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두마차를 모는 개선장군처럼
박무웅 시인은 대전에서 가까운 금산이 고향이고 사업을 하는 분인데 시를 뒤늦게 공부하는 분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문단행사에서 문인들을 뒷바라지하는 후원자처럼 그림자처럼 앉아 있는 분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박무웅 시인이
2007년 『다층』가을호에 발표한 「박쥐」작품을『정신과 표현』에 리뷰를 한 적이 있다. 그 시를 인연으로 박무웅시인이 나에게
커버스토리를 부탁했고 청탁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쓰기로 약속을 했다.
발간예정인 시집원고와 박시인의 보내준 삶과 문학경력 자료를 들여다보니 역경을 이겨내고 자수성가한 분이었다. 소년시절의
극심한 가난에서 사업가로 성공한 것을 알겠는데 왜 문학을 뒤늦게 관심을 두게 되었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나도 개인적으로는 평탄한
삶이 아니어서 어떤 이유로 인간의 삶이 천차만별인가 하는 의문으로 命理를 공부한 적이 있다. 박무웅시인의 과거사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니 박 시인의 남다른 삶을 명리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시인이 되어야 하는 운명이 있는지 설명해보기로 한다.
1.부친과의 조년사별과 가난한 시절
박시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주를 물어보았다. 음력으로 1944.5.14일 생인데 정확한 시는 모르고 새벽에 태어났다고
한다. 요즘 아기들은 생시가 병원분만챠트에 적히지만 옛날 분들은 어머니의 기억에 의존하므로 대개 들쑥날쑥이다. 양력으로 환산하면
7월 14일인데 하지를 통과한지가 얼마 안되므로 일출이 빠르다. 동 트기 전을 새벽으로 인식하면 寅시에 해당하는데 사주추명과는
다른 방법인 紫薇斗數로 명반을 작성해보니 寅시는 기월동량格局으로 박시인의 삶과 일치 하지 않았다. 옛날 분들의 새벽이란 지금보다
훨씬 빠른 감각일 수 있어서 축시(1시반-3시반)으로 명반을 작성하자 소년고생과 자수성가의 파란만장한 사업가 명반이 그려졌다.
己土 日干(본인을 의미)에 正官과 偏官이 떴고 身强殺强의 사주였다. 殺이 강하니 身役이 고단하고 험난한 인생을 살아야하는 病이
깊은 사주였으나 다행히 藥으로 쓸 수 있는 傷官이 떠서 시련을 극복하고 성공을 할 수 있었다. 身弱이었으면 험난한 세파에 좌초해서
命이 단축되었으리라. 身强은 어머니를 의미하는 印綬가 地支에 깔린 덕분이었고 아버지인 偏財는 年支에 암장되었으므로 아버지와는
연인이 없었다. 박시인에 의하면 어머니가 30세에 청상이 되어 아버지 얼굴을 모른다고 했다. 박시인의 초년고생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나타내주는 시가 있다
내 어린 날,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은
처마 벽에 걸린 시래기 타래처럼 허리띠를 졸라맸다.
가난에 얼어 터져 쩍쩍 금이 갔다.
지상의 천국이란
따뜻한 쌀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오직 쓰러지지 않기 위해
어머니가 눈물로 받쳐 들었던 시래깃국!
목숨과도 같았던 된장 시래깃국!
지금은
온몸에 꽃등심처럼 낀 기름을
걷어내기 위해 먹는다.
밤새워 울궈낸
사태국물보다 더 담백한 이 맛!
자본의 힘으로는
채울 수 없는 이 맛!
일요일 아침 가족들과 둘러 앉아
먹는 시래깃국.
어머니의 눈물처럼
뜨겁게 목을 넘어가는 시래깃국.
가슴에 서러움이 복받쳐 오르는 시래깃국
아 배고팠던 겨울밤―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의
이 맛!
(시래깃국, 전문)
시는 한 순간의 상황을 그려내었으나 강성철시인이 시사사에 쓴 박무웅시인을 소개하는 글에 기록된 박시인의 自序 에 의하면
상황은 더 심각했다. “서른 나이에 홀로되신 어머니는 가는 목에 보따리를 들고 이집 저집 인삼장사를 다니셨다. 그렇게 행상을
나가셨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지푸라기에 목이 걸린 동태 한 마리를 사들고 오셨다, 이것도 한 달에 한 번
뿐이었다..... 그 동태 한 마리를 여러 토막으로 잘게 썰고 거기에 시래기를 잔뜩 넣어 찌개를 끓이셨다. 아, 어머니...
당신은 그 때 우리 사남매의 번뜩이는 눈빛 끝에서 동태 한 도막도 못 잡수고 국물만 드셨었지요” 이런 대목은 박 시인의 어머니의
고난에 찬 자식사랑과 희생을 증거한다. 命理의 관점에서 박 시인은 아버지 복은 없으나 어머니 복으로 어려운 시절에 命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이 무슨 복이냐 하는 의문도 있을 수 있으나 집은 부자이나 어머니의 사랑을 못 받고 정서적으로 불안하게 큰
운명도 있다. 타인과의 경쟁이나 여자와의 사랑에도 자신이 없어 정체성부족으로 폐인이 되거나 자살을 하는 운명이 그런 케이스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은 아들은 현실이 아무리 어려워도 내가 성공해서 어머니를 기쁘게 해야겠다는 콤플렉스가 생긴다. 대우의 김우중회장
자서전을 보면 고학 시절 남들보다 신문을 많이 팔아서 하루양식을 사가지고 돌아가면 어머니가 눈물로 기뻐하며 감사 찬송을 드리는
식탁이 일생에서 제일 행복했다는 기록이 있다. 남자는 어머니이든 아내이든 자신의 아니마가 자신을 향해 쳐다보는 사랑의 눈빛 때문에
지옥이라도 내려가는 오르페우스 신자가 된다. 박무웅시인은 서울로 올라가 노숙울 밥먹듯 하면서 東家食西家宿을 경험한다. 다음 시는
이때의 風霜을 회상하고 있다.
내 몸에는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상처로 가득하다
그 상처를 볼 때마다 나는 문득
한 마리 파리가 되고
외삼촌의 손을 떠올린다
새벽 네시 통행금지 해제 사이렌이 불면
파리채가 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파리채는 힘이 세다
나는 재빨리 하인천 수산시장 경매장으로 날아가
스무살 펄펄 끓는 내 심장을
바다에서 길을 잃다 끌려온 생선들과 포개었다
파리채에 파득거리는
내 삶에
상처는 옹이가 되고
소중한 삶의 둥지를 키워 나갔다
나는 지금도 파리를 보면 삶을 생각한다
비상을 꿈꾼다
세상을 뚫어나가는 큰 빛을 본다
외삼촌의 손이 가리키는 내 삶의 우둠지를 본다
내 몸의 싱싱한 상처를 본다
(파리채, 전문)
2.서울로 가서 출세하다
서울에서의 근거를 외삼촌의 장사에서 시작했으니 이것도 외가와의 인연이다. 박시인의 그릇이 큰 자세를 이 시에서 엿볼 수
있는데 새벽에 깨우는 회초리를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 손길이 자신의 삶의 우둠지가 되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역경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환경과 상황에 적응력이 강하다는 뜻이 된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크게 보면 자연선택과
性선택이다. 변화하는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종과 개체는 살아남고 반대경우는 몰살한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지능이란 상황에 대한
적합한 시뮬레이션과 그의 적용이라고 말한다. 박 시인은 비유하자면 일제 전국시대에「오다 노부나가」의 가죽신을 밤새 품에 안고 자서
아침에 따뜻한 신발을 올려놓은「도요또미 히데요시」의 마음가짐을 가졌고 그의 心志가 현실에서 성공하는 자산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생각으로 박 시인의 얼굴과 눈을 보니 武人의 관상을 하고 있다. 옛날에는 칼과 방패로 전장에 싸우는 사람들이었으나
지금에는 경제현장에서 전쟁을 치르는 기업가들이 바로 武人이다. 나는 병약한 書生타입에 월급인생을 사는 사람이라 현실에서 功을
이루고 富貴를 걸머쥔 英雄들을 높이 평가하는 타입이다. 지금의 박시인은 한국에서는 신성전자부품(주)를 인도네시아에는 홰외법인
신성테크를 둔 중소기업의 회장이 되었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도 많이 하고 있다. 그의 이력에 포항공과대학교 육성회장과
서울관악세무서 명예 서무서장, 경기도 의용소방대 연합회장, 재경 금산 중고교 총 동창회장, 한국시인협회 감사, 현대시회회장,
화성시 예총회장 직함들이 보인다. 이런 감투들이 근사해 보이겠지만 솔직하게 얘기하면 다 돈 들어가는 虛官이다. 實官은 권력과 부가
실제로 발생하는 신성전자부품(주)와 해외법인 신성태크 뿐이다. 虛官이라도 아무나 감투를 쓰지는 못한다. 命理에서 보면 成格이 된
官이 天干에 분명히 떠야하는데 박 시인의 사주는 이 요건을 충족하고 있고 관상에서도 눈빛이 날카로우면서도 온화한 기색이 있어서
아랫사람을 거느리는 도량이 되고 있다.(이런 경우 눈빛이 흉흉하면 조폭두목이 된다)
3. 시의 입문과 고투
여기까지는 일반 기업하시는 분들의 성공한 케이스와 별로 다르지 않다. 내 주위에도 이런 분들이 심심찮게 있다. 박무웅시인이
뭐가 답답해서 돈 안생기는 詩에 관심을 두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命理는 어디까지나 현실이익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학문이므로 壽富貴功名을 중요시 여긴다. 사주체가 음양오행의 균형을 이루어서 천명을 다하고 財官을 이루어서 출세하며 가족을 부양해서
자식과 이름을 남길 수 있으면 上格으로 본다. 그러다 보니 財官이 강한 분들은 실전에는 강하나 현실을 미리 공부하는 印綬가
약해서 공부 운이 없거나 관심이 없다. 학자일수록 인수기운이 강한데 공부하고 분석하는 참모형으로 현실전쟁에 나가 총 쏘고 칼
휘두르는 일에는 무능한 사람들이다. 극단적으로 승려나 사제 命에는 印綬만 줄줄할 뿐 현실의 출세나 재물(여자로도 본다)기운은
일점도 없다. 이분들은 죽음이후의 삶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어서 평생 죽음이후의 생을 준비하는 공부에 헌신하게 된다. 財官印이
天干에 다 뜬 것을 귀하게 여겨서 三奇라 하는데 과거에는 재상이 되고 봉록을 받으며 문인소리를 들었던 고관대작의 命이다.
命理관점에서는 석가모니의 사주도 왕족으로 살다가 말년에 탁발과 걸식으로 죽었으니 말년이 안 좋은 사주이다.
현인들은 ‘인간은 동물과 신의 중간에 존재한다’는 통찰을 얘기했다. 관점에 따라 먹이와 생식에 만족하고 지금여기의 삶을
사는 동물이 더 행복할 수도 있지만 불행히도 인간은 자신의 한계보다 더 나은 이상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그 극단에 선 부류가 소위
현실너머의 이상과 유토피아를 꿈꾸는 예술가와 철학자들이다. 다시 뇌과학자들의 견해를 빌리면 사고와 상상이란 ‘움직이지 않은
행동’이다. 인간은 실제행동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머릿속을 수많은 경우의 시뮬레이션을 행해서 가장 그럴 듯한 시나리오를 택해서
현실에 적용한다. 시뮬레이션의 회수를 많이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일수록 머리가 좋은 인간으로 친다. 시뮬레이션(추론과 상상)에
쾌감보상을 기능을 주어 진화를 장려했는데 학자들의 견해로는 진화과정에서 시뮬레이션 기능이 과도하게 진화했다 한다. 머릿속의
상상만으로도 현실에서의 실제적용과 같은 만족과 쾌감을 느끼게 되었으니 이른바 가상세계의 출현이다. 사람 들중에는 현실의 연애보다도
연애를 상상하는 일로 더 쾌감을 느끼는 부류도 있는데 시행착오의 위험이 없어 몸은 안전하지만 결과도 없다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사실은 박시인의 시 인생을 설명하기위한 사전준비작업의 일환이다. 현실에서 성공한 분이 시까지 넘보고
있으니 전업시인들의 항의가 있을 수 있다. 돈 대신 명예를 택한 우리 몫을 가로채려 하는 저 현실 실력자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지만 시인들은 눈을 바꾸어야한다. 시인들의 위상이 나날이 추락해 가는 현실에서 이런 분들이 시인들을 귀하게 여기고 기꺼이
후원자가 된다. 인간의 무한욕망에는 한계가 없다. 석가모니도 왕족의 일생에 만족 못하고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 수도를 시작해서
열반을 획득한 분이니 사실 가장 욕심이 많은 분이다.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일은 물질우선시대인 현재에서는 겉으로는 왜소하나 안으로는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유물론자는 철학과 예술같은 정신작용을 뇌의 기능으로 가두는 반면 신비주의자는 인간의 뇌를 우주정신의
수신기로 본다. 명리학은 인간 밖에 있는 전체질서가 있다는 입장이지만 전체에 관한 문제는 性理學에 떠넘기고 인간의 육체와 현실을
설명하는데 주력한다. 性命雙修의 이론도 이래서 나왔다). 박무웅 시인도 욕심이 많은 분이라는 결론이 나오지만 박시인이 시에
입문한 과정은 소박하기 짝이 없다.
1980년 『心象』의 해변시인학교에 광고를 보고 무작정 참가한 일이 계기가 되었다한다. 불가의 카르마는 어떤 상황이 발생을
전생의 숙연으로 본다. 교통사고가 1초 상관에 발생하고 사람이 죽기도 하고 불구도 되는 것을 보면 박 시인이 해변시인학교광고를 본
것은 인연이지만 참가한 마음을 낸 것은 숙연이다. 그 후로 한양대학교 평생교육원과 동국대학교등에 공부하면서 해변시인학교를
10년동안이나 참가해서 1995년 『心象』해변시인학교 차상으로 입상해 등단했다. 등단을 계기로 박시인은 해변시인학교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가졌고 12년이 지난 2007년에 제부도 바다시인학교를 개설, 금년에 제 2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타향인 화성에서
예총회장이 쉽지 않은데도 올해 제 6회 화성예술제를 성공리에 개최하는등 사회적
활동을 열심히 하고있다. 시와는 상관 없는 인생을 산 박시인이 백팔십도 다른 쪽에 관심을 둔 것도 비유하자면 석가의 출가와
비슷하다. 석가처럼 왕족의 자리를 떨치지 못한 그릇이긴 하지만 여기에 돌 던질 수는 없다. 나를 비롯해서 한국의 많은 시인들이
직업 따로 시 따로 하면서 시인행세를 하고 있지 않은가. 무한시공간의 아뢰야藏에 존재한다는 카르마에 의하면 일거수 일투족이
숙연이라하니 박 시인의 시인인생 겸업도 전생의 업보다. 박시인이 인생의 수확을 거두어들이는 마음자세가 다음 시에 나타나있다.
미주지녁 국민일보(2008년7.16일자)에 발표된 사석(捨石)이라는 시다. “할아버지에게서 처음 바둑을 배웠다.//바둑은 두 집을
지어야 산다고 하셨다./이리저리 고단한 대마를 끌고 다녀도/한 집밖에 남지 않으면 끝이라 하셨다.//대마불사에 목을 걸고/집과
집, 길과 길을 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오궁도화가 만발하여 보기 좋아도/한순간 낙화하면 끝이라 하셨다.//세상에는 버릴 게
없다는 할아버지 말씀대로/사석을 모아들이며/한 집 한 집 키워 나갔다./길과 길을 만들어 삶을 이어 나갔다.//(중략)오늘도
사석이/가랑잎처럼 내게로 온다./판이 끝날 때마다 모아들이는 사석,/당신이 버린 사석이 바로 나의 묘수였다”. 현실의 전쟁을
바둑의 알레고리로 처리해서 만든 시다. 남들이 버린 사석까지 내 것으로 하는 분이니 여기까지의 성공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4, 애인보다 더 사랑하는 시
박 시인의 시에 대한 사랑은 내 입장에서 보면 도가 지나치다. 문학의 출발이 앞선 사람들을 따라 잡기 위해 하루 7시간 씩
매일 4-5백편을 외었다고 한다. 현재 180편정도 외우는데 남의 시는 커녕 내 시도 한편 못 외우는 내 입장에서는 대단한
일이다. 이형기의 「낙화」를 좋아하며 어느 술자리에서 눈을 감고 외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전철, 버스, 자가용등 어느 시간이든지
활용하며 앞으로 오백 편을 외우는 일이 목표라 한다. 다소 무식하게 보이지만 시공부에는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이다.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시절에 시를 의무적으로 외우도록 교과과정에 넣고 있다한다. 프랑스의 철학과 예술이 강세인 것도 이 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시적인 상상과 사고가 사유체계에 배면 사물이 더 풍요롭고 관점이 달리 보이지 않겠는가. 이렇게 시를 공부하는데 시가 달라지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기억력이 좋다는 것은 일단 머리가 좋다는 뜻이다. 나도 조직생활을 하는 샐러리맨이라 조직을 경영하면서
자료를 읽고 판단을 해서 결재를 하는 일의 어려움을 알고 있다. 박 시인의 공부가 반영된 시를 한편 읽어보자
거미는
허공이 바다다
어부가 바다에 그물을 치듯
거미는 허공에 그물을 친다
건물 모퉁이나 벽과 벽사이
곡예사처럼 꽁무니에 줄을 매달고
슬픔의 지형도를 그린다
나비 잠자리 매미.....
길을 잘 못 든 날것들의 울음이
간간히 등고선처럼 흔들린다
비가 뿌리는 거리 아침
가슴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매달고
도시의 한 켠에서
나의 하루가 흔들거린다
지금 내가 쳐 놓은 거미줄은?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
(나도 거미?, 전문)
“거미는 허공이 바다다”라는 비유가 좋다. 거미를 어부에 비유하고 다시 화자를 현실에 그물을 치는 거미이자 어부로 비유하고
있다. 다시 또 불가의 상상력을 빌리자면 세계는 인드라망의 그물로 짜여진 인과의 세계이다. 나도 타자도 시공간이라는 바다에서
유영하는 “나비 잠자리 매미”이다. 현상계내의 목숨은 이 그물에 걸려 언제인가는 죽는다. 먹이를 위해 화자가 현실에 그물을 치고
있지만 실은 화자 자신이 보이지 않는 그물에 걸려 발버둥치고 있다는 인식을 “발이 땅에 닿지 않는다”라는 마지막 행에서 보여준다.
현실의 유한존재로서
세계의 전체성을 인식하는 일은 시인이 자신의 시세계를 깊이하기 위해 필수과정이다. 유년의 가난이나 체험의 아픔에서 사물의 진실을 보는 눈을 떴다는 증거이다. 모던한 비유들이 사용된 시 한 편을 더 보자
빛 보다 어둠이 환하다
그는 어둠의 나라의 슈퍼맨이다
강한 자 앞에서 약해지고
약한 자 앞에서 강해지는
허공이 지상보다 더 단단해지는 처세술을 알고있다
허공을 자유스럽게 걸어 다니는
내공을 터득한 자의 눈빛이다
낮보다 밤이 더 환하다
어두울수록 더 초롱초롱 해진다
박쥐는 밤에 먹이를 잡는다
밤을 찢어 밤의 빨간 속살을 꺼낸다
거꾸로 매달려
허공을 움켜쥐고 지상에 등을 보인다
세상을 배반한 자의 등은 어둡고 어둡다
(박쥐, 전문)
『정신과 표현』에 나는 이 시를 다음과 같이 리뷰했다. “알레고리의 시들은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장점이 있다.
박무웅은 〈박쥐〉라는 익숙하게 알려진 상징을 차용해서 어둠과 빛, 허공과 지상을 대비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어둠을 비판하는 척
하면서 실은 어둠의 힘을 찬양하고 있다. ‘빛 보다 어둠이 환하다’는 진술과 ‘낮보다 밤이 더 환하다’는 진술은 ‘밤을 찢어
밤의 빨간 속살을 꺼낸다’라는 감각적 표현과 어울러져 빛을 발한다. ‘세상을 배반한 자의 등은 어둡고 어둡다’라는 당연한 진술이
비판처럼 들리는 게 아니라 힘의 프라이드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뭘까? ” 이 시는 박 시인이 자본현실을 배경으로 사는 경험에서 건져
올렸지만 단순한 정서토로가 아닌 이미지와 상징을 동원해서 말하고 싶은 주제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박 시인의 시에 대한 내공이 쌓인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5. 인생이란 말을 모는 자의 괴로움
박시인의 大運은 어릴적에는 공부운이 없었다. 십대와 이십대에 財운이 와서 돈으로 고통을 받는 동시에 財를 향해 매진해야
했고 30-40대에 사업체를 세워서 자신의 이름을 세우는 官운이 왔으며 50대부터 뒤늦게 學운이 왔다. 地支에 암장된 별(오행)이
뒤늦게 작용하니 돈과 출세가 하찮게 보이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위해 시를 택한 것으로 판단된다. 시라는 마차는 현실과는 다른
길로 가려하는 경향이 있다. 권력과 부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명리를 보면 공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해서 부귀를
누리는 사람도 있잖아? 하겠지만 이런 분들은 공부도 현실출세의 수단이고 정신의 고양을 위한 공부에는 관심이 없다. 실전명리에는
고스톱 패에 해당하는 타고난 사주가 있고 뒷장에 해당하는 大運이 복합으로 작용한다(10년 단위로 변하는데 120년을 산다면 60년
흥성과 60년 쇠락을 경험한다). 박무웅 시인은 뒷패 7장 뒷장에서 3장까지는 별 볼일 없었지만(30세까지) 나머지 4장이
좋아서 “고”를 부를 수 있었다. 한번 “고”를 불러서 현실에서 성공했는데 이번에는 두 번째 “고”를 불러서 시에서 성공하려
한다. 운명이라는 적은 자신의 돈이 나가면 긴장을 하고 뒤집어엎을 전략을 짠다(고스톱처럼 대충 2:1의 불리한 상황이 된다).
“고”를 부른 게이머는 전력을 다하고 판단에 실수가 없어야 성공할 수 있다. 박무웅 시인은 시에다 두 번 째 배팅을 했다.
현실과는 다른 길이므로 실수하면 기존에 쌓은 돈도 잃어버릴 수 있다. 詩魔는 좋은 시 한편의 쾌락에 현실의 부귀를 가볍게
무너뜨리는 마약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릴케는 ‘일생에 10편의 좋은 시를 쓰기 어렵다’라는 금언을 남겼다. 시 한편이 백년
뒤에 남는다면 소공동에 있는 삼성본사건물은 그 때쯤 무너지고 없을 것이니(백 년 가는 기업이 거의 없다고 한다) 시의 승리라 말 할
수 있다. 시인은 백년 뒤에 남을 가능성의 황금광맥을 추구해서 시를 쓰나 써 놓고 보면 납이라는 것을 알고 슬픔에 잠기는
존재다. 이런 길을 박무웅 시인이 선택했으니 운명이고 팔자소관이다. 박시인의 모교인 금산 중.고등학교에는 박시인의 모교사랑에
감사해서 詩碑를 세웠다 한다. 보령 육필시 단지에도 “어머니의 길”이라는 시가 세워져 있다. 박시인이 현실과 시의 양쪽에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그 공덕이 오는 것이리라. 인생이라는 도박장에 참여한 게이머들이 모두 죽은 뒤에도 시비는 남아있겠지만 시는 인간의
마음과 정신에 새겨져야만 진정한 詩碑가 된다. 박시인이 현실과 시인의 길을 가는 쌍두마차를 몰고 가는 마부이지만 命理에서는 두가지
길의 성공을 보장하고 있지 않다. 어느 시점에서 갈라지는 길이 나오고 박무웅시인은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의 화자처럼 선택을
해야 하리라. 화자의 주인공처럼 박시인이 ”잡초가 우거지고 인기척이 적은 소롯 길“ 인 시의 길로 본격적으로 접어드는 날이 올지
궁굼하다. 내 관점에서는 이 역시도 天命으로 정해져 있다.
김백겸.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기상예보”로 등단.
.시집으로 “『비를 주제로한 서정별곡』『가슴에 앉힌 산 하나』『북소리』『비밀 방』『비밀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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