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경남시조문학상 수상자 윤정란 시인
수상작
뿌리가 이상하다
윤정란
비쩍 마른 풀잎사이로 길을 트는 빗방울
촉촉히 스며드는 골다공증 흙에도
사랑의 붓촉을 가는 수상한 비가 온다
봄 여름 지샌 풀은 풀벌레 노래위해
해와 별을 문질러 땅심을 높혔으리
내안에 꿈틀대는 풀, 뿌리가 이상하다
하늘에다 벼리던 호미를 찾아들면
티눈으로 불거지는 진초록 언어들이
무지개 비를 품으며 강으로 뛰어든다
심사평
이숭원(李崇源)서울대교수
추천된 다섯 분의 작품 중 윤정란 시인의 「뿌리가 이상하다」를 수상작으로 정했습니다. 윤정란 시인은 시조의 격조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살리려는 노력을 보입니다. 수상작과 함께 읽은 「꽃, 꿈꾸다」, 「아이의 그림자」는 현대의 풍속도를 소재로 끌어들여 경박한 세태를 풍자하고 있는데, 비판의식이 전면에 드러나서 시조로서의 감칠맛은 다소 약했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이상하다」는 시조의 운율미를 효율적으로 살리면서 시 창조와 관련된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을 형상화하는 데 뛰어난 성취를 보였습니다.
마음의 움직임은 한 마디로 간단히 잘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고, “내 마음 나도 몰라”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는 시는 애매하고 다의적(多義的)인 성향을 보입니다. 윤정란의 「뿌리가 이상하다」가 바로 그러합니다.
이 시조는 창작에 대한 착잡한 자의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표현하고는 싶은데 적절한 시어와 비유가 떠오르지 않아 괴로울 때, 나이가 들수록 감각과 지성이 무디어지는 것 같아 불안할 때, 그 괴로움과 불안함의 각질을 뚫고 한 줄기 시상이 솟아나고 한 묶음의 언어가 탄생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이로운 창조의 순간이지요. 그러한 정황을 마른 풀잎과 흙을 적시는 빗줄기와 새롭게 꿈틀대는 뿌리의 관계로 설정하여 비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 바로 「뿌리는 이상하다」입니다. 창작의 희유한 순간을 “뿌리가 이상하다”고 명명한 것 자체가 착상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수상을 축하하며 문운 창성하기를 기원합니다. (끝)
수상소감
회초리를 맞으며
목이 말라 비비꼬인 농작물에 물을 주다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슴이 철렁 했지만 흙 묻은 손으로 넙죽 받겠습니다. 경남시조문학상이 정진하라는 격려와 사랑의 회초리인줄 알기에 더욱 노력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후원의 손길을 듬뿍 주시는 경남약사회와 경남시조 회원님 그리고 심사위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부족하고 부끄럽지만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약력
본명 : 윤말선
경남김해출생
83년 시조문학 ‘강변길’ 천료
91년 시조문학 공로상 수상
99년 경남문학 우수작품상 수상
99년 시집 << 푸른별로 눈 뜬다면 >> 출간
05년 제22회 성파시조문학상 수상
06년 시집 << 꽃물이 스며들어 >> 출간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역임
진주여성문학인회 회장 역임
진주시조시인협회 부회장 역임
경남시조시인협회 부회장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경남문인협회, 진주문인협회, 진주시조시인협회, 진주여성문학인회 회원, 연대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