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회사가 정리가 되어버리고, 진혁은 당장 갈 곳이 없어 삼척에 주저앉게 되었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진혁이 지인을 만나 동양 시멘트 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축하 한다며 두 사람이 함께 술을 한잔 하다, 본래 여자 없이 못사는 진혁과, 그를 사모하던 정희는 서로의 격정에 휘말려 몸을 섞게 되었다. 시집도 안 간다 하면서, 진혁의 수발을 하는 정희를 정희의 식구들이 못 마땅해 하던 중, 그렇게 불편하게 눈치를 보며, 그 집에서는 살면서 때때로 두 사람이 밖에 나가 시간을 보내고 오다가, 어느 날 정희의 오빠가 눈치를 채고 진혁을 추궁하자, 진혁은 엉겁결에 정길의 모친 정자가 이미 1년 전에 세상을 달리해서, 아이들은 고모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정희도 그의 말을 믿고,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보내 주라는 말로 자신의 죄책감을 털어버렸다,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지만, 그 후로 정희의 어머니와 오빠에게 허락을 받고 살림을 차렸다, 얼마 후에 효성이 태어나자, 정말 신혼 생활을 하는 기분으로 살아오다, 정길이 나타나자 불안감은 있었지만, 정길이 아무 눈치를 안 보이는 지라 마음을 놓았었다, 진혁이 자신의 가족을 마음속에서 지우고, 그들에게 생활비도 안 보내줬다는 사실을 자신은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요즈음 들어 자신에게 주는 생활비가 줄어들자, 회사를 창립하고 자본이 궁하기에 그런가 보다 했지만, 넉넉하게 주던 생활비가 줄어들자, 정길이 여기 있고, 동생들도 컸으니, 그 가족들에게 더 보내주고 있다고 이해했다, 그간 정길의 식구들에게 한 푼도 보내지 않았기에, 회사 월급일지언정 거의 전부를 자신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몰랐다가, 지연의 말을 듣고 나자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언제고 알아야 될 일이었기에, 그것이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고 진혁과 헤어져야 된다는 사실이 정희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진혁을 깊이 사랑하는 정희로서 헤어진다는 생각은 아예 하기도 싫었다, 결혼식을 치루고 지연보다 이틀 늦게 삼척으로 돌아온 진혁이 아무 일도 없듯이 태연하게 자신을 대하며, 효성을 안아주는 것을 보자, 조금은 안심이 된다, 하루를 지내고, 공사 현장으로 떠나는 진혁의 옷가지를 챙기며, 몇 번이나 입을 떼려다가 두려운 마음이 들어 그를 그냥 떠나보내고, 그가 안 보이자 허전한 마음이 들어 효성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앞으로 다가올 암담한 내일을 생각해 본다.
천안 역에 도착해서, 무궁화호에 올라 침대칸에 자리를 잡자, 정길이 주섬주섬 가방을 뒤져 안주와 와인을 꺼낸다, 은숙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언제 이런 걸? 하는 눈으로 정길을 바라본다, 정길이 그런 은숙을 와락 끌어안고 키스세례를 준다, 이제는 허가가 났으니까 하는 마음으로, 은숙이 조금 몸을 비틀며 반항하다 체념하고 같이 호응한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야 정길이 놓아주자, 휴! 하면서 눈을 흘기며 잔소리를 한다. “오빠! 결혼 했다고 아무데서나 끌어안으면 안 돼요, 아이! 이 포도주는 또 뭐야? 예수님도 만드셨다고 내가 했다고? 내가 그랬었나? 오빠는 그런데는 기억력이 좋아, 아까 목사님 주례하시며 눈물 흘리시는 거 보았지? 아버지와 친구사이라서 더 감회가 깊으셨을 거야, 좋아 신랑이 주는데 받아야지요, 잠깐, 포도주는 영화에서 보니까 잔이 차도록 따르지 않던데? 잔은 차야 된다? 호호호 그건 술고래들이나 하는 소리지, 하여튼 오빠는 앞으로 술, 정말 안 되는 거 알지?” “잔소리는 그만! 자! 건배, 은숙이와 나와의 영원히 하나 됨을, 몸은 둘이지만 영혼은 하나가 된 걸 위하여, 짠하고 부딪치고 어, 쏟는다, 조심 해, 그러기에 왜 내려놓아? 잔은 들었다 하면 한 번에 마셔야지 되는 거야.” “나, 이거 다 마시면 취해서 안 돼요, 오빠, 그리고 우리 호칭을 바꾸는 게 어때? 은숙아, 오빠, 결혼한 사람들이 할 소리가 아닌 거 같아요, 우리 지금 아예 정하자, 음! 오빠를 뭐 라고 불러야 좋을까?” “난 은숙이 이름 부르는 게 좋은데, 에이 뭐! 그러면 음, 음 그럼 좋아, 끝 이름자만 따서 그냥 숙아! 하고 부르면 어떠실까요?” “좋아, 그래요, 좋은데, 그럼, 나는 저기요, 아니면 저기 애들 아빠 할 수도 없고, 당신과 내가 하나니까 나, 자기, 그래 자기야? 자기야! 어감도 좋고, 부르기 쉽고 이거 좋은데! 어때 오빠?” “자기가 자기를 부른다? 아주 좋은 생각이다, 앞으로는 내가 숙아! 하고 부르면 숙이는 자기야 나 불렀어? 이런단 말이지 좋았어, 즉 자기와 나는 하나다? 하하하하 그런 의미로 다시 한 잔.” “포도주는 조금 마셔야 몸에 좋다고 했어요, 그만하고 우리 누워서 창밖을 봐요, 그림이 계속 바뀌는 거 같아 보기 좋아, 도착은 멀었지? 나 졸려요, 너무 피곤 해, 조금만 잘게요, 아아 흠.” 은숙이 눈을 감고 있자, 정길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이 떠오른다, 기분이 찜찜해 진다, 효성이 엄마와 지연이 때문이다, 지연이 아직까지는 비밀을 지켰겠지만, 회사 사람들이 모두 보았기에, 더 감추기 보다는 말을 할 것이다. ‘원석이는 말을 안 해 줬어도, 고모네 집에서 결혼식을 한 줄 알겠지? 그런데 삼척 여자는? 지연 누나가 틀림없이 말했을 텐데, 알고 있겠지? 아버지가 어떻게 해결 하려는지 모르겠네, 정래하고, 희숙이는 아예 살림을 차릴 거 같은데, 희숙이 부모도 정말 좋으신 분들이야, 정래의 사정을 알고, 삼 년을 기다려준다 하고, 혼인신고 하는 것만으로 둘이 서로 저렇게 있어도 뭐라 안 하는 것을 보면, 그 녀석이 효자라고 소문난 놈이라 그런 가? 그래도 이왕 혼인신고 할 바에야,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나을 것 같네, 아? 정숙이 누나가 수철 형하고 같이 살았을 때, 어머니가 돌아 가셔서 그런가? 아니면 탈상 때문이라는데, 우리나라 효자들의 관습인가? 꼭 지켜야 하는 거야? 실제로 같이 살고 있으면서 왜? 사람들의 눈 때문에? 현재 사람들의 형편을 옛 선조들의 체면 바람에 망치는 거잖아? 내가 만나서 다시 권해 봐야지.’ 은숙이 잠이 들자, 정길은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내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이드니, 주변 사람들의 처지에 눈이 돌아간다, 그러면서도 편안하고 아늑한 기분, 마치 도를 얻은 도사 같은 기분, 아니, 신선이 되어 구름을 타고 있는 것 같다. “오빠 자는 거야? 아니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응? 호호호 놀라기는, 왜? 무슨 생각을 그렇게 넋을 놓고 하고 있었어요, 난 같이 잠들은 줄 알았는데.” “정래의 처지를 생각하고 있었어, 수철형도 그렇고, 실제로 둘이 살을 붙이고 사는데, 결혼식을 안 하고 있는 것이 어째 합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숙은 어떻게 생각해? 좀 가식적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맞아요,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그러는 거잖아? 시에서 표창 받은 효자 라는 명목 때문에, 남의 눈들 때문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오히려 어서 식을 올리고 손자를 낳아 주는 걸 더 바라실텐데, 다음에 만나면 우리가 권해서 어서 식을 올리라고 해요, 수철씨나 희숙이 부모들은 이해하면서도, 그 속들은 아마 안 좋으실 것 같아요, 남들이 내 자식이 무슨 결점이 있는 것같이 생각할까 기분이 언짢을 거예요, 겉으로야 그들에게 잘한다고 말할 지라도 말이죠.” 얼굴을 마주보고 말을 하다 키스를 하고, 서로 껴안고 눈을 감은 채 행복감을 마냥 만끽하다가, 또 은숙의 수다로 시작해 대화를 한동안 하다가, 눈이 마주치면 서로의 입술이 부르트도록 키스를 하고, 또 공기가 들어올 틈새조차 없이 껴안고는, 눈을 감고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창문 유리에 비친다,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이 아름답다, 정길이 은숙의 몸을 돌려 차창을 바라보게 한다. “여기는 종착역 항도부산입니다, 여기는 종착역 항도부산입니다, 내리실 때 다시 한 번 소지품을 잘 챙기시고 조심하여 내리십시오, 긴 시간 불편 하신 점이 있었으면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 열차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다음에도 편리한 열차를 이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손님여러분 모두 안녕히 가십시오.” “예, 아저씨 영도 호텔로 가 주세요, 숙아 아직 잠에서 안 깼어? 눈에 졸음이 잔뜩 이네, 아가씨 정신 차리세요, 이제 시작인데 벌써 지쳐서 그러면 어떡해요, 하하하하 이제 거의 다 왔어요.” “며칠을 차에 시달려서 그런지 너무 피곤해요, 자기는 안 그래? 아이참! 오빠는 하나도 안 지쳤네, 아주 싱싱한 생선 같아.” “숙이가 아무리 생선회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렇다고 남편을 생선에 비유하다니, 괘씸한 마누라 일세, 하하하하.”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은숙과 함께 밤을 보낼 생각을 하니, 숨이 가빠오기 시작한다, 그 동안에도 은숙을 가끔 안았지만, 마음 놓고 사랑을 나누어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염려 없다는 여유로운 마음에 기분이 좋다. “우와! 이런데 처음 들어와 보니 그냥 촌놈이 되 네, 아버지 말대로 오백 원 주니까, 되게 친절 하다, 이런 호텔에서 사는 사람들은 청소비 팁만 해도 엄청 많이 들겠다, 그렇지?” “자기야, 옷부터 벗어요, 옷을 옷장에 걸어 놓아야 주름이 펴지지, 가방에 들어 있는 옷도 다 꺼내서 걸어 놓아야겠어요, 여기 있어요, 호텔 잠옷으로 갈아입어요.” “참, 숙이는 변기 사용 할 줄 모르지? 내가 가르쳐 줄게 이리와 봐, 이게 아주 웃기거든, 나는 기지촌에 살아서 사용해 봤어, 미군 부대에 일하러(냉면 배달하려고, 이걸 밝힐 수는 없지) 들어갔을 때, 나도 처음에는 도대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나도 모르겠다, 하고 여기에 이렇게 올라가서 일을 봤다니까, 하하하 정말 그 때 얼마나 아슬 아슬 했던지, 외국 사람들은 우리보다 몸이 더 큰데 어떻게 일을 보나 하고 신기했었어, 어? 안다고? 괜히 아는 척하다 망신당했네.” “나도 상식적으로 아네요, 그러지 마시고 짐이나 먼저 풀어 놓으세요, 자기 씨.” “나, 이런 조그만 목욕탕은 영화에서나 보고 처음이야, 숙이도 마찬가지지? 우리 둘이서 같이하자 응? 뭐가 부끄러워? 이제 우리는 하나잖아? 자기 몸이 내 몸인데, 자기 몸을 보고 창피한 사람이 있나? 자기 몸에 그렇게 자신이 없어? 밤에 안아만 봤지, 숙이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도 모르니까, 오늘은 찬찬히 곳곳을 아주 천~천히 살펴보아야지, 뭐? 그러면 따로 잔다고? 누구 맘대로? 내가 이 날을 얼마나 학수고대 했는데, 어림없는 말씀은 하지 마시라고.” “오빠, 자기야 그러지마, 그럼 나 밖으로 도망 갈 거야? 자기 혼자서 자고 싶으면 그래 봐요? 어디.” “와! 첫날밤에 남편 길들이기 작전을 하시려고? 안 통하지, 그동안에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얼마나 목이 빠지게 기다렸는데, 숙이는 내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안 궁금해? 그럼 남편이 만약 얼굴을 다쳐서 병원에 입원 해 있으면, 나를 어떻게 알아보고 찾을 거야? 아니 신분을 밝힐 만한 것이 없을 때 말이지, 헤헤헤 어때? 미꾸라지 양, 어디 한번 빠져나가 보시지? 내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야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지.” “어휴, 엉큼해, 자기가 온 몸을 다쳐도 난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어, 내 영혼이 오빠 안에, 자기에게 있으니까, 자! 먼저 들어가서 씻으세요. 좀 있으면 호텔에서 뭔가 갖다 준다고 아까 그런 거 같은데, 아니 예요? 어서 들어가요, 아이 참! 호호호 오빠~ 팬티는 욕탕에 들어갈 때 벗어요.” ‘어디 두고 보자, 누가 이기는지, 우선은 몸부터 씻고, 다음 물을 틀어놓고, 몸을 푹 담그고 지금부터는 쇠귀신 작전이다, 아무리 불러봐라 내가 대답을 하는 가, 아주 잠든 척 해야지, 후후 편하게 누워 가만히 있으면, 지가 안 들어오고 얼마나 견디나 보자. 아! 기분이 아늑해 지는 것이 정말 좋다.’ “오빠, 오빠? 오빠 자기야! 왜 대답이 없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대답 좀 해봐요, 어머나! 어떡해, 안 되겠네, 호텔에 연락 해야지 아냐, 아픈지 모르니까 병원에 전화 해서 앰블런스 차를 보내라고 해야지.” “병원차라니! 숙아 나 여기 있어, 깜박 잠이 들었었나 봐, 전화 하지 마, 지금 나갈게, 어라? 뭐야? 내가 속은 거야? 아이고! 이기려고 생각한 내가 잘못이지, 아휴! 졌다 졌어, 항복.” “오빠 속에 내가 들어 있다는 거 알면서, 내가 나한테 속기가 쉬워? 그러니까 앞으로도 속이려 하지 말고 자수 해, 알았지 자기야? 호호호 자수도 내 맘에 들어야 하지만 말이지, 예, 잠깐 기다리세요, 오빠, 호텔에서 뭔가 가지고 왔나 봐요, 어서 문 열어 줘요.” “이런 호텔에서 가져온 게 겨우 이거야? 빵하고 과일이네. 어? 포도주? 숙이가 시킨 거야? 여기서 준거라고? 흐흐흐 호텔에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군, 좋았어, 어? 뭐해! 어서 욕실에 들어가지 않고?” 은숙이 탕에 들어가자 정길이 머리를 굴린다, 영화에서 봤었던 장면, 사랑하는 연인 들이 그 욕탕 안에서 사랑을 나누던 그 장면을 자기도 해보려고 별렀었는데,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게 하며, 마이동풍으로 말을 안 들으니 어찌해야 은숙이 승낙을 할까? 하고 머리를 쥐어 짜 보는데, 도대체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지 것 벼른 것을 안 해 본다는 것도 절대 안 되는 것이고, 좋아 누가 이기나 보자하고 욕실 앞으로 다가간다, 자신의 내심을 눈치 채지 못하게 최대한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2 차 공격이다. 아주 부드럽게 살살 감정을 녹이는 목소리로 천천히 아양도 부리면서 점잖 하게~, 가만 있자, 내가 너무 체신머리가 없는 것이 아닌가? 에이 뭐! 으흠.’ “숙아, 어때? 피곤이 좀 풀리지? 뜨거운 물 안에 있으니 또 잠이 오는 거야? 그래서 말인데, 숙아 내가 들어가서 어깨도 주물러 주고 씻겨 줄까? 응? 아냐, 숙이가 너무 피곤할까 해서야, 엉 큼은 여기다 벗어놓고 들어갈게, 정말이라니까 숙아! 제발 이 문 좀 열어 주세요, 소원이에요, 공주님 앞으로 충성할게 좀 열어주라, 아이고, 저 고집통머리, 그래 관둔다, 관두자 관둬.” 호락호락하지 않은 은숙을 설득 하다가 실패하자, 정길의 입이 튀어 나온다, 그러나 그 것도 잠시, 탕에서 수건으로 몸을 감싼 채, 문을 열고 나온 은숙의 모습을 보자, 곧 입이 헤 벌어진다, 시간이 얼마든지 있는데 내가 왜 조급해 하지? 하는 마음이 들자 자신이 바보스럽다, 천천히 차분하게 하는 거야, 긴장을 풀면서 은숙을 창문 쪽으로 이끌어 어깨를 안고 같이 밖의 광경을 바라본다, 마음이 통했는지 은숙이 이번은 다소곳이 어깨에 머리를 댄다. “야경이 너무 좋다, 진짜 근사하고 멋있어, 나 이런 거 처음 봐서 너무 감격스러워, 이런데서 매일 살라고 해도 살겠다, 아니라고? 그럴지도 몰라, 오래되면 싫증나겠지, 부산 사람들은 경포대가 더 멋있다고 한다는데, 그러고 보면 사람들 욕심은 한이 없어요, 자기야 더 가까이 와, 꼭 좀 안아 줘봐, 으음! 이 순간이 너무 황홀해요. 우리 이렇게 서서 밤을 새우면 어때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여자의 몸일 것 같다, 아니 경험이 아니라 실제가 그래, 그러니까 화가들도 여자의 나체 그림을 많이 그리는 거지, 그림으로는 많이 봤어도 사실 나는 여태 여자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이 없어, 정말이야, 숙이 몸을? 아니야 이불 속에서는 만지기만 했지 본 것이 아니지, 그래서 오늘 같은 날이 오기를 잔뜩 기다렸는데, 숙이가 말을 들어 주지 않아서 내 맘이 좀 울적 해, 자! 포도주 마시면서 보여줘 봐, 밖에 경치가 아무리 좋은들 숙이 몸만 하겠어, 아부 하지 말라고? 아부는, 진짜 그런 걸, 진짜야 진짜, 나는 너무너무 보고 싶어, 숙이도 나 벗은 몸 보고 싶지 않아? 보고 싶지? 자! 잔을 내려놓고 돌아서 봐, 손 좀 치워 봐, 하! 참내, 나중에는 나 좀 제발 봐 줄래요, 할 걸 괜히 뻐기지 말고.” “좋아, 그럼 오빠부터 벗어 봐, 아니? 아니야 호 호 훗, 호호호 팬티 말고 잠옷.” 정길이 이때다 하고 잠옷을 벗는다, 팬티만 입은 채 서있는 그의 몸은, 어느 조각가의 솜씨보다 더 정교한 조각 같고, 아름다운 예술품 같았다. 은숙이 멍한 풀린 눈으로 정길의 균형 잡힌 몸을 바라본다. “어때 보기 싫지 않아? 지금도 몸 만들려고 운동 계속하는데, 아직은 별로인 것 같아, 아직 완성 된 몸이 아니거든.” “아니야, 오빠, 여름에 은성이 등목도 해 주면서도 남자의 몸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자기 몸은 예술이다, 너무 아름다워! 남자의 몸이 이렇게 황홀하게 생겼는지, 난 몰랐어, 오늘 처음 알았어요, 자기의 몸이 정말 이렇게 조각같이 근사하고, 멋있는 줄은 몰랐어요.” “고마워, 너무 칭찬하니까 어째 어지러운 것 같다, 자! 이제 숙이 차례야, 벗어 봐, 아니 싫어, 숙이가 벗어, 돌아서지 말고 그냥, 에이! 돌아서지 말고 벗으라고, 어어 어! 이럴 수가? 정말 실망이네, 실망, 정말 이럴 수 없어, 뭐가 잘못 되었어, 내가 잘못 알 리가 없어. 이럴 리 없는데.” “왜? 자기야 뭐가 실망이야? 그렇게 보기 싫어? 내 몸이 정말 보기 싫어서 그러는 거야?” “아니, 숙이 몸에 날개가 안 보여서 그래, 날개는 어디 감춘거지? 돌아서 봐, 어! 정말 안보이네.” “이 악당, 깜짝 놀랐잖아, 정말 내 몸이 형편없이 못 생긴 줄 알고, 아휴, 능구렁이 같으니 어쩜, 말 한 마디가 그렇게 미울까? 몰라요, 아유 놀래라! 한 번 더 놀리면 정말 말도 안할래.” “숙이가 얼굴만 미인인 줄 알았지, 몸이 얼굴보다 더 예쁜 줄은 이제야 알았네, 진짜 예술품이다, 무슨 잘 깎아 놓은 조각 같아, 아름다워, 너무너무 아름다워, 나 혼자 보기가 아까울 정도로.” “오빠 아부는 언제 어느 때에 들어도,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가 않아서 좋아, 호호호호 좀 더 해봐요, 간신님.” “그럼, 무슨 국물이 있는 거지? 없다면 안 해, 음, 있다고? 흐음! 그러면 속에 있는 진짜 말을 할 게, 어어! 겁먹는 거야? 울상은! 아니야, 내가 어떤 산을 쳐다보고 너무 아름다워서 가까이 가보니, 산속에서 향기가 진동하거든? 다가가서 보니까 아름답고 먹고 싶은, 과일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거야, 사람의 코를 자극하는 향기보다, 침을 흐르게 하는 탐스러운 열매가 가득 열려 있었어, 그런데, 너무 높아서 따 먹을 수가 없는 거야, 그럴 때 어떡해야할까? 돌을 던져 따 먹을까? 그러면 과일이 떨어져도 터져서 먹을 수 없을 걸, 그 때는 나무에게 비는 거야, 나무에게 두 개만 달라고, 하나는 숙이 거냐고? 아니 더 들어 봐, 너무 간절한 얼굴로 진심을 다해, 그렇게 나무 에게 빌었더니, 나무가 과일 두 개를 줬을까 안 줬을까? 이해가 안 된다고? 그 나무가 숙이야! 과일 두 개는 브라와 팬티고, 이왕이면 그것도 좀 벗어 봐, 응? 진정 아름다운 여인의 몸이 어떤지 좀 보여 줘 응? 정말 보고 싶어 그래, 완전함이 무엇인지를.” “싫어, 무조건 안 돼, 아이! 자기야 왜 그래? 어쩜! 말도 안 되는 말을 그렇게 지어 내서 한담, 아유, 그러지 마요, 자기가 이상해 보인단 말이야 그러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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