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쓰는 마지막 후기이다. 마지막 후기인 만큼 필자의 타이틀인 내맘대로 후기의 진수를 보여주겠다. 오늘 글에서는 한주간의 농성촌 얘기는 없다. 농성촌에 관해서는 함께살자 농성촌 카페와 팟캐스트 방송 시청역2번 출구에서 이굉장님께서 잘 정리해 주셨으니 참고바람. 오늘은 100% 내맘대로 채워보겠다.
어제 읽은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법륜스님의 신간 '쟁점을 파하다' 의 나오며 부분을 전체 인용해보겠다. 책의 내용이 오늘 후기의 전부이다.
한겨레출판사 ㅣ 법륜 ㅣ 쟁점을 파하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미래구상)
p 168 ~ 175
나오며
공동체의 시대적 과제를 읽어라.
개인이 자신의 목표를 정해놓고 이를 성취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한다. 대개는 열심히 살지 않아서 성공에 이르지 못하지만, 열심히 해서 목표를 달성했는데도 실패할 때가 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공부 열심히 하여 좋은 대학교 나와 고등고시에 합격해서 부장검사가 된 사람이 있다. 개인으로서는 성공한 인생이었다. 그런데 해방이 되자 하루아침에 역사의 죄인이 돼버린 것이다. 이 사람은 누구를 죽인 것도 아니고 남의 물건을 훔친 것도 없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았다. 그런데 왜 어느 날 이 성공이 실패가 되었는가.
인간은 그 혼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 안에 있다,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이 일치할 때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들이 서로 상충할 때는 반드시 부작용이 따른다. 농사 짓는다, 공부한다, 모두들 개인적으로 과제가 있지만, 일제시대라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공동의 과제는 독립이었다. 당시 조선 민중의 가장 근원적인 고통의 원인은 식민지배에 있었고, 이것이 해결되는 게 모두에게 이익이었다. 그런데 자기 이익을 추구했던 것이 모두의 이익과 어긋나니까, 어느 날 성공이라 믿었던 것이 실패로 돌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이익에만 관심 가질 것이 아니라 모두의 이익이 무엇인지 인식해야 한다. 일제시대에 나라의 독립처럼 그 시기 사회의 공통 과제를 시대적 과제라고 하고, 이를 아는게 역사의식이다. 이 사람은 개인 차원에서는 충실했지만 공동체의 이익을 못 읽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다. 의사든 변호사든 상광없이 어떠한 개인도 자기의 인생에만 충실해서는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는 역사의식이 있어야 한다. 공동체의 시대적 과제를 알아야 한다. 시대적 과제를 아는 것을 시대를 읽는다고 한다. 시대를 읽어야 자기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자신의 진정한 행복,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 세상을 알라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의 흐름을 알아야 하고, 그 흐름에 기여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 성공한 인생이 된다.
앞의 예에서 검사를 그만두고 독립운동을 하는 길도 있겠지만, 모든 인간이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검사를 그만두지 않고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독립군이 잡혀 오면 자기 권한안에서 형량을 줄여줄 수 있다. 아니면 자기 월급의 10퍼센트를 독립군 자금으로 줄 수도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다. 이렇게 못 했다면 시대를 못 읽었기 때문이다. 시대를 읽으면 자신의 오류를 보완할 수 있다. 나중에 친일명단에 올라 가더라도 그 사람 독립군 자금 댔다든가 사실은 독립군 많이 도왔다든가 그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조금씩 도왔다든가 하는 식으로 조금은 수정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역사의식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특별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보자. 그가 5.16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잘못된 것이다. 유신을 한 것도 잘못됐다. 인권탄압을 한 것도 잘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그를 좋아하는가. 당시 남한의 시대적 과제는 빈곤 퇴치였다.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 이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읽었다. 그리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많은 문제가 있었음에도 시간이 지나 되돌아봤을 때 재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 독립 후에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지듯, 산업화에 성공한 뒤에 산업화 세력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진다. 1980년대 대학생들은 당시에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학에 보내놨더니 감옥가고 공장가고 난리 피우고 해서 미친 놈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민주화가 이루어진 뒤에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진다. 재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했기 때문이다. 먹고살 만해진 후 "사람은 밥만 먹고 못 산다. 이제는 좀 자유롭게 살고 싶다" 이게 그 시대의 요구였다. 시대적 요구를 읽어서 대응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결국 재평가 작업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시대의 시대적 요구는 무엇인가? 남한 사회만 보면 양극화 해소다. 경제민주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제는 남한의 역할이 남한 내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에는 남한 정치인이 남한만 책임지면 됐는데, 지금은 북한까지도 포함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시대적 과제가 안으로는 양극화 해소, 밖으로는 평화와 통일이다. 이제 우리는 이 두개의 수레바퀴로 굴러가야 한다. 뭘 하든 이것에 기여해야 한다. 이 시대정신을 읽었다면 말이다. 이 시대정신을 읽지 못했다면 통일이 된 이후에, 양극화 해소가 된 뒤에 다시 평가받게 될 것이다.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정해진 것이 아니다. 누구를 따라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시대를 읽고 그 방향으로 자기 하고 싶은 삶을 사는 게 진짜 자기를 위한 삶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 자기를 위하는 삶이 남을 위한 삶이 되고 공동체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자기 발전이 공동체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한편, 공동체가 발전하면 그것은 자기에게도 도움이 된다. 자기도 그 속의 일원이라서 혜택을 받는다. 우리 경제가 성장하게 되면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혜택을 받고,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독재세력까지도 혜택을 받는다. 어떤 면에서 민주화 혜택을 가장 많이 본 사람들이 보수세력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얼마나 자유를 만끽했는가. 지도자를 자기 마음대로 욕할 자유를 만끽하지 않았는가.
개인과 사회를 분리해서 볼 게 아니다. 물론 일시적으로는 분리가 된다. 경쟁과 공존에서 일시적으로는 경쟁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공동체가 위협을 받으면 공존의 논리가 앞서게 되어 있다. 공동체의 이익이 위협받는 데도 개인이 자기 이익만 추구한다면, 이는 비난받을 뿐만 아니라 결국 자기 삶도 붕괴시키는 것이다.
재벌이나 부자들의 이익 추구도 마찬가지다. 평상시의 이익 추구는 긍정할 수 있지만, 불황이 닥쳐 전체적으로 고통이 커질 때는 많이 가진 사람이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한다.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가 안정이 되면 다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해나가면 될 일이다. 이렇게 할 때 자신의 부를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갈 수 있고, 존경도 받을 수 있다. 사람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만날 욕 얻어먹고 손가락질 받는다면 그게 무슨 행복한 삶이겠는가. 돈을 많이 가진 게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다. 돈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고 어떻게 유지하는가에 따라서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언제나 공동체의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시대적 흐름을 읽고, 지금의 과제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이는 결코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위한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시대를 읽자. 시대적 과제 해결에 기여하자.
어제 급히 책을 다 읽고 필자가 직관에 의해 하고 있던 지금 까지의 농성촌에서의 행위에 대해서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을 얻었다. 필자는 무의식적으로 시대정신을 강정마을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은 나 자신의 이익 보다는 공동의 이익이 우선시 되야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후기를 써오면서 많은 아픔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전에는 알지 못해서 다르게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고칠수 있었고,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 필자는 2012생명평화대행진 과 함께살자 농성촌을 통해서 공동체를 보았고 아직까지는 그들과 같이 하고 싶은 생각이다.
필자에게 혹자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취직하는데 힘써야 하는 것이 아니냐' , '그렇게 해서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 .. 필자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대로 찍혀 나올 필요는 없다. 만들어진 길도 있지만 개척하는 길도 있다. 사람의 모습이 각기 다르듯이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나 행복을 느끼는 지점도 각기 다르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고 또한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지금 하는 일을 돈 받고 하는 것이라면 때려죽여도 못한다. 내가 마음속에서 원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후기는 이번으로 끝나지만 나의 행동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내 인생에 일방통행로 를 뚤어준 엔지니어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