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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머무는 여래사 설조 큰스님 근황 |
부처님 새세상 위해 동분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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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은 공주사대 영문과 출신이다. 달 밝은 신륵사 앞 남한강에 배 띄우고 우리 신혼부부에게 절에서 담은 곡주 복분자술 한잔씩 따라주고 원어노래 부르던 스님이다. 미소가 다정하시던 스님은 미국과 캐나다 포교원에 계시다 돌아와서 불국사 주지를 역임하셨다. 부부가 꼭 한번 불국사 찾아뵙는다는 것이 공수표가 된 후 소식을 모른다…”
불교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던 어느 불자가 지난 2005년 여름 <생각나는 스님들>이란 제목으로 쓴 글 가운데 설조 큰스님에 관한 대목이다. 이젠 거꾸로다.
1980년 가을, 샌프란시스코에 여래사를 열어 북가주 한인사회의 대표적 수행도량으로 일궈낸 스님은 최근 몇년간 북가주행이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별반 알려진 게 없다. 속리산 법주사에 계신다는 소식만 바람결에 간간이 들려올 뿐이다. 여래사는 현재 소원 스님이 주지소임을 맡고 있다.
입소문을 통한 큰스님의 근황은 가물지만 실제로는 매우 분주하게 보내는 듯하다. 한국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엿보이는 근황이 그렇다. 지난해 여름에는 불교방송 BBS 특별대담에 출연해 한국불교 정상화에 앞장섰던 젊은 시절부터 10/27 법난 와중에 미국에 와 여래사를 꾸리고 이를 가꿔낸 이야기 등을 풀어냈다.
재작년 말에는 잠시 귀국한 차에 진보적 언론인 리영희 선생이 별세하자 장례위원회 고문을 맡았다. 당시 큰스님은 불교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리 선생과의 20여년 인연을 소개하며 “리 선생의 대사회적 인식을 불자들도 깊이 배웠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설파했다.
미국에서의 한국불교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국사회는 기독교사상의 전환기에 있다”며 “교리가 변할 것이고 그로 인해 기독교사상의 갈등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 뒤 “이때 한국불교가 활기차게 포교에 뛰어든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며 “젊은 인력과 교단 차원의 지원이 있다면 활성화 시기는 그만큼 앞당겨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 불국사 주지 설조 스님이 12월 6일 오후 3시경 세브란스 장례식장을 찾아 고 리영희 선생의 영전 앞에서 고인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장례위원회 고문으로 추대된 설조 스님은 불국사주지 시절 불교계 언론인 법보신문 발행인으로 있으면서 리영희 선생을 고문으로 추대, 고인과 깊은 우의와 교분을 가졌던 스님이다.
설조 큰스님과 리영희 선생과의 만남은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교환교수로 북가주에 온 리 선생과 여래사 주지이던 설조 큰스님이 함석헌 선생의 소개로 만나게 됐다고 한다.
이후 큰스님이 1990년대 중반 조계종 개혁운동에 뛰어들고 불국사 주지에 취임하면서 법보신문 발행인을 겸하게 되자 리영희 선생을 법보신문 고문으로 추대하는 등 동지적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올해는 지난 가을, 경주 불국사에서 봉행된 월산 대종사 탄신 100주년 다례재 때는 월산스님 문도운영위원장을 맡아 맹활약했다. 당시 그는 불교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흑발홍안에 주장자를 짚으며 선방을 거니시는 모습은 마치 신선을 뛰어넘는 도인이셨으며, 삼천대천세계 밖에서 자유롭게 노니셨던 큰스님이셨다”고 월산 대종사를 기렸다.
문도운영위원회는 월산스님의 가르침을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도록 스님의 일대기를 다큐멘터리와 만화로 제작하고 선원과 포교당을 건립해 불자들의 수행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올해 초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운영위원장 자격으로 제31대 주지 선거를 주도했다.
경허. 만공. 보월 스님의 법맥을 계승한 금오 대선사의 44주기 추모다례재 역시 금오문도위원장인 설조 큰스님의 주도적 역할 속에 지난 10월2일 법주사 대웅보전에서 봉행됐다.
원로의원 월탄스님,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 법주사 복천암 선원장 월성스님 등 문도 200여명이 참석한 다례제에서 설조 큰스님을 추모사를 통해 “은사스님께서는 항상 어떻게 하면 후대에 교단이 번성하고 탁락하지 않고 불조혜명을 이을 것인가를 걱정했다”며 “문도들은 스님의 유지를 잘 받들어 청정하게 살면서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10월25일에는 법주사 개산 1459주년을 맞아 열린 개산대재와 보살계 수계 산림 대법회 봉행에 함께했다.
<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