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뜻밖의 글은
아주 오랫동안 인서점아저씨가 준비해 오던 글입니다.
요새 장마로 농삿일을 못하게 되자
호미를 놓고 쓰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 제가 1995년 쯤인가
뉴욕의 한인유권자쎈터의 김동찬 님의
결혼 주례를 석게 되었는데
그 때 저는 바로 이 아래의 원고에서 말하는
도형으로 된 논리 '주체철학'의 원본을
결혼주례사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그 때의 신랑 김동찬님이 어제 귀국해서
저는 급히 이 글을 그 도형의 주체철학의 해설판의 원고작성에 들어가면서
아래의 글을 김동찬님께 드리고자 합니다.
또 밝혀 둘 것은 제가 많은 분들의 주례를 스면서 꼭 드리곤 했던
주례사에 그려진 도형이 바로 이 글의 원본이라는 점입니다.
여튼, 농삿일을 하면서 틈틈히 호미를 놓을 때마다
조그만 핸드폰에 이 글을 써 나가기로 굳게 약속하는 마음으로
오늘 그 다짐을 여기에 기록해 둡니다.
2022년 8월 9일 인서점 아저씨가
========================
우주농장의 머슴-----------1) 220806
[들어가는 말]
2022년 8월 6일 오전 6시, 나는 뉴스를 보고 있다. 장소는 양서면 용담리 20번지이다. 다행히 농막은 아직 붕괴되지 있았고 전기도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마당과 길은 이미 계곡물에 휩쓸려 만신창이다. 산등성이를 지키고 있던 큰 소나무와 참나무 몇 그루는 폭풍우와 맞서던 끝에 그 자리에 쓰러지고 노병의 꿋꿋한 힘으로 줄을 맞춰서 밭을 지키던 있는 작물들은 하얀 뿌리를 드러내면서 대지를 단단히 붙잡고 주저앉으면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의 든든한 자식들이자 머슴들이자 먹거리인 농작물들은 이제 지쳐가는 기색은 역역하다. 자연의 노여움이 우리 인간을 향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뉴스는 유례없는 미국 서부의 산불과 동부지역의 대홍수 그리고 유럽의 생생한 기상재해 영상으로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기상이변은 가뭄과 폭우뿐만 아니라 산불, 화산, 해일, 지진으로 이어진다. 이로 인한 희귀동식물의 수난과 생물다양성의 훼손이 생태계를 흔들어 놓으며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과 우리 인간의 삶과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했다. 뉴스의 마지막 화살은 인간의 미래다. 지구의 기후상승은 결국 인간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의 기반을 흔들어 80억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다.
뉴스가 전하는 대로라면 이미 우리 인간은 재앙의 한 복판에 서있는 셈이다. 우리가 우주선의 발사에 그처럼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지구를 정복하고 그 승리의 깃발을 올렸으나 이것이 재앙의 한 복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은 아닐까 여튼 현실은 차갑게 다가온다. 지구의 지붕이라고 할 수 있는 히말라야의 준봉들은 만년설의 옷을 급히 벗어 던지고 봄이라도 맞이한 듯 맨살을 드러내고 있으며 유명한 관광지인 몽블랑의 빙하는 녹아내리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아 온 많은 사람을 죽음의 골짜기로 밀어 넣었다. 지구의 남극과 북극의 만년설 역시 자신이 지켜야 할 극지의 의미를 잃고 식물과 동물의 보금자리를 꿈꾼다. 기상이변의 어두운 그림자는 다음 세기쯤의 어느 날 우리 인간의 무덤을 준비하는 기상예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거리는 공룡의 그림자가 2090년에 바늘을 꽂아놓고 있다는 예보가 있음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그러나 2022년 8월 6일 오전 6시, 지구의 재앙을 알리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시청자는 뉴스를 따라 또 다른 세계로 이동 한다. 뉴스는 우리를 달 탐사선이 발사되는 우주선발사 카운트다운이 시행되는 플로리다 현장이다. 찰나의 순간을 기다리는 우리는 이미 지구를 떠나 우주라는 무한공간에 이른 듯 감동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그리고 지구와 우주가 하나로 어우러져서 인간의 영혼을 축복하는 듯 비록 잠시일지라도 신의 무한과 영원을 맛보게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제 부질없는 인간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의미를 구속하는 감옥으로 부터 뛰어나와야 한다.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이 인간이다. 이제 지구와 몸과 그 지배로부터 벗어나 우주로 떠날 때다. 보아라 지금 우리는 우주로 떠나는 위대한 출항의 나팔소리를 듣고 있지 않은가 어두운 그림자를 뒤로하고 어느새 우리는 인간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향한 장도에 오르고 있지 않은가. 이제 지구와 1대 1로 다투던 시대는 과거로 돌려야 한다. 그런 것은 공룡에게나 주어버리자. 삶의 터전을 지구에서 우주로 대체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스스로 진화의 마지막단계를 마무리하고 우주의 주인이자 신으로 진화하는 영광의 순간이다. 그러나 그 순간이 그리고 그 완성이 신이 아니라 악마라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무엇인가 이런 재앙과 영광, 과거와 미레 악마와 신을 동반하고 나를 사로잡는 지금 내가 생존하고 있는 삶의 현장은 지구가 나에게 마련해 준 하나의 좌표 대한민국의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용담리 21번지다. 그리고 더 정확히 말해 나의 주인은 60키로 그램의 몸이다. 나의 몸, 나의 주인은 그런 이야기와는 그 어떤 상관도 없이 지금 이 좌표를 지키면서 살아가는 자연의 한 생명일 뿐이다. 그렇게 먼 재앙의 미래도 영광의 우주도 나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꿈과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났던 두 사람이 떠오른다. 15세기 탐험가 콜럼버스와 경전을 가지러 천축국으로 가던 삼장법사다. 콜럼버스는 물질의 풍요를 찾아 나섰고 삼장법사는 정신의 풍요를 찾아 떠났다. 나는 여기서 우리 인간의 욕망과 이상과 그 실현방법에 대해 잠간 짚어보고 싶다. 삼장법사는 손오공의 힘을 주문으로 제어하면서 선한 걸음으로 이상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세계를 욕망실현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는 인간 아니 자신과 인간들 그리고 국가의 이익이라는 선과 하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한 손에 성경을 들고 한 손에 총을 들고 세계를 무찔러 나가며 승리했다. 그의 항해로 지금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아메리카는 유럽 사람들의 소유물이 되었다. 그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그 때 그 곳에서 그 종족말살의 재앙을 피했던 원주민의 절절한 그리고 슬픈 또 아픈 얘기를 들어보자.
우리는 평화로이 살았지만, 콜럼버스가 온 뒤 변하고 말았소. 그들은 읽고 쓰는 법을 알았소.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지요. “여기 있는 이 땅은 내 것이고 저기 있는 저 땅도 내 것이고, 여기 위에 있는 이것도 내 것이다.”
코기족은 묻고 있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문자를 알고 화려한 옷을 입고 배와 비행기와 우주선과 거기에 수많은 경전을 읽고 교육을 받고 지성을 말하고 문화를 자랑하는 너희가 사랑을 말하는 너희가 진정 인간이란 말인가?”라고 말이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코기족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태초에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형제처럼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가르쳤지요. 그래서 우리는 형제처럼 함께 살았다오. 우리는 바다 근처에서 살았고 밍게오에서 살았고 이 근처 모든 곳에서 살았어요. 우리는 어떤 것도 해치거나 파괴하지 않았소.
우리는 평화로이 살았고 어떤 것도 팔거나 사지 않았소.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경작지들을 평화롭게 할 수 있는지 가르쳤지요. 만약 우리가 경작지를 만들고 씨를 뿌리고 그러고 나서 그것을 판다면, 그것은 마치 ‘어머니’의 가슴이나 다리, 다리 팔 가운데 하나를 잘라내는 것과 같아요.
우리는 땅의 넓이를 어떻게 재는지도 몰랐소. 우린 한 경작지에서 일하다 다른 데로 옮겨가는 식으로 살았으니까. 그러나 콜럼버스가 오더니 이렇게 말을 한 거요. “여기 있는 이것은 내 것이고, 저기 있는 저것도 내 것이다. 내 것이라고!” 그러나 ‘어머니’는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래서 우리도 이런 식으로 결코 말하지 않았소, 그러나 그 때 그렇게 말하는 것을 배운 거요.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지요. “저기 있는 저 땅은 내 것이고, 이 땅도 내 것이다. 나는 그것을 팔거나 살 거야.” ‘어머니’는 우리에게 평화로이 함께 살아야 한다고만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콜럼버스는 다른 걸 가르쳐 주었소. 덕분에 우린 이 땅은 내 것이고 저기 있는 저것도 내 것이야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운 거요. 그러나 우리 코기에게 ‘어머니’는 그런 짓을 절대로 가르치지 않으셨다오. ‘어머니’는 사고 파는 일을 가르치지도 않았고. 무슨 영수증 같은 것에 대해서도 가르치지 않으셨소.“
그 때 그 콜럼버스는 인간이 아니었다. 전지전능한 신이었다. 그러나 그 신은 한 손에는 총이 또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있는 신이었다. 세계를 창조한 신의 대리자로 왔던 것이다. 그 때 그 신은 하늘에 총을 쏘고 성경을 읽으며 하느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신 뜻과 주인임을 엄숙하게 선포하고 이제부터 자신이 이 대륙의 주인임을 선포했다. 그러자 그 땅의 주인들은 거의 몰살당하고 몇몇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반면에 당나라 테종대의 경장, 율장, 논장, 삼장을 통달한 고승 현장(삼장법사)은 서양의 콜럼버스와는 반대로 인간의 내부로 탐험의 발길을 잡아 나섰다. 그는 인간의 본질이 정신에 있음을 간파하고 그 진여를 찾아 떠난다. 천신만고 끝에 천축국에 이르러 인간의 만 악을 물리칠 수 있는 경전을 찾고 큰 감동에 눈물을 쏟아낸다. 그리고 만 가지 악이 모두 나를 너와 분별하는 분별지에 있음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정작 이 삼라만상의 악은 분별지가 없는 씨앗(유전인자)에 의해 나타나는 것임을 밝히는 불경의 뜻이 품고 있는 진여를 깨닫는다. 삼장법사의 이 깨달음은 콜럼버스가 좌우의 손에 장착했던 총과 경전 같은 외장도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영혼의 세계를 향한다. 이 영혼의 세계는 생명의 씨앗이 발아하고 성장하고 누리는 생명농장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땅에서 인간의 선성과 악성이 자라는 것이다. 삼장법사는 이 생명의 농장에서 선을 키워 인간으로 가꾸어내는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보자. 세계는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천변만화의 요지경이 따로 없다. 뉴스로 읽으며 하루의 삶을 시작하고 그 하루가 끝나면 다시 뉴스를 바탕으로 하루를 정리하면서 내일의 삶을 기획하고 그 설계도를 안고 잠자리에 든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일상이다. 나는 지금 그 세계 곳곳의 기상이변과 우주로 떠나는 인간의 여행이 재앙과 희망을 동시에 전해주는 것을 주제로 이 글의 문을 열겠다고 독자의 문을 두드리는 아침이다. 방금 코기족의 얘기로 인간의 문명이 인간을 악마로 만들었다고 했지만 나의 이런 이야기와는 다르게 오늘의 기상이변을 바라보며 그 지구의 기온상승에 큰 몫을 했던 과학자들의 근심걱정은 이제 지구를 향하고 있다. 인류를 향한 30년 전의 경고다.
“인간과 자연은 바야흐로 충돌하려 한다. 지금으로부터 10~20년 안에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인류의 장래는 그야말로 암담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1992년 당시 노벨상 수상자의 절반을 포함한 세계 71개국의 원로 과학자 1600인이 모여서 지구촌의 백성들이 맞이할 재앙을 막기 위해 ‘세계 과학자들이 인류의 장래를 위하여 경고함’이라고 발표한 편지다. 나는 이 경고야말로 삼장법사가 불경을 가지러 가면서 손오공의 가공할 능력을 제어했던 삼장법사의 주문을 오늘에 맞게 수정한 것이라고 본다.
참고로 400년 전에 멸종된 코기족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코기족의 존재는 영국 BBC 방송의 다쿠멘타리로 세상에 알려졌다. 나는 나와 뜻이 잘 맞는 그 다큐제작자인 엘런 이레이라에 주목해서 코기족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그들이 말하는 형님 즉 코기족 자신은 콜럼비아의 시에라 네바다의 원주민을 말한다. 엘런 이레이라는 ‘영혼의 부족 코기를 찾아서’에서 코기족의 한 샤먼으로부터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할 천금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알다시피 코기부족은 지구의 적도 콜럼비아의 시에라 네바다 지역에 사는 작은 민족이자 부족이다.
콜럼버스가 도착한 이후 코기족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하늘과 맞닿은 시에라네바다 호수의 산과 계곡으로 들어갔다. 시에라네바다는 천옥(하늘이 만든 지옥)이자 요새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하늘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별천지다. 그렇게 사백년의 시간을 보내며 산 아래서 벌어지는 문명이라는 야만이 누그러지며 야만이 인간으로 귀환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기다림도 헛되이 야만은 더욱 기세를 올렸다. 코기족은 콜럼버스가 퍼트린 야만이 곧 세상을 끝나게 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인간의 역사 역시 그와 함께 끝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이제 형님인 우리가 저 못난 동생들에게 세상의 의미와 인간의 의미를 말해 줄 때가 왔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 산을 내려와 영국 BBC에 그 경고의 말을 하고 그들은 다시 산으로 들어갔다. 코기족은 경고 끝에 ‘다시는 이런 말을 하지 않겠고 다시는 세상으로 나오지 않겠다.’며 만년설이 녹아내리는 호수 시에라네바다로 돌아갔다. 나는 그들의 이런 절절한 말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을 안다. 지금 우리가 종교처럼 신앙하고 있는 문명과 도시와 이를 지휘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코기족의 경고는 한 줄기 바람이나 뜬구름에 불과할 것이다. 더구나 그 모든 진보의 바탕이 되었던 우리의 언어와 문자와 지식까지도 그들은 악마의 도구로 치부하고 있으니 무엇을 더 이야기해야 하겠는가
나는 2022년 8월 6일 지금 나의 농장에서 아침 뉴스를 보며 이글을 쓰고 있다. 나는 지금 쏟아져 내리는 폭우가 그치는 대로 호미를 들고 나의 자식들이자 머슴이며 나의 먹거리인 농작물을 보살피러 나가야 한다. 그들은 나의 노예다. 칠백 명의 옥수수와 수만 명의 고구마와 수천 명의 들깨와 참깨가 나를 기다린다. 나는 그들의 노예이기도 하다. 나는 그들을 절대지배하지만 그들은 나를 상대 지배한다. 그들이 나를 위해 좋은 머슴이 되어주면 나 또한 스스로 그들의 머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자연으로 살아가는 원리이자 법이 아닐까.
지구온난화는 지구가 신음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법칙을 벗어나 오만방자한 짓을 하는 인간에게 ‘이제 제발 그만 하라’는 경고다. 더 이상 앞으로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돌아서야 한다. 인간의 고향 자연으로 가는 귀향만이 답이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반환점을 돌고 있다. 시간은 없다.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한다. 과학자들과 코기족의 경고는 옳다.
이제 나의 이야기가 첫발을 떼지만 그 첫발의 노둣돌 몇개를 놓아보자. 생명이란 무엇인가 지구의 농장에 그 주인이 뿌리는 씨앗이다. 인간 역시 그 씨앗의 하나다. 그리고 머슴으로 자라지만 그 모든 것은 지구농장의 농작물로 수확되는 지구의 먹거리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기후이변이라는 지구의 경고를 받고 있다. 그것은 재앙이다. 멸종한 공룡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농사꾼은 생태게에서 그 가족들과 다투고 부대끼며 떠들고 살아가는 자연의 삶에서 그 누구보다 인간이라는 생명의 지나온 날과 살아갈 날의 법률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제 농사꾼의 읽어낸 생명의 철학을 들어야 할 때다. 그 이야기를 도형논리와 도형논리로 읽어내는 현상발전의 법칙과 그 도형과 법칙으로 읽어내는 주체철학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인간의 역사가 가야할 이정표를 읽어내는 이야기의 삽짝 문을 열어보기로 하자.
끝으로 내가 꼭 밝혀야 할 빚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1979년이었다. 우연히 나의 이 [도형논리 주체철학] 이라는 원본을 본 조영명님은 “형님! 이 논리와 철학은 마르크스를 넘을 수 있는 유일한 사상입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산으로 갑시다.” 그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가평의 한 절간 집에서 많은 토론과 함께 800여개의 도형으로 논리체계를 만들고 이를 ‘현상발전의 법칙’이라고 부제를 달았다. 조영명님은 후에 ‘러시아 혁명’ 등 여러 권의 책을 썼고 월북작가의 출판을 하는 슬기추란사를 경영했던 뛰어난 분이다. 그 때 나는 이 도형논리의 ‘설명 판 주체철학’을 쓰기로 약속했었는데 수 십년이 흐른 지금 그 빚을 갚고자 하는 것이다. 그가 꼭 어디서 ‘기쁘다’는 소식을 전해오기를 바란다. 그 후 이 원고는 오랫동안 나의 생각과 삶을 지배하다가 조승상이라는 수사관에 의해 한국의 바스티유감옥이라는 곳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그러나 다행히 국과수의 ‘주체사상이 아니다’라는 의견으로 출옥하기도 했다. 또 사람의 의미를 추구하며 ‘인서점’의 가판에 새겨놓았던 ‘인간은 지식을 가진 무서운 동물이다.’라는 한 줄의 문장 역시 나와 많은 대학생들을 만나게 하는 질긴 끈이 되었다는 애기도 해두고 싶다.
우주농장의 머슴 심범섭이
2022년 8월 7일 두렁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