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 백은숙(서대문장애인종합복지관 팀장)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어딘가로 떠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를 설레게 한다.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가고 싶은 곳에 대해 생각하고, 찾아보고, 이야기 하곤 하는데 참 재미있는 것은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그 기회가 실제로 찾아온다는 것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누군가 말했던 것 같다. ‘삶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 진다’고.
두 달 가까이 장애인복지관 평가를 준비하면서도 나를 지탱해주었던 것은 평가가 끝나고 있을 터키 여행이었다. ‘터키...이스탄불’. 무언가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어떤 신비함으로 나를 유혹했다. 10박 11일간의 터키일주. 유재원 한국외대 그리스발칸어과 교수와 함께하는 유적답사 형태의 여행이다. 더구나 이번 여행지는 터키 여행지로는 흔치않은 아나톨리아반도 남동부 일주코스다. 물론 2일간의 이스탄불 일정도 포함되었다.
만남 #1. 함께하는 사람들
8월 13일. 드디어 터키로 향하는 날이다. 오전 느즈막한 시간, 인천공항 3층 B 카운터 앞. 10박 11일간 함께 할 사람들을 만났으나 여느 여행의 시작처럼 아직은 서먹서먹함이 가득하다. 12시간의 비행동안 옆자리에 함께 한 여행경험이 풍부한 민샘. 삶을 살아가는 방식 이 명확하고, 무엇보다 통솔력이 뛰어나다. 콤마게네 왕국의 산상영묘가 있는 넴룻산의 유프라 산장에서의 닭백숙 파티에서 그 능력을 한껏 보여주어 우리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아리랑의 노랫가락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여행 동안 나를 포함해 ‘호메로스’ 조원인 윤샘, 신샘, 정샘. 이들은 모두 20대 후반의 교사이다.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갖은 포즈를 다 취하며 사진을 찍다가도 교수님이 강의를 하면 경청하고, 꼼꼼히 적기도 하면서 1편의 여행집을 만들어 나간다.
노년의 천하부부(부부의 성을 따서 천하부부다). 정말 멋진 분들이다. 지금까지 80여개국을 다녔는데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오지 여행을 먼저 해야 한다며 아직까지 그 흔한 유럽은 안가셨단다. 남편은 사진 찍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성당’에 매료되어 자그만치 8기가 분량의 촬영을 했단다. 아내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손수 만들어온 빈 책에 매일매일 여행기를 쓰고, 삽화를 그려 넣고, 여행지에서 채취한 꽃이나 식물을 누름꽃으로 만들어 붙이기도 한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마무리하면 1권의 여행기가 되어 사랑하는 손주들에게 소중한 선물이 된다.
트레킹의 대가 안샘, 내가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5번이나 다녀오셨단다. 남동부 일주를 마치고 아다나에서 이스탄불로 돌아오는 2시간 남짓 비행동안 그 이야기에 푹 빠져버렸다. 각자의 이유들을 가지고 이 여행을 시작했지만 그 시간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첫 번째 만남이다.
만남 #2. 터키인
두 번째 소중한 만남은 터키인들이다. 지금도 ‘터키인’하고 생각하면 ‘정겨움’이다. 물론 지역에 따라 그 정겨움에는 차이가 있다. 도시화가 되어 갈수록 주변의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그네들이나 우리네나 별반 다르지 않다. 전반적으로 도시화가 거의 진행되지 않은 동부지역과는 달리 안타키아나 이스탄불에서는 그냥 스쳐가는 사람들일뿐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도시화가 덜 진행된 동부지역에서는 터키인들의 그 정겨움을 맘껏 누릴 수 있다. 유목민족의 후예인 터키인들, 그들은 유목민의 특성상 진취적인 성향이 강하고, 이슬람이라는 종교적 차원에서 타인에게 친절을 한껏 베풀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처음 보는 우리들에게 그 진취성과 친절함을 한껏 베풀어주었다.
여행 5일째 되던 날, 산르우르파 거리를 걷다가 세마와 그녀의 7살 쌍둥이 딸을 만나게 되었다. 낯선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쌍둥이들이 계속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자, 처음에는 반갑게 인사만 하고 길을 가려던 세마는 우리 일행을 집으로 초대했다. 우리가 도착하자 가족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차이와 비스킷을 내어오고, 손톱에 크나(헤나)를 해주기도 하고. 저녁 먹고 자고 내일가라고 하기 까지 한다. 손짓 발짓을 동원한 의사소통이었지만 그네들의 진솔함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신이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의 매니저라면서 무료로 음식을 대접할테니까 산르우르파에 다시 오게 되면 꼭 들려달라는 모멧. 적극적인 성격의 여행 기획가이자 가이드인 아버지와는 달리 얌전한 성격의 영어교사인 압둘로흐몬. 흔쾌히 사진을 찍어준 많은 이들... 이들로 인해 터키와 우리가 형제의 나라임을 느껴본다.
만남 #3. 역사
세 번째의 소중한 만남이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해박한 지식이 필요한 관계로 그 느낌만 표현하고자 한다. 동ㆍ서양을 잇는 요충지에 위치한 아나톨리아 반도. 그 위치적 중요함으로 인해 기원전부터 그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많은 전쟁이 일어났으며, 그 과정에서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비잔틴제국, 오스만 제국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고, 세계 3대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유적이 같이 존재하기도 한다. 또한 세계 문명의 발생지이기도 한 유프라테스와 티크리스 강이 있고, 하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주거 역사와 학문의 도시로서 세계 최초의 대학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다니는 지역마다 특히 이스탄불에 들어서서는 보이는 대부분이 역사 그 자체였다. 우리하고는 다르게 그 역사적 유물을 모두 보존하기 보다는 지금도 삶의 일부로서 포함시키고 있었다. 서로 다른 문명과 종교의 발생지로서 격동의 역사를 안고 있는 터키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보면 공존의 모습 또한 존재한다. 그로인해 신비로운 터키의 유혹이 묻어나는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