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는 무료급식소도 많고, 그 앞에서 배식을 기다리는 사람도 많다. 세상이 하수상하여 그럴진대 그들이 줄을 서게 된 사연도 가지가지일 것이고, 그것을 말하라 한다면 애절하고, 원통하고, 눈물 나는 얘기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이 예기도 아마 그런 것들 중의 하나라고 할까.
바람이 사금파리처럼 날카롭던 날이었다. 서울에 출장 갔다가 나는 무료급식소 앞에서 소문에 공직에 있다고 들었던 선배를 40년 만에 만났다.
키가 큰 그 선배는 허리가 구부정한 초로의 노인이 되어 배식 받은 음식을 비닐봉지에 옮겨 담아 돌아 서던 중에 나와 피할 수도 없게 정면으로 마주쳤다.
이 예기는 근처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그 선배와 나눈 긴 예기인데 처절하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애절한 신파극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뭐랄까 시사하는 바가 있고 누구나 들어 두어야 할 것 같아 여기 옮겨보는 것이다.
나는 이제 부끄러워할 힘도 없다. 그저 숨을 쉬니 목숨을 유지할 뿐이다. 세상에 나 보다 더 불행한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잘못이 있다면 벌을 달게 받겠지만 나는 이런 벌을 받을 만큼 막 살지는 않았다. 나는 태생이 온순하여 말썽 피우지도 못했다. 친구들이 공부벌레들이라 나도 덩달아 공부 했다. 덕분에 시험이란 시험은 한 번도 떨어진 적 없이 대학까지 마쳤다. 학창시절엔 평범한 젊은이였다. 미팅에 몸 달아 했고, 가슴 졸이는 연애도 해봤고, 술잔에 떠 있는 새벽달을 마셔 보기도 했다.
나는 졸업과 동시에 공직으로 나갔고, 마음씨 고운 아내를 맞아 아들딸 낳고 단란한 가정도 이루었다.
친구들이 도박이나 여자를 쫓아다닐 때 나는 승진 시험에 매달려 그런 것들과 멀리 있었다. 그러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할 만큼 꽁생원은 아니었다. 나이트도 가고, 간혹 화투놀음에 끼어들기도 했지만 여자나 노름에 삐지지는 않았다.
호남은 아니지만 내게도 여자들이 많이 따랐고, 숫한 유혹도 있었다. 하지만 그 가족에게 죄 짓지 않으려고 결코 중심은 잃지 않았다.
나는 태생이 수수하여 좋은 옷도 좋은 차도 탐내지 않았다. 욕심까지 없어서 누구나 다 하는 증권에도 손대지 않았다.
이런 나를 두고 아내와 친구들은 샌님이라 불렀다. 그러나 나는 내 삶이 정도의 삶이라는 것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다. 나는 자제력이 따라 주어 온갖 유혹을 이겨내고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고분고분 살았는데 내가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나는 자식이 사업을 한다기에 뒤를 밀어 준 것밖에 없다. 아들도 나와 같으리라 하늘같이 믿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순풍에 돛 단듯하던 아들의 사업이 어느 날 갑자기 부도가 났다. 부도도 그냥 부도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들은 사채까지 얻어 쓰고 아이까지 팽개치고 도망갔다.
돈을 준 그 놈들이 그냥 있겠는가. 은행은 제 몫 챙겨갔고 깍두기 같은 놈들이 구두를 신은 채 안방까지 들이닥치더라. 누가 그 놈들을 당하겠는가. 먼지마저 털어주니 부끄러워 고향에 살 수 없더라. 고맙게도 서울에 사는 친구가 마련해 주어 단칸방에 병든 몸 의탁하고 있다.
얼마간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살았는데 손 벌리는 것도 한 두 번이더라. 또 해결 할게 어디 잘잘 곳뿐이던가. 나는 굶어도 아이들은 굶길 수 없어 예까지 왔다.
선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렸을 적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인생길엔 여덟 개의 덫이 놓여 있는데, 그 덫에 걸리지 않아야 팔자 좋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 덫을 구체적으로 적어 보라면 대충 이런 것이다.
'첫 번째의 덫은 나쁜 친구를 만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치와 게으름에 빠지는 것이고, 세 번째는 도박에 빠지는 것이고, 네 번째는 포악한 마누라를 만나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보증을 서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사업(승진)을 무리하게 하는 것이고, 일곱 번째는 시앗(불륜)에 빠지는 것이고, 여덟 번째는 몸을 함부로 굴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늙은이, 아니 어렸을 적 앞집에 살았던 이 선배는 과연 어떻게 된 노릇인가. 그는 이 여덟 개의 덫을 다 피한 것 같은데 왜 덫에 걸린 짐승마냥 싸늘하게 굳어가는 것일까.
선배에게 지갑을 털고 돌아서는데 칼바람이 집어 삼킬 듯 덤벼들었다. 순간, 자식이라는 덫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덫, 몰랐던 덫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선배는 바로 아홉 번째의 덫에 걸린 것이었다. 선배는 장대 같은 허리를 휘적휘적 저으며 칼바람 속으로 멀어져 갔다.
첫댓글 잘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뒤돌아보니 빠져나갈 수 없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더이다.
되돌아 가려고 하니 너무 멀어 끝이 보이지않는 어둠에서 갇혀 나올 기력도 모두 버렸었지요.
그나마 노숙자는 아니되었어도 그 후유증으로 긴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덫이라 했지요
빠져보니 정말 힘들더이다.
지금의 마지막 덫에서 벗어나기는 하여야겠는데 믿음밖에는 빛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에 마지막 끈을 연결하고 열심히 갑니다.
덫 누구도 피해가지 못합니다.
오직 다가 오지 않기를 기도로서 막는방법이 최고입니다.
음,, 시사하는 바가 크네요. 주변에 보면 생각보다 많습니다. 항상 긴장해야 되요. 인생은 긴장의 연속이라 할 수있지요.
긴장하지 않으면 품위도 사라지는 것 같에요.
'인생길엔 여덟 개의 덫이 놓여 있는데, 그 덫에 걸리지 않아야 팔자 좋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 덫을 구체적으로 적어 보라면 대충 이런 것이다.
'첫 번째의 덫은 나쁜 친구를 만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치와 게으름에 빠지는 것이고, 세 번째는 도박에 빠지는 것이고, 네 번째는 포악한 마누라를 만나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보증을 서는 것이고, 여섯 번째는 사업(승진)을 무리하게 하는 것이고, 일곱 번째는 시앗(불륜)에 빠지는 것이고, 여덟 번째는 몸을 함부로 굴리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여덟가지 덫 모두 각자 본인의 선택에 달려있거늘 어찌 팔자 타령을 하고있는지.... 별과바람이 귀가 막혀서 나원 참 ......
참으로 중요한 인생 교훈담이네! 늘 현명한 본인 선택이 중요하고,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제 아무리 신변관리를 잘해도 때때로 덫에 빠저드는 경우가 발생하지만 그 덫에서 조속히 잘 빠져 나오는 노력과 지혜도....너무나 유혹당하는 경우가 많은 세상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