있다는 놀라움, 그것은 충격이었다. 그러나 두 번 째 대했을 땐 또? 하는 뜨악함, 아니 좀 지루한 느낌이 들었다. 세 번 째 대했을 땐 완벽함이 주는 긴장감으로 불편한 나머지 슬쩍 짜증 마저 일었다. 두통조차 느껴졌다.
급전직하의 싫증, 거기엔 없는 것이 있었다. 여유의 부재! 그 순간 나는 촌스럽게도 편안한 음식이 그리워졌다. 사람 냄새 나는 수더분한 음식, 가령 집밥 비슷한 가정식 백반이 어디 없을까? 이때, 이렇게 지치는 기분은 과연 나만 갖는 것일까?
젊음은 풍요 그 자체이지만,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여 마음이 가난하고 추웠던 시절, 우연히 걷던 효자동 길에서였다. 그 시절 내가 좋아하던 음식 중의 하나는 찹쌀 도넛이었다. 그것도 명동 입구 케익파라의 찹쌀 도넛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것은 두개면 부족하고 세개면 양이 많아 그 동안 그것이 무척 불만스러웠다. 그러던 차, 혼자 걷던 그 효자동 길에서 원하던 양과 흡사한 도넛과 마주쳤다.
그 날 나는 허름한 가게의 처마 밑에서 그 소박한 도넛을 베어물며 가난이 씻겨 나가는 느낌에 눈물이 솟았다. 마음이 너무 가난하여 그 손맛에라도 기대고 싶었던 그 순간 목울대를 꽉 메우던 감동, 이런 정신적 활동은 공산품으로 생산할 수 없는 것이다. 식재료를 규격화할 수는 있지만 살맛나는 입맛, 사적인 반응인 감동을 어떻게 규격화하여 대량 생산할 수 있단 말인가. 규격화될 수 없는 개인의 감정까지 상품화하려는 현대 물신의 욕망이 난감하다.
모든 상품은 생산자의 성실과 정성이 소비자에게 느껴질 때 우수한 제품이 나온다. 그러므로 음식의 경우, 만드는 사람이 먹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갖고 관심과 정성-이것이 바로 감동의 관건이다-을 기울여 만든 뒤, 먹는 사람이 만든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편안한 마음이 될 때 우수한 상품이 된다. 그러므로 음식의 상품화 경우, 차라리 정성을 경쟁력으로 내세워 그 행동을 항목화하는 것이 어떨까. 그것도 요란한 정성 말고 소박한 정성으로. 눈이 휘둥그레지는 놀라운 감동도 기억에 남는 훌륭한 추억이지만 소박하게 가슴에 스미는 감동은 시간을 더해 가며 여운을 남겨 감동을 증폭 시킨다. 생명력 긴 진정한 감동이란 이런 것이 아닐는지. 그리고 화려한 것은 화려하게, 소박한 것은 소박하게 제 모습을 지닌 음식을 선보였으면 한다. 사람도 개성 있는 사람이 마음을 끄는 것처럼 음식도 제 모습을 갖춰야 감동이 산다.
하지만 요즘은 집에서조차 인터넷에 사진 찍어 올린다고, 소박한 음식에도 불필요한 식재료를 장식으로 얹는다. 돋보이는 것과 왜곡엔 분명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것을 소박한대로 두지 못하고 기여코 감동 요리로 변신 시키는 이런 현상은 전국민의 일등화, 천재화를 시도하는 한국 교육계의 학부모들과 흡사하여 입맛이 씁쓸하기만 하다. 획일화 되어 가는 세태로 하여 본질은 이처럼 점점 더 핵심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
이토록 달라져 가는 세태에 우리 집 입맛 손맛만을 고집하려 했다니. 생각이 이에 미치자 나는 말할 수 없이 서글퍼지는 마음을 누르며 생각을 바꿔 먹기로 결심하였다. 내 사랑과 정성이 그들에게 느껴질 때까지 군말 말고, 가정식 백반 따위 흉내일 망정 김치볶음밥 위에 계란 후라이를 올려 주자. 기꺼이, 그것도 잘 비벼지게 반숙 상태로. 장식이 들어간 음식보다 수더분한 정성이 가득한 음식이 살맛나는 음식이란 걸 알게 될 때까지. 꾸민 밥 보다 수수한 밥이 더 힘이 있다는 걸 알 때까지.
첫댓글 공선생님, 글을 읽고 공감이 갑니다. 자녀들 세대와 우리는 격차가 점점 벌어져서 우리집은
다문화 가정이라서 손자들 음식 해 주기도 힘들어요. 며느리가 제딸 먹을 음식을 잔득 사왔습니다.ㅎㅎ
나는 정선생이 준 미나리, 생채와 부추무침으로 밥을 비벼 먹었는데요. 얼마나 맛이 있는지! 내가 어릴 때 이때쯤이면 꽁보리밥에 된장찌개 푸성귀 무침으로 비벼먹고 십리길 학교에 다녔으니 그 건상식에 운동으로 오늘날 잘 버티고 있다는 사실 아이들이 알까? 눈, 귀, 입, 지프 업 하고 살랍니다.ㅎ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순해 선생님,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먹보라서 음식을 대하면 다른 생각 없이 퍼먹기만 합니다. 글을 읽고 나니 역시 집에서 먹는 밥이 가장 편하고 맛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와이프에게도 읽어보라고 할랍니다. 감사합니다.
독자까지 천거해 주셔서 생광스럽습니다. 꾸벅!
소박한 맛 내기가 훨씬 어려운 일인 것 아십니까? 거기엔 손맛이 따라야 하거든요. 공 선생님의 음식 맛의 비결을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글에 동감합니다.
명동 입구 케익파라의 찹쌀 도넛이 지금도 있을까요??
아들 데리고 토요일 오후에 케익파라에서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남편 다니던 은행이 그 근처였기에)
도우넛을 먹던 때가 그립습니다. ㅎ
케익파라의 찹쌀 도넛 맛을 아는 분이 드디어 여기 나타났네요. 무지 반갑습니다. 악수!!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