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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요한복음(33) /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양입니까?”
☞ 말 씀 : 요 한 복 음 10장 22절 - 42절 (신약성경 p.163)
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35.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느냐.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39.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40. 다시 요단 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세례 베풀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 아멘!
우리 예수님은 ‘나는 양들인 너의 선한 목자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당시 거짓 지도자들과 달리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 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 세운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른 데로 양의 우리에 들어온 자가 아니라, 문을 통해 들어온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유일하신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양의 문이라고 말씀하시며 “그 문으로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는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일한 문이 되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구원을,
얻을 뿐만 아니라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누리는 풍성한 삶은,
경험한 사람들만 압니다. 말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 생명이 충만한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양들인 우리를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 주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 주신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우리 밖에 있는 양들, 잃어버린 양, 방황하는 양들까지 관심 갖고 돌보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목숨까지 내어 주시는 사랑을 베푸시는데, 억지로가 아니라 스스로 하십니다.
즉 우리 예수님은 자발적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헌신을 하시는 참 좋으신 선한 목자이십니다.
목자 되신 예수님은 당신의 양들을 잘 아시는데, 예수님이 양을 아신다는 것은 양의 입장을,
이해하신다는 뜻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 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 대해 모든 면에서 다 알고 이해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또한 목자가 양을 안다는 것은, 양을 얼마든지 도우실 수 있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형편을 알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능히 도우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요즘에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인하여, 염려와 근심 속에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우리 주님이 어떤 분이신 지 묵상하면서 위로를 받았으면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선하신 목자이십니다. 우리 삶의 모든 문제 하나하나를 다 알고 계시며,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전능자이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난 번에 말씀을 드렸던 장소와 주제는 아주 비슷합니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많이 다릅니다. 맹인이 눈 뜬 기적의 사건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목자에 관한 말씀은 초막절 절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즉 가을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사건은 수전절, 성전봉헌절, 하누카와 관련이 있고, 겨울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0장 22절에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고 했습니다.
수전절은 구약성경에 나오지는 않는 절기입니다. 이 수전절 절기는 주님 오시기잔 165년,
유다 마카비우스에 의해 시작된 절기요. 성전 봉헌절로 불려집니다. 히브리어로는 하누카입니다.
오늘날에는 유대인들이 이 수전절 절기를 우리 크리스마스와 같은 12월 25일에 지킵니다.
헬라 제국 중에 하나였던 셀류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에피하네스 4세가 헬레니즘화 정책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우상인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돼지를 잡아서 제사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로 마카비 형제가 항거하게 되는데, 마침내 예루살렘에서 헬라의 지배를 물리치고,
다시 성전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께 성전 봉헌을 하게 됩니다. 그 때부터 수전절이라는,
하누카 - 성전 봉헌을 기념하는 성전 봉헌절이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명절이 된 것입니다.
바로 그 수전절이라는 명절이라,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이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겨울이라 옷을 두껍게 입었을 것입니다. 그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몰려와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사도 요한이 이 질문의 내용을 복음서에 기록한 것을 보면,
이 유대인들의 질문은 모든 사람들이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 질문의 내용이 오늘 본문 요한복음 10장 23절, 24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함께 봉독합니다.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세례 요한도 옥에 갇혔을 때,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님께 비슷한 질문을 했습니다.
물론 질문의 동기는 달랐습니다. 마태복음 11장 3절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 이 질문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
중요한 질문 중에 하나입니다. 현대인들에게도 중요한 질문입니다. 구원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몰려 와서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싶고,
믿고 싶어서 와서 물어본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싼 것부터 위협적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들으려는 태도가 아니라, 마치 심문하듯이 에워싸고 질문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늘 본문 요한복음 10장 25절, 26절처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믿는 것이 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세상에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믿는 것입니다. 믿어지면 믿기 쉽지만, 믿고 싶어도 믿어지지 않으면 믿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전도해 본 분들은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아실 것입니다. 믿는 문제로 논쟁을 벌여본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믿지 않으려는 사람은,
어떻게 설명해도 믿지 않습니다. 사람의 불신과 고집과 편견은 고칠 수 없는 병에 해당합니다.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을 보세요. 맹인 되었던 사람이 눈을 뜬 후에,
예수님을 증거할 때,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반응했나요? “참 신기하네, 창세 이후로 맹인이,
눈을 떴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네 눈을 뜨게 했다면, 틀림없이 그리스도일거야!” 라고,
말하면서 믿었나요? 아닙니다. 그들은 절대 믿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이 반응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은 맹인이었던 사람의 첫 번째 증언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의심 많은 바리새인들은 이제 그의 부모를 불러서 심문했습니다. 그리고 맹인이었던 자를,
불러서 다시 추궁하듯 물었습니다. “어떻게 눈을 떴느냐?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너무 답답해서 맹인이었다가 눈을 뜬 사람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하나이까?”
그러면 어떻게 믿음이 생길까요? 사람이 믿음을 갖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는,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10장 17절에서 “믿음을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을 갖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믿음을 갖는 또 다른 하나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봄으로 생긴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할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5절,
하반절에서 예수님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한다.” 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0장 37절, 38절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요한복음 안에만 해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하실 수 없는 일들을,
참 많이 행하셨습니다. 2장 – 물로 포도주를 만드심, 4장-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5장- 베데스다 못 가에서 38년 된 중풍병자를 고치심, 6장-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심,
9장- 나면서 맹인 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심, 11장에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일,
그런데 믿음을 갖는 것이 말씀과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보는 것으로만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요한복음에 바리새인들, 유대인들의 경우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 잘 표현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아멘! -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너희가 믿지 않는 것은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예수님께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소유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믿어질 때, 우리가 예수님의 소유가 되고, 예수님의 택함을 받은 양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나의 주님이심이 믿어지십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나를 위한 사건임이 믿어지십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양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 믿음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시며, 자녀 된 특권을 누리며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 13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것으로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다.“ 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은 그를 칭찬하시면서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6:17)
여러분! 그렇다면 내가 예수님의 양인가 아닌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진단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0장 27절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이 말씀이 답입니다.
하나는,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누리지,
않고 있는가에 따라서, 내가 예수님의 양인가? 예수님의 양이 아닌가가 판가름 됩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목자가 양을 아는 관계는 아주 친밀한 관계에 대한 은유입니다.
선한 목자와 친밀한 관계 속에 사는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목자를 따르게 됩니다.
선한 목자는 양의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이름도 알고, 양의 특성도 다 알고 돌봅니다.
두 번째로, 내가 예수님의 양인가 아닌가를 분별하는 방법은 순종의 여부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우리 예수님은 그것을 ‘내 양은 나를 따른다.” 는 순종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기만하고 따르지 않는다면, 그 양은 선한 목자의 양이 아닙니다.
양과 같은 우리가 선한 목자 예수님을 따를 때,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씀을 듣는 것보다 실천이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약 1:22-25, 약 2:26)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실 때, 미루지 마세요. 실천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 목자 되신 하나님을 가장 잘 따른 모범적인 양은 다윗입니다.
다윗이 완전한 사람이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도 흠이 많고 잘못도 저지른 죄인이었지만,
그가 잘 한 것 하나는 하나님을 선한 목자로 믿고, 절대 순종하며 잘 따랐던 것입니다.
시편 23편에서 여호와를 목자로 삼을 때, 어떤 축복을 받게 되는지 잘 노래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아름다운 시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이 시의 핵심 구절은 1절입니다. 양에게 있어서 목자와의 관계가 모든 축복의 Key입니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 어떤 축복이 주어질까요? 다윗은 부족함이 없다고,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내 잔이 철철 흘러 넘친다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이 질문에 대해 놀라운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영생을 주신다, 그 영생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고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 - 30절을 같이 읽어봅니다. 이 말씀을 꼭 암송하고 살았으면 합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내게 주신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 여러분! 영생은 요한복음의
중요한 핵심 단어 중에 하나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라고도 하고, 영생이라고도 말을 합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이미 영생을 얻게 되고, 그 생명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5장 24절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미 영생을 받았습니다. 죽은 후에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영생을 얻었고,
그 생명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 아멘! -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생명 - 영생은,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결코 생명 - 영생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주님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 믿는 사람들을 빼앗아 갈 자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의 양이 되었다면, 구원을 잃어버릴 가능성은,
0% 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우리를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더 이상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 누군가가 와서 “오늘 밤에 죽어도 천국에 갈 것을 믿으세요?” 라고 물으면, 여러분들은,
“예, 확실히 믿습니다.” 라고 대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원과 영생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예수님은 아무도 하나님의 손에서, 구원받은 우리를 결코 빼앗을 수 없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설교를 듣는 분들 중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난 아직 예수님의 양이 아닌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예수님이 잘 믿어지지 않고, 예수님과 상관없는 삶을 사는 것 같은 분들이 있다면,
오늘 예수님을 확실히 믿어서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의 양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밖에 있었다면 이제 문 되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와 예수님의 양으로 사십시오.
이 세상에 예수님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36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구원자로 보내신 분이십니다. 죄 없으신 분이 우리 죄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과 같이 놀라운 표적들을 일으키신 분은 없습니다.
누가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누가 38년 된 중풍병자를 일으키시고, 누가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고, 누가 나면서 맹인 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누가 죽은 자를 살리시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확실히 유일하신 구원자이십니다. 오직 우리의 유일하신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예수님 믿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어서,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양이 되실 수 있기를 원합니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양이 되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습니다.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 누구도 그 영생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분명하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양이 되어, 예수님의 소유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님의 양이 되었다고 만족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과 날마다 날마다 친밀한 교제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따라가는 양이 되어야 하합니다.
오늘 본문 27절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양은 시력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자를 가까이 따라야지,
멀리 떨어지면 목자를 놓칠 수 있고, 길을 잃을 수 있고, 위험에 처할 수도 있게 됩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만 잘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알고 따르는 친밀한 관계 속에 살아갈 때, 양은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포도나무 비유에서도 강조하셨듯이,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이 여호와를 목자 삼고 살 때,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했듯이,
여러분들도 예수님으로 인해 부족함이 없는 삶으로 인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날마다 푸른 풀밭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 받으시고, 영혼이 소성케 되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