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장금의 실체는 무엇인가>
경남여자중학교 1627 이아림
대게 사극은 늘 드라마 내용과 역사적 사실이 얼마나 부합하느냐는 논란을 달고 다닐 정도로 매우 다른점이 많다. 시청률 50%대를 유지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대하 사극 '대장금' 또한 예외가 아니다. 장금이란 이름은 '중종실록'에 모두 10번 등장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녀에 관해 확실히 알기에는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대장금'은 다른 사극보다도 훨씬 더 많은 작가의 상상력이 동원되어 제작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실록에 임금이 "내 증세는 여의가 안다"고 한 말을 그만큼 장금을 믿고 그녀에게 몸을 맡겼다는 뜻으로, 또 '여의'라는 다소 품격있는 말을 쓴 것은 장금이가 보통 '의녀'가 아니라 임금의 주치의이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역사학자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문맥으로 봐서 장금이 임금의 주치의였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단언하였고 임금이 병들면 의녀들이 돌아가며 수발을 들게 되는데, 실록에 기록된 내용은 그 무렵 마침 장금이 수발들 차례였던 것으로 봐야한다는 설명이다. 임금이 자기 병세를 여의에게 물어보라 한 것 또한 장금을 신임해서가 아니라 임금으로서 구질구질한 증세를 직접 말하기가 뭣해 아랫 사람에게 대답을 미룬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으로 밝혔다. 또, '여의'라는 말에도 별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고 한다. 실록에는 '의녀'의 글자 순서를 바꿔 '여의'로 쓰는 경우가 간혹 있단다.
실록에는 중종 10년에 장금이 중전의 산후조리와 관련해 잘못을 저질렀다는 언급이 있다. 또 중종 19년에는 의녀 대장금의 의술이 무리 중에 조금 나아 바야흐로 대궐에 출입하며 간병하니 한사람 몫의 봉급을 주라는 구절이 나온다. 중종 10년에 중전의 산후조리를 도울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던 인물이 9년이나 지나서야 대궐에 출입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동명이인은 아닐까하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한 박사는 "장금은 당시에 흔했던 이름이다. 실록에 나온 장금이 모두 같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큰 대(大)자도 이름이 같은 경우 헷갈리지 않게 하기 위해 덩치가 큰 사람에게 흔히 붙이던 말이라고 밝혔다. 우리말로 '큰 장금이'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대장금'이라고 썼다는 것. 결국 사실에 의하면 드라마 '대장금'에서 실록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중종조에 장금이란 이름을 가진 의녀가 있었다는 것 뿐이다.
드라마 중에 연생이 승은을 입어 숙원 이씨가 되는 것도 실록에 없는 내용이다. 실록에는 숙원 이씨가 정순, 효정옹주를 낳았다고만 기록되어 있고 개인적인 출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의녀들의 생활에 대한 부분도 드라마에서는 역사적인 고증보다 작가의 상상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역사책에 나오는 의녀는 결코 고상한 여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라 관청의 노비였다. 그래서 관청의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온갖 궂은 일을 다 했다고 기록으로 전해진다. 또한, 장금이와 사랑하게되는 민정호(지진희 역) 또한 단지 장금이가 실제로 높은 관직의 나으리와 친하게 지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꾸며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외 드라마에 출연한 신비, 열이, 조동이 등의 주변 인물 또한 작가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들이다.
따라서 장금이 대비에게 내기를 거는 드라마 장면은 너무 지나치게 꾸며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천민인 의녀가 왕실의 가장 높은 어른인 대비와 맞상대를 하는 일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고 드라마에서는 남자 의관이 중전이나 대비를 치료할 때 방에 들어가 발을 치고 의녀의 보고를 받지만 실제로는 남자 의관이 방 밖에서 대기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대장금'이 작가의 머리 속 산물만은 아니다. 한의학, 궁중 음식 등에 관해서는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구성해 많은 의견을 들었고, '궁중풍속연구'나, '한국음식대관' 등에 관련된 서적들도 참고했다고 한다.
'대장금'의 김영현 작가는 "궁녀나 의녀에 관한 자료가 워낙 적다보니 장금이란 인물을 탄생시키기 위해 상상력에 많이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며 "그러나 장금을 임금의 주치의로 해석하는 것이 틀렸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드라마는 역사책이 아닌 만큼 그저 드라마로 봐주면 좋겠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