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한해 앞둔 제주농고 학생들이 거금(?) 2∼3만환(화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는 화폐단위가 환이었다)을 꾸깃꾸깃 꺼냈다. 꿈에도 그려왔던 수학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떠나는 여행다운 여행이라 부모들은 없는 살림이지만 아들의 여행을 위해서 그 해 봄부터 돈을 모으기에 바빴다. 우리나라 역사의 현장인 경주 불국사를 돌아 첨성대, 해인사 등 책에서나 봤던 명승고적지를 돌아보는 것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수학여행의 ‘ABC’코스. 그러나 바둑판 모양의 초가집에 살던 제주 학생들은 군데군데 덧대어 지은 내륙의 초가집 지붕을 보면서 “제주가 바람
이 세긴 세구나”라고 신기하기만 했다. 카메라가 시시해진 요즘이지만 40년 전 까까머리 학생들에게 사진기는 유일하게 추억이란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것이었다. TV 못지 않은 ‘재산’으로 통했던 학생들에겐 꿈도 못 꿀 사진기였지만 수학여행길에는 잘 사는 이웃에게서라도 빌려 가지고 가곤 했다. 동창생의 우정을 남기기 위해 학생들은 돈을 모아 10여 통의 필름을 사고 사진을 찍어댔다. 사진기를 가져온 동창생은 ‘밤손님’ 때문에 사진기를 지키느라 잠을 못 자기가 다반사였다.
사진 속 김길환·김태희·홍수남(왼쪽부터)씨도 사진틀에 자신들의 우정을 박았다. 어깨에는 무거운 가방을 맨 채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요즘처럼 이곳저곳 버스로 이동하지 못하고 걸어서 구경을 한때라 경주 명승지를 돌아볼 때는 너무 걸어서 힘이 들었지. 그래서 관광지 좌판에 진열돼 있던 산호지팡이를 친구들과 함께 샀어. 그때 학생들 거의가 샀을걸” 지금은 사업가가 된 김길환씨(59)가 사진 속 그때를 짚어본다. 학교측에서 경비절감으로 학교에서 하룻밤을 보내는가 하면 아침이면 싸구려 김치찌개, 해장국을 먹기 위해 식당을 기웃거렸다. 없는 시절의 수학여행이었지만 그래도 학생들은 눈물나게 재미있었다 한다.
“놀이문화란 게 없었고, 거리구경과 명승지 구경이 대부분이었어. 하지만 친구들과 막춤을 추고 노래하고, 흉내내기(당시엔 동물 흉내내기가 인기) 하면서 날이 가는 줄 몰랐던 그 재미와 고향을 떠난 여행의 흥분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