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청년 김두한’ 시대가 8월 26일 제9회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호연한 ‘소년 김두한’ 역의 곽정욱은 ‘청년 김두한’ 역의 안재모에게 바통을 넘겨주게 된다. 이로써 극중 광교에서 함께 생활한 김두한의 친구 ‘성인 정진영’ 역은 김정민(드라마 [덕이] 등에 출연했음, 현재 드라마 [결혼합시다]에 출연중), ‘성인 개코’ 역은 이동훈(드라마 [소문난 여자] [화려한 시절] 등 출연)으로 교체된다. 청년 김두한 시대의 도래로 김두한의 불타는 애국심, 사나이들의 정정당당한 승부 세계 및 조국애, 사랑 등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이 외에도 ‘구마적’ 역의 이원종, ‘하야시’ 역의 이창훈, ‘쌍칼’ 역의 박준규, ‘신마적’ 역의 최철호, ‘설향’ 역에 허영란 등의 인물들의 얽히고 설킨 긴박한 스토리도 [야인시대]의 또다른 시청 즐거움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1933년 열일곱 살이 된 두한(안재모)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만주로 가서 독립군이 되기로 결심한다. 원노인(이순재)은 두한을 기특하게 생각하지만 최근 주변 상황이 좋지 않다며 만류한다.
상해에서 애국단원이 밀파됐다는 정보를 입수한 미와 경부는 설렁탕집인 ‘사동옥’이 독립군의 아지트라는 것을 알아내고 물증을 잡기 위해 감시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며칠 후 애국단원 최석규가 유태권(장동직)의 부탁을 받고 사동옥을 찾아오고, 감시를 맡았던 형사는 확증을 잡았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다. 그후 최석규는 다른 애국단원을 만나기 위해 중국집에 갔다가 미와(이재용) 경부에게 체포된다.
종로회관에서 술을 마시던 신마적(최철호)은 쌍칼(박준규)이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자 따로 불러 제대로 된 인사를 하라며 여러 차례 인사를 시킨다. 감정이 상한 쌍칼은 이런 식으로 자신을 모욕하는 건 선배답지 못하다며 결투를 신청한다. 신마적과 쌍칼은 한바탕 거센 접전을 벌인다.
한편 애국단원 최석규를 잡아들인 후 미와 경부는 사동옥의 원노인도 체포한다. 두한은 원노인을 잡아가려는 형사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여러 명의 형사들이 두한에게 채여 쓰러지는데….
# 3 동 산 정상 어느 곳(아침)
김두한의 묘기들이 속속 보여 진다. 그는 정권단련을 하다가 발차기를 하고, 다시 공중으로 솟아오르며 세발차기를 한다. 그리고, 회전하며 낙하한다. 묘기들이다. 그가 정권을 칠 때마다 그리고 발차기를 할 때마다 나무들은 휘청거리거나 꺾이며 부러져 내린다. 계속해 지르는 그의 기압소리들, 마치 성난 사자처럼 그는 그렇게 계속해 그의 몸을 놀리고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몸이 풀린 듯 하자 조용히 두 손을 모으며 합장하여 기를 추스린다. 그리고, 쏘아보듯 눈을 들어 멀리 솟는 태양을 본다. 삼각산 구릉 사이로 햇빛이 강렬하게 비추며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다. 붉게 물들어 가는 두한의 표정에서 디졸브되면.......
# 4 사동옥 외경
홀에 손님은 없고, 박군이 여전히 혼자 바빠 보인다. 식탁을 닦고, 컵을 제자리에 놓고....그 위로 원노인의 소리가 들려온다.
원노인: (E)내게 할 말이 있다고 하였느냐?
# 5 동 안 원노인의 방
원노인: 그래, 무슨 말인지 해 보거라. 어서.
두한: 저... 할아버지..
원노인: 허허, 얘기를 하라고 하지 않느냐? 대체 무슨 이야기인데...
두한: 이제 그만 이곳을 떠나 만주로 가고 싶습니다.
원노인: (꿈틀하며) 만..주...?
두한: 예, 할아버지.
원노인: 지금 만주라 하였느냐?
두한: 예.
원노인: (한참 생각하다가)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을 하였느냐?
두한: 갑자기가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만주는 아버님이 계시던 곳입니다. 독립군들이 있는 곳이구요.
원노인: 그래... 그건 그렇지.
두한: 저도 그곳에 가서 아버님처럼 독립군이 되고 싶습니다.
원노인: (한참 동안 두한을 본다) 독립군이라.....독립군이라... 그래, (끄덕이며) 하긴, 이제 그럴 때도 되었지. 나이 열 일곱이면 그런 생각 할 때도 되었다. 가야지. 암.. 가서 장군님의 뒤를 이어야겠지.
두한: .............
원노인: 한데 말이다, 두한아. 할애비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만 요즘 상황이 썩 좋지가 않구나. 나도 만주와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이다. 그만큼 모든 것이 어려워졌어요.
두한: 하지만 할아버지...
원노인: 그것뿐만 아니다. 또 작년에 있었던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로 만주로 가는 모든 길목들이 경계가 아주 심해요.
두한: 저 혼자서라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원노인: 어쨌든 그 생각이 참으로 장하다. 널 키운 보람이 있구나. 허지만 말이다. 지금은 모든 게 다 힘들어졌어. 그게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야. 그리고 넌 아직도 어려.
두한: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원노인: (도리질) 아니야. 너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단다. 왜놈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단다. 더구나 너는 종로서의 미와 경부가 늘 지켜보고 있어.
두한: 하지만 할아버지,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시간만 보낼 수는 없습니다.
원노인: 그렇지가 않다. 지금 너는 보고 배워야 할 것이 아직도 많다. 물론 네가 조숙해서 다른 아이들보다 기골이 장대하기는 하다만 아직은 온전히 어른이 된 것은 아니야.
두한: .............
원노인: 이 할애비도 너에 대해서 생각이 많다. 암, 고기가 크면 바다로 돌아가야 하고 범이 크면 산으로 가야한다고 했다. 네 갈 곳으로 가기는 가야지. 허나, 조금 더 기다려 보자. 조금만 말이다.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나도 만주의 동지들에게 선을 넣어 보마. 알겠느냐?
두한: 예, 할아버지.
원노인: 그래, 이제 너도 크기는 컸다. 그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어차피 독립운동이라는 것은 네 목숨을 모두 맡기는 일이다. 천천히 실수 없도록 살펴보자꾸나. 만주로 간 유태권 동지도 두한이 너를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두한: 예, 할아버지.
원노인: 답답하면 가끔씩 바깥바람도 쐬고 그러려므나. 무술을 수련하는 것도 좋다만 친구들도 만나고 또..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아야지.
두한: ..........
# 6 종로서 외경(밤)
늦은 밤이지만 그곳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미와: (E)지금 뭐라 그랬나? 상해에서 불령선인이 밀파됐어?
# 7 동 안
오무라가 미와에게 보고를 하고 서 있다.
미와: 확실한 정본가? 어떤 자인지 신원은 파악됐나?
오무라: 정확히 누가 밀파됐는지는 그 쪽에서도 확인이 안된 모양입니다. (서류를 건네며) 대략 이들 중 한 사람일 거라는 추측입니다.
미와가 오무라가 건넨 서류철을 펼쳐본다.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신상 명세가 일어로 적혀 있다.
오무라: 그리고 더욱 놀라실 일이 있습니다. (한 사진을 가리키며) 여기 이 사진을 잘 살펴보십시오.
미와: .........(보다가 놀라며) 아니 이 자는...?
오무라: 몇 년 전에 사동옥이라는 설렁탕 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자입니다.
미와: 유...태권...? 이 자가 상해에 있었단 말이지...?
오무라: 우리 생각이 맞았습니다. 그때 꼭 잡았어야 했는데...
미와: ......애국단의 군사 훈련을 맡고 있다..? 꽤나 거물급이군.
오무라: 그런 자를 코앞에 두고 놓쳤다니.. 정말 땅을 칠 노릇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경부님?
미와: .....(대꾸 없이) 유태권, 이 자가 다시 왔을까?
오무라: 설마 이미 우리에게 신분이 노출이 됐는데 다시 올 리가 있겠습니까? 조직 내의 위상도 그렇고.. 이 보고서에서도 이 자일 가능성은 적다고 적혀 있습니다.
미와: 그래.. 그렇겠지.. 어쨌든 이 정도 정보라면 이미 반은 잡은 거나 다름이 없어. 그 동안 수집해 놓은 정보를 총동원하게. 분명 누군가와 접선을 할 게야.
오무라: 예, 경부님.
미와: 맞았어. 역시 사동옥이었어. 그 원노인이라는 늙은이 말이야. 거기가 독립군들의 아지트야.
오무라: 바로 보셨습니다, 경부님.
미와: 처음부터 냄새가 진하게 풍겼어. 그 늙은이를 잡아야 한다. 잡자면 철저하게 그물을 쳐야 해. 안 그런가?
오무라: 예, 경부님. 제 생각도 같습니다.
미와: 요시... 예감이 좋아. 입질을 하는 것이 왠지 심상치가 않아.. 월척을 건져 올릴 것 같아. 월척 말이야. 잘 감시하라. 이번에는 절대 놓쳐서는 안돼.
오무라: 예, 경부님.
# 8 사동옥 앞 거리(낮)
오씨가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입고 오고 있다. 걷는 모습 하나에도 조선 양반가 여인네의 기품이 묻어난다. 사동옥에 이르러 안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오씨.
# 9 동 안
오씨가 들어온다. 원노인이 그녀를 보고 놀라며 다가온다.
원노인: 아니, 마님께서...?
오씨: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며)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원노인: 아니,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앉으십시오.
원노인도 황송하게 허리를 굽힌다. 손님 탁자에 음식을 내려놓던 두한이 그 광경을 보고 역시 놀라며 다가온다.
두한: 큰어머니?
오씨: 두한이로구나. 그간 잘 지냈느냐?
박군: 안녕하세요?
오씨: 박군도 오랜만이구먼..
원노인: 연통도 없이 어인 걸음이십니까, 마님?
오씨: 원노인께 긴히 상의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원노인: 제게요?
오씨: 예..
원노인: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안으로 가시지요. 이쪽입니다, 마님. 두한이도 따라 오너라. 자, 이리로...
오씨: 예..
원노인이 문 밖을 이리저리 살피고 난 후 급히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는다. 박군도 괜히 덩달아 보고 다시 안쪽을 보면...
# 10 동 안채
두한이 오씨에게 절을 올린다. 흐뭇하게 바라보는 오씨.
오씨: 못 본 사이 우리 두한이가 많이 장성하였구나. 이젠 참으로 큰 대장부가 되었어. 밖에서 보면 몰라보겠구먼. 대견하다.
원노인: 예, 마님.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자고 나면 하루가 다른 것 같습니다. 허허허...
두한: .......
오씨: 모두가 원노인께서 돌봐주신 덕분입니다. 뭐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원노인: 어인 말씀을요. 소인이 한 일이 뭐가 있다구요. 소인이 장군님이 뜻을 받들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오씨: 그렇지가 않습니다. 원노인이 아니 계셨더라면 우리 두한이가 이렇게 훌륭하게 잘 자라진 못했을 겝니다. 어머님과 저는 그래서 원노인께 늘 고맙고 죄송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원노인: 아닙니다, 마님. 소인은 소인이 해야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구요. 장군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비한다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지요. 이 세상에 나와서 별 볼일 없이 백정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다 죽을 뻔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훤한 등불을 밝혀주신 분이 바로 장군님이셨습니다. 평생을 갚아도 다 못 같습니다. 장군님의 은혜 말입니다.
오씨: 늘 그리 말씀하시니 고맙습니다. (미소) 두한아, 이제 그만 나가보거라. 영감님과 할 얘기가 있다.
두한: ......예, 큰어머니..
두한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씨는 여전히 흐뭇한 눈길로 두한을 바라본다.
# 11 동 밖
두한이 밖으로 나온다. 뭔가 이상한 듯 뒤돌아보면.
# 12 동 안
원노인이 놀라 되묻는다.
원노인: 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마님? 장군님의... 유해를 뫼시러 가신다구 하셨습니까?
오씨: 그렇습니다. 장군께서 돌아가신 지 3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뫼셔올 때가 되었습니다.
원노인: 하지만........
오씨: 물론 어려운 일인 줄은 압니다. 그러나, 부탁 드릴 곳이 있어야지요. 오래 전부터 어머님과 함께 의논을 드려왔던 이야기입니다.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원노인: 마님, 그렇지만 그 먼길을... 도대체 어떻게 다녀오시려고? 거기다가 유해까지 뫼시고 말입니다.
오씨: 평생을 이 나라의 광복을 꿈꾸시다가 가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 나라 사대부의 집안입니다. 나라 밖에 이름 없는 들판에 그렇게 버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원노인: 그야, 그렇습니다만은... 어떻게 유해를 예까지...?
오씨: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원노인: 물론,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도와드려야습죠. 허지만, 허허.. 이걸 어찌한다..? (사이) 좋습니다. 마님과 큰마님의 결심이 그러하시다면 하는 데까지 해보아야지요. 허면... 어느 분의 여행 증명서를.....?
오씨: 저 혼자 갈 것입니다.
원노인: 마님께서 혼자 말씀입니까?
오씨: 예, 아무래도 왜경의 눈을 피하자면 저 혼자서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할 것 같습니다.
원노인: ......그건 그렇겠지만서두....
오씨: 두한이에게는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나중에 무사히 유해를 모셔오면 그때 알려도 될 겝니다.
원노인: 예....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오씨: 방법은 있겠습니까?
원노인: ......최동열 기자라면 가능할 겁니다. 오래 전에 두한이를 데리고 장군님께 갈 때도 그 분이 많은 도움을 주었지요.
오씨: 최기자라면...?
원노인: 늘 도움을 받고 있지요. 지금 마님들께서 살고 계시는 그 집을 마련하는 데도 크게 힘을 쓴 사람이지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싫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한 번 만나보겠습니다.
오씨: ........(끄덕인다)
# 13 신문사 외경
'조선중앙일보'라 쓰여진 간판이 걸리고 있다. 그 주위를 둘러선 많은 기자와 직원들이 박수를 친다. 최동열의 모습도 보인다. 사장 여운형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둘러본다.
여운형: 닻은 올랐습니다. 이제 우리는 조선중앙일보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됐습니다. 이 암흑의 시대에 신문은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나 여운형이는 신문의 사명이 이 시대의 등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나나 기자 여러분은 비록 가난하고 외롭지만 이 시대의 지성으로서 세상의 진실을 온 민중들에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민족의 자존심이고 우리가 조선을 대변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박수가 터져 나온다. 계속되는 여운형의 연설하는 모습과 최동열의 표정을 오가면서...
해설: 또 신문사의 현판이 바뀌어지고 있다. 조선중앙일보. 당시 최동열이 몸담고 있었던 신문사는 거듭되는 경영난으로 인하여 시대일보에서 중외일보로, 다시 중앙일보로 제호를 바꾸면서 그 명맥을 이어 오다가 1933년 3월 이때에 다시 조선중앙일보로 그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초대 사장으로 해방 전후에 크게 활약하는 민족운동가 여운형을 맞아들였다. 그러나 이 신문 또한 3년 후인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강제 폐간되어 버린다.
# 13-1 삼청동 외경
# 13-2 동 안방
오씨가 겉옷을 한쪽에 밀어 놓고 자리에 앉는다.
조모: 잘 다녀왔느냐?
오씨: 예, 어머님.
조모: 그래... 원서방은 뭐라고 그러더냐?
오씨: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조모: 그래... 그랬을 게다. 원서방은 한결같은 사람이 아니더냐? 그 옛날 두한이를 만주로 데려온 것도 그렇고...... 그 사람에게 신세를 많이 지게 되는구나.
오씨: 너무 어려운 일만 부탁하게 돼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조모: (고개를 끄덕인다) 통행증은 어떻게... 구할 수가 있겠다더냐?
오씨: 예. 최동열 기자라는 분에게 부탁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조모: 최동열 기자...?
오씨: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 기잡니다. 예전에 아범이 그 분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있었습니다.
조모: 그래, 그러고 보니 나도 기억이 나는 것 같구나..
오씨: 신문 기자로 일하면서 많은 애국지사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들었습니다. 그 분이라면 통행증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듯 싶습니다.
조모: 잘 됐구나.. (사이) 이제 네 고생만 남았구나.......
오씨: ...............
조모: (손을 잡으며) 내가 너에게 참으로 못할 일을 시키는구나. 못할 짓을 시켜....
오씨: 백년을 함께 하자고 맹세한 부부지연입니다. 유해라도 뫼셔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당연한 일입니다. 뫼셔와야지요, 어머님.
조모: 그래도 그렇지... 그 험한 일을 연약한 너에게 맡기다니... 쯧쯧쯧..
조모는 송구스러운 듯 고개를 떨구는 오씨의 두 손을 그렇게 토닥거린다.
# 14 신문사 안
최동열이 전화를 받고 있다.
최동열: 예, 최동열 기잡니다. (사이) 아 예, 영감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어쩐 일이십니까?
# 15 사동옥
원노인: 만나 뵙고 상의드릴 말씀이 있는데... 언제쯤 시간이 되시는지요?
#16 다시 신문사 안
최동열: 내일 오전이면 어떠시겠습니까? (사이) 예, 알겠습니다. 그럼 거기서 뵙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는 최동열. 무슨 일일까 고개를 갸웃한다.
최동열: 전화를 자주 하는 노인이 아니신데... 무슨 일일까...?
# 17 사동옥
원노인도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그때 두한이 외출할 차림으로 다가온다.
두한: 할아버지?
원노인: 응 그래.. 어딜 가려구?
두한: 예. 광교에 좀 다녀오려구요.
원노인: 광교? 오 그래.. 네 동무들 말하는 것이로구나. 다녀오려므나. 그 아이들도 다 이제 어른들이 되었을 게다. 어서 가 보거라.
두한: 예, 할아버지.. (돌아서려다가) 저 그런데요.
원노인: 왜 그러느냐? 돈을 좀 주렴?
두한: 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구요. 저, 돼지뼈 좀 싸가지고 갈까해서요. 진영이라는 친구 어머니가 계시거든요. 해서....
원노인: 원 녀석하고는... 그 만한 것이 뭐가 그리 힘이 든다는 말이냐? 돼지 뼈는 흔한 것이다. 한 자루 갖다 드려라. 장작불로 밤새 고으면 보약이 따로 있겠느냐? 가져다 드려라.
두한: 예, 할아버지.
두한은 신이 나서 부엌 쪽으로 간다. 원노인이 끄덕인다.
# 18 종로 거리(해질 녘)
두한이 뼈를 싸서 들것에 들고 오고 있다. 언제나처럼 종로는 많은 행인들로 붐비고 있다. 양장을 세련되게 차려 입은 신식 여성과 흰 도포에 갓을 쓴 노인들이 공존하는 거리의 모습이다. 전차가 와서 서고 승객들이 줄지어 내린다. 그들 중 장사꾼 차림의 사내 하나가 내려 주위를 예사롭지 않게 둘러보다가 어디론가로 향한다. 전차가 지나가고 나면 두한이 건넌다.
# 18-1 비너스
홀 안에는 손님이 뜸하다. 김이수가 한쪽 자리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다. 막 신문을 한 장을 넘기는데, 퇴근을 하는 듯 임동호:가 들어온다.
임동호: 웬일인가? 이 시간에 자네가 맨 정신으로 다 있다니?
김이수: 어, 왔나?
임동호: 읽을 거리가 좀 있나?
김이수: 그저 시간을 좀 때우려는 거지 뭐. 신문엔 온통 파업에 관한 이야기 뿐이구만 그래.
임동호: 요즘은 공산주의자들의 시대가 아닌가? 파업현장마다 공산당들이 있다는 게야... 참으로 대단한 투쟁이야..
김이수: (계속 신문에 몰두해) 에잉.. 한심하군. 한심해.
임동호: 또 뭔가?
김이수: 이것 좀 보게. 한쪽에서는 배가 고파 못 살겠다고 난린데, 또 다른 한쪽에서는 댄스 열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구만. 나라가 이 꼴인데 유한계층들은 그야말로 꼴불견이 따로 없네 그려. 전문학교 학생에 중등학교 교사..... 어라 의사들까지 있다는구만.
임동호: 허허허. 그런가?
김이수: 웃어넘길 일이 아니야, 이 사람아. 자네도 조심하라구.
임동호: 사람하고는......
김이수: (구기듯 신문을 접으며) 허긴 배운 놈들이 항상 문제였지. 나라를 팔아먹고 뭐가 좋다고 춤판까지 벌인단 말이야.
임동호: ........이 사람아, 욕만 할 일이 아닐세. 소위 먹물께나 먹었다는 자들은 그 배웠다는 게 오히려 고통스러운 것이야. 안다는 것 말일세. 이것저것 그냥 다 내려놓고 나긋나긋한 여인네 손이나 잡고 휙휙 돌아가는 그 댄스라는 춤에 모든 걸 날려버린다는 것이 그나마 얼마나 시원하겠는가? 아니 그런가? 지금은 일본제국시대야. 조선의 먹물들이 할 일들이란 없어. 나나 자네도 그렇고 말아 야.
김이수: 그건 그래. 하지만 자넨 그래도 의사야. 할 일이 있다고.. 나 같은 놈이 문제야. 한심하게 매일처럼 술병이나 끼고 사는 이런 주정뱅이 말이야. 이런 꼴에 누구를 욕한다고... 허허허... 자, 동무가 왔으니 또 시작하세. 술 말이야.
임동호: 사람하고는...
김이수: 이봐, 술 가져와, 술.... 술.......
# 19 사동옥 앞 거리
전차에서 내린 그 사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오고 있다. 마침내 사동옥 앞에 이르러 보일 듯 말듯 미소를 짓고 안으로 들어간다. 저만치 골목에서 형사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20 동 사동옥 안
자리에 앉는 그 사내. 박군이 다가와 주문을 받는다.
박군: 뭘로 주문하시겠습니까?
사내: 설렁탕 한 그릇 뜨끈하게 말아주십쇼.
박군: 예, 알겠습니다. (돌아서려는데)
사내: 아 잠깐만...
박군: ........?
사내: 여기 주인장이 원노인이라는 분이 맞소?
박군: ....그런데요?
사내: 하하하.. 내가 잘 찾아왔구만.. 그 분 지금 어디 계시오? 내가 예전에 그 분과 한 동네에서 살았었소.
박군: 아 그러세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박군이 안채로 향하는데 마침 원노인이 나온다.
박군: 저기 마침 나오시네요.
원노인: .......?
박군: 영감님 고향 사람이 찾아오셨는데요. 아시는 분이세요?
원노인: .........고향사람? (사내에게 다가간다)
사내: 영감님.. 저 모르시겠습니까? 칠복이예요. 윗마을 살던 칠복이요.
원노인: ...글세.. 난 처음 뵙는 분인 것 같은데...
사내: 나 이것 참.. 그새 노망이 드셨나? 아 이 칠복이도 못 알아 보신단 말이예요?
원노인: 글세... 도무지...
사내: 하하 이것 참...
그때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손님들이 일어난다. 박군이 달려가 계산을 한다.
사내: 정말 모르시겠어요? 나예요. 칠복이라구요.
원노인: 글세, 이거 원... 이제 나이를 먹어 놓아서 말이오. 칠복이라...?
손님들이 밖으로 나가고 홀에는 그들 셋만 남는다. 그러자 사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걷힌다.
원노인: 이보시오. 이거 아무래도, 뭔가 사람을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
사내: (목소리를 낮추어) 만주에서 왔습니다. 유태권 동지를 아시죠?
원노인: ....? 허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사내: 두한이에게 무술을 가르친 유태권 동지 말입니다.
원노인: .........!
사내: ...........
원노인: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사내: 예..
원노인과 사내가 안으로 들어간다. 박군이 장부에 뭔가를 적다가 의아하게 본다.
# 21 동 원노인의 방
원노인과 그 사내가 마주해 있다.
사내: 역시 유태권 동지가 이른대로 말씀을 드리니까 의심을 푸시는군요.
원노인: 그럴 수 밖에요. 요즘 따라 왜놈들의 감시가 워낙 심해놔서요.
사내: (끄덕이며) 아 예...
원노인: 한데 유태권 동지와는 어떻게 되는 분이신지...?
사내: 저도 그 분께 무술을 배웠다면 배웠지요. 제가 무척 존경하는 분입니다.
원노인: 아 그래요? 유태권 동지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사내: 얼마 전까지 군관학교 교관을 지내시다가 백범 김구 선생님 휘하에 들어가 계십니다.
원노인: 그렇다면.. 애군단에?
사내: 그렇습니다. 애국단 단원들을 훈련시키는 일을 맡고 계십니다.
원노인: 그랬군요.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쾌거가 전해졌을 때 동지가 그 일에 관련돼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과연 그랬군요. 역시 유태권 동집니다.
사내: 그 방면에선 신화 같은 존재시지요. 하하하...
원노인: 헌데.. 여긴 어쩐 일로..?
사내: 국내 조직을 재건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두한이를 만주로 데려오라는 유태권 동지의 특명도 받았지요.
원노인: 아 예.. 그렇습니까? 만주로 말입니까?
사내: 그렇습니다. 유동지께서는 두한이가 상당한 재목이라 하시면서 훗날 김좌진 장군님의 뒤를 이을 일꾼이라 하셨습니다.
원노인: (끄덕이며) 허허, 그래요. 그랬지요. 유동지는 두한이를 아주 아꼈습니다. 언젠가 그런 말이 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좀 일찍 온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두한이가 만주로 가고 싶어하고 있어요.
사내: 그 아이를 보고 싶군요. 유태권 동지가 얼마나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던지... 하하..
원노인: 지금은 밖에 나가고 없습니다. 하지만 밤늦게라도 돌아올 겝니다.
사내: 아 그렇습니까? 이것 참 아쉽게 됐습니다.
원노인: 아니 왜요?
사내: 또 다른 곳으로 가봐야 합니다. 지금부터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원노인: 아 예.. 뭐 또 만나시지 않겠습니까?
사내: 예, 자주 뵐 것입니다. 국내에서 해야 할 임무가 많습니다. 허허허.
# 22 광교
두한이 오고 있다. 그 동안 거지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움막이 사라지고 그럴 듯한 판자집들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두한이 광교 아래로 내려서려는데 다리 저편에서 일군의 넝마주이들이 나타난다. 그들을 보는 두한의 표정이 환해진다. 어느새 청년이 된 정진영과 양코들이다.
양코: 어 저기 두한이 아냐? 야 두한아..
정진영들이 빠른 걸음으로 다리를 건너온다.
양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어?
두한: 내가 못 올 데라두 왔냐? 오랜만이다 진영아.
정진영: 그래.. 반갑다, 두한아.. 내려가자. 어머니가 반가워하실 거야.
두한: 그래, 자 이거 받어. 돼지뼈야. 할아버지가 주신 거다. 장작 좀 주어다가 밤새 고아서 어머니 좀 드려라.
정진영: 고맙다. 올 때마다 이런 것을 들고 오는구나.
두한: 무슨 소리냐? 어서 가져다 솥에 넣고 불을 지펴.
정진영: 그래, 가자...
그들 다리 아래로 내려간다. 크고 작은 거지들이 인사를 한다. 판자촌이 꽤 길게 지어져 있다. 그들 어느 쪽으로 가면...
# 23 동 판잣집(정진영의 집)
이들이 들어서면 진영모가 반색을 하며 두한을 반긴다.
진영모: 두한이가 왔다구?
두한: 그 동안 안녕하셨어요?
진영모: 오 그래.. 어서 오너라..
두한: 건강은 괜찮으세요?
진영모: 그럼... 할아버지께서도 안녕하시구?
두한: 예..
진영모: 오래오래 사셔야 할 텐데.. 우리 두한이를 위해서라두 말이야.
두한: 걱정 마세요. 나이는 많으시지만 아주 건강하시니까요.
진영모: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시구..
두한: 진영이가 집을 번듯하게 잘 지었습니다.
정진영: 판자집인데 뭐. 그래도, 내 집이니까 좋아. 자, 들어가자. 저게 내 방이다. 그래도 방이 둘이라구.
진영모: 그래, 어서 들어가라.
그들 거실 겸 진영모의 방인 그곳을 지나 진영의 문 입구 쪽방으로 들어간다. 모두 문이랄 것도 없이 훤히 열려진 집안이다.
# 24 그곳 정진영의 방
방에서 열려진 곳으로 마당이 훤히 보인다. 신문지와 낡은 책들로 도배되어 있다. 그러나 궤짝으로 찬 책상도 있고 의자도 있다. 책은 수북하다. 두한이 보고 끄덕인다.
두한: 대단하구나. 이 많은 책을 어디서 구했니..?
정진영: 주은 것도 있고 얻은 것도 있고.. 산 것도 있고..
양코: 얘는 돌았다구. 어렵게 벌어 가지고 책 사는 데다 써. 어떻게 책을 사는데 돈을 쓸 수가 있어. 어떻게 말이야.
두한: 진영이는 그럴 수 있어.
양코: 야, 야, 그건 그렇고 손님이 왔는데 막걸리 한잔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두한: 막걸리..? 양코 너는 술도 마시냐?
양코: 아, 그럼. 왕초는 왕초지. 요즘 거지패들은 내가 다 데리고 있다. 내가 유일한 오야지라구. 진영이는 혼자서 일해. 넝마도 줍고 쓰레기도 챙겨오고, 얘는 우리 거지촌이 싫대.
정진영: 자식하고는... 왕초라고 유세부리는 꼴 요즘 못 봐준단다.
두한: 하하하, 네가 혼자 나섰다면 결국 양코가 왕초는 왕초네.
양코: 그럼, 그렇지 않고. (큰 소리로) 얘들아, 얘들아.. 야 이 거지 새끼들아..
양코가 큰소리를 쳐 몇 번 부르면 어중간한 아이들이 달려와 구부정하게 선다.
양코: 야 깍두기, 너 가서 술 좀 받아와라.
거지아이: 예, 왕초. 헌데 돈은요...?
양코: 이 새끼야. 거지가 돈이 무슨 돈이냐? 가서 구해와.
거지아이: 지난번에도 그냥 들고 왔는데요..?
양코: 아 그냥 저 새끼 저거... 얼른 못 갔다와..?
두한: 돈 여기 있다. 그냥 가져오라면 어디서 가져 오냐? 자 여기 있어.
거지아이: (돈 받으며) 고맙습니다. (다시 사라진다)
양코: 아니 저 새끼 저거...(하다가 웃는다) 헤헤헤...
앉아, 양코는 맛있게 담배를 붙여 피워댄다.
양코: 갈수록 식구는 늘고 수입은 시원치 않아. 거지새끼들이 서른 명도 넘는다고... 이거 아주 대 부대야, 대부대..
두한: 여전하구나, 넌 여전해..
양코: 헤헤... 사람은 변하면 죽는 거라구.. 한 대 피울래?
두한: 싫어.
양코: 이거 우리들의 대장이 뭐 이래..? 등치만 컸지, 아직도 어린애 아냐, 이거..?
모두들 웃는다. 그런 그들의 표정에서.........
# 25 사동옥 골목
형사들이 사동옥을 감시하고 있다.
# 26 사동옥 안
원노인과 그 사내가 막 밖으로 나가려 하고 있다.
사내: 이거 참,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두한이가 밖으로 나갔다니, 아쉽습니다. 그럼, 수삼일 내 다시 오겠습니다.
원노인: 그렇게 하십시다. 아무튼 그 동안 우리 만주 쪽의 사정이 참으로 답답했는데 여러 가지 듣고 보니 시원합니다. 자주 만납시다.
사내: 영감님을 뵙고 나니 역시 유동지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곳 한성에 조직을 재건하는 일은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습니다. 정말 노인장께서는 애국자이십니다.
원노인: 별 말씀을... 자, 조심해 가시구료.
사내: 예, 그럼. 다음에는 꼭 두한이를 만날 수 있겠지요?
원노인: 그러믄요. 조심히 살펴 가십시오.
사내: 예, 그럼..
문을 여닫고 사내가 멀어져 간다. 원노인이 한동안 바라보다가 안으로 들어간다.
# 27 다시 사동옥 밖 골목
지금까지 보고 있었던 형사들이 사내가 사라진 쪽으로 따라간다. 형사들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사진첩과 대조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뭔가 잡았다 싶은 것이다.
# 28 거지촌 전경(밤)
# 29 동 정진영의 방안
그 한쪽에 양코가 술을 마시고 있다.
양코: 야, 계속해서 나 혼자만 마신다, 이거...
두한: 우리는 마실 줄 모르니까 너나 많이 마셔.
양코: 이래가지고 제딴에는 다 컸다고들 하겠지...? 얘들아, 다 컸다는 건 말이다, 술과 담배를 할 줄 알아야 하는 거야. 그럼... (이미 취해서) 니들은 아직 몰라. 술맛이라는 게 뭔지 말이야. 이거 한 번 취하면 기가 막히다. 온 세상이 기분 좋고 빙빙 돈다고... 마셔봐... 두한아, 너 안 먹을래? 아, 취한다. 정말 돈다. 두한아, 마셔봐.
두한: 너나 마셔.
양코: 야, 정진영, 너는...?
정진영: 야, 양코, 또 취했다. 또 취했어.. 그만 좀 마셔라. 어린놈이 술은, 쯧쯧... 어이구...
양코: 싫으면 그만 둬. 이 양코는 오늘 마실 거다. 아, 취한다... 아, 정말 돈다.. 하늘이 빙빙 돈다...
양코는 그렇게 혼자 마시며 벽에 기대어 있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그 사이 두한은 정진영의 책을 본다. 겉장에 조야한 인쇄로 <공산당 선언>이라 써 있다.
두한: 여전하구나? (책을 보며) 이게 뭔지 난 하나도 모르겠다. 이게 뭐드라..? 공... 공짜는 알겠는데, 공산당 그런 거지?
정진영: 그래, 공산당 선언이라는 책이야. 마르크스란 서양 사람이 지은 건데, 시상은 모두 평등하게 살아야 한다 그런 거래.
두한: 야.. 너 대단하다. 서양 사람이 쓴 책두 읽냐?
정진영: 나두 실은 잘 몰라. 너무 어려운 말들이 많아서.. 하지만 좋은 책인 건 분명해.
두한: 그래? (책을 펴고 더듬 더듬 읽는다) 만국의... 프...로...레타...리아.. 아이, 답답해. 나는 글을 다 몰라.
정진영: 그러니까, 공부를 해야지. 그 다음은 이렇게 씌여 있어. 프로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우리가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다.
두한: (끄덕인다) 근데, 프로.. 그게 뭐냐?
정진영: 프로레타리아? 우리말로는 무산 계급을 말하는 건데...
두한: 무산 계급은 또 뭐구?
정진영: (미소)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 같이 못사는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이 책의 제목이 공산당 선언이잖아.. 근데 이 공산당이 못사는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래.
두한: 좋은 사람들이구나. 하여간 넌 정말 대단하다. 그리고 부러워.
정진영: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너도 공부를 해 봐.
두한: 공부는 무슨...? 난 안돼. 교동 보통학교 다닐 때도 늘 낙제만 했다구.
정진영: 너희 할아버지는 참 좋은 분인데 왜 너를 학교에 보내 주지 않았는지 모르겠어.
두한: 학교에 가지 않더라도 배울 건 많아. 난 만주로 갈 거야. 만주에 가서 군관학교에도 가고 독립군이 될 거야.
정진영: 만주? 독립군?
두한: 그래.. 지금 내 머리 속엔 그 생각밖엔 없어. 꼭 그렇게 될 거야.
정진영: 그것도 나쁠 건 없어.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고 배웠어. 나는 공산당이 될 거야. 못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할 거야. 프로레타리아 말이야.
두한: 프로레타리아...?
# 29-1 종로 회관
밴드가 흥겨운 리듬의 곡을 연주하고 있다. 신마적과 학생패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학생들 몇이 열띤 토론중이지만 신마적은 관심이 없는 듯 술잔만 들이킨다.
학생패1: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공산주의 사상은 일본의 천황을 인정하지 않는다구... 공산당을 색출해서 처단하려는 것도 그런 이유지.
학생패2: 음... 맞는 말이야. 그들은 가난도 불평등도 없는 그런 세상을 만든다고 말하고 있어. 듣기에 따라서 얼마나 시원스러운가?
신마적: (듣지 못하겠다는 듯) 야야야야... 개소리들 다 집어치워.
학생패들: ...........?
신마적: 프로레타리아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프로레타리아야.. 우리 같은 건달들한텐 무슨 주의 어쩌고 하는 건 어울리지 않아.
학생패1: 하지만 선배님, 솔직히 요즘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죄다 사회주의자들이거든요.
신마적: 듣기 싫다고 했잖아! 여기 술이나 더 시켜.
학생패2: 예. (웨이터에게 손을 들며) 여기.. 술...
웨이터가 고개를 끄덕이고 가려다가 걸음을 멈춘다. 막 입구로 쌍칼과 김영태, 김무옥, 문영철 등 이른바 종로2정목 패거리들이 들어오고 있다. 쌍칼 패들 신마적을 보지 못한 듯 바로 별실 쪽으로 향한다.
학생패3: 아니... 쟤네들 종로2정목 아이들 아니야?
신마적: ......(신경도 쓰지 않고).......
학생패3: (벌떡 일어나) 저 자식들... 형님께 인사도 안 드리고......
신마적: (대수롭지 않은 듯) 내버려둬라. 못 본 모양이지.
학생패3: 하지만 형님.
신마적: 공연히 그럴 거 없어. 앉아.
학생패3: (앉으며) 쌍칼 저 자식 말입니다. 요즘 아주 건방져 졌습니다. 부하들도 많이 생기고 조금 잘 나간다고 뵈는 게 없다구요.
신마적: ..................
학생패3: 맞습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애들한테 손찌검까지 했습니다.
신마적: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학생패2: 그게... 후배들 몇이 술을 먹고 주정을 했던 모양입니다.
학생패3: 뭐 앞뒤 사정은 그렇다고 쳐도 그렇죠. 말로 해도 됐을 텐데 따귀까지 올려부치다니요. 좀 심하지 않습니까? 선배님 체면도 있는데........
신마적: 뭐야?
신마적의 표정이 싸늘해진다. 그러자 다들 조용해진다.
신마적: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학생패1을 가리키며) 야 너.
학생패1: 예, 형님...
신마적: 가서... 쌍칼한테 이리 좀 오라고 그래.
학생패1: ........예?
신마적: 쌍칼한테 내가 좀 보잔다고 그러란 말이야.
학생패1: (일어나며) 예.
신마적이 무섭게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다시 술잔을 든다.
# 29-2 동 별실
쌍칼 패들이 술잔을 돌리고 있는데, 학생패1이 들어온다. 모두들 시선이 집중된다.
김무옥: 뭐여?
학생패1: (상석의 쌍칼에게) 저희 형님께서 좀 뵙자고 하십니다.
김무옥: 형님...? 뭔 형님...?
학생패1: 이 곳에 신마적 엄동욱 형님이 와 계십니다. 아까 못 보시고 그냥 지나치셔서...
쌍칼은 들었던 술잔을 내려놓는다.
쌍칼: 신마적 형님이......?
# 29-3 동 홀
쌍칼이 김영태와 김무옥, 문영철과 함께 나와 신마적에게 다가온다. 신마적 보란 듯 다리 한 쪽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쌍칼: 와 계셨습니까, 형님? 제가 못 보고 지나 친 것 같습니다. (정중하게 인사하며) 죄송합니다.
신마적: 못 본 척 한 게 아니구....?
쌍칼: ............?
신마적: 왜 대답이 없어?
쌍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신마적: 쌍칼... 너 많이 컸다. 종로2정목에 한 살림 차리더니 이제 이 신마적 따위는 보이지도 않는다 이거냐?
쌍칼패들: ..........(움찔한다)
쌍칼: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신마적: 인사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말이야. 다시 해봐.
쌍칼: ..............
신마적: 다시 해보란 말이야.
쌍칼패들 여차하면 한 판 벌일 태세다. 그것은 학생패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쌍칼은 입술을 다문 채, 다시 한 번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다.
신마적: 다시.... 다시 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가지고 하란 말이야. 고개만 숙이지 말고...........
김무옥과 문영철이 한 발 나서려는 것을 김영태가 제지한다.
쌍칼: 제게 못 마땅한 게 있으시면 알기 쉽게 말해 주십시오. 이런 식으로 모욕을 주시는 건 선배답지 못하십니다.
신마적: (눈을 치켜 뜨며) 뭐야? 뭐가 어째?
쌍칼: 후배로서 예의를 지킬 만큼 지켰습니다. 더 이상은 참아 드릴 수 없습니다.
신마적: 허.. 이 자식 보게.. 못 참으면, 못 참으면 니가 어쩔 건데? 나하고 한 번 해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쌍칼: .............
신마적: (픽 웃으며) 이 자식 이거 진짜 한 번 해보고 싶은 모양인데..? 야 쌍칼,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
쌍칼: 많은 후배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만 하십쇼.
신마적: 닥치지 못해!
탁자를 뒤집어버린다. 그리고 일어선다.
쌍칼: 여긴 장사를 하는 곳입니다. 제가 틈틈이 봐주는 곳이기도 하구요. 볼일이 있으시면 밖으로 나가시겠습니까?
신마적: 나가서 제대로 한 번 붙어보자? 좋아.. 쌍칼, 우리 한번 맞짱을 떠보자구...
쌍칼: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신마적: 그래?
불꽃 튀는 두 사람의 눈빛에서.....
# 29-4 그 밖
양 패거리들이 둘러 싼 가운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있는 쌍칼과 신마적. 지나가던 행인들도 하나 둘 몰려온다. 그 주위를 지나쳐가던 두한이 의아한 듯 다가온다.
신마적: (어깨를 풀며) 어디.. 솜씨를 좀 볼까?
쌍칼: 좋습니다.
신마적: 자, 덤벼.. 피차 인정은 없는 거야.
쌍칼: 물론입니다.
그러자 쌍칼이 그예 상의를 벗어 뒤로 던진다. 김무옥이 받아서 챙긴다. 문영철이 마른침을 삼킨다. 드디어 신마적과 쌍칼이 대결 자세를 취하며 천천히 맴돈다. 잠시 긴장감이 흐르더니 드디어 한바탕 접전이 붙는다. 한 차례씩 거센 공격과 방어가 계속된다. 신마적은 은근히 놀라는 표정이고 쌍칼은 비오듯 땀을 흘리고 있다. 언제 왔는지 구경꾼들 사이로 구마적과 패거리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구마적의 표정도 흥미롭다. 쌍칼은 두어 번 휘청거리면서 무의식적으로 상의에 숨겨놓은 칼 쪽으로 손을 가져가 보다가 움찔하며 멈춘다. 김영태가 답답한 듯 본다. 다시 그렇게 접전이 붙지만 쌍칼이 엄동욱의 연속적인 주먹과 발차기에 계속해 뒤로 여러 번을 거듭 밀린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른다. 구마적도 긴장하며 보는데... 그리고 어느 순간 신마적의 기합소리와 함께 발차기가 쌍칼의 가슴에 결정적으로 작렬한다.
모두들: .............? (면면이 스쳐간다, 구마적과 그 패거리, 김영태와 그 무리들, 그리고 학생패들, 김두한 등등...)
그대로 바닥에 무너지는 쌍칼. 쌍칼 패거리들의 얼굴이 절망적이다.
문영철: 형님? 쌍칼 형님...?
김무옥: ..........?
한참 쌍칼을 내려다보던 신마적도 힘이 들었다. 간신히 이긴 승리감으로 버거운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천천히 돌아선다. 두어 걸음 걸었을까? 그때 , 쌍칼이 안간힘으로 일어서더니 품속에서 두 자루의 단도를 뽑아든다. 모두들 우 한다. 학생패가 소리지른다.
학생패1: 형님, 칼입니다...... 칼이에요.
그 소리에 돌아보던 신마적의 표정이 하얗게 변한다. 단검은 그대로 날아간다. 그리고 신마적 바로 옆 전주에 붙어있는 어느 포스터의 그림에 가서 박힌다. 그림의 두 눈에 정확히 하나씩 박혀버린 것이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쌍칼: 신마적 형님, 과연 셉니다.
신마적: .................?
쌍칼: 하지만 칼로 하면 내가 더 셉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맞출 수 있습니다. 허허허...
신마적: (그제서야) 하하하.. 인정하지. 역시 대단하군. 만약에 이 칼이 나에게 왔으면 지금쯤 두 눈이 멀어있겠네 그려. 허허허...... 인정하네. 역시 자네는 쌍칼이야. 이번 싸움은 무승부로 하세. 주먹은 내가 이겼지만 자네 주특기인 칼을 썼다면 내가 졌어. 무승부야, 무승부. 자네 소문이 하도 무성해서 한 번 실력을 보고 싶었어.
지켜보던 구마적이 박수를 치며 앞으로 나선다.
구마적: 오랜만에 좋은 구경을 했네. 역시 신마적과 쌍칼이야. 맞아 건달은 무기를 써선 안 되지.
신마적: 마적 형님이 여긴 웬일이쇼?
쌍칼: 오셨습니까?
구마적: 이런 자리에 내가 빠질 수 있나. 자, 자....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어디 가서 한 잔 하지. 내가 거하게 사지.
신마적: 좋수다. 밤새 퍼마셔 봅시다. 하하하.
구마적은 쌍칼과 신마적의 어깨에 손을 걸치고 그렇게 간다. 구경꾼들도 하나 둘 흩어지고 패거리들은 우르르 구마적의 뒤를 따른다. 두한만이 그 자리에서 선 채, 멀어지는 그 사내들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보고 있다. 묘한 여운을 가진 채...
# 30 사동옥 외경(밤)
# 31 사동옥 안 홀
장사가 끝난 듯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원노인: (E)좋은 소식이 있단다, 두한아. 하루 종일 너를 기다렸어.
# 32 동 원노인의 방
원노인: 잘 듣거라. 너 만주에 가고 싶다고 했었지? 이제 그 길이 생겼단다. 만주에 갈 수 있는 길이 생겼어.
두한: 예? 아니, 할아버지? 만주에... 갈 수 있다구요?
원노인: 그래, 유태권 동지가 보낸 사람이 다녀갔느니라.
두한: .............?
원노인: 허허허, 믿기지 않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사실이니라. 내 뭐라 그랬느냐? 유태권 동지가 꼭 너를 데려갈 거라고 하지 않았느냐? 허허허.. 바로 그 유동지가 보낸 사람이 왔어요.
두한: 정말.. 정말 만주에 갈 수 있는 건가요?
원노인: 그렇지 않구.. 유태권 동지가 보냈다고 하지 않았느냐?
두한: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원노인: 고맙기는... 이렇게 잘 자라 준 네가 더 고맙지. 만주로 가야지. 가야하고 말고...거기서 훌륭한 장군이 되어라. 너도 김좌진 장군님처럼 그렇게 훌륭한 분이 되어야 한다. 암... 이제 그 때가 온 게야.
감격에 겨운 두한의 모습 위로
미와: (E)뭐, 나타났어?
# 33 종로경찰서
미와와 오무라, 문달영이 모여 있다.
미와: 누가 나타났어? 유태권이 그 자인가?
문달영: 유태권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진 속의 인물이 틀림없다고 합니다.
미와: 그래? 사진 속에 있는..?
오무라: 방금 전에 사동옥에서 나와 종로통의 한 중국 식당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누군가와 접선을 할 모양입니다.
미와: 요시, 드디어 걸려들었어. 가자. 빨리 빨리 움직여. 빨리!
미와가 벌떡 일어나 나가면 다른 형사들이 뒤를 따른다. 그들 다급하게 경찰서를 빠져나간다. 그 요란한 발소리들에서...
# 34 어느 중국 풍의 밀실
그 사내가 담배를 태우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회중 시계를 들여다보는 사내. 그때 노크소리가 정적을 깬다.
사내: 예..
어느 중년의 사내가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반색하는 그 사내.
사내: 박동지.
중년사내: 오... 최동지..
그 두 사내가 감격에 겨워 포옹을 한다.
사내: 이게 얼마만인가? 만주에서 헤어지고 처음이니까 5년이 넘었구만.
중년사내: 벌써 그렇게 됐구만..
사내: 자 일단 앉게.. 목부터 축이고 차근차근 얘기하세. 아주 중요한 밀명을 띠고 여기에 왔네. 할 일이 많을 것일세.
중년사내: 자네가 왔으니 당연한 일일세. 그래, 중국의 사정은 좀 어떤가? 우리 임시정부는 어떻게 하고 있나?
사내: 차근차근 하세. 벽에도 귀가 있다고 했어. (따르며) 자, 한잔하고..
# 35 동 음식점 밖
그 중국 식당 앞에 미와를 태운 차가 달려와 선다. 그 곳을 지키고 있던 형사들이 다가온다.
미와: 아직 안에 있는가?
형사1: 예, 경부님.. 들어간 지 삼십 분 정도 됐습니다.
미와: 상해에서 온 자가 틀림없겠지?
형사2: 예, (사진을 보여주며) 바로 이 잡니다.
미와: 최석규로구만.. 애국단원이야, 요시.. 잘 걸렸다.
회심의 미소를 짓고 건물 쪽을 바라보면..
# 36 다시 중국집 밀실
두 사내가 마주해 있다.
중년사내: 그럼 조직을 재건하는 것이 급선무이겠구먼.
사내: (끄덕이고) 그렇네. 앞으로 박동지가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일세.
중년사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
사내: 간단히 말하자면 민족 의식이 투철한 젊은 투사들을 만주로 보내고, 고도로 훈련된 전사들이 국내에 잠입시 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일세.
중년사내: 그렇구만.. 내가 맡을 일은 무엇인가?
사내: 우선.. 동지들의 은닉처를 마련하고 연락선을 맡아주어야겠어. 물론, 일부 살아 있는 선이 있기는 있어.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그 때다. 문이 벌컥 열리며 형사들이 들이닥친다. 그들은 모두 총을 들었다. 사내들이 당황해 바라본다.
사내: 당신들은 뭐요?
미와: 조선에 온 것을 환영한다. 최석규.
사내: ............!
미와: 반갑다. 사진으로만 보다가 이렇게 만나니 참 반갑다.
미와의 그 잔인한 웃음에서...
# 37 파고다 공원(낮)
원노인이 주위를 살피며 오고 있다. 오전이라 그 곳은 한산하다. 최동열이 기다리고 있다가 원노인을 보고 인사를 한다.
최동열: 여깁니다..
원노인: 오, 벌써 나와 계셨습니까? 제가 좀 늦었지요?
최동열: 아닙니다. 정확히 나오셨습니다.
원노인: 참으로 오랜만에 최기자님을 만나 뵙는 것 같습니다.
최동열: 바쁘다는 핑계로 그 동안 찾아 뵙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원노인: 무슨 말씀을요.. 허허허.. 그럼 저쪽으로 가서 앉을까요?
그들 한쪽으로 다가간다.
# 38 동 벤치
최동열과 원노인이 자리에 앉는다.
최동열: 한데 무슨 일이십니까?
원노인: 최기자님께 부탁을 드릴 것이 있습니다.
최동열: ..........?
원노인: 매번 어려운 부탁을 드려 말씀드리기가 죄송스럽습니다만..
최동열: 말씀하십쇼.
원노인: 김좌진 장군님의 부인께서 장군님의 유해를 모셔오고 싶어 하십니다.
최동열: (놀라) 예?
원노인: ......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최동열: 유해를 모셔오다니요? 더군다나 김좌진 장군께서는 중국 일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 분의 유해를...
원노인: 지금은 이름 없는 들판에 버려져 있다고 합니다. 조국을 위해 일생을 바치신 분이십니다. 도와드릴 길이 없겠습니까?
최동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방도를 마련해 봐야지요. 참으로 대단한 분들이십니다. 만의 하나 일이 잘못되는 날에는 큰 곤욕을 치르실 수도 있는데요.
원노인: 그래도 뫼셔와야지요. 유해나마 조국의 땅에 묻히셔야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장군님께서도 편히 눈을 감으실 수 있으실 겝니다.
최동열: 옳은 말씀입니다. 요즘 두한이는 잘 있습니까?
원노인: 예, 머지 않아 그 아이도 만주로 보내려고 합니다. 독립군의 아들이 아닙니까? 그 아이도 다 컸습니다.
최동열: 그렇겠지요. 벌써 열 일곱 열 여덟은 되었을 텐데...
원노인: 그렇습니다. 열 일곱이지요. 그만하면 훌륭한 독립군 병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훗날에는 장군도 될 것이고요.
최동열: 아무튼 늘 뵈도 영감님께서는 대단하십니다.
원노인: 원, 무슨 말씀을... 최기자님이야말로 숨어 있는 독립군이십니다.
최동열: 아닙니다. 그저 배운 것이 부끄러울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 여행증명서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곧 구해드리지요. 만주라... 두한이도 곧 만주로 간다...?
끄덕이는 최동열의 표정위로 찢어질 듯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 39 종로서 외경
# 40 동 고문실
그 사내가 의자에 손이 뒤로 묶인 채 앉아 있다. 온 몸이 피투성이고 그의 손가락 하나하나엔 전선이 연결되어 있다. 미와가 손짓을 하면 김태서가 전압기의 핸들을 멈춘다.
미와: 이봐, 최석규. 천주교 신자라니까 고해성사가 뭔지는 잘 알고 있겠지? 어떤가? 내게 고해성사를 해볼 생각이 없는가?
사내: ...............
미와: 너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야. 네 스스로 모든 것을 털어놓고 속죄를 하라고 말이다. 우린 이미 너에 대해서 아주 자세히, 다 알고 있어.
사내: 집어 치워...
미와: 그렇게 버티면 너만 손해라는 것을 모르나?
사내: 소용없다.. 이미.. 죽기를... 각오한 몸이다.
미와: 어리석은 자 같으니라구.. (김태서에게 눈짓을 준다)
김태서가 전압기를 올리면 사내가 다시 비명을 질러댄다. 미와는 한가롭게 손톱을 손질하고 있다. 한동안 계속되다가 미와가 중지시킨다.
미와: 유태권이라고 네가 아주 잘 아는 그 사람 말이야.. 무술에 아주 고단자라는 그 자 말이야. 우리가 오래 전에 다 잡았다가 놓친 적이 있었지. 지금은 애국단에서 테러 분자들을 훈련시키고 있다지...?
사내: ....(당황)...
미와: (미소) 하긴 그럴 만 해. 대단한 고수라고 들었거든. 그 자가 아마 그랬을 거야. 종로에 가면 유명한 설렁탕 집이 있으니까 한 번 가보라고 말이야.
사내: ........
미와: 그래.. 당황스럽겠지. 그러는 게 당연하지.. 우린 지난 3년 동안 유태권이를 좇았고, 상해에 있는 우리 정보원들을 통해 그 자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어. 네가 조선으로 오는 것도 역시 알고 있었지..
사내: ..........
미와: 이제야 모든 것이 드러났어. 우리는 바로 너와 같은 자가 넘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사내: ..........
미와: 다 끝났어. 이제 쓸어 담기만 하면 되는 거야. 너희들은 결코 우리를 이길 수 없다. 알겠나? 절대 이길 수 없어. 대 일본 제국의 수사기관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알았나? (때리며) 고등계를 맡고 있는 이 미와가 그렇게 어리숙한 줄 알았나? 칙쇼...! 말을 안 한다고? 너는 다 불게 돼 있어. 여기서 불지 않은 놈 아무도 없어.
미와가 마구 패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김태서에게 전압기를 빼앗아 마구 돌리기 시작한다. 비명소리.. 비명소리와 그 지독한 미와의 얼굴에서.......
# 41 사동옥
문이 열리고 원노인이 들어온다. 점심 식사시간이 지나 홀은 한가하다.
박군: 다녀오셨어요?
원노인: 오냐.. 찾아온 사람은 없었구?
박군: 예, 없었는데요.
원노인: (끄덕이고) 두한이는?
박군: 밤낮 하는 거 있잖아요. (샌드백 치는 흉내를 낸다)
원노인이 빙그레 웃고 안채로 향한다.
# 42 동 마당
두한이 샌드백을 치고 있다. 원노인이 헛기침을 하며 다가온다.
두한: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본다) 언제 오셨어요?
원노인: 방금 전에 왔다.
두한: 최기자님은 잘 계시죠?
원노인: 그래.. 여전하시더구나. 언제나 늘 바쁘게 사는 분이지. 그래 계속하거라.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두한: 할아버지..?
원노인: .........?
두한: 저 정말 만주에 갈 수 있는 거죠?
원노인: (미소) .... 그렇게도 좋으냐? 너무 그러니까 이 할애비는 좀 섭섭한 걸.. 암, 이제 다 잘 될게다. 그렇다고 이 할애비를 잊으면 안 된다.
두한: 예, 할아버지.
두한이 멋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인다.
원노인: 녀석..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홀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 43 동 사동옥
문이 벌컥 열리고 오무라 형사들이 들이닥친다. 박군이 한 테이블에서 신문을 보고 있다가 놀라며 일어선다.
박군: 무, 무슨 일이십니까?
오무라: 체포해! 나머지는 안 쪽을 뒤지고.
형사 하나가 박군에게 수갑을 채운다. 그리고 문달영과 다른 형사들은 안채 쪽으로 달려간다. 한쪽에서 밥을 먹던 손님이 놀라 숟가락을 덜덜 떤다.
# 44 동 별채 마당
형사들이 들이닥치자 원노인과 두한이 놀라며 바라본다.
원노인: 대체, 이게 무슨 일이요?
문달영: 가보면 알아.
거칠게 원노인을 돌려세워 역시 수갑을 채운다. 그러자 두한이 문달영을 밀치며 원노인을 막아선다.
두한: 뭐요? 왜 이러는 거요?
문달영: 어쭈, 이 자식 보게.
문달영이 두한의 뺨을 후려치는데, 그러나 두한에게 팔목이 잡혔다.
두한: 당신들 누구야? 왜 이러는 거야?
문달영: 이.. 이 자식이... 이거 놓지 못해? 놔, 임마. (붙잡힌 손목을 빼지 못하고) 뭣들 하나. 어서 체포해! 이 놈 붙잡아.
형사들이 달려들자, 두한이 문달영을 내지른다. 문달영이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진다. 형사들이 한꺼번에 덮친다. 그들은 다시 두한에게 채이고 맞고 형편없이 나가떨어진다. 모두들 뻥해서 본다.
두한: 할아버지, 피하세요!
원노인: 두한아..
두한: 어서요...
형사들이 그 사이에 다시 일어나 두한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두한의 놀라운 싸움 솜씨에 형사들이 다시 비틀거리는데, 그 때다. 요란한 총성이 그 곳에 울려 퍼진다. 두한이 놀라 돌아보면 오무라가 총을 들고 서 있다.
오무라: 긴또깡.. 너 대단하구나? 그 동안 많이 컸어. 싸움은 어디서 그렇게 배웠나?
두한: ...........?
오무라: 대단하구나. 정말, 대단해. 긴또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