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프로펠러는 오른쪽으로 돌아 헬기 몸체는 왼쪽으로 틀어지려고 합니다. 뒤 프로펠러가 이런 현상을 막아줍니다.”
12일 경남 사천에 있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조종 체험관. 모형 헬리콥터를 든 우창욱 선임연구원이 비행원리인 양력 등을 설명하자 목에 이름표를 건 ‘어른 학생’들이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학생들은 모의 비행조종장치에 앉아 헬기운전을 해보다 ‘꽝’ 하며 추락하자 머쓱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들은 전국 30여 개 중·고교의 수학·과학 교사들이다.
부품동·조립동에서는 비행기 제작 때 적용되는 과학이론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하상희 기체생산2팀장은 “알루미늄판에 고무를 입혀 필요한 부분만 칼로 오려내고 가성소다에 집어넣으면 정해진 양만큼 부식된다”며 ‘산화’과정을 설명했다. 12㎏의 알루미늄판은 산화실험을 거치자 곧바로 7㎏으로 변했다.
KAI가 ‘교육 기부’를 위해 마련한 교사연수 모습이다. 교육기부는 기업이 가진 지식과 시설·공간을 학교 등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사교육에 찌든 공교육을 살리고 경쟁력도 강화하자는 취지인데 참여 기업들이 전국적으로 늘고 있다.
KAI는 12일 한국교육개발원 등과 협약을 맺고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된 전국 600여 개 학교의 수학·과학 교사를 상대로 연수프로그램(에비에이션 캠프)을 운영키로 했다. 1박2일 15시간 동안 교사에게 항공기에 적용되는 수학·과학 이론을 가르치고 체험케 하는 것이다.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별도 조직(4명)까지 만들었다. 회사 연구원·간부가 지도에 나서고 창의교육재단과 공동으로 교재와 CD 등 보조자료도 만들었다.
교사들은 대환영이다. 지난 2월 시범연수에 참가한 해남고 이정식(47) 교사는 “연수를 통해 교사가 어느 정도 알고 체험했느냐에 따라 교실수업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7월 학교에서 열린 수학·과학 축전 때 KAI 측으로부터 받은 교재로 과학원리를 가르치는 부스를 운영, 학생들의 호응을 얻었다. 풍동 실험을 통해 비행기가 실제 뜨고 회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실험토록 하자 과학에 취미를 붙이고 열심히 공부하려는 학생이 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KAI의 교육 기부에 정부출연 연구기관 40여 개와 현대제철·SK텔레콤 등 10여 개 대기업이 동참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울산 현대중공업은 여름·겨울방학에 전국의 공업계 고교 교사를 초청, 용접·기계·전기 관련 현장실무를 가르치고 첨단부서를 견학시켜준다. 2004년 이후 지금까지 500여 명의 교사가 이에 참가했다. 현대중공업 기술교육원 관계자는 “앞으로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연수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부방을 운영하고 영어교육을 위해 원어민 강사를 파견하는 업체도 있다. 화학·에너지기업인 삼성토탈(충남 서산시)은 지난해 5월 서산시 동문동 삼성아파트 상가 2층에 200석 규모의 공부방 ‘아이비(Ivy)스쿨’과 8000권의 책을 갖춘 도서관(200㎡)을 열었다. 이어 박사급 직원 15명을 3교대로 보내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학생 200여 명에게 수학·과학 등을 지도하고 있다. 그 결과 올해 중학생 5명이 과학고·외국어고에 합격하는 성과를 올렸다. 지도를 받은 중·고생 200명의 사교육비는 이전 월평균 40만원에서 28만원으로 줄었다.
이 밖에 GS칼텍스는 2007년 3월부터 두 명의 원어민 강사를 확보해 여수시 남면·화정면·삼산면 섬지역 22개 초·중학교(학생 총 350여 명)를 돌며 매주 2회 영어회화를 가르친다. 영어 퀴즈대회나 영어캠프, 서울 수유리 영어타운 체험행사를 열기도 한다. 또 울산 온산공단의 한국석유공사도 전교생 80명 남짓한 인근 삼평초교에 원어민 강사를 보내 매주 수요일 2시간씩 5~6학년의 영어를 지도하고 있다.
김홍경 KAI 사장은 “기업들이 공교육 발전을 위해 학교에 지식·경험·공간을 제공하면 장기적으로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소하고 우수 인재 선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황선윤·박유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