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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계춘빈] 윤지희
S#1. 미술치료실 (낮/실내)
넓은 창문으로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고 종수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랑스런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혜연.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연인간의 평화로운 오후. 방안에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라는 음악이 울려퍼진다.
노래(E) :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며...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기남.
종수의 그림 C.U 남자가 여자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
기남 : 이 그림의 주제가 뭐죠. 종수씨?
종수 : (쑥스러운 듯) 완전한 사랑이요...
기남 : (계속 하라는 온화한 눈짓)
종수 : (그림 가리키며 설명한다) 남자는 여자를 감싸 안으면서 모든 것으로부터 지켜줘요.
세상의 모든 풍파와 고난으로부터 유리같은 여자를 지켜내요.
종수의 수줍은 설명에 감동받은 얼굴의 혜연. 설명에 따라 그림을 훑어 내려가면서 점점 말에 힘이 실리는 종수.
종수 : 머리. 가슴. 배. 발가락. 발톱의 때까지. 아무도 침범하지 못하게. 털끝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게.
혜연, 종수의 말이 진행될수록 얼굴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진다.
종수 : 그렇게 남자만이 여자를 다 가지는 거예요. (뿌듯한 얼굴) 열라 완전한 사랑이 되는거죠.
(하는데 종수 얼굴 위로 미술도구들 쏟아지고)
혜연 : 미친놈. 완전한 사랑? (묶은 머리 풀어보이면 길이가 짝짝이) 니 눈엔 이게 완전해?
그래서 사람 자는 사이에 머릴 이렇게 잘라갔냐?
종수 : 내가 널 열라 사랑해서 그런거야. 혜연아. 모르겠니?
혜연 : 열라 두 번 사랑했다간 아주 바리깡으로 사람 머릴 밀어버리겠다?
종수 : (혜연 긴쪽머리 어루만지며) 그래도,,, 돼?
혜연 : (부르르 악다구니) 야, 이 미친놈아~!
혜연, 미술도구를 종수에게 던지면 기남, 말리는데 그 때, 들어오던 양씨 날아오는 도구들 놀라서 피하고.
김양 : (말리며) 진료중이시라니까요.
양씨 : (난장판 보고 기막힌) 진료? 봐라, 왕 원장, 이런 미친놈들 받아가지고 어느 세월에 월세비낼꺼고?
혜연 : (발끈하며) 뭐? 미친놈? 아저씨 지금 얘 보고 그런거예요?
양씨 : 허이, 젊은 사람이 어디 어른앞에서 흰자를 희뜩거리삿노.
혜연 : 아저씨도 미친놈 앞에서 미친놈이라 그랬잖아요. 얘가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대놓고 그러면 기분이 나쁘지이~!
양씨 : 뭐, 나쁘지이? 니 몇 살이야?
혜연 : 몇 살이면 뭐요? 생일 챙겨주게?
서로를 밀치며 싸우는 두 사람 사이를 필사적으로 막는 기남.
혜연이 불리해보이자 옆의 물감 푼 물통을 양씨에게 집어던지는 종수.
종수 : (물통 집어던지며) 자기야 열라 사랑해에~!
몸을 던져 물통을 막는 기남과 놀란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 모습 슬로우 모션.
그 와중에 계속 흘러나오는 노래.
노래(E) :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이세상 끝까지 영원하며 믿음과 소망과 사랑중에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바닥에 평화롭게 떨어져 구르는 빈 물통.
S#2. 왕기남 미술치료센터
‘왕기남 미술치료센터’ 간판이 걸린 건물 전경.
S#3. 미술치료실
풍선껌 불며 난장판이 된 방안을 치우고 있는 김양. 한두번 아니라는 듯이 담담하게 수건으로 머리를 턴다.
김양 : 언제 주실 꺼예요?
기남 : 월세... 이번 달 내로 드린다고 전해드려.
김양 : 아니요. 제 월급이요.
기남 : 아... 김양 월급...
김양 : 그냥 조작가님한테 연락하시지.
기남 : 우리... (힘겹게) 헤어졌어.
김양 : (아랑곳하지 않고 귀찮은듯) 그냥 빨리 연락하세요. 길어야 사흘 갈꺼면서.
기남 : (다시 진지하게 그리고 힘겹게) 이번엔 진짜. 정리했어.
김양 : (듣지 않고 O.L) 우리도 광고 같은 거 좀 하고 그래요. 이러다 나중엔 물감 퍼먹겠어요.
기남 : 식당도 아니고 무슨 광고를...
김양 : (O.L) 저 퇴근해요.
기남 : (시계보며) 몇신데 벌써 퇴근을... (하는데 김양 벌써 나가고 없고)
기남(NA) : 김양은 날라리다.
S#4. 마을버스안
한적한 버스 안에 앉아있는 기남.
노랑색 유니폼에 가방을 삐딱히 맨 노는듯한(?) 유치원생들이 좌석 등받이에 붙어있는 광고판에 낙서를 하며 킥킥대고 있다.
주위 어른이 ‘이놈들’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낙서질 중인 아이들.
기남(NA) : 원래 노는 애들은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S#5. 경비실
경비실 앞의 주차금지 팻말을 누군가가 주책금지로 낙서해놓았다. 경비아저씨 투덜대며 낙서 지우고 있다.
그 앞을 라면을 산 봉지를 들고 터덜터덜 지나는 기남. 기남 ‘일렬주차’ 란 글자 밟으며 가는.
S#6. 기남의 원룸
문을 열고 들어오면 마치 자기 집인양 익숙하게 저녁상을 보고 있는 나연.
나연 : (쾌활하게) 늦었네.
기남(NA) : 나연은 나의 종교다.
기남 : (말없이 상에 앉으며) 우리 헤어졌잖아.
나연 : (카레 내려놓으며) 그래. 알았어. (시계보고 나갈 채비하며) 전시회 준비 때문에 내일은 바쁠 거야. 모레 와서 자고 갈게.
식탁 위에 슬쩍 봉투 놓는다.
기남 : 뭐야?
나연 : 김양이 전화왔었어. 왜 얘길 안했어.
기남의 이마에 뽀뽀하고 카메라 밖으로 나가면.
기남 : (마지막 발악하듯 힘없이) 우리. 헤어졌잖아.
갑자기 불이 꺼지고 깜깜해지는 집.
기남 : (놀라서) 야! (다급하게) 조나연! 나연아!
불 켜지고 환해지면서 기남 쪽으로 배꼼이 고개를 내미는 나연.
나연 : (사랑스러운 웃음 지으며) 이것 봐. 넌 날 못 떠나.
나연 나가는 소리. 묵묵히 카레를 뜨는 기남.
기남(NA) : 종교를 한번 알고 나면 속세로 돌아가기가 힘든 법이다.
당근을 열심히 골라내며 카레 먹는 기남.
S#7. 미술치료실 접수대
접수대 위로 자신있게 놓이는 신문 광고면 ‘이제 미술로 마음을 치유하세요 왕기남 미술치료센터’ 라고 찍힌 광고문구 아래
하얀가운을 입은 기남이 하얀 치아를 고르게 드러내며 어색하게 하지만 이지적으로 웃고 있다.
접수대를 사이에 두고 광고를 들여다보고 있는 김양과 기남.
기남 : 어때?
김양 : (풍선껌 불며) 글자가 구려요.
기남 : 사진은 어때? 평소랑 좀 달라진 거 없어? (하며 살짝 이빨 내보이는데)
김양 : (기남 얼굴보고 사진보고 하더니) 몰랐는데 귀가 짝짝이네요.
기남 : (원망스러운 눈으로 김양을 바라보는)
S#8. 버스정류장
버스정류장에 옆에 주차된 오토바이 백미러에 이빨을 비추어 보는 기남.
기남 : 미백을 좀 더 세게 할 껄 그랬나? 그렇게 티가 안나나?
옆에 엄마 손을 잡고 서 있던 꼬마가 기남을 올려다본다. 꼬마에게 이빨을 내보이며 인자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기남.
꼬마 : (손가락을 들어 기남을 가리키며) 왕자님이다! 계춘빈의 왕자님!
뭐? 하는 표정으로 꼬마를 보는데
마을버스 한 대 지나가며 창문에 옹기종기 매달려있는 노란색 유니폼의 유치원생들이 기남을 보더니
일제히 신나서 소리를 지른다.
유치원생들 : 왕자님이다! 계춘빈의 왕자님!
얼이 빠진 기남. 이게 도대체 뭔 소리야?
S#9. 마을 버스 안
마을버스에 올라타자마자 광고판을 확인하는 기남.
‘왕기남 미술치료센터’가 ‘왕자님 미술치료센터’로 바뀌어 있다. 그 옆으로는 계춘빈 ❤ 라는 이상한 글자까지 쓰여있다.
이를 테면 이런 모양 계춘빈 ❤ 왕자님 미술치료센터
당황한 눈으로 버스안의 좌석들을 다 돌아다니며 확인하는 기남.
왕기남 미술치료센터의 모든 광고가 그 희귀한 낙서로 뒤덮여있다.
‘이게 무슨...!’ 기남, 분노의 눈빛이 치솟는데
버스 맨 뒷좌석에서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유치원생이 쭈그리고 앉아 킥킥대며 열심히 낙서를 하고 있다.
그 위로 어둡게 드리우는 기남의 그림자. 놀란 아이의 표정.
기남 : (어둠속에서 드러나는 기남의 얼굴) 소속이 어디냐...
S#10. 유치원 전경
노랑 유치원이라고 적힌 유치원 전경 그 위로 아이들의 노는 소리 들린다.
기남(E) : 여기 계춘빈 어린이가 누구야?
S#11. 유치원 놀이터
신나게 놀던 아이들 모두 하던 것을 멈추고 기남을 바라본다.
기남 : (앞에 앉은 아이부터 이름표 확인하며) 정태성, 윤광희, 넌 신세희... 계춘빈 어린이가 누구야?
(낙서된 버스 광고 들어보이며) 공공기물에 이런 장난치면 경찰아저씨한테 잡혀가는 거 몰라?
여기 춘빈이가 누구야? 계춘빈?
그 때, 아이들 일제히 한곳을 바라보면 쭈그리고 앉아있는 아이인지 어른인지 모를 한 여자.
기남, 그 앞으로 가서 서면 유치원 선생님으로 보이는 웬 여자가 수줍은, 아니 홍당무에 가까운 얼굴로 일어선다.
춘빈 : (기남과 눈도 못마주치고) 죄송합니다...
기남 : (좀 민망한 듯 말이 길어진다) 뭐, 애들이 장난으로 한 일 인건 알겠는데요. 그래도 이게 오늘 처음 광고낸건데,
아무리 애라지만 동네사람들 다 보는 공공기물에 이렇게 하트표까지 그려놓고... 그것도 빨간색으로...
춘빈 : 그게... 하트는 원래 빨간색이거든요...
기남 : 네? (뭔소리야?) 예, 뭐... 하여튼 계춘빈 어린이는 어디있습니까? 애가 한 일이니까 제가 좋게 말로 타이르겠습니다.
춘빈 :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전데요...
기남 : (못듣고) 예?
춘빈 : (빨개진 얼굴로도 고개들어 기남보는) 제가... 계춘빈인데요.
기남(NA) : (뻥진 기남의 얼굴위로) 이 여자는 내가 처음보는 여자다.
춘빈 : (기남 흘끗 보더니) 미백하셨네요...
황당한 기남 얼굴위로.
기남(NA) : 이상한 여자가 나타났다.
타이틀 위대한 계춘빈.
S#12. 유치원 사무실
계춘빈의 책상에서 낙서된 광고판을 수정액으로 정성스레 지우고 있는 계춘빈과 원생 1,2,3
원생1 : 우리가 잘못한거예요?
원생2 : 왜요? 선생님이 좋아하는 왕자님이잖아요?
춘빈 : 그게... 그래도 그러면 안돼.
원생2 : 왜요?
춘빈 : 그게...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피해 끼치면 안되는 거야.
원생3 : (책상 앞 액자 툭 치며) 왕자님이 뭐 그래. 소리나 지르고. 귀도 짝짝이에 못생겨가지고.
춘빈 : (액자 바로 세우며) 그게... 그래도 그럼 안돼. 선생님 왕자님인데.
춘빈의 책상 앞에 놓여진 기남의 광고사진 들어간 액자 C.U
그때, 황급히 문을 여는 다른 반 유치원 선생님.
선생님 : 계 선생님. 새롬이가 또...
춘빈과 아이들 황급히 밖으로 나간다.
S#13. 유치원 앞 (야외)
병아리들이 온통 삐약대며 거리를 나돌고 있고 새롬이 병아리 장수 병아리 장수에게 물총을 쏘고 있다.
새롬 :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말랬지!
병아리 장수 : (한손으로는 물총 막고 한손으로는 병아리 잡으며 다급하게) 내가 나타나는 거냐 니가 쫓아다니는 거지.
아이쿠. 쟤 좀, 쟤 좀, 좀...
새롬 : 이 악마! 살인자!
하며 물총을 병아리 장수의 얼굴에 정확히 가격한다.
병아리 장수 : (눈을 부여잡으며) 야, 너 이거 뭐야. 너 여기 식초 탔지. 으아...
새롬을 말리는 춘빈.
김양(E) : 요 앞에 노랑 유치원 단발머리 여선생이요?
S#14. 미술치료실 접수대
김양 : 아. 원장님 짝사랑하는 그 여자?
기남 : (놀라서) 알고 있었어?
김양 : (더 놀라서) 모르셨어요? 동네사람들 다 알던데?
기남 : (더 놀라서) 왜 이야기 안했어?
김양 : (심드렁) 당연히 아시는 줄 알았죠.
기남 : (뻥진)
S#15. 커피숍
깨끗이 지운 광고판 내미는 춘빈.
춘빈 : 그럼... (꾸벅 인사하며 나가려한다)
기남 : 아니, 잠깐만요.
S#16. 커피숍 외경 간판 - 까페 모나코
S#17. 커피숍
앞의 간판이 냅킨으로 오버랩 되며 춘빈 ‘까페 모나코’를 ‘깡패 못난코’로 낙서해 놓았다.
춘빈은 어색한지 펜을 계속 끄적거리고 말없이 마주 앉은 두 사람.
춘빈 : 저... 계속 앉아있나요?
기남 : 아뇨... 뭐... 주스라도 더 드실래요?
춘빈 : 아니요.
기남 : (답답한 듯 조심스레) 뭐 할말 없으세요?
춘빈 : (생각하다) 없는데요.
기남 : (망설이다 먼저) 제가... 거기가 저를 좋아하신다고 들었거든요.
춘빈 : (놀라서)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기남 : 우리 김양 말이 동네 사람들 다 안다고 그러던데...
춘빈 : (남의 이야기 듣듯 그러냐는듯) 그렇구나... (어렵게 입을 떼며) 그럼,
기남 : (침 꼴깍)
춘빈 : 저 이제 가도 되나요?
기남 : (응?)
춘빈 : (창밖을 보더니) 어? (반갑게 손바닥펜 흔들며) 얘들아~
기남, 창 밖을 보면
유치원 아이들 춘빈에게 신나서 같이 반갑게 손 흔들고 장보러 가던 동네 아줌마들 등이 모여 두 사람을 신기한 듯 보고 있다.
이제 드디어 사귀나 보네, 오래참았지, 연애한다고 미백했나보다, 등 수다떠는 소리.
뻥진 기남 표정.
S#18. 길가
기남, 춘빈과 함께 걸어가며 좀 흥분한
기남 : 아니, 그러니까 서로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누어봐야할 것 같은데... 한동네 살면서 서로 마주칠 일도 있을꺼고,
뭐 애들도 아니고 성인인데 그런 일로 서로 불편하게 지내는 것도 우습지 않아요?
춘빈 : (가만히 서서 기남 보면)
기남 : 그러니까 앞으로 계획같은 건 어떻게 되시는지? 뭐 서로 편한 이웃사촌으로 지내자던지 하는 그런...
춘빈 : 저는... 그냥 계속 하던대로만 하려구요...
기남 : 하던대로요? 그럼 그냥 계속 좋아하신다는...?
춘빈 : 네.
S#19. 버스정류장
나란히 앉아있는 두 사람. 더 흥분한 기남.
기남 : 근데 그럼 안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거기가 저를 계속 좋아하시면 좋아하시는 이상, 저한테 바라시는 점도 생길테고,
그러다보면 힘들기도 할테고...
춘빈 : (무슨 소리냐는 듯이) 없는데요. 그런거...
기남 : ?
춘빈 : 그리고 애인도 있으시잖아요.
S#20. 기남의 원룸
기남, 나연의 무릎을 베고, 나연이 기남 귀 파주고 있는.
나연 : 그 여자가 나도 알어?
기남 : 어.
나연 : 우와, (조금 새초롬하니) 왕기남 원장님 인기 좋네.
기남 : 혹시... 질투해?
나연 : (웃으며) 질투는 무슨. 환자한테...
기남, 나연을 간지럼 태우며 질투하지 질투하지 장난친다. 까르르 넘어가는 나연,
그 때 휴대폰 울리자 확인하고 조용히 베란다 쪽으로 나가며 전화 받는 나연.
나연(E) : 네, 여보. 저녁 드셨어요?
아무렇지 않은 듯 TV 키는 기남. 볼륨을 마구 올리고 식탁으로 가 저녁상 앞에 앉는다.
전화 끊고 들어오는 나연, 핸드백 챙기며 나갈 채비한다.
나연 : 저녁은 같이 못 먹겠다. 전시회준비 때문에 내일은 좀 늦을거야.
기남 : 헤어져.
나연 : (아랑곳하지 않고) 국 다 식었겠다. 꼭 데워먹고.
기남 : 진짜야. 이번엔.
나연 : (기남 이마에 입 맞추고) 사랑해. 전화할게. (하고 나가고)
기남 : (볶음밥 내려다보는데 당근이 가득) 나연아... 나 당근 못 먹어.
하는데 벌써 문 닫히는 소리. 당근 힘들게 골라내며 혼자서 저녁 먹는.
S#21. 유치원 놀이터
혼자서 그네를 타며 허공에 물총을 쏘며 놀고 있는 새롬.
그 옆으로 내밀어지는 이쁘게 리본 묶인 초콜릿 상자. 보면 쑥스러워하며 서 있는 예준.
예준 : 좋아해... 김새롬.
새롬 : (아랑곳하지 않고 그네를 탄다)
예준 : (못들었나? 좀 더 크게) 좋아해... 김새롬.
새롬, 그네에 내리더니 초콜릿 상자를 툭하고 치면 모래 위에 쏟아져버리는 초콜릿들.
새롬 : 너 그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줄 알고 있어? (초콜릿 밟고 가는 새롬)
예준 : (새롬의 뒤에서 분한 듯 소리지르며) 너 그 준혼가 하는 첫사랑 때문에 그러는 거지!
그 자식 몇 살인데? 어디 유치원 다니는데?
뒤돌아서 예준의 얼굴 정면을 향해 물총을 쏘는 새롬. 예준 으왕하고 덩치에 안맞는 울음을 터뜨린다.
마치 황야의 무법자처럼 유유히 돌아서는 새롬.
새롬 : (물총을 주머니에 꽂으며 나지막이) 여기 없어. 죽었어. 준호.
S#22. 유치원 일각
새롬이 뾰루퉁한 얼굴로 ‘생각하는 의자’에 앉아있다.
S#23. 유치원 사무실
원장 선생님과 춘빈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원장 : 학부모들 불만이 높아지고 있어요. 병아리 장수도 더 이상은 참지 않겠다는 입장이고...
이대로 새롬이를 방치해 둬서는 안될 것 같아요.
춘빈 : 네...
원장 : 그래서 새롬이 부모님과도 상의 한 결과... 방과 후에 미술치료를 좀 받게 해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춘빈, 눈을 깜빡이며 원장을 바라본다.
S#24. 미술치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새롬과 춘빈. 춘빈, 기남에게 반갑게 꾸벅 인사. 기남, 춘빈을 보고 조금 놀란다.
기남 : 어린이 부모님은?
춘빈 : 바쁘세요.
기남 : 그럼 그쪽은?
춘빈 : 저는 안 바빠요.
그걸 물어본게 아니잖아... 하는 표정의 기남 짧게 점프.
새롬, 갖가지 도구들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기남, 그 모습 지켜보다가 고개 돌리면 춘빈, 책상 한 구석에서 자리 차지하고 앉아 혼자서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모습 보인다.
보면, 빨간색 덩어리같은 것을 그리고 있는 춘빈. 기남의 시선을 느끼고
춘빈 : 저도 심심해서요.
짧게 점프.
기남과 춘빈 둘만이 마주하고 있다. 기남이 새롬의 그림을 가리키며 춘빈에게 설명한다.
기남 : 병아리는 새롬이 자신을 의미하는 겁니다. 근데 여기 보세요. 날개가 축 쳐져 있죠.
이건 자아실현의 좌절을 의미하는 거예요. 자존감이 낮은 어린이들로부터 많이 나타나는 현상이죠.
그리고 여기, 병아리 발이 다리에 비해서 유난히 크죠. 이건 공격성의 정도를 나타내는 겁니다.
춘빈 : (갸우뚱하며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기남 : 왜요?
춘빈 : 제 눈엔... 그냥 평범한 병아리같은데요.
기남도 춘빈의 말에 자세히 그림을 들여다보고.
새롬의 그림 C.U 정말 그냥 평범한 병아리 그림이다.
S#25. 접수대
기남 : (원장실에서 나오며) 김양, 이만 퇴근하지... (하는데)
김양 벌써 퇴근하고 가버린 썰렁한 접수대 덩그러니 TV소리만 들리는,
기남, TV끄려다가 보는 인서트
- TV 뉴스
앵커 : 이어서 지역뉴스입니다. 최근, 지역 곳곳에서 공공기물훼손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목격자도 증거도 찾을 수가 없어 경찰이 애를 먹고 있습니다. 신속휘 기자가 전합니다.
- 주책금지로 바뀐 주차금지 표지판 영상
기자(E) : 한 아파트의 주차장. 주차금지가 주책금지로 바뀌어 있습니다.
경비원인터뷰 : 어떤 미친놈이 이래놨는지. 원. 없던 주책도 생겨나것어.
S#26. 길가 (버스정류장 가는 길)
기남, 버스정류장으로 가며 슈퍼 지나치는데 슈퍼 안 TV가 앞의 뉴스와 이어지고 있다.
기자 : 피해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무단횡단금지‘가 ‘무당횡단금지‘로 바뀐 영상.
무당 인터뷰 : 황당하죠. 신호등 건널 때 마다 괜히 죄지은 것처럼 눈치보이고...
그 때, 기남 눈에 보이는 풍경.
춘빈과 새롬이 가열차게 두더지게임을 하고 있다. 가차없이 두더지 머리를 내려치고 있는 두 사람.
기남 : (춘빈의 방망이 뺏고) 거기요.
춘빈 : (동그란 눈으로 기남보며 반갑게 아는척) 어!
기남 : 지금 뭐하는 거예요. 치료받는 아이를 데리고 이렇게 공격적인 게임을 하면 어떡합니까.
춘빈 : 공격적인 게임이 아니라 두더지 게임인데요?
기남 : 아 진짜 선생님이란 사람이, (여전히 게임중인 새롬 방망이 뺏어들며) 너 지금 시간이 몇신데, 엄마아빠 걱정하신다.
빨리 집에 가.
새롬 : (방망이 거칠게 뺏더니 두더지 마구 두들기며) 아무도 없어. 집에.
춘빈, 기남, 두더지 두들기는. 새롬 보는데 새롬의 배에서 들리는 거대한 꼬르륵 소리.
S#27. 원조아구할매 아구집
기남은 화장실갔고, 나란히 앉은 춘빈과 새롬.
춘빈은 티슈에 낙서 중. ‘원조 아구할매’라 찍힌 로고를 ‘원조 아궁이할매’ 혹은 ‘원조 야구할매’따위로 바꾸고 좋아하는.
그 뒤로 카리스마있게 서빙하는 아구할매 모습 슬쩍 보이고.
새롬 : 이봐 춘빈씨. (생색내며) 왕자님이랑 같이 밥 먹게 해주려고 억지로 따라와준 줄 알아.
춘빈 : (해맑게) 응? 난 그냥 니가 배고파서 온 건 줄 알았는데...
새롬 : (하여간 눈치는 빠르다... 민망한지 오이 막장에 찍어 와구와구먹는)
기남 : (화장실 갔다왔는지 휴지뽑아 손닦아 앉으며) 무슨 애가 찜 같은 걸 먹겠다고...
새롬 : 찜 아니야. 수육시켰어.
기남 : (뭘 시켜?) 수육?
이미숙(E) : 야~ 왕기남~
돌아보면, 기남의 초등학교 동창이다. 정신없이 폭풍수다 떨기 시작하는.
이미숙 : 너 6학년 3반 왕기남 맞지? (좀 긴가민가하는 기남보더니) 나, 미숙이. 이미숙.
기남 : (그래도 생각 안난다) 어, 미숙이... 이미숙.
이미숙 : 웬일이니. 이런데서 다 보고. (위아래로 훑어보며) 야~ 너도 아저씨 다 됐구나. (하다가 옆의 춘빈과 새롬보더니
기남 등짝 때리며) 어머, 너 결혼했구나. 얘는 말도 없이 언제 그랬대. (춘빈에게 인사하며) 안녕하세요.
인상이 참 좋으시네. 꼭 어디서 본 사람처럼... (하다가 춘빈 자세히 보고 놀라며) 어머나! 너 계춘빈이지?
춘빈 : (이미 미숙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안녕... 오랜만이야. 미숙아.
기남 : (이건 또 무슨? 하는 눈빛으로 춘빈을 쳐다보고)
이미숙 : 세상에. (기남 등짝 또 때리며) 웬일이니 웬일이니. 너희 결국 이렇게 됐구나.
너 5학년 때부터 그렇게 기남이만 좋아하더니... (새롬볼 꼬집으며) 아유 근데 애가 참 어쩜 이렇게 아무도 안 닮았니.
새롬, 뒤편에서 아구할매와 함께 TV 보고 있고 마주 앉아 마저 식사중인 두 사람.
태연스럽게 수육을 맛있게 먹는 춘빈. 그 모습을 바라보는 기남.
기남 : 그럼 중학교는?
춘빈 : 진명중학교...
기남 : 고등학교도 설마 신광?
춘빈 : (말없이 고개 끄덕)
기남 : (믿기지 않는 듯)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 나랑 같은 델 다녔단 말이야?
춘빈 : (태연스레 냠냠)
기남 : (가만 생각하다 안되겠는지) 도대체 이유가 뭐지? 나를 좋아하는 이유.
춘빈 : 고등학교때 좋아했으니까 그냥 계속 좋아하는 거예요.
기남 : 그럼, 고등학교때는 왜 좋아했는데?
춘빈 : 중학교때 좋아했으니까 또 계속...
기남 : 그럼 중학교때는...
동시에 : 초등학교때 좋아했으니까?
기남 : (답답한 듯) 그게 말이 돼? 근데 나는 어떻게 지금까지 몰랐지?
춘빈 : 꼭 알아야 돼요?
기남 : (답답한 여자다 버럭) 알아야지. 내가 당사잔데.
춘빈 : 근데. 왜 말 놓으세요?
기남 : 동창이니까....
춘빈 : 우리 안친했는데요. (기남 접시에 남긴 당근보더니) 당근 내가 먹어도 되요?
기남 : 그래... 요...
S#28. 아구집 앞 혹은 길가 일각
식사를 끝내고 걸어나오는 세 사람.
춘빈, 트럼을 하자 새롬 덩달아 트럼을 하고, 갑자기 승부욕에 불타 더 크게 트럼을 하는 춘빈.
기남, 트럼 배틀을 붙은 춘빈을 찝찝하게 바라보며.
기남(NA) : 정말... 이상한 여자다.
그때, 무언가를 보고 발걸음을 멈추는 기남, 보면 세 명의 가족. 나연과 그녀의 남편, 아들이다.
당황한 기남, 그에 비해 아무런 표정의 미동 없이 서 있는 춘빈.
나연남편 : (기남을 먼저 아는체하며) 어? 오랜만이다. 기남아.
기남 : 예. 형. 오랜만이예요.
나연 : (태연히 아들에게 인사시키며) 진우. 아저씨 알지? 인사해야지.
진우 : (공손히 배꼽인사) 안녕하세요.
기남 : (당황) 어...그래. (남편에게 말돌리며) 식사하러 나오셨나봐요...?
나연남편 : 모자가 어찌나 외식외식 노래를 부르는지. (춘빈보며) 근데 누구? (슬쩍 웃으며) 여자친구?
기남 : 아. 아니예요. 그냥 일적으로 아는 사람.
나연 : 환자구나.
기남 : 어?
나연 : 맞지? 네 환자.
기남 : 어... 환자...
나연 : 안녕하세요.
춘빈 : (꾸벅 공손히 인사) 네, 안녕하세요.
새롬 : (나연 맘에 안드는지 째려보는)
나연남편 : 너도 빨리 결혼해야지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래. 아, 정사장 딸 어때? 기남이랑?
나연 : (고개끄덕이며 태연하게 미소) 괜찮네요. (기남보며) 이뻐.
나연남편 : 그래. 그럼 내가 조만간 연락할게. 꼭 나와라.
각자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새롬 몰래 뒤돌아 서서 물총을 꺼내 나연 아들을 쏜다. 으앙 하고 울음 터뜨리는 아들.
모른척하고 태연히 뒤돌아 가는 새롬.
S#29. 기남의 원룸
샤워하고 나온 기남. 신경질적으로 수건으로 마구 머리 터는데 그때 울리는 전화벨.
기남 : (받자마자) 헤어져! 헤어질꺼라니까! 누가 소릴 질렀다고 그래! 뭐, 이뻐? 내가 니네 남편한테 여자까지 소개받아야겠냐?
진짜 이제 못해먹겠다. 그래. 헤어져. 진짜 헤어진다고!
전화 끊고 씩씩대는 기남. 그 때 갑자기 꺼지는 집안의 불빛들. 정전이다.
불안한 기색으로 목을 감싸더니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기남. 그때, 휴대폰 울리고.
기남 : (휴대폰 받아) 나연아. 나연아...
점프.
황급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연. 손에는 랜턴을 쥐고 있다. 쓰러져있는 기남을 익숙한 듯 일으켜 침대로 옮기는 나연.
랜턴을 머리맡에 놓는 나연. 눈을 뜨는 기남.
나연 : 나 여기 있어.
불빛을 확인하고 안심이 된 듯 스르르 다시 눈을 감는 기남.
나연 : (머리 만지며 애 꾸짖듯) 정말 헤어져?
기남, 말없이 눈 감고만 있는. 평온한 듯 슬픈 표정.
S#30. 원조 아구 할매집 앞 (이른 아침)
하루 영업을 시작하려 셔터문을 여는 할매. 쪽진 머리에 단단한 옷차림이 30년 전통의 기품과 고집을 보여주는 듯하다.
다부지게 기지개를 켜는데 할매의 눈에 들어오는 간판. 35년 전통 원조 마귀할매집 아구를 마귀로 낙서해놓은 간판.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할매.
점프.
뉴스 중계차량과 취재진들이 원조 마귀할매집 낙서사건을 취재하고 있다.
기자 : 이번 원조 마귀할매 사건은 앞서 연이어 일어났던 공공기물 훼손사건과 동일범의 소행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옆의 형사 인터뷰하며)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십니까?
형사 : (‘원조 아구 할매’라고 쓰인 종이를 들고서 설명한다) 이번 사건은 원조 아구 할매라는 상호를
이 ‘아’ 자를 교묘하게 ‘마’로, 그리고 이 ‘구’ 자를 감쪽같이 ‘귀’로 바꿈으로써 35년 전통 원조집의 자존심과 명예를
실추시킨 상당히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S#31. 접수대
김양 : (책을 보다) 미친놈... (책 덮으며) 위대하기는... 이거 스토커 아니야?
기남 : (그 앞에서 진료카드 체크하다가 김양 책 들어보며) 이게 왜, 이게 얼마나 유명한 세계명작인데...
(하며 고개들면 퇴근하고 없는 김양, 한숨쉬는데)
형사(E) : 왕기남 원장님?
돌아보면 카리스마간지폭풍 심형사가 서 있다.
S#32. 미술치료실
각종 사진자료들 책상에 카드마술처럼 펼쳐놓는 형사. ‘주책금지’ ‘무당횡단’ 등 그간의 사건기록들이 펼쳐진다.
형사, 책상을 카리스마있게 내리치며
형사 : 공공기물훼손 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 아십니까?
기남 : 글쎄요.
형사 : 공공기물을 훼손할 시 민법 750조에 의거하여 불법행위 책임이 인정되어 손해배상 또는 실형을 살게 됩니다.
실례로 도로 표지판을 거꾸로 표시해 자동차가 강물로 떨어지는 사고에 피의자가 징역8년을 선고 받은 적이 있지요.
특히 이번 ‘원조 아구할매 사건’같은 경우는 제 307조 제 2항에 의한 명예훼손 죄로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는 중범죄란 말입니다.
기남 : (그렇구나) 예... 근데 그걸 왜 저한테?
형사 : (사진 한 장을 기남의 얼굴에 들이민다) 이 여자 아시죠?
기남, 사진을 받아들고 보면, 양 브이로 장난스럽게 얼굴을 가린 여자의 사진. 잘 보이진 않지만 분명 춘빈이다.
형사 : 성명 계춘빈. 나이 28세. 취미 어디서나 낙서질하기. 특징 답답하다 느리다 이상하다 알 수 없다.
이 여자가 이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잡니다.
기남 : (말도 안된다는 듯이) 에이. 그건 아니예요. 좀 이상한 여자긴 한데, 좀 많이 이상하긴한데. 그런 여자는 아니예요.
형사 : (기남의 얼굴에 매서운 눈빛을 갖다대며) 그럼. 그런 여자는 얼굴에 나 그런여자라고 써붙이고 다닙니까?
기남 : (하긴) ......
형사 : 어쨌든 이상한 점이 조금이라도 발견되면 연락주십시오.
(자신의 명함을 기남의 와이셔츠주머니에 꽂아주고 멋지게 돌아선다)
S#33. 몽타주
-기남, 치료실 입구 나서며 지나치는데 무언가 이상하다.
돌아보면 미술치료실 현판(입구에 붙어있는 표지판 정도)이 마술차력실로 바뀌어져있다!
공포에 가까운 혼란스러운 표정.
기남(NA) : 정신분열증.
S#34. 몽타주
-엘리베이터 타는 춘빈, 형사 쫒아가지만 문 닫혀버리고 분한지 엘리베이터 문 치는 형사.
-엘리베이터 안 CCTV에 양브이로 얼굴 가리며 포즈 취하는 춘빈
-춘빈 내리면, 엘리베이터 안에 낙서 보이고 ‘남자에게 기대지 마시오’
기남(NA) : 정신분열증 증상 하나. 퇴행. 현재보다 유치한 과거 수준으로 후퇴하며 어른이 병적으로 아이 같은 행동을 한다.
-춘빈, 미술 치료실 접수대 잡지책에 볼펜으로 낙서중이다.
여성의류를 열성의류, 신상을 신생아 등으로 바꾸면서 웃음을 참으며 좋아한다.
새롬 옆에서 재밌냐? 하는 눈길.
기남(NA) : 증상 둘. 망상. 자신의 엉뚱한 생각을 굳게 믿고 논리적으로 설득해도 통하지 않는다.
-비오는 거리 일각.
기남, 나연과 건물처마에서 다정히 팔짱끼고 비 피하고 있는데 춘빈이 우산 접어서 든채 비 맞으며 둘 앞을 뛰어간다.
춘빈, 둘을 발견하더니 반갑게 웃으며 반갑게 꾸벅 인사를 한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같이 인사하는 기남과 흥미로운 표정의 나연.
춘빈 : 우산 드릴까요?
기남 : 네? 그럼 거기는요?
춘빈 : 전 원래 우산 안 써요. (우산 주더니 즐겁게 뛰어가는 춘빈)
나연 : (재미있다는 얼굴로 그 우산 피며) 가자.
기남 : (비 맞으며 뛰는 춘빈 바라보는)
S#35. 미술치료실 옥상 (야외 치료중)
새롬, 찰흙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있고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는 기남.
하지만 한구석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춘빈이 더 신경쓰인다.
기남 : (다가가) 거기요.
춘빈 : (고개 들면서 손가락으로 코밑 닦으면 빨간 크레파스가 코피처럼 찍 묻는)
기남 : 나 밉거나 그러지 않아요?
춘빈 : ?
기남 : 그러니까 질투도 나고, 막 마음이 힘들고 그러지 않아요?
춘빈 : 왜 그래야 돼요?
기남 : 좋아하니까...
춘빈 : (가만히 생각하다) 안 그런데요. 좋아하면 그냥 좋은거죠.
다시 열심히 그림 그리는 춘빈, 자기 그림이 마음에 드는지 미소짓는 그런 춘빈 바라보는 기남.
한편, 뒤쪽에서는 새롬이 기남책상 위에 지갑을 슬쩍하는 모습이 보이고.
기남(NA) : 증상 셋. 감정이상. 울어야 할 때 웃거나 웃어야 할 때 우는 부적합한 감정표현이 나타난다.
S#36. 기남의 원룸
집에서 춘빈의 그림을 들고 요리조리 분석하는 기남.
기남(NA) : 이 병은 정신병 중에 가장 흔한 병인 동시에
춘빈의 그림 C.U 새빨간 색으로 이상한 덩어리가 그려져 있다.
두려운 표정의 기남.
기남(NA) 사회의 악으로 싹틀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불씨가 될 수도 있다.
S#37. 기남의 원룸 앞 (밤)
기남, 현관 문을 열면 서 있는 춘빈. 나름 꽃단장한 모습.
기남 : (흠칙 놀라며) 뭐예요 거기? (경계하며) 우리집은 어떻게 알았어요?
춘빈 : 원래 알고 있었어요.
기남 : (화들짝 놀라며) 원래 알다니? 언제부터 안거예요? 따라왔어요? 거기 정말 큰일날 사람이네. 여기는 어떻게 왔어요?
춘빈 : (기남의 반응에 가만히 서있다가 지갑 내밀며) 버스타고 왔어요. (하고 계단으로 뛰쳐 내려가버린다)
S#38. 기남의 원룸
‘뭐? 버스를 타고 와? 아니 누가 그걸 물어봤어? 말만한 여자가 남의 지갑이나 가져가고’ 가슴 쓸어내리며 궁시렁 거리는 기남.
그 때, 팟 하고 정전되는 방 안.
S#39. 경비실 앞 (밤)
경비실 앞을 지나가는 춘빈. 경비실 불이 팟 하고 꺼진다. 돌아보는 춘빈.
S#40. 기남의 원룸
깜깜한 원룸. 숨을 몰아쉬며 핸드폰으로 나연에게 연락을 해보려하지만 밧데리가 나가고.
촛불을 찾아보려 하지만 머리가 혼미해 여기저기 부딪히고 숨이 막히는지 쓰러지는 기남.
그 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
기남 : 나연... 나연이니?
다가오는 그림자. 기남을 일으킨다.
기남 : 나연아. 불... 불... 빨리 켜야 돼.
춘빈 : 괜찮아요. 일어나봐요.
기남 : 아무것도 안보여! 빨리 나연아! 숨막혀! (하며 소리치면서 아이처럼 발광하면)
춘빈 : (기남 말리다가 안되겠는지 노래 부르기 시작한다. 기남 머리에서 입까지 내려오며 부드럽게 얼굴 만지며)
큰 솔밭 밑에 작은 솔밭, 작은 솔밭 밑에 깜빡이, 깜빡이 밑에 오뚝이, 오뚝이 밑에 합죽이, (기남 입 살짝 잡으며)
합죽이가 됩시다. 합!
기남 : (춘빈의 손길에 따라 점점 안정을 찾다가 자기도 모르게 합! 할때 입을 다물지만 여전히 가쁜 숨.
기남의 눈에 춘빈이 서서히 보인다)
춘빈 : (기남 입 잡은 채) 봐요. 다 제자리에 있죠?
기남 : (그제야 춘빈 알아보고 입 잡힌채 말하는) 당신... 거기 당신이예요?
짧게 점프 베란다에 앉아있는 두 사람.
기남, 촛불 줄을 세워놓고 성냥으로 불을 하나씩 켠다. 드디어 마지막 촛불까지 불을 붙이자 지켜보던 춘빈.
춘빈 : (예쁜 촛불 불빛에) 와.... 예쁘다...
기남 : (뿌듯한 듯 그 불빛 같이 바라보는데)
춘빈 : (갑자기 불을 후~ 하고 한번에 다 꺼버린다)
기남 : (버럭) 뭐하는거예요!
춘빈 : 아... 죄송해요. 꼭 생일같아서... 애들 생일잔치때문에 습관이 돼서요..
기남 : (에잇하며 다시 불 킨다) 무섭지도 않아요? 껌껌한 곳에서 남자랑 단 둘이?
춘빈 : (춘빈도 반대편에서 촛불 같이키며) 몰랐는데 껌껌한 곳에서 단 둘이 있으니까 되게 좋은 거 같아요.
기남 : (말을 말자)
춘빈 : (촛불 하나하나 다시 키며) 어둠보다는 불이 더 무섭거든요. 불빛에 익숙하게 되면 더 밝은 불빛을 찾게 되잖아요.
어둠은 그러지 않아도 되거든요. 어둠에 익숙하면 더 깊은 어둠이 찾아와도 괜찮게 돼요.
기남, 춘빈을 바라본다. 이 이상한 여자가 왠지 안쓰럽게 보인다.
그때, 마지막 촛불을 서로 키려하다가 손가락이 부딪히는. 눈이 마주치자 왠지 떨리는 분위기의 두 사람.
춘빈, 자신의 검지 손가락으로 기남의 손가락을 너무나 조심스럽고 떨리는 듯 살짝 만져보는데
그 때, 갑자기 파파팟 하고 들어오는 불빛들. 꿈에서 깬 듯 눈이 부신 두 사람.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는데
나연(E) : 기남씨? 기남씨 괜찮아?
나연이 들어오고 이티처럼 검지손가락 마주 댄 두 사람을 본다.
나연 : 왜 환자가 집에...
춘빈 : (황급히 일어나 나연에게 꾸벅 인사) 안녕히 계세요.
도망치듯 나가는 춘빈을 자기도 모르게 뒤쫓아 나가려는 기남. 기남의 손을 잡는 나연의 손.
나연 : 어디가?
눈이 마주치는 기남과 나연. 묘한 신경전.
나연 : 어디가냐구? 불 들어왔잖아.
기남 : (그제야 정신 차린 듯) 응...
나연 : 저 여자가 여긴 어떻게 왔어?
기남 : 버스타고 왔대.
나연 : 뭐?
기남 : (정신 차리고) 지갑 가져다주러 왔어. 나 지갑 잃어버렸었잖아.
나연 : 저 여자가 훔친거였어?
기남 : 아니야, 그런건... 주웠대.
나연 : 그런데 정말 괜찮아? 숨 안 막혀?
기남 : 넌 어떻게 왔어? 갑자기?
나연 : (그런 기남 가만히 보다 웃옷 벗으며) 그럼 내가 와야지 누가 와? (욕실로 가다 춘빈 그림발견) 저것 좀 버려. 흉해.
S#41. 유치원 사무실
춘빈, 붕대 씌운 자신의 검지 손가락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 앞쪽에서 보면 눈코입이 그려진 붕대.
그 손가락으로 앞에 놓인 기남의 액자사진 만져보며 발그레해지는데,
문이 열리고 이미숙이 들어온다. 양손엔 쥬스세트따위 가득 들고 있는.
춘빈 : (놀라서) 여긴 웬일이야?
이미숙 : (무거운지 숨고르며 내려놓는다) 지나가다 들렸어. 너 본지도 오래됐고 해서.
춘빈 : 우리... 지금까지 서로 안봤었는데...?
이미숙 : (그냥 적당히 넘어가지 좀...) 그럼 지금부터 보고 살면 되지 뭐. (쥬스 따주며) 마셔.
춘빈 : (순순히 받아마시는데)
예준 : (뛰어들어오며) 선생님!
S#42. 유치원 앞
새롬, 병아리 장수 다리에 매달려 얼굴을 향해 물총을 정확히 가격한다.
새롬 : (물총 마구 쏘며) 이 악마. 살인마. 없어져버려!
병아리 장수 괴로워하고 뛰쳐나오는 춘빈, 새롬을 말린다.
S#43. 유치원 사무실
빈 사무실, 춘빈 책상에서 무언가 열심히 뒤지며 찾는 이미숙.
S#44. 치안센터 (파출소)
동네 파출소에 앉아있는 병아리 장수, 새롬, 춘빈. 병아리 장수 젖은 몸에 모래를 뒤짚어 쓰고 있다.
나경찰 : (기가막힌 듯) 그러니까 이 꼬마가 쏜 물총 때문에 경찰까지 불렀단 말이예요?
병아리장수 : (발끈하며) 식초 탄 물총으로 맞아봤어요?
나경찰 : 아니요.
병아리장수 : 그럼 식초 탄 물 위에 모래 뒤집어 써 봤어요?
나경찰 : 아니요.
병아리장수 : 안맞아봤음 말을 말어요.
나경찰 : (병아리 장수를 어이없이 쳐다보다가 새롬에게) 너 집에 전화했어?
새롬 : (물총만지며 시큰둥) 엄마 지금 온댔어.
나경찰 : 계춘빈씨는 보호자 연락했어요?
춘빈 : 보호자요?
나경찰 : 보호자가 와야 풀어주지.
춘빈 : 어떤 보호를 말씀하시는지...?
나경찰 : 아. 부모님 말이예요.
춘빈 : 돌아가셨는데요.
나경찰 : 그럼 친척은?
춘빈 : (골똘히 생각하다가) 울릉도에 삼촌이 사시는데 전화해볼까요?
나경찰 : (짜증나서) 아, 그럼 애인은요? 애인은 있을 거 아니예요?
춘빈 : (눈코입 그려진 붕대손가락을 물끄러미 까딱거리는)
S#45. 미술치료실
예전에 비해 부쩍 수척해진 종수의 얼굴. 이번엔 혼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굉장히 형이상학적인 그림을 그리는 종수. 마치 고흐의 화풍같다고 해야할까.
종수 : (그림 설명한다) 바람이 열라 불어요. 그럼 나뭇잎들이 열라 나부끼고. 비가 와요. 열라 쏟아 부어요.
비가 그렇게 열라 오면 안되는데. 어제 세차했는데... (횡설수설)
기남 : 종수씨. 요새 무슨 일 있습니까?
종수 : 혜연이가 절 안 만나줘요. 전화도 안받고 문자도 씹고... 딴 놈이 생긴건지...
어흑흑하고 우는 종수.
기남이 자기 손수건을 망설이다 주면 ‘열라 짜증나여 선생님’ 하며 코를 팽 풀고 기남에게 안겨 우는데,
그 때 울리는 휴대폰 소리.
종수 : (놀라서 자기 휴대폰 받으며) 여보세요? 혜연이니? 혜연아?
기남 : (휴대폰 받으며) 여보세요?
종수 : (기남의 휴대폰인거 알자 다시 울기시작하는)
S#46. 치안센터
파출소로 뛰어들어오는 기남. 춘빈을 발견하고 다가간다.
나경찰 : (기남보며) 계춘빈씨 보호자예요?
춘빈 : 아니요. 그게... 보호자는 아니고요...
나경찰 : 애인 아니예요?
춘빈 : 아니요. 그게... 애인은 아니고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인데요.
나경찰 : (뭐야?) 그러니까 애인이네.
춘빈 : 아니요. 그게... 애인이 아니라 제가 혼자서, 그냥 혼자서 많이 좋아하는 사람...
기남 : 보호잡니다.
기남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춘빈.
S#47. 치안센터 앞
기남이 나오고, 죄 진 사람처럼 그 뒤를 따르는 춘빈.
기남 : (돌아서며) 아니, 애가 그러면 선생님이 말려야지 것다가 모래를 뿌려요? 나 참.
춘빈 : 조금밖에 안뿌렸어요. 그것도 얼굴 피해서 옷에만...
기남 : 아니, 왜그래요 사람이 진짜. 애도 아니고.
춘빈 : 그게... 새롬이가 울고 있었어요.
기남 : ?
춘빈 : 물총을 쏘면서 울고 있었어요.
인서트- 춘빈의 회상 물총을 쏘면서 소리없이 슬프게 우는 새롬.
춘빈 : 한번에 두가지 하는 거 되게 힘든 거거든요. 물총 쏘면서 눈물 닦는 거... 껌 씹으면서 노래부르는거...
기남 : (뭐?)
춘빈 : 잡고 싶으면서도 놓고 싶은 거... 좋아하면서도 미워하는거...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어요.
기남 : (그런 춘빈 뭔가 이해할 것 같은지 가만히 바라보다 손가락 붕대를 발견하고) 손가락... 왜 그래요? 다쳤...어요?
춘빈 : 아니요. 포장한거예요. 선물 포장처럼. (살며시 웃는)
S#48. 치안센터 앞
사람들 파출소 앞 간판 보며 수근대며 모여있고 경찰들이 이를 저지하며 해산시킨다.
보면, ‘치안 센터’ 가 ‘치한 센터’로 바뀌어 있다.
S#49. 보안실
심형사, 나경찰과 함께 치안센터 CCTV보고 있다. 춘빈, CCTV를 발견하고 양브이를 얼굴에 대고 장난스레 포즈를 취한다.
그러더니 치안센터 간판을 보더니 무언가를 주머니에서 꺼내려하고.
지켜보던 심형사 그렇지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집중하는데... 끊기는 화면.
심형사 : (나경찰 보며 다급하게) 뭐야? 이거, 이거 왜 이래?
나경찰 : 어? 이게 왜 이러지? (하며 1번이라고 파란매직으로 적힌 비디오 다시 꺼내 확인하며) 1번카메라 또 고장났나보네.
심형사 : 뭐? 고장? (하며 테입 뺏아서 넣고 막 두드리는데)
나경찰 : 이번 기회에 위에 이야기좀 해서 지원좀 해주세요. 경찰서앞 CCTV가 뭐 자판기도 아니고 맨날 두드려야 나옵니까.
심형사 : (기계 막 두들겨보다가 분한 듯) 계춘빈...
S#50. 커피숍
이미숙, 책 한권을 형사 앞에 내밀면 ‘도덕 길잡이’ 란 책이 ‘똥떡 길잡이’ 로 바뀌어져 있다.
밑에는 병아리반 계춘빈 선생님이라 적힌 글자.
심형사 : (책 보며) 도덕을 똥으로 안다... 이거지...
이미숙 : 걔가 어렸을 때부터 도덕관념이 그렇게 없었어요. 말짱한 교과서가 없었다니까요.
(춘빈의 학창시절 교과서, ‘묵사발’ ‘고통사회’ 등이 빠르게 보여져도 좋을 듯.
장인처럼 심혈을 기울여 낙서를 고치고 있는 춘빈의 모습도 함께)
어찌나 깜쪽같이 고치는지 나중엔 반 애들이 성적표 조작까지 부탁했었어요.
심형사 : (그 말에 더 심각해지는 표정)
이미숙 : (보험팜플랫과 계약서 슬쩍 밀어놓는며) 근데... 그럼 걔 잡혀가는거예요? 콩밥... 먹나요?
심형사 : 콩은 싫어하면 빼줄수도 있습니다. (흰 면 장갑을 끼더니 보물다루듯 책을 수사봉지 안에 넣더니 비장하게)
이제 현장만 잡으면 게임끝입니다.
S#51. 버스정류장
버스 기다리는 기남, 껌 씹고 있는데 갑자기 춘빈의 말이 생각나고,
춘빈(E) : 한번에 두가지 하는 거 되게 힘든 거거든요. 물총 쏘면서 눈물 닦는 거... 껌 씹으면서 노래부르는거...
껌 씹으며 노래 불러본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잘 안되는.
그런 기남 이상하게 올려다보는 아이. 기남, 멎쩍은지 껌종이에 껌 뱉는데
그때, 마을버스 오고 기남 타려는데 춘빈이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기남, 반가운 표정을 짓는데 춘빈의 뒤 쪽으로 형사의 모습이 보인다. 기남, 표정이 굳어진다.
S#52. 버스 안
춘빈, 붕대감은 손가락 보다가 빨간펜으로 발그레한 볼터치를 그린다. 같이 발그레해지는 춘빈.
기분이 좋은지 버스 뒷등판에 자연스레 낙서를 하려는데 그 춘빈의 손을 덥썩 잡는 남자의 손! 보면, 기남이 춘빈의 옆에 서있다.
기남 : (소리 낮추어) 나 보지 말고 그대로 앞만 봐요.
춘빈 : (자신의 손 잡은 기남의 손을 가만히 바라본다)
기남 : 움직이지 말고 내 말 잘들어요. 형사들이 이 버스에 잠복해 있어요.
춘빈 : (기남보며) 손이...
기남 : (목소리 낮추며) 나 보지 말라니까요. 두시 방향에 한명. 열한시 방향에 한명. 그리고 뒤에 한명이예요.
버스가 정류장에 선 다음 내가 하나둘셋 하면 재빠르게 내려요. 알았죠?
버스가 정차하면서 기남의 이마에 흐르는 땀.
기남 : 하나.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심형사의 눈초리.
기남 : 둘.
멍하니 손을 바라보는 춘빈.
기남 : 셋!
춘빈 : (기남 손을 살며시 잡으며) 몰랐는데 손이... 되게 따듯하네요?
기남 : 뭐해요? 어서 가라니까.
하며 손을 빼려하는데 춘빈, 기남의 검지 손가락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심형사, 뭐하는거야 하는 눈으로 슬며시 자리에서 일어나자
기남, 에잇 안되겠다 하며 자신의 손가락 잡고 있는 춘빈을 잡아끌어 뒷문으로 밀어내는데
춘빈, 계단에 서서 손가락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기남 : 왜 이래요? 정말 콩밥 먹고 싶어요?
춘빈 : 놓기싫어요.
기남 : 예?
춘빈 : 놓기가 싫어요. 손 잡으니까 되게 좋아요.
버스기사 : (짜증내며) 아, 내릴거야 말거야?
기남 : (기남, 춘빈의 손을 억지로 떼어내며) 어서 가라니까요! (하고 민다)
S#53. 버스정류장
떠나는 버스를 바라보며 서 있는 춘빈. 기남을 잡았던 손을 자기 가슴에 대어본다.
S#54. 경찰서
심형사와 마주하고 있는 기남.
기남 : 아니예요. 제가 같이 데리고 나왔다니까요. 경찰서 나와서 곧장 집에 간다 그랬다니까요.
심형사 : 땡땡이 치는 애들도 엄마한테 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곧장 집에 간다고.
기남 : 아니예요. 정말. 한번만 믿어봐 주세요. 그런 여자 아니라니까요.
심형사 : 정말 왜 이러세요? 집에 가시라니까요.
기남 : (새끼손가락 내밀며) 한번만 믿어준다고 약속해주시면...
심형사 : (짜증난다)
막내형사 : 심반장님. 방금 원조마귀할매사건 용의자를 검거했다고 합니다.
기남/형사 : !
S#55. 경찰서 앞
점퍼를 뒤짚어 쓴 채 경찰차에서 내리는 범인. (정체를 알 수 없다) 취재진에 둘러싸여 경찰서로 향하는데,
기남, 다급한 표정으로 범인의 얼굴을 확인하려 이리저리 기웃거리지만 취재진에 떠밀려 놓친다.
기자 : 범행동기가 뭡니까?
범인 : 그냥 세상이 싫었습니다.
기자 : 왜죠?
범인 : 사랑하는 사람이... 안 만나줘서요.
기자 : 그런 이유로 그런 엄청난 짓을 했단 말입니까?
점퍼사이로 얼굴드는 범인. 종수다!
기남, 종수의 얼굴 확인하고 놀라는데
종수 : 그런 이유라니? 뭐 주식으로 집이라도 날려? 아님 회사에서 짤리기라도 해야돼? 혜연이가 전화도 씹고 문자도 씹는데,
그래서 화나고 때려부수고 싶고 세상이 열라 미운거 아니야.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 그런 거 아니야!
춘빈(E) : 사랑하면 그러면 안 되잖아요.
기남, 돌아보면 춘빈이 두부봉지를 들고 서 있다.
춘빈 : 사랑하면 사랑만 해야하는거잖아요. 미워하고 욕심내고 그러면 안되는거잖아요.
사랑하면... 좋은 마음만 가져야하는거잖아요.
종수 : (피식) 아가씨, 사랑 안해봤구나. 손가락 가지면 발가락 가지고 싶고, 발가락 가지면 콧구멍도 가지고 싶고.
사랑하면 그런거야. 아가씨. 그런 것도 모르고 그 동안 열라 외로워서 어떻게 살았어?
춘빈 : (종수말에 무언가 멍한 표정)
기자들, 시끄러운 질문공세 이어지고 가만히 돌아서는 춘빈을 바라보는 기남.
기남 : (춘빈 잡으며) 언제 왔어요?
춘빈 : (가만히 기남 돌아보며 두부 건넨다. 뭔가 마음이 아픈 표정)
기남 : 고마워요. 괜찮아요?
춘빈 : (붕대 손가락을 가만히 기남의 손가락에 대어보며) 손가락 만지지 말껄.. 괜히 만졌어. 괜히 손가락을 만져서, 아픈가봐요.
기남 : 왜 그래요? 진짜... 다쳤어요? 다친거예요? (하며 손 잡는데)
춘빈 : (화들짝 손을 떼면 그 바람에 손에 붕대가 벗겨진다)
저 이제 춘빈의 눈에 기남의 뒤쪽으로 나연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춘빈 : 그 쪽 그만 좋아할래요.
기남이 잡을새도 없이 반대편으로 돌아서며 뛰어가버리는 춘빈.
나연 : (기남에게 달려와 살피며) 괜찮아? 어디 다친데 없어? 저 여자가 무슨 해꼬지 한거야?
기남 : (손에 남은 춘빈 손가락 붕대 바라보며) 그런거 아니야.
나연 : 그러게 내가 환자일에 너무 깊이 관여하지 말랬지.
기남 : 환자 아니야.
나연 : (그런 기남 가만히 보는데 휴대폰울린다. 남편인듯) 집에 가 있어. 밤에 갈게.
기남 : 오늘은 오지마.
나연 : 오늘은 오랜만에 외식하자. 영화도 보고.
기남 : 오늘은 내가 오지말라잖아. 좀 그만해!
나연 : (아줌마처럼 짜증내며) 야! 시끄러! 니가 그만해!
기남 : (처음보는 모습에 !)
나연 : 투정도 적당히 좀 해. 너, 두집 살림하는게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안그래도 바빠죽겠는데 짜증나게.
기남 : 뭐? (충격) 너 어떻게 그런 말을 내 앞에서 당당하게...
나연 : 그럼 이 정도 상처도 없이 뭘 가질 수 있을 줄 알았어?
(기남 앞에서 당당히 휴대폰 받는, 우아한 목소리로) 네. 전시장이예요. 당신은 식사 하셨어요? 뭐 드셨어요?
기남 : (그런 나연 멍하니 바라보는)
S#56. 유치원 놀이터
하늘에 물총쏘며 홀로 그네타고 있는 새롬. 그 옆으로 다가서는 예준.
예준 : 나 이제 너 그만 좋아할래.
새롬 : (무시)
예준 : 너 무서워졌어. 싫어.
예준 뒤돌아 떠나고 아랑곳하지 않고 그네 타는 새롬.
새롬 : (혼잣말) 그러게. 내 말이 맞지. 좋아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건데. 멍청이.
눈물 고이면서 하늘향해 물총을 마구 쏴대는 새롬.
새롬, 얼굴위로 물총에서 떨어진건지 하늘에서 떨어진건지 모를 빗방울이 떨어진다.
그런 새롬 보고 있는 기남.
S#57. 몽타주 (밤)
-비를 맞은 채 집에 들어와 홀로 앉아있는 기남. 휴대폰이 울리고 ‘나연’이라고 뜨지만 받지 않는.
-나연, 원룸 앞에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며 기남 창문을 올려다보는.
-나연, 두꺼비집을 열어 전기를 내리려 하면.
-기남, 방에 불이 꺼지고 기남의 노래소리 ‘큰 솔밭 밑에 작은 솔밭...’
-비 오는 거리, 우산을 쓰고 걷고 있는 춘빈.
-나연을 잡은 손. 보면, 경비 아저씨다.
S#58. 경비실 (밤)
나연, 비에 젖은 채 담담하게 앉아있고.
경비아저씨 :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뭔 알래스카에서 전기를 끌어다오는 것도 아니고 사흘내리 정전이니.
(나연의 세련된 차림보며) 배울만큼 배운것 같은 아가씨가 왜 그래. 괜한 사람들 피해주고.
나연 : 그래야되는 일들도 있어요. 괜한 사람한테 피해도 줘야하고, 하면 할수록 찌질하고 유치해지는... (일어나며 명함준다)
신고하려면 신고하세요. 손해배상은 충분히 해드릴게요. (나연 나가려는데)
경비아저씨 : (우산주며) 비오잖아. 쓰고 가.
S#59. 경비실 앞 (밤)
아저씨, 우산 쓰고 가는 나연 뒷모습 바라보며.
경비아저씨 : (사랑노래 흥얼거리는)
S#60. 기남의 원룸 (밤)
깜깜한 곳에서 ‘큰 솔밭...’ 노래 중인 기남. ‘합죽이가 됩시다. 합!’ 하고 불을 키는 기남.
멀쩡해진 자기의 숨소리를 가슴을 만지며 확인하고 비오는 창밖을 바라보는.
S#61. 길거리 일각 (밤)
우산을 접은채, 비를 맞고 걷고 있는 춘빈.
S#62. 회상-보육원 외경 (비)
원장(E) : 춘빈이 얘 어디갔어? 계춘빈!
S#63. 회상-보육원 안
창문 너머로 보이는 원장과 기남부의 모습. ‘후원자의 밤’이라는 현수막도 보이고.
기남부 : 괜찮습니다. 뭐 애가 그럴 수도 있죠.
원장 : 죄송해요. 애가 워낙 좀 특이해서...
기남, 쓰레기통 앞에 다가가 버려진 바비인형 보는.
S#64. 회상-보육원 앞
내복 차림으로 쫒겨나 보육원 앞에서 들어갈까 말까 망을 보고 있는 어린춘빈. 그 앞에 우산을 쓰고 다가와 서는 어린 기남.
기남 : 아직 들어가면 안돼. 원장선생님 너 찾고 있어.
춘빈 : (그 말에 포기하고 쭈그리고 앉는다)
기남 : (바비인형 주며) 너 이거 왜 버렸어?
춘빈 : (기남 올려다보면)
기남 : 니가 우리아빠한테 바비인형 사달라고 편지 썼잖아. 그래서 사가지고 왔는데 왜 버렸어?
춘빈 : 겁나서...
기남 : 왜?
춘빈 : 바비인형 가지고 나면 미미인형도 가지고 싶고 미미인형 가지고 나면 쥬쥬인형도 가지고 싶으니까.
기남 : 그럼 또 사달라고 하면 되잖아?
춘빈 : 그러면 안돼. 여기서는 다 사달라고 하면 혼나. 가지고 싶은 건 일년에 하나씩만 말해야 돼.
기남 : (춘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우산을 접고 옆에 앉아서 같이 비 맞는다)
춘빈 : 왜 우산 안써? 비 맞잖아.
기남 : (활짝 웃으며) 같이 맞자.
춘빈, 그런 기남 물끄러미 바라본다. 활짝 웃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오는 춘빈...
춘빈의 눈에 들어오는 기남 가슴에 달린 국민학교 이름표 ‘1학년 4반 왕기남’
S#65. 미술치료실 (다음날)
‘원장 왕기남’ 이란 명패 오버랩되며 그 앞에 서 있는 기남, 책상위에 완성된 새롬의 병아리 모형 집어들어보면
가슴에 ‘준호’라고 쓰여져있다. 앞에 쪽지 집어들면 새롬의 글씨. ‘너 가져’ 그 밑으로 ‘P.S: 멍청아’
기남, 그 옆에 놓인 춘빈의 그림들 가만히 보는. 한장한장 떨어뜨려놓고 보니 더 기괴한.
기남, 치우려다가 무언가를 발견한다.
따로 보면 기이한 모양의 의미 없는 빨간 덩어리들이지만 아귀가 맞는 부분을 찾아붙여보자 뭔가 퍼즐처럼 딱딱 들어맞는다.
기남, 손놀림 빨라지고 그림을 퍼즐처럼 맞춰나가면 따뜻하고 큰 하트모양의 심장이다.
춘빈(E) : 근데... 어둠보다는 불이 더 무서운거예요. 불빛에 익숙하게 되면 더 밝은 불빛을 찾게 되잖아요.
어둠은 그러지 않아도 되거든요. 어둠에 익숙하면 더 깊은 어둠이 찾아와도 괜찮게 돼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뛰어나가는 기남.
S#66. 나연의 미술 전시회장 앞 (오전)
헉헉거리며 나연 앞에 서 있는 기남.
기남 : 헤어져.
나연 : (담담히) 알았어.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나중에 하자. 우선 집에 가 있어. (돌아서는데)
기남 : (나연 잡으며) 나 당근 못먹어.
나연 : 뭐?
기남 : 나 당근 싫어한다고. 옛날부터 싫어했어.
나연 : (기남이 심각한 것 알아차리고) 너 왜이래? 그 환자 때문이야?
기남 : 환자 아니야.
나연 : 그래, (침착하며) 그 미친여자 때문이야?
기남 : 미친건 우리지. 당당하게 두 집 살림하는 너나. 9년 동안이나 그런 널 못 떠나는 나나. 우리가 미친거야. 나연아.
나연 : 우리가 사랑해서 그런거잖아. 너무 사랑해서.
기남 : 사랑해서 나쁘고 추해지면 그건 사랑 아니야. 그냥 나쁜거고 그냥 추한거야.
나연 : 추하다고? 너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기남 : 그럼 이 정도 상처도 없이 뭘 버릴 수 있을 줄 알았어...?
나연 : 너 이번엔 진짜구나. (체념한 듯) 그래. 니가 원한다면. 행복해. 언제 어디서든.
기남 : 그래. 너도 행복해.
쿨하게 악수하고 아름답게 헤어지는 두사람.
나연, 전시회장 들어가려다가 전시회장 앞 포스터를 보고 우뚝 멈춰선다. 지나가던 사람들 ‘어머’ 하며 쿡쿡 웃는다.
‘조나연 미술전시회’를 ‘존나연 미술전시회’로 고쳐져 있다. 믿기지 않는 얼굴로 기남을 돌아보는 나연.
기남 : 아니야. 뻥이야. 넌 곧바로 행복하지는 마. 지금껏 다 가지며 살아왔잖아. 조금은 힘들어도 봐.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흔들며 나연에게 메롱하는 기남. 유치하기 짝이 없는 기남의 행동을 어이없게 바라보고 서 있는 나연.
뒤돌아서 유쾌한 표정을 짓다가 서서히 발걸음을 빨리하며 경쾌하게 뛰기 시작하는 기남.
S#67. 유치원 사무실
춘빈, 책상에 엎드려 있고 기남의 액자도 엎어져있다.
새롬, 다가와 액자를 세우면 기남의 사진에 눈이 파져있다.
새롬 : 왜 이랬어?
춘빈 : 미워서... 미워졌어. (하면서 다시 엎드려 고개 파묻는다)
새롬 : 선생님.
춘빈 : (놀라며 고개들며) 선생님?
새롬 : 나 준호 잊고 다시 해볼래. (춘빈 앞에 말없이 포장된 책 한권 내미는)
S#68. 어느 초등학교 앞
병아리 장수 앞에 서는 새롬. 본능적으로 몸을 사리는 병아리 장수.
새롬 : 병아리 주세요.
새롬의 손바닥에 놓여지는 병아리.
병아리 장수 : 요거 잘 키우면 닭까지 만든다.
새롬 : 뻥치시네.
병아리 장수 : 병아리 닭까지 키워봤어?
새롬 : 아니요.
병아리 장수 : 안 키워 봤음 말을 말어.
새롬의 손바닥 위에서 삐약삐약 대는 병아리.
새롬 : (겁나는 듯) 키우다가... 죽으면요...? 그럼 어떡하죠?
병아리 장수 : (태연하게) 그럼. 또 키우면 되지.
S#69. 유치원 사무실
춘빈, 책을 풀어보면 ‘위대한 개츠비’를 ‘위대한 계춘빈’으로 고친 책. 펼쳐보면 앞면에 기남의 글씨.
기남(E) : 거기가 불 한번만 켜주면, 그 불 내가 더 밝고, 또 더 밝게 해줄게요. 한번만 용기 내줄래요?
눈시울이 붉어져오는 춘빈.
S#70. 버스정류장 앞
마주보고 뛰어오는 춘빈과 기남. 각자 앞길만 보고 너무 몰두해서 뛰다가 서로 지나쳐버리고 잠시 뒤에 뒤돌아온다.
너무 뛰었는지 헉헉거리며 마주 보는 두 사람.
춘빈 : (숨 고르며) 어디...가요?
기남 : (숨 고르며) 거기...만나러. 어디가요?
춘빈 : 저도... 만나러...
마주보는 두 사람, 그 앞으로 두사람 가리며 서는 마을버스.
S#71. 길가
나란히 서서 걷는 두 사람. 잠시 흐르는 정적.
기남 : 내가... 뭐 보여줄까요? (껌 꺼내더니 씹으며 노래부른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춘빈 : (민망할 정도로 무표정한 얼굴로 빤히 쳐다보면)
기남 : (민망해하며) 한번에... 두 가지 할 수 있다구요. 좀 힘들긴 하지만... 할만 해요. 다시 볼래요?
(껌 씹으며 노래 어설피 흥얼거리는, 가만 들어보면 기남,,, 살짝 음치다... )
춘빈 : (그 모습에 활짝 웃는, 지금까지 한번도 볼 수 없었던 함박웃음)
기남 : (기남, 그 웃음에 뭔가 설레는) 나... 미워요?
춘빈 : 네.
기남 : 그래도 나... 좋아요?
춘빈 : 네.
둘의 뒷모습을 멀리서 잡으며 서서히 멀어지는 카메라.
춘빈(E) : 이제 나한테 거기라고 부르지 말아요.
기남(E) : 알았어요.
춘빈(E) : 그리고 나 볼때면 항상 웃어줘요.
기남(E) : 네.
춘빈(E) : 그리고...
기남(E) : 네.
춘빈(E) : 손잡고 걸어요...
살포시 손을 잡는 두 사람의 뒷모습.
기남의 검지에 춘빈의 붕대가 씌워져있다. 귀엽게 인사하듯 까딱.
♥끝♥
첫댓글 잘 받아가요 ㅠㅠ 저 이 작품 넘 좋아해요
고맙습니다. 저도 재밌게 봤어요. ^^
잘 볼께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