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 또한 지난 2006~2007년 간, 당시 서울신문에 연재했던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이라는 타이틀의 컬럼 중 하나입니다.
함께 읽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정리해 올립니다.^^
이따금씩 무대에도 서시고 또 음반을 준비하는 등 의욕이 대단하셨던 장현님, 결국 타계하셔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때문에 올릴까, 말까 망설였던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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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느림의 미학, '미련'의 가수 장현 [1]
위암 4기 극복, 다시 대중들 앞에 서다
이제 ‘암은 불치병이 아니라 난치병’이라고들 한다.
우리 주위에 암을 극복하고 건강한 새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 많기 때문이다.
돌아온 가수, 장현(62)씨도 그 중 하나다.
70년 ‘기다려주오’를 시작으로 ‘미련’, ‘마른 잎’, ‘나는 너를’, ‘석양’ 등을 발표하며 중저음의 보컬의 매력이 한껏 돋보였던 그는
지난 10여 년간 미국에서의 투병생활을 이겨내고 귀국,
새로운 사업을 펼침과 동시에 예의 건강한 목소리로 무대에도 서고 있다.
그가 위암 4기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 94년.
유년시절부터 특히 운동을 좋아했던 만큼 건강 체질이었던 그가 아파서 병원을 가본 것이 이때가 처음으로
처음 찾은 병원에서 덜컥 암 진단을 받은 것.
당시 수술을 집도한 의사는 부인 김영주 여사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까지 단단히 일렀다.
하지만 정작 장현씨 자신은 이상하리만치 이대로 삶이 끝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고 털어놓는다.
워낙 낙천적인 성격 탓이기도 했다.
위암수술을 받은 얼마 뒤 그는 치료차 미국으로 건너간다.
사실상 가수 활동을 접었던 76년부터 18년 동안 펼쳤던 사업도 이때 함께 접어야 했다.
그가 설립, 운영했던 삼성봉제공업회사는 제조직원만도 300여명을 거느린 수출업체로 연간 1500만 불 매출을 기록,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던 사업장.
“사업으로 인해 쌓인 과로와 스트레스가 결국 위암을 불렀던 셈이죠.
미국으로 건너가 투병생활을 하면서 지나간 시절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특히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면 철저히 인생을 즐기며 즐겁게만 살겠다, 이런 각오가 무엇보다 간절했죠.”
이러한 기대에 대한 바람이 컸던 탓일까.
수술 후엔 몸무게가 20kg가량이나 줄면서 불과 50m만 걸어도 숨이 차올랐지만 기적처럼 점차 빠르게 회복되어 갔다.
건강 때문에 택한 미국행이었지만 회복기간 동안 자녀들이 공부를 마쳤고 새로운 콘도사업에도 손을 대 성공하면서
한때 라이브카페 ‘미련’을 경영하기도 했다.
‘제2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현재 미국 쪽에 진행하고 있는 사업 때문에 수시로 미국을 오가며 여전히 분주한 그는
무엇보다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밝힌다.
70년대의 많은 이들 기억 속에서도 그렇듯 장현씨의 지긋한 매력은 오히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제 빛을 발하는 중후함에 있다.
여백이 많은 애상 띤 곡조를 감정이 격하게 않게 적당히 생략,
듣는 이가 각자의 감정을 이입하고 또 노래에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들이 한껏 돋보이는 곡들로,
속칭 ‘신중현사단’의 대표적인 남성보컬 중 한명이었지만
신중현 음악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현란한 록과는 사뭇 다른 ‘느린 박자(slow beat)’ 위주의 곡들을 비교적 스탠더드하게 불렀다.
‘미련’, ‘석양’ 등 이른바 ‘느림의 미학’이 돋보이는 노래들이 그것이다.
때문에 듣기에는 쉽고 편안하게 느껴지지만 불러보자면 의외로 힘든 노래이기도 하다.
▲ 미국에서의 사업이 정리하는대로 국내에 정착, 가수활동에 전념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던 가수 장현. ⓒ 2007년 7월, 박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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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장준기(張俊起).
1945년 4월 27일, 경북 울진에서 태어난 그는 대전유성관광호텔 나이트클럽을 거쳐 대구수성관광호텔 나이트클럽 시절,
작곡가 신중현씨를 만나 ‘기다려주오’를 비롯해 ‘안개 속의 여인’ 등을 발표하며 70년 11월, 대중 앞에 등장한다.
담백한 맛의 보이스컬러는 신중현씨의 슬프고도 느릿느릿한 화성과 잘 어울리며 이내 ‘신중현 사단’의 중심에 선다.
(계속)
글ㅣ박성서(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 Copyrights ⓒ2007-7-23일자, 서울신문.
첫댓글 오늘 가게에서 장현의 노래를 들으면서...사람은 갔어도 목소리는 남아있다는 게 참 다행스럽더군요. 가장 젊었을 때, 가장 노래를 잘 불렀을 때의 목소리로 영원히 기억되는 가수라는 직업...참 괜찮은 듯...
전 며칠 전 방송에서 장현의 '석양'을 끝 곡으로 틀며 스튜디오를 나서는데 순간, 코끝이 찡해 오더군요.
이젠 볼수 없지만 그래도 노래는 남았으니 열심히 불러야겼죠? 저는 나는너를을 내 애창곡으로 남겨두고 싶네요,
저두요...^^
위에 살아 있다고 나오구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